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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에 시달리는 운동선수, 그리고 현대인을 위한 심리처방

《마음속에는 괴물이 산다》 펴낸
한덕현 중앙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손에 땀이 밸 정도로 스릴이 넘치는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다 보면 문득 ‘경기를 보는 사람도 이런데, 선수들은 극도의 긴장감을 어떻게 이겨내지?’라는 의문이 든다. 결정적인 순간에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느냐가 승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인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하루하루 전쟁 같은 나날을 보내야 하는 게 비단 스포츠 선수뿐일까?
스포츠 선수들의 마음 다스리기 비법에서 일반인도 얻을 게 많을 것 같다.
프로야구단 LG트윈스의 심리주치의를 맡고 있는 한덕현 중앙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펴낸 책 《마음속에는 괴물이 산다》가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만년 2등을 하는 선수와 중요한 프레젠테이션마다 번번이 미끄러지는 직장인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무릎을 꿇게 만드는 괴물은 바로 그들 마음속에 있다는 것이다. 《마음속에는 괴물이 산다》는 그동안 그가 많은 운동선수들을 상담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불안과 콤플렉스, 우울증, 공포증, 강박증 등 현대인을 괴롭히는 마음속 괴물들에 하나하나 확대경을 들이대며 이를 물리치기 위한 해법을 제시한다.

꽉 짜인 진료 스케줄로 짬을 내기 어려운 한덕현 교수를 중앙대병원 진료실에서 만났다. 그는 세계 3대 인명사전 가운데 하나인 미국 《마르키즈 후즈 후(MARQUIS WHO’S WHO)》 의학 부문에 2009년부터 2012년까지 등재되고, 2010년 미국정신의학회(APA) 학술대회에서 ‘젊은 연구자상’을 수상하는 등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의학자. 그의 주된 연구 분야는 ‘소아・청소년 인터넷 중독’으로, 중앙대병원 ‘게임과몰입 상담치료센터’에서 치료팀장을 맡고 있다. 스포츠와 인터넷, 그리고 정신의학. 이 3가지를 이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역시 청소년기에 스포츠와 인터넷을 지독히 좋아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야구와 테니스를 했는데, 청소년기까지 제 꿈이 운동선수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키가 175cm에서 멈추더라고요. 프로 선수들은 보통 180cm가 훌쩍 넘는데요. 힘도 세지 않고, 달리기도 달리고. 현실적인 이유로 포기했습니다. 게다가 할아버지, 아버지가 모두 의사인 집안이라 외아들인 저도 의사가 되었으면 하는, 무언의 압력도 있었지요.”

고등학생 때는 직접 운동을 하는 대신, 야구・축구・ 농구・배구・테니스 등 각종 스포츠의 이론서를 읽으며 마음을 달랬다. 인터넷 게임에 빠져든 것도 고등학생 때였다. 새벽까지 온라인 게임을 하다 잠시 자고 일어나 아침 공부를 한 후 학교에 갔다. 고등학생 시절을 그는 ‘삶의 방향을 찾지 못해 방황하던 때’로 기억한다. 그러다 의사가 되기로 결심, 재수를 거쳐 의대에 진학했다.

스포츠를 워낙 좋아하는 터라, 아직 미개척 분야인 스포츠 정신의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열정의 힘은 셌다.

“춘천국립병원에서 공중보건의를 하고 있던 2003년 1월 4일, ‘현대유니콘스’ 시무식에서 정신의학에 관한 강의를 했어요. 이를 계기로 코치를 쫓아다니며 선수들을 소개해달라 졸랐죠.”

선수들은 외부인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현대유니콘스’ 경기가 있는 날이면 휴가를 내고 춘천에서 수원 경기장까지 찾아갔다. 덕아웃에서 선수들과 함께 경기를 지켜보다 밤 11시 막차를 타고 춘천으로 돌아갔다. 사비를 들여 미국 플로리다에서 전지훈련 중인 선수들을 찾아가기도 했다. 이렇게 몇 년 공을 들이자 선수들은 하나둘 속내를 털어놓았고, 경기가 끝나면 전화나 이메일로 심경을 호소해오기도 했다. 2004년에는 미국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의 심리주치의를 찾아 미국으로 날아가기도 했다.

“이메일로 계속 연락을 취하다 무작정 찾아갔습니다. 3시간을 기다렸다 만났는데, ‘정말 왔느냐?’고 깜짝 놀라면서 유명선수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소개해주었지요.”

그는 원래 그렇게 적극적이고 대담한 성격일까?

“그렇지 않아요. 비행기를 타고 가는 동안에도 ‘그분을 정말 만날 수 있을지’ 확신을 못했지만, ‘운이 닿는다면 만나겠지. 내 할 일은 다해보자’고 맘 편히 생각했습니다. 의대 진학을 목표로 공부하던 재수시절에도 무척 힘들었지만 ‘내가 의대에 못 간다면 의사가 될 만한 능력이 없는 것이니 할 수 없지’라고 마음먹었지요. 복귀 무대인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김연아 선수가 만약 결과에 집착했다면 그만한 성과를 낼 수 있었을까요? 최선을 다하되, 마지막 순간에는 마음을 비웠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기회는 다시 찾아왔다. 군 제대 후 서울대병원에서 펠로로 일하다 미국보건복지국 펠로십 프로그램에 선발, 하버드대 의대 뇌과학연구소에서 연구하게 된 것이다. 그는 그곳에서 게임중독이 뇌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다.

“하버드대 교수가 ‘너는 온라인 게임이 가장 발달한 한국에서 왔으니, 이 분야에서 최고가 될 거야’라고 예언처럼 말씀하셨죠. 지금도 그분과 공동연구를 많이 하고 있어요.”

그런데 게임중독을 연구하기 위해 어렵게 만난 게임개발자는 ‘너희는 내 게임을 마약과 같이 생각하지 않느냐?’며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과학자의 입장에서 중립적인 태도로 연구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였습니다.”

그는 게임을 할 때 뇌에서 어떤 작용이 일어나는지, 일반인과 중독자의 뇌가 어떻게 다른지 구체적인 연구결과를 하나하나 내놓았다. ‘게임과몰입 상담치료센터’는 게임에 대한 교육, 인지행동치료 등을 통해 게임중독에서 벗어나도록 돕는다.

“하루에 12~14시간씩 게임을 하던 청소년에게 게임을 못하게 하면 바로 공부를 시작할까요? 그저 멍하니 ‘공동상태’에 빠질 뿐입니다. 저는 그들에게 ‘밀어내기’를 권합니다. 게임할 시간에 운동이나 춤, 음악 등 좋아하는 일을 대신하며 게임을 조금씩 밀어내는 것이지요. 운동은 속성상 게임과 비슷한 점이 많아요. 게임 대신 공부를 제안하기도 하는데, 의외로 효과가 있어요. 그동안 요령을 몰라서 그랬지 하다 보니 재미있다는 학생도 많아요. 부모와의 유대관계가 좋을 때 중독에서도 빨리 벗어납니다.”

미국에 있는 동안 그는 세계적인 스포츠심리학자 레너드 자이조프스키 교수를 만나 사사하는 행운을 얻었다.

“하버드대에 스포츠심리 포럼이 있어 참가했는데, 알고 보니 심리학자들의 모임이었어요. 제가 의학적인 관점에서 자꾸 의문을 제기하니 부담스러웠는지 보스턴대의 레너드 자이조프스키 교수를 소개하더라고요. 두 달 세 달 계속 메일을 보냈는데도 답이 없어 직접 찾아갔죠. 2006~2007년 청강생으로 그분의 대학원 수업을 듣고, 보스턴대 아이스하키팀 경기를 보면서 실전 경험을 많이 쌓았습니다. 자이조프스키 교수가 선수들의 몸놀림을 보면서 ‘저런 실수가 나오는 것은 저런 심리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한 후 선수에게 직접 확인하는 식이었으니까요. 덕분에 저도 선수들의 몸놀림만으로도 심리를 읽는 눈을 키운 것 같습니다.”

심리주치의를 맡고 있는 LG트윈스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텔레비전으로라도 모니터링을 한다는 그는 선수들의 몸놀림을 보고 심리적인 문제가 눈에 띄면 바로 트레이너나 코치에게 연락을 취한다. 국제스포츠정신의학회 회원인 그는 현대유니콘스와 LG트윈스뿐 아니라 대전시티즌 프로축구단, 수원삼성블루윙즈 프로축구단, 서울삼성썬더스 프로농구단, 축구선수 이청용, 야구선수 봉중근 등의 심리자문 및 심리치료를 담당했고, 중앙대병원 스포츠정신의학클리닉에서 골프・야구・축구・농구 선수들에게 심리상담을 하고 있다.

“운동선수들은 발달단계부터 일반인과 다릅니다. 어려서부터 가족들의 지나친 기대와 주변의 주목을 받으면서 성장해왔고, 항상 경쟁상황에 노출되어 있지요. 매 경기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고요.”

그는 과거를 곱씹기보다는 ‘here and now’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현실을 직시하라고 조언한다.

“실패한 경험을 잊어버리려는 사람이 많은데, 그럴수록 그 경험은 무의식과 의식 사이에서 무한 반복됩니다. 오히려 왜 실패했는지 조목조목 따져보는 게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는 길입니다. 태클로 다리가 부러졌던 선수가 있다 합시다. 경기 중 상대방이 태클을 해올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몸이 움츠러듭니다. 그런데 어떠어떠한 상황에서 태클을 당했을 때 부상을 당했는지 구체적으로 분석했다면 그런 상황이 아닐 때까지 위축되지는 않지요. 경기에서 똑같은 상황이 재연될 확률은 많지 않습니다.”

‘here and now’나 현실을 직시하라는 조언은 일반인에게도 해당되는 금과옥조가 아닐까? 뛰어난 운동선수들은 완벽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그는 말한다. 완벽한 경기를 기대하기보다, 자신의 기량을 얼마나 수정하고 보완해야 할지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어제까지 최고의 타율이었는데, 내일은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대신 ‘오늘은 어깨에 힘이 약간 들어갔으니, 내일은 힘을 빼고 쳐야지’라고 생각하는 식이다. 이렇게 문제를 감정적으로 대하지 않고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보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그는 말한다. 경기를 시작하기 전 심리적 압박감을 줄이기 위해 감독들이 선수들에게 ‘경기를 즐기라’는 얘기를 자주 하는데, 인생을 즐기기 위해서도 먼저 결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그는 충고한다. 넘어졌다 일어나는 과정을 반복하는 가운데 많은 것을 배우고 진정 즐길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사진 : 김선아
  • 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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