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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잃은 자는 모든 것을 잃는다

장석주의 詩와 詩人을 찾아서 - 신동옥, 〈이사철〉

이제는 지붕도 처마도 장독도 감나무도 기억에 없다
마당을 나서며 한걸음에 하나씩 잊은 거다
마침내는 한없이 낮고 푸르렀을 대문만
마치 누이 표정처럼 또렷하다

고개 들면 깨질 듯한 노을 속에 흐리고 성긴 대문 하나
미치도록
정겨운
낯모를
누이를 태우고 나네

치마와 바지를 뒤바꿔 입고 누웠던 낟가리는 먼지가 되었으려나
세상에 없는 빛으로 우리 발목을 감싸던
차고 서늘한 꽃뱀은 어디 잠들었을까
무릎을 맞대고 문고리를 붙안아도 마주 서로 커가는 눈, 누이
담장 너머 너울너물 솟구쳤다 갈앉던 만장을 애써 외면했지만…

누이가 우리 집이라 말했던 그곳을 떠나고 나는 쉬이 다른 사랑에 빠졌다
떠날 때마다 표정을 바꾸고 뒤태를 바꾸는 파렴치한으로
더는 이 세상에 고향을 두지 않는 족속이 되어버렸다

푸른 대문이 나는 하늘을 넘어 거기
노을에 발목을 한 땀 한 땀 담갔다 뺀다
마치 하늘 솔기를 매듭이라도 지으려는 듯.



〈이사철〉은 이사에 대한 어떤 기억을 시의 소재로 쓰고 있다. “이제는 지붕도 처마도 장독도 감나무도 기억에 없다”는 첫 구절을 보면, 시의 화자는 어린 시절을 보낸 지붕과 처마와 장독과 감나무가 있던 집을 떠난다. 그 집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한 것은 탈기억화가 진행될 만큼 오랜 세월이 흘렀다는 뜻이다. 많은 것이 잊혔지만, 그래도 기억 속에 또렷하게 새겨진 것은 “깨질 듯한 노을 속에” 남은 “한없이 낮고 푸르렀을 대문”이다. 이것이 왜 기억 속에 또렷한가 하면, 아마도 붉은 노을/푸른 대문이라는 색채의 대비가 인상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사철〉에서 중요한 기억의 매개자는 누이다. 누이와 ‘나’는 어린 시절 고향 집에 대한 기억을 공유한다. “치마와 바지를 뒤바꿔 입고 누웠던 낟가리는 먼지가 되었으려나/세상에 없는 빛으로 우리 발목을 감싸던/차고 서늘한 꽃뱀은 어디 잠들었을까”라는 구절이 말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낟가리는 먼지가 되고, 꽃뱀은 몇 번 허물을 벗으며 자란 뒤 죽었을 것이다. ‘나’와 누이가 치마와 바지를 뒤바꿔 입고 낟가리에 누워 놀았던 기억은 차츰 희미해진다. 그 희미해지는 기억 속에도 또렷한 것은 어떤 날카로운 불안이다. “무릎을 맞대고 문고리를 붙안아도 마주 서로 커가는 눈”에 따르면, 고향 집을 떠나기 직전 어린 두 영혼은 점점 커지는 불안에 떨고 있다. 그 불안은 아마도 가족 중의 누군가가 죽었기 때문일까? 그 죽음은 어른들의 일로, 어린 두 영혼은 그 일에서 제쳐져 있다. 하지만 그 죽음이 불러일으킨 불안과 두려움은 커서 어린 영혼은 “담장 너머 너울너울 솟구쳤다 갈앉던 만장을 애써 외면”한다. 시인은 그 죽음이 누구의 죽음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는다. 아무튼 그 누군가의 죽음을 겪은 뒤 시적 화자의 가족은 고향을 떠나 낯선 곳으로 이사를 한다.

이사는 삶의 터전을 바꾸는 일일 뿐만 아니라 실존의 맥락에서 보자면 낯익음에서 낯섦으로의 존재 이전이다. 이것을 실존주의 철학자의 용어로 바꾸면 실존적 기투(企投)다. 즉 세계-내-존재로의 내던져짐이다. 이때 낯섦은 단지 환경이 새롭다는 뜻이 아니라 새롭게 만나는 자기의 낯섦이라는 뜻이다. 누구에게나 고향이란 자족적 완전성의 시간이자 원초적 장소다. 고향이 함께 삶, 실존적 기억의 풍요와 아름다움, 착함과 이타성, 긴 관계들의 총체라면, 타향은 따로따로 삶, 실존적 기억의 가난과 추함, 악함과 이기주의, 짧은 관계들의 총체일 것이다. 고향에서 객지에로의 떠남은 곧 고향의 상실을 의미하며, 그 상실은 풍요에서 결핍으로, 고결함에서 속됨으로 나아가는 일이다. 고향을 떠난 자는 모두 오래된 기억을 박탈당하고, 짧은 기억들에 의지해서 살아간다. 그래서 고향 상실자들은 “쉬이 다른 사랑에 빠”지고, 언제든지 “표정을 바꾸고 뒤태를 바꾸는 파렴치한”이 될 수 있다. 고향을 떠난 순간부터 우리는 영혼의 순진무구함을 탕진하고 그 고갈 속에서 허덕이다가 타락한다.

‘나’는 어린 누이와 함께 고향에서 그랬듯 순진무구한 놀이에 빠질 수가 없다. 그것은 낟가리와 같은 환경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라 어른이 되어서 어린 시절처럼 놀이의 자유로움과 백일몽에 자신을 온전하게 던질 수가 없는 까닭이다. 시의 화자는 “더는 이 세상에 고향을 두지 않는 족속이 되어버렸다”고 담담하게 술회하고 있지만, 그 언표 아래에는 어린 시절의 순진무구함, 그리고 존재 본질의 시공에서 튕겨나간 자의 짙은 회의와 부끄러움이 숨어 있다.

시인은 함께 고향을 떠났던 ‘누이’가 그 뒤로 어떻게 되었는지 말하지 않는다. 누이는 영원한 여성적인 것의 원형이다. 누이가 나오는 다른 시편들, 즉 〈동복(同腹)〉 〈첫, 월경하는 누이를 씻는 백야의 푸주한〉 〈회기(回期)〉 같은 시편들을 겹쳐보면, ‘나’와 누이는 고향을 떠나면서 “부끄러운 몸짓으로 서로가 서로를” 쓰다듬고 매만지던 “근친상간의 친밀감”에서 멀어진다. “머리카락에선 잘 마른 건초향이 풍”기던 누이가 ‘나’를 완전하게 떠남으로써 ‘나’는 누이를 잃는다. ‘나’는 “꼬무락거리는 더러운 짐승의 눈으로” “종루를 빠져나오는 누일 한 번 더 훔쳐”보고 떠난다. ‘나’에게 남은 것은 떠남으로써 “우린 또 그 끝을 한숨짓겠지”라는 구절은, 그것이 한숨이라는 것을 말한다. 그와 함께 “고삐와 채찍”이 있다. ‘나’와 누이는 이런 시절의 순진무구함을 잃었기에 죄의 존재로 전락한다. “고삐와 채찍”은 그 죄를 단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시집에 있는 한 물음, 즉 “피와 뼈의 창고여, 우리는 어디서 나와 어디로 되돌아가는 것일까?”라는 구절은 이 시집이 고향을 잃어버린 자의, 그 불가능한 실존 가능성을 묻는 절박한 목소리로 생채(生彩)를 얻고 있음을 보여준다.


신동옥(1977~ )은 전라남도 고흥에서 태어난다. 한양대학교 국문과를 나와 2001년에 대구에서 나오는 시 계간지 <시와반시> 신인상 공모에 시가 당선되어 시인으로 등단한다. 우리 시의 가장 젊은 전위(前衛)에 서 있는 그는 지금까지 시집 두 권을 냈다. 《악공, 아나키스트 기타》와 《웃고 춤추고 여름하라》가 그것이다. 편편의 시들 이면에는 “식물적인 퇴락을 거듭”(〈이복(異腹)〉)하는 아픈 가족사가 희미한 윤곽을 보여준다. 그의 가족들은 고향을 떠나고, 뿔뿔이 흩어져 이산가족이 되고, 어쩐 일인지 ‘나’는 친인척에게 “싸가지 없는 근본 없는 새끼”(〈포역(暴逆)의 무리여, 번개의 섭리를 알고 있다〉)라는 욕설을 듣는다. 그의 시집은 나쁜 일들과 감당할 수 없는 죽음들, 증오와 악몽들, 그 시난고난한 삶에서 멀리 도망가려는 무의식의 몸짓들을 드러내고 있다. “서울시 은평구 신사2동 비단산 산딸기 밭에 첫 시집과 얼음과 밑창이 나간 하이힐을 묻었다”(앞의 시)고 하는데, 그 주소가 현재 삶의 자리일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신동옥의 두 번째 시집을 읽는다. 그의 시들이 보여주는 화법은 한사코 낯설다. 젊은 시인들이 시의 화법을 낯설게 하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모든 시는 표절이거나 혁명, 둘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젊은 시인들에게 그 중간 항은 없다. 사회의 인습과 관례에 굴종하는 시들, 문법적 질서에 안주하는 시들, 잘 빚어진 서정시들은 어떤 형식으로든지 표절 혐의를 걸 만하다. 반면에 인습과 관례에서 튕겨나가는 시, 기존의 방식들에 대한 반동과 반발을 일삼는 시들, 문법적 질서를 깨는 시들은 혁명을 향해 나가는 시다. 이미 일가를 이룬 시인들 다음에 오는 젊은 시인들은 다른 목소리를 내려고 한다. 전대의 시적 화법을 바꾸고 새로움으로 나가려는 그들의 의지와 노력이 그들의 화법을 낯섦으로, 혁명으로 이끈다. 이상과 김수영, 이성복과 황지우의 시들만 혁명인 것은 아니다. 서정주와 김영랑도 당대에는 낯설었고, 장석남과 문태준도 당대의 시적 혁명이다. 한국시 최고의 모더니스트로 꼽는 이상과 한국 서정시의 좌장(座長) 자리에 있는 서정주 사이의 거리는 멀다. 이상의 혁명이 방법적 혁명이라면 서정주와 김지하의 그것은 내용적 혁명이다.
  • 2013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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