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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가 꽃가루를 퍼뜨려 꽃이 피게 하듯 거리를 화사하게 바꾸고 싶어요

그래피티 아티스트 범민

베를린 장벽에는 평화를 염원하는 수많은 글귀가 적혀 있다. 팔레스타인 분리장벽에는 풍선을 쥐고 떠오르려는 소녀가 그려져 있다. ‘검은 피카소’로 불렸던 바스키아는 백인 위주 사회에 대항하기 위해 뉴욕 거리의 벽면에 흑인 영웅들을 그렸고, 키스 해링은 더럽고 지저분한 지하철 벽에 천사를 그려 넣었다. 벽에 그리는 낙서그림에서 출발한 그래피티 아트는 그래서 사회 참여와 자유의 상징이다.
그래피티 아티스트 범민의 태그 네임은 BFMIN, ButterFly Min이다. 나비의 자유가 좋았다. 새는 하늘을 쭉 뻗어 날아가지만 나비는 불규칙하게 팔랑인다. 뭔가 더 반항적으로 보였다. 그의 작품 스타일 역시 나비와 닮았다. 그의 그림은 가운데를 중심으로 양옆으로 퍼져나간다. 벽 바깥으로 솟아나는 듯하기도 하다. 범민의 범은 호랑이다. 동글동글한 외모와 다르게 호랑이를 이름에 붙였다. 그의 반전은 심벌에서도 드러난다. 심벌은 나비가 아닌 나방이다.

학창시절 그는 거칠었다. 늘 억눌려 있는 기분이었다.

“독설가였어요. 그러다 보니 친구들이 기분 나빠한 적도 여러 번 있었고요. 친구에게 ‘너 사실 속마음은 그렇지 않잖아’라는 말을 많이 했죠.”


그는 인간의 이중성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평범한 사람처럼 될까 봐 두려웠다. 교과서 귀퉁이에 낙서를 하고 ‘차르르’ 넘기는 기술만큼은 학교 최고라고 믿었다. 예술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대학은 도예과를 갔다. 예술을 할 수 있다면 분야는 상관없었다. 그러나 기다림이 긴 도자기를 만드는 일은 견디기 어려웠다. 자유롭게, 시원스럽게 자신의 내면에 있는 것을 뿜어내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친구를 통해 그래피티를 알게 되었다. 신세계였다. 스프레이 캔 페인트를 ‘치익’ 뿌려 넓은 벽에 쭉쭉 그림을 그려나가는 일이 통쾌했다. 즉흥적으로, 생각나는 대로,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는 게 좋았다. 자신이 그린 그래피티를 행인들이 지나가면서 훑어보는 것도 좋았다. 거기에 몰래 그리는 스릴까지 있었다.


그는 2000년대 초반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그림을 알리기 시작했다. 당시 그래피티를 인터넷에 올리는 사람은 드물었다. 조금씩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기업에서 연락이 왔다. 서태지를 시작으로 슈퍼주니어, f(x), 샤이니, MissA 등 다수의 뮤직비디오에 스프레이 흔적을 남겼다. 스트리트 아티스트 뱅크시의 영화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의 이벤트 퍼포먼스를 하고, 2010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K21 street siglo XXI〉 전시회에 대한민국 대표로 참여했다. 충무로 영상센터에서 개인전도 개최했다. 지난해에는 에미넴 내한공연에 앞서 라이브 페인팅을 선보였다. 건물 전체가 그래피티로 도배되어 있는 ‘그래피티 성지’ 뉴욕의 5POINZ에도 갔다.

“5POINZ 건물주가 갱이에요. 바람에 펄럭이는 하얀색 셔츠 사이에 총이 꽂혀 있더라고요(웃음). 그 사람 말로는 동양인이 그린 것은 처음이라고 하더라고요.”

호텔 더 디자이너스.
그래피티는 전 세계적으로 미술의 한 장르가 되고 있다. 호주 멜버른 호시어 레인(hosier lane)은 그래피티 골목으로 유명하다. 영국에는 뱅크시의 그래피티를 보기 위한 관광코스도 있다. 셰퍼드 페어리는 담벼락 그래피티로 시작해 ‘OBEY’ 라는 세계적인 브랜드를 만들었다. 범민 역시 최근 색다른 시도를 하고 있다. 그래피티를 공간 디자인에 접목시키는 것. 호텔 객실, 건물 외관 등을 화려한 색의 낙서로 채우고 있다. 5월에는 국내 최초로 그래피티와 인테리어를 접목시킨 상점도 열었다. 그래피티 장르에서 선두격인 그의 어깨는 무겁다.

“그래피티를 시작하는 동생들이 저를 보고 꿈을 키울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래피티 작가가 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한국에서도 할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오늘날 범민이 있기까지 그는 주위의 시선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다. 하루하루 생활이 빠듯했다. 서브컬처인 그래피티로 수익을 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재료비만 겨우 감당할 수 있었다. 밥벌이를 위해 중간중간 직장생활도 했다.

“그래피티 작가에게 가장 필요한 건 가난을 견디는 힘이에요. 진짜 이 일을 하고 싶다는 열정이 중요하고요. 마이너 장르다 보니 금방 그만두더라고요. 땡볕에서 몇 시간이고 방독면을 쓰고 일해야 하니까요. 스프레이 냄새가 엄청 심하거든요. 겨울에는 덜덜 떨며 언 손으로 사다리를 타야 할 때도 있고요. 육체와 정신을 모두 혹사시키게 되죠. 게다가 수입마저 적절하지 않고요. 예술계의 3D 직종이랄까(웃음).”



그래피티.
그럼에도 범민은 꾸준히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 지난해 어린이날, 의왕역 철도길 담벼락에 페인팅을 하고, 원자력발전소 낙후지역을 돕는 ‘에너지 문화 예술인 모임’에도 참여해 고리원전지역 주민들과 함께 벽화를 그렸다. 올해는 서울대공원 곤충관을 새롭게 단장했다. 다양한 재능기부 뒤에는 ‘예술가의 사회참여’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세상은 불공평해요. 같은 조건일 때는 얼마나 노력하느냐가 개인의 책임에 달려 있지만, 기회조차 못 얻는 사람이 많잖아요. 거리에서 미술을 쉽게 접하게 하고 싶어요. 더러운 담벼락에 작품이 그려지면, 그 지역이 새로워지는 계기도 되고요.”

나이키 홍대점 작업.
예전에 그는 그림으로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자신의 그림으로 어떻게 사람들에게 다가갈 것인가가 더 중요해졌다. 작품이 아닌 ‘작품으로 하는 활동’이 더 큰 의미를 갖는 것이다.

좋은 그림을 자주 보면 사람은 긍정적으로 변할 수 있다. 어두컴컴하던 골목이 담벼락 그림으로 인해 새로운 인상을 갖게 되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기분도 달라진다. 어떤 장소라도 아름다워질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그는 말한다. 허름한 다리 밑도 마찬가지다. 숨겨져 있던 씨앗이 그로 인해 화사한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것이다. 나비는 꽃가루를 날라 꽃들의 사랑을 돕는다. 범민은 예술의 꽃가루를 거리에 퍼뜨리고 있다.
  • 2013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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