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죽 아틀리에 ‘채드킨’ 운영하는 김채두씨

명품 가방이 좋다고요? 내 손으로 한땀 한땀 만들어보는 것은 어떠세요?

“누구나 알 만한 브랜드를 입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내가 입고 있는 옷이 어느 브랜드인지 궁금하게 만들어야 한다.”
SBS 드라마 〈청담동 앨리스〉에 나오는 대사다. 미묘한 차이 같지만, 둘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전자는 브랜드가 제품을 빛나게 한다는 의미지만, 후자는 제품이 브랜드를 빛나게 한다는 의미다. 어떤 제품군에서든 이런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그런데 기자는 이 대사를 듣고 단번에 떠오른 사람이 있었다. 바로 채드킨 김채두(44·영문이름 Chad Keane) 대표다.
2012년 12월 21일, 채드킨을 찾아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눈발이 매섭게 흩날렸다. 기자는 지도를 손에 든 채 서울 중구 명동 일대를 몇 차례나 돌아야 했다. 눈길에 미끄러져 넘어질 뻔한 것이 몇 번. 어렵게 찾은 채드킨은 명동2가의 한 허름한 상가 5층에 자리 잡고 있었다. 환전상과 음식점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명품 수제 가방을 제작하는 공방과는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였다. 채드킨은 2008년에 문을 연 가죽 공방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공방’이 아니라 ‘아틀리에’다. 김채두 채드킨 대표는 “아틀리에는 A부터 Z까지 모든 공정을 포괄하는 적극적 의미의 작업 장소를 뜻한다”며 “채드킨을 아틀리에라고 불러달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곳에서 처음부터 마무리까지 직접 손으로 만든 가죽 제품을 온·오프라인을 통해 판매한다. 질 좋은 가죽을 사용해 한땀 한땀 만드는 공정은 명품 가방과 다를 바 없지만, 가격은 반값 이하라 인기가 많다. 입소문이 나면서 최근에는 이곳까지 찾아와 가방을 사가는 일본과 중국 관광객이 늘고 있다고 한다.

“일본인 관광객은 하루 평균 스무 명 넘게 와요. 명품 가방보다 싸게 살 수 있다는 게 장점이기도 하지만, 장인이 한땀 한땀 만든 하나밖에 없는 가방이라는 점 때문에 매력을 느끼는 것 같아요.”

김 대표는 디자인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다. 어렸을 때 미국에 건너가 일반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그는 학창시절부터 그리기와 만들기를 좋아했고, ‘미적 감각을 타고났다’는 말을 들었다. 친구들의 초상화를 그려주고, 새 옷도 리폼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만들어 입었다. 천을 가지고 이리저리 만들다 보니 가죽 제품을 다뤄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도전한 것이 가방 만들기.

“온라인으로 가방 만드는 법을 찾아보기도 하고, 가방 공장을 견학하기도 했죠. 에르메스에서 주최하는 시연회도 여러 차례 쫓아다녔어요. 그렇게 어깨너머로 배운 기술로 직접 가죽 가방을 만들어 들고 다녔죠. 그랬더니 친구들이 ‘그 가방 어디서 산거냐’고 묻더라고요.”


20대 후반, 한국에 돌아와 영어강사 생활을 하면서도 가방에 대한 그의 관심은 끊이지 않았다. 5년 전 강사 일을 그만둔 그는 가방을 전문적으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30대 후반의 나이에 새로운 도전에 나선 것. 취미 삼아 했을 때는 몰랐는데 막상 공방을 열려고 보니 재료 구하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가죽용 바늘부터 그리프까지, 있는 게 하나도 없었어요. 전국에 있는 큰 시장은 모두 가봤는데, 제가 필요로 하는 도구를 들여오는 곳이 전혀 없더군요. 그렇게 2년간 온라인과 오프라인 마켓을 돌았죠. 그러다가 마침 책을 엮을 때 쓰는 실을 미국에서 수입하시는 분과 인연이 닿았고, 그분께 공구를 들여와달라고 부탁하게 됐어요. 지금은 인터넷 쇼핑몰이나 을지로 미싱상가에 가면 어렵지 않게 도구를 구할 수 있습니다.”

김 대표는 채드킨을 오픈하면서 강남이나 홍대가 아닌 명동 한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디자이너 지망생이 많이 다니는 홍대에 가면 수강생이 늘 것이고, 부촌인 강남에 가면 제품 판매가 늘었겠지만 그는 명동이 좋았다.

“디자이너 작업실이 즐비한 홍대나 신사동에 채드킨을 오픈하고 싶진 않았어요. 남들이 하는 걸 따라하고 싶진 않거든요. 패스트패션 일색인 이곳 명동에 문을 연 이유도 바로 그거였어요. 채드킨이 가는 곳에 다른 이들이 따라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가 채드킨을 오픈하면서 가진 생각은 두 가지다. 하나는 누구나 질 좋은 가방을 합리적인 가격에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 다른 하나는 이를 위해 가방 만드는 법을 널리 알려야겠다는 것이다. 그가 판매에만 그치지 않고 사람들이 자신의 가방을 직접 만들어 쓸 수 있도록 가방제작법을 강의하게 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채드킨 아틀리에에 등록하면 4개월간 가방 제작의 전 공정을 학습한다. 처음 두 달은 손바느질, 나머지 두 달은 가방의 틀과 구조에 대해 배운다. 기본 코스에서는 가죽칼을 비롯한 도구 다루는 법, 금속 장식 다는 법 등이 주축이며, 주로 휴대폰 액세서리나 케이스 같은 소품을 만든다. 자신이 만들고 싶은 물건의 형태를 구상해서 그리는 것부터 원하는 가죽의 종류와 실을 고르는 것, 가죽 재단까지 모두 수강생의 몫이다. 채드킨에서 4개월째 강의를 들으면서 백팩을 만들고 있는 한선희씨는 “내가 만든, 나만의 가방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뿌듯하다”며 “앞으로도 가방 만드는 작업을 계속할 것 같다”고 말했다.

질 좋은 가방을 누구든 쉽게 갖게 하는 것이 김 대표의 바람이지만, 채드킨은 명품을 베끼는 곳은 아니다. 그는 명품이냐 아니냐를 가르는 것은 디자인이 아니라 재료와 공정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만드는 가방은 재료와 공정에서는 명품 이상이지만, 디자인은 비슷하지 않다.

“유행을 타지 않고 오래 들 수 있는 가방을 만드는 것이 목표예요. 최대한 단순한 디자인으로 가방을 만들죠. 하지만 제작 과정만큼은 시중의 어떤 명품보다 더 정교합니다.”

김 대표는 모든 가죽제품을 만들 때 에르메스 새들 스티치 공법을 고집한다. 새들 스티치 공법이란 두 개의 바늘을 이용한 봉제법으로,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현빈이 말해 한때 유행했던 그 ‘한땀 한땀’의 수작업 기술이다. 예전에는 가죽제품을 만드는 데 보편적으로 썼는데, 수작업을 기계작업이 대체하면서 현재는 에르메스 같은 일부 명품 브랜드에서만 사용하는 바느질법이다. 가죽을 꿰매기 전 가죽 위에 간격을 표시해놓고, 일일이 송곳으로 구멍을 뚫어가며 바느질한다. 빠른 시간에 정교하게 작업하는 데 도움을 주는 도구는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전통 수작업이 도구를 활용하는 것보다 정교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때로는 바느질이 삐뚤빼뚤, 궤도를 이탈하기도 하죠. 하지만 손끝으로 가죽의 질감을 느끼면서 만드는 게 저희의 목표니까요.”


채드킨 가방에는 로고가 들어 있지 않다. 왜 로고를 새기지 않느냐고 묻자 김 대표는 멋쩍은 듯 웃더니 이렇게 말했다.

“로고 없는 가방이 더 예쁘지 않나요?(웃음) 글쎄요, 그저 가죽이 좋고, 가방이 좋고, 만들기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라 제 브랜드를 론칭하는 것에 대해선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하지만 몇 년 뒤엔 제 이름을 단 가방이 세상에 나올 수도 있겠죠?”

사진 : 김선아
  • 2013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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