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회철 전통주조 ‘예술’ 대표

변호사, 법학교수 지내다 우리 술에 빠지다

중국 당나라의 시인 이상은은 “한 잔 신라주(新羅酒)의 기운이 새벽 바람에 쉽게 사라질까 두렵구나”(《지봉유설》)라고 읊었다. 삼국시대 이전 마한시대부터 맑은 곡주를 빚어 조상께 바치고 춤과 노래를 즐겼다는 기록을 보면 우리 선조들은 술을 ‘예술’로 보았던 게 아닐까. 변호사에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다시 전통술을 빚는 사람으로 변신한 정회철 대표는 우리나라 전통주의 미학을 재발견하고 있다. 그를 만나러 강원도 홍천을 찾았다.
우리술협동조합장 정회철씨(51·전통주조 ‘예술’ 대표)는 우리 전통술에 매료되어 강원도 홍천에서 ‘양온소’를 운영하고 있다. 변호사와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지낸 그는 헌법학 교재 집필자로도 유명한 이다.

“‘예술’은 예로부터 내려온 술이라는 뜻이기도 하고, 예(醴)와 술이 합쳐진 이름이기도 합니다. 술 빚는 행위는 예술창작 행위와도 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양온소는 양조장의 우리말이다. 양조장은 일제 때 전통가양주 문화를 말살하면서 제도화된 것이라 한다. 양온서는 고려 때 왕이 마실 술을 빚는 관공서였다. “저는 양온소라고 부르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그는 이곳에서 홍천찹쌀과 미니 단호박, 전통누룩을 원료로 한 탁주 ‘만강(萬江)에 비친 달’과 약주 ‘동몽(同夢)’을 빚고 있다.

“매년 가을이면 마을에서 단호박축제를 엽니다. 이곳에서 나는 호박이 달고 맛있어요. 그래서 이왕이면 지역특산물을 살려 만들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들었어요. 과일을 주재료로 한 술은 많지만 단호박처럼 채소는 없어서 힘들지 않을까 했는데 빚어보니 맛있고, 시음회 때 반응도 참 좋았습니다. 원래는 솔잎을 넣어 송순주를 만들 계획이었는데, 보류했지요. 그 다음 단호박축제 때 다 팔릴 줄 알았는데(하하) 그렇진 않았어요. 시판되는 막걸리보다 비싸다는 거예요. 프리미엄 탁주시장이 형성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지요. 이 점은 저뿐만 아니라 전통주를 빚는 이들이 겪는 공통된 어려움 중 하나입니다.”

전통주의 양조과정은 전분이 당으로 되는 당화과정과 당이 알코올로 바뀌는 발효과정이 동시에 진행된다. 발효과정만 있는 와인이나 당화과정을 거친 후 발효과정이 순차로 진행되는 맥주와 다른 점이다. 전통주가 다른 술과 달리 빚기 어렵고 높은 기술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통 사람들은 알까?


올해 초 전통주를 빚는 이들이 모여 ‘우리술협동조합’을 창립한 것도 판로를 모색하기 위해서였다. 전통주 시장의 미래를 개척해야 할 과제가 모두에게 떨어졌고, 그가 이사장으로 선출되면서 할 일도 많아졌다. 1925년 시작한 80년 역사의 ‘지평막걸리’, 지난해 과실주 분야 대상을 받은 ‘예산사과와인’, 강원도 강릉의 ‘방풍도가’, 충남 아산의 ‘이가수불’, 전남 장흥의 ‘수미지인’, 부산의 ‘청춘주가’, 충북 청원의 ‘장희도가’, 경북 봉화의 ‘법전양조장’ 등 전통주 생산자들과 경기대 산하 전통술 교육기관인 ‘수수보리아카데미’를 운영하는 조효진 교수가 힘을 합했다. 국내 최초의 우리술협동조합이다.

“천천히 하나하나 성과를 내면서 그렇게 갈 겁니다. 우선 제주와 안동, 경주 등 외국인이 많이 찾는 유명 관광지에 공동판매장을 설립할 계획입니다. 한국문화를 체험하려고 온 사람들에게 우리 문화를 알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옛 가양주 전통처럼 우리 술도 다양화시켜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중국과 일본은 차를 대접하는 문화가 있지만 우리는 차 대신 술을 귀하게 대접했습니다. 우리나라 가양주 전통은 유교문화의 영향이 큽니다. 조상에게 제사 지낼 술을 올리기 위해서이기도 했으니까요. 집집마다 술 담그는 비법이 있었던 만큼 우리 술이 발전하는 길도 더 다양화되어야 합니다. 장인정신도 필요하지만 어떻게 하면 대중화시킬까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지역특산물 호박으로 빚은 전통술

양온소는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에 있는 동창마을 복골에 위치해 있다. 1919년 3・1운동 당시 만세운동을 하다가 여덟 열사가 일제에 의해 잔혹하게 살해된 역사가 서린 마을이다. 마을에 만세공원이 있는 이유다. 백운산 자락이나 내촌천이 흐르는 지역 특성은 술 빚기에 아주 좋은 조건이라고 한다. 그가 처음부터 술을 빚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은 아니었다. 건강이 좋지 않았던 그는 7년 전, 요양을 위해 지금 온양소로 쓰고 있는 집을 마련했다.

“17년 된 한옥으로, 두 차례에 걸쳐 리모델링을 했습니다. 작은 한옥인데도 방이 다섯 개나 됩니다. 술 만들기에는 딱 좋은 집이지요. 방마다 숙성실, 발효실 등으로 나누어 쓰고 있어요.”

오랫동안 목공이 취미였던 그는 가구도 모두 직접 만들었다. 양온소 뒤쪽에는 국민대 김개천 교수가 설계한 게스트하우스가 들어설 예정이라고 한다. 그는 몇 해 전부터 집 주변에 백합나무를 심었는데, 500여 그루에 이른다. 체험관과 주막을 만들어 우리 술 문화를 알릴 계획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음식과 술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음식솜씨 좋은 어머니를 보면서 저도 자연스럽게 음식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요. 떡도 제가 직접 만들거든요. 평생 농사를 지은 할아버지는 100세까지 사셨는데, 일하고 나신 후에는 꼭 막걸리를 드셨어요. 어릴 적 그 모습을 보면서 ‘막걸 리가 얼마나 맛있으면 매일 드실까?’ 호기심을 가졌죠.”


충남대 교수를 지낼 때도 건물을 임대해 1층은 목공실, 2층은 숙소 겸 술공방을 만들 정도로 그는 목공과 술빚기에 빠져 있었다. 한국전통주연구소의 박록담 소장으로부터 전통주의 주조원리를 과학적으로 배우기도 했다. 건강 때문에 교수직을 떠나면서 그는 ‘남은 생에서 의미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우리 문화의 집합체인 술 빚는 일이야말로 보람 있겠다고 생각했고, 건강 때문에 휴양을 하면서 전통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한다. 그전에도 틈만 나면 아내와 함께 전국의 유명하다는 양조장을 다니며 전통주 순례를 했는데, 돌이켜보니 그것이 술 빚는 사람이 되기 위한 준비과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빚은 술 ‘만강에 비친 달’의 빛깔은 호박의 속살을 닮았고, 달콤한 맛은 찹쌀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 한다.

“여성 소비자를 타깃으로 만든 술이에요. 우리 술 문화를 바꿀 수 있는 것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고 생각해요. 취하도록 마시는 것은 우리 술문화가 산업화를 겪으면서 왜곡되었기 때문입니다. 맛과 향을 즐기는 새로운 술문화를 이제 여성들이 만들어가리라 생각해요.”

그는 우리 땅에서 나는 재료로 만든 건강한 술인 전통주가 되살아나기를 기대하고 있다. 프리미엄 술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생기고 있는 만큼 희망을 만들어가고 싶은 그다.

사진 : 김선아
  • 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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