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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친구처럼 책을 추천하고 들려주고 싶습니다

책 관련 팟캐스트 ‘책 읽는 라디오’

두꺼운 붉은색 벨벳 커튼 안. DJ 한지훈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헛기침을 세 번 했다. 패널 이진씨도 동시에 침을 꿀꺽 삼킨다. “사랑이 이루어졌다. 안 이루어졌다”라는 문장을 다섯 번 고쳐 읽는다. 최동민 PD는 옆에서 내레이션에 맞춰 대본을 쓴다. 녹음 중 창문 밖으로 오토바이가 ‘부다다다’ 소리를 내며 지나간다. “다시!”라는 말과 함께 ‘톡’ 하고 엔터키를 치는 소리만이 녹음실을 감돈다. 싸구려 커튼이 많은 소리를 가려주진 않는다.

팟캐스트
애플의 아이팟(iPod)과 방송(broadcasting)을 합성한 신조어로 오디오 파일 또는 비디오 파일 형태로 뉴스나 드라마 등 다양한 콘텐츠를 인터넷을 통해 제공하는 서비스다. 스마트폰 등을 통해 프로그램을 내려받아 아무 때나 들을 수 있어 인기를 얻고 있다.
최동민·한지훈·이진(왼쪽부터).
팟캐스트 ‘책 읽는 라디오’는 2009년 한DJ와 최PD가 만들었다.

“스물 후반을 향해 가던 2009년 12월, 최동민씨가 책 관련 라디오를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좋아하는 책을 소개하는 방송을 하고 싶었죠. 7명이 6개월가량 준비하고, 2010년 7월에 첫 방송을 송출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다 보니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패널을 섭외하기 시작했어요. 학교 수업시간에 말 잘한다 싶은 친구가 있으면 ‘같이 하지 않을래?’라고 제안하고 술잔을 몇 번 기울이면 어느새 패널이 되는 거죠.(웃음) 현재 주 5회 30분씩 560회를 넘겼는데, 15명이 책 읽는 라디오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한DJ)

당시 한DJ는 책이 좋아 최동민씨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한다.

“책을 보면 그 작가를 만날 수 있잖아요.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썼을까’ ‘어떤 고통을 느꼈을까’라는 마음이 들어요. 하얀 종이에 검은색으로 쓰여 있는 글을 읽으며 ‘푸하하하’ 웃음을 터뜨리거나 ‘꺼이꺼이’ 울 수 있는 게 좋아요. 책 무게가 500g쯤 되나요? 가격은 1만원쯤 하죠? 그런데 그게 사람의 마음을 그렇게 움직인다는 게 신기해요.”

‘책 읽는 라디오’는 단순히 책만 읽어주는 게 아니다. 제작진, 패널 모두가 직접 기획한 코너를 진행한다. 이진씨가 패널로 참여하는 ‘책 권하는 포장마차’ 코너가 있다. 소설 속 인물이 이진씨가 주인인 포장마차에 들러 술잔을 기울이면서 이야기하는 상황극이다. 이진씨가 소설 인물에게 다른 책 한 권을 추천하며 위로를 건넨다. ‘음파의 에로테크소설방’이라는 코너는 대학교수가 패널로 참여해 포르노와 예술의 경계에 서 있는 책들을 집중 조명한다. 최PD는 청취자도 함께 만드는 방송을 모토로 한다.

“‘귀로 읽는 소설’은 청취자가 보낸 단편소설을 소개하는 코너예요.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잖아요. 그런 분들이 참여하는 라디오를 만들고 싶었어요. 책 읽는 라디오에서만 들을 수 있는 소설이죠.”


이런 코너들을 기획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뭘까.

“시작할 때부터 재미있게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책은 딱딱하다는 고정관념이 있는 콘텐츠니까요. 기존의 책 관련 방송을 보면 흥미요소가 배제되어 있는데, 저희는 유머를 앞세워요. 책을 싫어하시는 분들까지 관심을 갖게 하는 방송을 만들려 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코너를 가볍고 재미있게 만들 수는 없으니 정보전달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합니다.”(최PD)

처음에 DJ와 PD 단둘이 듣던 방송은 청취자가 5000명까지 늘어났다. 다른 책 관련 팟캐스트 중 인기인 ‘이동진의 빨간 책방’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을 앞지르기도 했다. 고정 청취자 2000명을 기반으로 3주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3년 가까이 방송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아르바이트로 녹음장비를 구입했는데, 막상 녹음할 공간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카페 사장에게 허락을 구해 손님들이 없는 새벽 시간에 녹음을 했다. 그러다 선명한 음질을 청취자에게 전해주기 위해 직접 스튜디오를 만들었다. 스티로폼과 각목으로 방음시설을 만들고 차음재를 사다 붙여 직접 녹음공간을 만들었다. 이들은 청취자가 지루해하지 않도록 3개월마다 프로그램을 개편한다. 유명세가 생기면서 힘든 길을 벗어나는 방법도 생겼다. 출판사나 기업의 광고를 받는 것이다. 그러나 그 길을 마다했다.

“저희가 좋아하는 책만 소개하고 싶었거든요. 출판사와 접촉하기도 했지만, 광고를 받으면 그만큼 제약이 생기겠더라고요. 출판사의 외부적인 힘에 의해 책이 선택되는 것은 옳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러나 돈 들어갈 일이 생기면 고민이지요. 그러다가 재능기부와 서포터즈를 활성화하게 됐습니다.”


시그널 음악은 밴드 책의 노래 서율, 피아니스트 장일호씨 등의 재능기부로 이루어졌다. 서포터즈들은 십시일반 소정의 돈을 보태고 있다. 제작진과 청취자의 관계도 끈끈하다. 한DJ에게는 쪽지가 많이 온다.

“한 분이 보낸 쪽지가 오래 기억에 남네요. ‘책 한 권 읽지 않던 제가 어느덧 책을 추천해주고 있네요’라는 내용이었지요. 또 한 분은 ‘동생이랑 싸웠어요. 동생이랑 화해하고 싶은데 어줍잖게 이야기하는 것보다 책 한 권 선물하고 싶어요. 제작진이 골라주세요’라는 글을 보내왔죠. 메시지와 귤, 어묵 등 선물도 답지합니다.”

팬과의 소통을 위해 공개방송과 이벤트도 진행했다. “재작년에는 한 달에 한 번씩 공개방송을 했고, 작년에는 500회 특집, 2주년 기념방송 등 청취자가 모이는 이벤트를 많이 진행했습니다. 저희는 책을 좋아하는 평범한 사람이거든요. 청취자들이 저희를 만나고 즐거워하더라고요.”(한DJ)

한DJ는 책 읽는 라디오 매력이 친근함이라고 말한다.

“‘작가 섭외해줄까?’라고 말하는 분이 많아요. 저희는 일부러 거절합니다. 유명한 사람이 이야기하면 위화감이 들 때가 있거든요. 보통 친구들이 권하는 책은 읽지 않나요? 저희 역시 패널이 선정한 책을 청취자 손에 얹어주며 어릴 적 친구처럼 다가가고 싶습니다.”


책 읽는 라디오는 방송 중에 별명을 사용한다. 청취자에게 좀 더 가깝게 다가가고 싶어서다.

“별명을 부르면 더 친숙하지 않습니까? 저희는 유명하지 않는 일반인이에요. 얼굴이 보이지 않는 라디오이기 때문에 닉네임을 통해 각자의 특색을 살리고, 기대감을 줄 수 있어요. ‘변태책방’ 코너를 통해 중남미 문학을 소개하는 변태정씨의 실제 이름은 정다인이에요. 봄 개편에는 김산문이라는 분이 등장하는데, 산문을 소개하기 위해 만든 이름이지요.(웃음)”(한DJ)

최근 출판사에서 만들거나 유명 소설가가 등장하는 책 관련 팟캐스트가 많아졌다. 책 읽는 라디오가 불안하진 않을까. 책 읽는 라디오 제작진은 오히려 기쁘다고 말한다.

“독서인구가 줄고 있다고 하잖아요. 하지만 방송을 하면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이것이 희망이라고 생각해요. 저희 방송이 독서 인구를 늘렸다기보다는 확인시켜줬다고 생각해요. 책 방송이 거의 없던 초창기에 책 팟캐스트에 도전했는데, 그 후 책 관련 방송이 늘고 책이 다양하게 발전하는 데 도움을 준 것 같아 뿌듯해요. 방송을 하지 않았다면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없었을 거예요.”(최PD)

최PD는 다른 책 관련 팟캐스트와 비교해 ‘책 읽는 라디오’만의 차별점을 말한다.

“청취자들이 ‘나를 위한 방송’이라는 느낌을 받는 것 같아요. 저희는 주변의 보통사람이니까요. 또 다른 방송이 할 수 없는 것을 저희가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출판사 관련 방송은 홍보 느낌이 있는데, 저희는 그런 것이 없잖아요. 돈 벌려고 하는 게 아니어서 청취자들의 인식이 좋은 것 같아요.”

한DJ는 책 읽는 라디오를 소개할 때 “책 읽는 라디오의 아날로그 수퍼스타 한DJ입니다”라고 말했다. 책은 아주 오래된 아날로그 콘텐츠이지만 그 감동만큼은 수퍼스타다. 책 읽는 라디오는 오늘도 아날로그 수퍼스타가 되기 위해 녹음에 들어간다.

사진 : 김선아

책 관련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 책방
영화평론가 이동진이 선별한 책에 대해 이야기를 진행하고, 소설가 김중혁이 패널로 참여한다. 만담 콤비라 해도 될 정도로 두 중년 남성의 수다가 톡톡 튄다. 허나 가볍지만은 않다. 책 한 권을 가지고 파고 들어가는 영화평론가와 소설가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참고문헌 한 권을 더 읽은 것처럼 뿌듯하다. 출판사 위즈덤하우스에서 격주로 두 시간정도 방송을 송출한다.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소설가 김영하의 진중한 목소리와 해설이 돋보이는 라디오다. 차분하게 내려앉은 저음으로 책을 덤덤히 읽어나가고 개인적인 견해를 덧붙인다. 읽고 평하는 단순한 구조의 방송이지만 오히려 듣는 이를 집중하게 만든다. 듣는 책의 힘이 묻어나오는 방송이다. 김영하라는 소설가의 매력을 엿볼 수 있기도 하다. 2010년 1월 시작한 가장 오래된 책 관련 팟캐스트다. 방송 분량은 책에 따라 다르며, 한 달에 한 번 정도 업로드된다.

라디오 책다방
여러 책을 펴낸 김두식 경북대 법학과 교수가 메인, 소설가 황정은이 보조 진행을 맡았다. 책과 관련된 게스트를 초대하는 점이 흥미롭다. 출판기자, 만화가 등이 참여한다. 다양한 인물이 함께하는 만큼 책과 관련된 흥미로운 뒷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마치 명절 때 오랜만에 친척을 만난 것 같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다. 출판사 창작과비평사에서 운영하며, 2월부터 격주로 방송하고 있다.

꿈타장의 유혹하는 책 읽기
서울에 있는 북카페 ‘꿈꾸는 타자기’ 강두석 사장의 팟캐스트다. 소설가 김영하를 좋아해서인지 방송형식도 그와 비슷하다. 책과 관련된 이야기를 전하고 낭독한다. 김영하가 클래식 기타라면 꿈타장은 우쿨렐레에 가깝다. 아마추어 독자의 톡톡 튀는 매력이 돋보인다. 단순히 책을 읽어나가기 보다는 성우처럼 연기하는 점도 재미있다. 책에 따라 방송시간이 다르며, 불규칙하게 업로드된다.
  • 2013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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