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 세계 / 문화재보존전문가

문화재의 옛 모습 되살려 과거로의 여행을 이끄는 사람

성형외과 의사인 ‘은수’는 현재와 과거를 잇는 통로인 천혈을 통해 14세기, 고려의 수도 개경에 이른다. 그곳에서 무사 ‘최영’을 만나고 두 남녀는 시공을 초월한 사랑을 나눈다. 지난해 방영된 드라마 〈신의〉 이야기다. 이 드라마 외에도 요즘 드라마에는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시간여행자’들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브라운관 밖에서도 시간여행을 경험할 수 있다. 시대별 문화재가 전시된 박물관에서다. 세월의 명과 암을 고스란히 간직한 문화재를 한참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까마득한 과거로 돌아간 듯한 환상에 잠긴다. 깊은 바다나 땅속, 혹은 누군가의 서랍 속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문화재는 어떤 경로를 거쳐 관람객과 마주하게 되는 걸까? 문화재의 옛 모습을 되살리는 문화재보존전문가의 손길에 그 답이 있다.

문화재 보존 절차는 크게 분석·복원·관리의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 단계마다 담당하는 전문가가 다르며, 금속·목제·도기 등 문화재의 종류에 따라서도 전담 분야가 세분된다. 발굴·기증·구입 등의 방법으로 문화재가 박물관에 들어오면 분석전문가는 첨단 장비를 이용해 제작시기, 내부구조, 사용된 재료와 같은 정보를 조사한다. 분석결과를 토대로 복원전문가가 손상된 부분을 보강하고, 훼손을 막기 위한 강화처리까지 마치면 부서지고 녹슨 문화재는 본래의 모습과 빛깔을 되찾게 된다. 훼손 정도가 심각하거나 시급한 조치가 필요한 문화재의 경우, 문화재보존전문가가 직접 발굴현장으로 이동해 보존처리를 하기도 한다. 상태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문화재가 제 모습을 찾기까지는 대략 6개월에서 3년의 시간이 소요된다.

문화재의 복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꾸준한 관리다. 보존처리를 마친 문화재는 최적의 환경을 갖춘 박물관 내 수장고에 보관되며, 주기적으로 전시된다. 전시장 내 환경관리도 문화재보존전문가의 임무다. 온도와 습도, 빛의 세기를 문화재에 맞게 조절하며, 문화재에 해를 입히는 곤충이나 곰팡이가 번식하지 않도록 전시장을 소독한다.

현재 국내에는 100명 안팎의 문화재보존전문가가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국립문화재연구소, 국립중앙박물관 등 국·공립 기관이나 사립박물관, 대학박물관에 소속되어 있으며, 문화재 수리 및 보존 업체에서 일하기도 한다. 박물관 및 업체는 수시로 공개채용을 통해 문화재보존전문가를 모집하며, 채용 시 문화재수리기술자, 문화재수리기능자, 방사선동위원소취급자 등 각종 자격증 소지자를 우대한다.

문화재보존전문가는 귀중한 문화유산을 다루는 직업이므로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미세한 균열이나 녹도 문화재 보존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사소한 부분도 놓치지 않고 작업해야 한다. 문화재보존전문가가 갖추어야 할 조건으로 섬세함이 첫 손에 꼽히는 이유다.

과학과 역사, 예술을 아우르는 폭넓은 지식도 문화재보존전문가가 갖추어야 할 필수조건이다. 문화재보존전문가의 출신학과는 다양하다. 물리·화학·생물 같은 자연과학분야, 금속공학·재료공학·임산공학 같은 공학분야 전공자와 사학·미술사학 등 인문계열 및 회화·조형예술 전공자가 하나의 문화재를 놓고 함께 고민한다. 1990년대부터는 문화재를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인 보존과학이 국내에서도 정식 학문으로 자리 잡으면서 문화재보존학과나 보존과학과 같은 관련학과가 개설되었으며, 이들 전공자의 진출도 늘고 있는 추세다.

2005년 낙산사 화재에 이어, 2008년에는 국보 1호인 숭례문이 불길에 휩싸였다. 수백 년 동안 한자리를 지켜온 문화재가 한순간에 재로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국민들은 애를 태웠다. 두 사건을 계기로 사회 곳곳에서 문화재 보존에 힘을 싣는 목소리가 커졌고, 문화재보존전문가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국토개발을 통해 새로운 문화재가 지속적으로 발굴되면서 문화재보존전문가를 원하는 기관이나 업체도 꾸준히 늘어날 전망이다.

<톱클래스>가 만난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팀 강형태 팀장은 1980년대부터 청동기·토기·자기·유리 등 다양한 종류의 문화재 분석을 진행하고 있는 문화재보존과학분야의 베테랑이다. 국립중앙박물관 뒤편, 깊숙한 곳에 위치한 보존과학팀 사무실에 문화재 분석 작업에 한창인 그가 있었다.


문화재보존전문가 강형태

과학으로 문화를 살리는 사람, 문화재보존전문가의 하루

작업과정을 지켜보고 있는 강형태 팀장(오른쪽).
1982년, 식품미생물을 연구하는 화학자로 일하던 나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방사선을 이용한 문화재 보존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시절, 방사선을 다룰 줄 아는 전문가가 필요했던 것이다. 과학으로 문화를 살려보자는 제안에 귀가 번쩍 뜨이는 듯했다. 과학과 문화, 동떨어져 보이는 두 분야가 나란히 손을 잡고 있는 듯한 느낌이 좋았기 때문이다.

문화재와 친해지기 위해 처음 맡은 일은 고무장갑을 끼고 신안 앞바다에서 나온 동전을 닦는 일이었다. 깨끗해진 표면 위로 드러난 문양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1990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보존과학분야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2000년부터는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겨 보존과학팀 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현재까지 3000여 점의 문화재 분석을 맡았다.

현미경을 통해 보는 세계는 작지만 광활하다. 1mm의 파편도 2000배로 확대해 보면 수많은 알갱이로 이루어져 있다. 그 세계에서는 모래 한 톨, 먼지 한 줌도 가공할 만한 위력을 지닌다. 세계를 작은 단위로 쪼개 보는 것에 익숙한 내게는 긴 하루도 1분, 1초의 질서정연한 조합이다.

오전 5시 30분,
잠에서 깨면서 하루가 시작된다. 아침식사 후 나갈 준비를 마치면 6시 30분, 집 근처 통근버스가 서는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면 6시 55분이다. 7시 30분에 국립중앙박물관 정문에 도착해 박물관 1층에 마련된 헬스장에서 아침운동을 끝내고 나오면 어김없이 시 곗바늘은 8시 45분을 가리킨다.

오전 9시,
박물관에서 보존과학실을 찾기는 쉽지 않다. 문화재의 외부 유출을 막기 위해 외부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어 있어 보존과학실의 정확한 위치를 아는 이는 드물다. 보안원에게 사원증을 제시한 후, 굳게 닫힌 철문을 세 번 열고 들어가면 보존과학실의 위치를 알리는 안내판이 보인다. 안내판에 표기된 화살표를 따라 걸어가면 사무실이 나온다.

출근하면 가장 먼저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메모장을 집어 든다. 오늘 분석해야 할 문화재 목록이 적혀 있는 메모장이다. 전날 퇴근하기 전에 적어둔 것이다. 많게는 20점의 문화재보존을 동시에 담당해야 하므로 한 점도 빠짐없이 문화재 명칭을 정리해둔다. 문화재보존전문가로 일한 후 몸에 밴 습관이다. 분석할 문화재의 명칭을 하나씩 되뇌면서 이들과 함께할 오늘 하루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오전 10시,
사무실에서 나와 작업실을 둘러본다. 아침부터 문화재를 살피는 팀원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17명의 보존과학팀원은 30여 개의 크고 작은 작업실에서 근무한다. 팀원들 곁으로 다가가 업무진행 상황에 대해 묻고, 처리 중인 업무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업무처리에 어려움은 없는지, 지원이 필요한 부분은 무엇인지도 꼼꼼히 확인한다.


낮 12시,
작업실에 흩어져 있던 팀원들이 회의실로 모여든다. 1주일에 한 번씩 열리는 팀원회의가 있기 때문이다. 금속·목제·서화 등 분야별로 이번 주 업무일정을 보고하고, 다음 주 업무계획에 관해 논의한다. 현재 보존처리 중인 문화재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기도 한다.

다양한 분야를 전공한 팀원들의 폭넓은 지식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는 때가 바로 이 시간이다. 팀원들의 의견을 골고루 수렴해 문화재에 맞는 보존 및 관리방법을 모색한다. 박물관에서 문화재보존과 관련된 강의가 있는 경우, 강의일정과 내용을 의논하기도 한다.

오후 2시 20분,
회의 후 팀원들과 점심식사를 마치고 분석실로 향한다. 이제 보존과학팀장이 아닌 분석전문가로서의 업무가 시작된다. 보존과학팀 내에 별도로 마련된 수장고에서 문화재를 꺼내 현미경 관찰, X선 분석 등의 실험을 한다. 문화재를 분석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미술사학자나 고고학자가 겉으로 드러난 양식적 특징을 토대로 문화재의 제작 시기나 방법을 추론해낸다면, 나와 같은 문화재보존전문가는 과학적 분석을 통해 문화재를 연구한다. 각 분야 전문가들의 분석결과를 비교해 문화재에 대한 최종 결론을 도출해낸다.

과학으로 문화재를 살린다는 말이 처음에는 별 이유 없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었다. 하지만 문화재 분석을 거듭하면서 그 말의 의미를 몸으로 실감한다. 과학적 분석법은 문화재의 내부구조나 제작성분을 밝히는 데 특히 유용하다. 1994년 통영에서 발굴된 총통의 성분을 조사한 적이 있다. 겉모습은 동시대 총통과 흡사했지만, 열에 약해 총통제조에는 절대 쓰이지 않는 아연 성분이 포함되어 있었다. 상부에 그 사실을 알렸고 2년 후, 금품을 노리고 만든 가짜 총통임이 드러났다. 당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가짜 총통 사건’이다.

아이 울음소리 같다고 해서 ‘에밀레종’이라 불리는 성덕대왕신종의 성분분석 결과도 흥미로웠다. 커다란 종 안에 들어가 청동조각을 채취하고, 성분을 분석했다. 어느 시대 문화재에서도 발견된 적 없는 구리와 주석의 배합비가 나왔고, 신라만의 고유한 종 제조기술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문화재를 분석한 후에는 보고서를 작성한다. 문화재의 현재 상태를 진단하고, 부식되었거나 훼손된 부분을 빠짐없이 기록한다. 이 보고서를 토대로 문화재의 구체적인 보존처리 방법과 기간을 결정하게 된다.

오후 5시 30분,
사무실로 돌아와 컴퓨터를 켠다. 보존과학 학회지에 게재할 논문을 쓰기 위해서다. 나는 보존과학을 연구하는 학자이기도 하다. 현재 우리나라의 문화재보존과학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보존과학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은 찾기 어렵다. 내가 진행한 문화재 분석과 연구를 집약한 문화재보존과학책을 출간하는 것이 내 평생의 목표다. 30여 년 전 나는 낯선 언어로 쓰인 책을 뒤적이며 문화재보존과학을 공부했지만, 한글로 쓰인 내 책을 읽으며 젊은이들이 꿈을 키워가는 모습을 상상하면 가슴이 뛴다.

오후 6시 40분,
퇴근 전, 아침에 책상 위에 두었던 메모장을 펼쳐 일정을 확인한다. 빨간색 펜을 들고 완료한 일에는 동그라미, 다하지 못한 일에는 ‘X’ 표시를 한다. 오늘 다 못한 일을 이후 일정에 추가하고 나면 다음날 일정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난다. 가끔 시간이 날 때면 사무실 서랍 한켠에 차곡차곡 쌓여 있는 30권의 메모장을 들춰보곤 한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노랗게 여문 종이. 그 위에 깨알 같은 글씨로 적어내려간 문화재의 이름을 보고 있으면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난 듯 반갑다.

오후 7시 45분,
퇴근 후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이야기를 나눈다.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일하던 시절, 동료로 만난 아내는 15년 전부터 화가로 활동하고 있다. 문화재보존전문가로 근무했던 이력을 살려 좋아하는 문화재를 즐겨 그린다. 아내의 작품을 감상하고, 기타를 치거나 드라마를 보며 휴식을 취하다 11시 55분에 잠자리에 든다. 밤 12시를 알리는 시계소리와 함께 하루가 저물어간다.


문화재를 다루다 보면 생각지 못한 만남의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신안 앞바다에서 나온 토기조각을 보존 처리하던 때다. 조각에 이상한 흠이 나 있어 유심히 살펴보니 지문이 찍혀 있었다. 옅은 지문 자국에 조심스레 내 손가락을 대보았다. 그 순간, 토기를 만들던 바쁜 손놀림이 그대로 전해졌다. 우연히 문화의 길로 들어선 과학자는 수천 년의 시간을 뛰어넘는 운명적 마주침에 가슴이 설렌다.

사진 : 김선아
  • 2013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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