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천문화마을

공존과 배려가 빚어낸 ‘아름다운 마을’

개발바람에서 빗겨나는 바람에 그 땅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 그 흔적을 깡그리 지우는 재개발 대신, 문화예술과의 만남을 통해 재생(再生)의 길을 걷는 곳이 있다. 최근 ‘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선정된 부산 사하구 감천2동 감천문화마을과 옛 도심으로 공동화(空洞化)의 길을 걷다 각 분야 예술인들이 입주하면서 되살아나고 있는 부산 중앙동·동광동 일대를 찾았다.
지난해 말, 부산의 대표적인 달동네인 감천문화마을이 ‘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이 화제가 됐다. 일본 UN-HABITAT 후쿠오카 본부에서 열린 ‘2012년 아시아도시경관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수상한 것. UN-HABITAT 후쿠오카 본부, 아시아 하비타트 협회, 아시아 경관디자인학회, 후쿠오카 아시아도시연구소 등 4개 단체에 의해 2010년 창설된 아시아도시경관상은 아시아에서 타 도시의 모범이 될 만한 성과를 올린 도시나 지역, 사업 등을 선발해 표창하는 국제상이다. 재개발 대상으로만 여겨지던 달동네가 어떻게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 되었을까? 궁금증을 안고 감천문화마을을 찾았다.

감천문화마을 탐방은 부산역에서 택시를 타고 감정초등학교 앞에 내리면서 시작됐다. 감정초등학교 앞 공영주차장은 외부인이 이 마을을 찾을 때 마을 기행을 시작하는 출발점. 여기에서 골목을 따라 300~400m만 올라가면 주민들이 운영하는 감내카페와 아트숍이 있고, 부산항과 감천항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하늘마루’가 있다. 마을 중 가장 높은 곳에 있어 360도로 마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하늘마루에는 감천동 문화마을 프로젝트에 관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고, 감내카페 앞 갤러리에는 감천문화마을의 모습을 다각도로 포착한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옥녀봉에서 천마산에 이르는 산자락을 따라 계단식으로 질서정연하게 지어진 집들. 바다를 내려다보는 산비탈에 지어진 집들은 어느 것 하나 자신만의 위용을 자랑하는 곳이 없다. 모두 고만고만한 크기인데, 앞집이 뒷집의 햇빛이나 전망을 가리는 법도 없다. 그런데도 제각각, 하나도 같은 집은 없다. 하늘색과 초록·남보라·인디언핑크 등 색상표에서나 볼 듯한 가지각색으로 칠한 시멘트벽과 슬레이트 지붕, 지붕 위에 올린 물탱크가 자신만의 미감(美感)을 자랑하는데, 그것들이 어우러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마을 풍경을 만들어낸다. 이 마을의 독특한 미감에 매혹당한 사람들은 ‘한국의 산토리니’ ‘부산의 마추픽추’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알음알음으로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한다. 집과 집이 벽을 사이에 두고 다닥다닥 붙어있고, 집집마다 빨래를 널어놓고 시래기를 말리는 앞마당이 사람들이 지나가는 골목이 되는 마을. 비밀이 없을 것 같은 이 마을에서 사람들은 ‘공존과 배려’를 읽는 게 아닐까, 그래서 더욱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10년 이곳을 찾은 세계적인 사진작가 디오니시오 곤잘레스는 “어떻게 이런 마을이 만들어졌는지 믿을 수 없다”며 극찬했다 한다.



공예품 만들고, 작가들과 협업하며 아티스트가 된 주민들

나만의 개성을 자랑하면서도 주변과 조화를 이루는 색으로 집을 칠한 주민들. 그들의 미감은 감내카페에서 파는 액세서리, 아트숍에서 파는 물건들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감내카페에서는 감천문화마을에 사는 주부들의 모임인 ‘두레모아’에서 만든 헤어 액세서리와 솜씨 좋은 주민이 만든 마을 주택모형을 판매하고 있다. ‘두레모아’가 액세서리를 팔아 생기는 수익금은 아이들 공부방의 운영비로 쓸 예정이라고 한다. 아트숍에도 작가들의 작품과 함께 주민들이 만든 공예품들이 전시 판매되고 있었다. 공예수업을 받은 주민들이 작가로 변신 중이라고 한다.


감천문화마을은 마을 전체가 미술관이기도 하다. 2009년 마을미술 프로젝트 〈꿈을 꾸는 부산의 마추픽추〉, 2010년 〈미로미로(迷路迷路) 골목길 프로젝트〉 때 설치된 미술품들이 지금도 마을 곳곳에 전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건물 앞쪽 골목 풍경을 거울에 비친 듯 그린 나인주 작가의 벽화 〈마주보다〉, 주민들과 함께 버려진 물건들을 모아 작품으로 만든 김정주 작가의 〈영원〉, 집을 세 부분으로 나눠 안방은 신비한 힘에 의해 사람이 태어나는 곳, 거실은 무수한 사람들 사이에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 다락방은 꿈과 희망의 빛을 얻는 개인적 공간으로 보여준 노주련 작가의 〈빛의 집-집에서〉 등 마을을 걷다 보면 곳곳에서 작품들과 마주치게 된다. 담벼락에 붙은 화살표를 따라가면 길을 잃지 않고 작품 감상을 할 수 있다. 골목 곳곳에 작품이 설치되어 있고,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을 전시공간으로 만들어 작품을 감상하면서 집 구조를 구석구석 살펴볼 수 있는 것도 매력이다. 3~4년 동안 폐업했던 목욕탕 건물은 커뮤니티센터 ‘감내어울터’로 바뀌었다. 건물에 들어서자 여주인이 카운터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런데 아차! 사람이 아니라 모형이었다. 안쪽에 들어서니 할아버지가 탕 안에 앉아 있다. 역시 모형이다. 탕은 주민들이 쓰던 형태 그대로 남겨뒀다 한다. 이곳이 목욕탕이었다는 장소성을 각인시키면서 갤러리로 활용하는 공간으로, 사하구 작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이 마을에 우리나라뿐 아니라 일본·중국·대만·미국 등 각 나라 사람들이 찾아와 주말이면 마을 전체가 북적인다고 한다.


지난 1월 29일 화요일, 이곳을 찾았을 때는 마을 지도를 들고 한곳 한곳 진지하게 돌아보는 학생이 많았다. 남녀가 쌍을 이뤄 다니는 데이트족도 간간이 보였다. 길을 걷다 보니 ‘어린 왕자와 사막여우’가 담장에 걸터앉아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좁은 골목과 골목에서 내려다보이는 바다 전망, 색색의 작은 집들과 미술작품들이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 때문인지 〈슈퍼스타 감사용〉 〈히어로〉 〈그녀에게〉 〈카멜리아〉 〈네버엔딩 스토리〉 등 많은 영화의 배경으로도 등장했다.

김문생 감천문화마을 사업단 단장(오른쪽)과 이복희 ‘두레모아’ 회장.

30가구 내외가 밭농사 짓고 살던 감내골에서 태극도 도인촌을 거쳐 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감천문화마을의 옛 지명은 부산 동래군 사하면 감내골. 30가구 내외가 산비탈에 밭농사를 지으며 살던 이곳이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6·25 후였다. 피란민들이 부산으로 모여들면서 인구가 넘치자 부산시는 이곳으로 피란민을 집단 이주시키겠다는 계획을 세웠는데, 당시 부산에 결집해 있던 태극도 신도들이 이곳으로 들어와 도인촌을 만들겠다고 제의했다 한다. 태극도는 1918년 증산사상에 기초해 세워진 종교. 당시 태극도 신도로 이곳에서 살았다는 김문생 감천문화마을 사업단 단장은 “산비탈에 돌로 축대를 쌓고 건평 7~8평짜리 집을 지었다”고 그 시절을 회고한다. 판잣집에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시레이션 박스로 지붕을 올리고, 비가 새지 않게 모르타르를 바르는 형태였다 한다. 1956~1960년까지 3000~4000가구가 들어섰고, 인구가 2만8000명에서 3만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나 1950년대 말 태극도의 내부 분열로 신도들 대부분이 떠났고, 마을의 종교적 색채도 약해졌다. 1960년대 말부터 주택개량이 이루어지면서 판잣집에서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블록 집으로 변화했다. 두 집이 하나로 합쳐 15~16평으로 규모가 커지고, 2층 다락방을 올리기도 했다. 김문생 단장은 “버스가 하루에 두어 번밖에 다니지 않아 부산역이나 국제시장까지 걸어 다녔다”고 회고한다.


부산에서도 ‘시골’이라 불리는 이곳이 유명해지기 시작한 것은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하나 둘 “부산에 예쁜 마을이 있다”고 인터넷에 사진을 올리면서부터였다. 2008년에는 동서대 디자인학부 이명희 교수가 찾아와 “아름다운 마을로 가꿔보자”고 제안했다. 당시 감천2동 통장들의 모임인 통우회 회장이었던 김문생 단장은 “처음에는 주민들이 ‘사람들이 찾아와봤자 사진만 찍어 가지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게 뭐냐’며 반대가 많았다”고 한다. ‘낯선 사람들에게 우리 살림살이를 다 내놓고, 구경거리밖에 더 되겠는가?’ 하는 우려도 컸다. 그래서 더욱 주민들이 참여하고, 주민들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방식에 대해 고민했다. 이명희 교수와 진영섭 아트팩토리 인 다대포 대표와 주민들이 서너 차례 공청회를 열면서 주민들의 생각이 점차 바뀌어갔고, ‘기왕 시작한 것, 제대로 해보자’는 인식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2009년 ‘마을미술 프로젝트 공모’ 당선으로 마을 곳곳에 작품이 설치되기 시작했고, 2010년부터는 동네 곳곳의 빈집들이 전시공간과 카페, 커뮤니티 공간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곳을 찾는 사람이 늘면서 동네 구멍가게나 국숫집 매상도 늘었다. 노인들만 남았던 마을이 활기를 되찾으면서 이곳으로 새로 이주해오는 사람도 많아졌다.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이 마을을 변화시킨 원동력 중 하나. 마을 협의회는 사업단, 홍보단, 봉사단을 두고 조직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민들이 어떻게 이렇게 단결해 마을일을 할 수 있을까? 김문생 단장은 “상부상조 문화가 지금까지 내려오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옆집에 수저가 몇 벌이나 되는지도 환히 알고 사는 마을 사람들. 우물도, 화장실도 함께 사용했던 터라 서로 배려하지 않으면 공존이 어렵다는 것을 일찍이 알고 있었다. 잔치든 제사든 마을 사람 전부가 힘을 보탰는데, 그 덕에 쌀 한 되 살 돈이 없는 집도 아들딸을 결혼시킬 수 있었다 한다. 그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져 주민들을 잇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감천문화마을을 찾는다면 조용한 발걸음으로 마을을 돌아보며, 작은 것도 나누며 살아온 그들의 마음도 읽어볼 일이다.

사진 : 김선아
  • 2013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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