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 세계 ⑪ PR전문가

소비자와 기업을 연결하며 의미를 만들어내는 사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시 〈꽃〉의 한 구절이다. 이름을 부르면 별개의 존재였던 ‘나’와 ‘그’ 사이에는 의미 있는 관계가 만들어진다. PR전문가는 기업 또는 제품과 소비자 사이의 관계를 만드는 사람이다. 관계를 만드는 데는 갖가지 방법이 동원된다. 기업이나 제품을 알리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를 수집해 보도자료를 작성한 후 언론에 배포하기도 하고, 관련행사를 개최하기도 한다. 스마트폰 사용이 늘어난 요즘에는 앱이나 SNS를 이용한 이벤트를 벌이거나 각종 대회를 열어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이 모든 활동을 통틀어 ‘PR’이라 부른다.

광고가 직접적으로 제품구매를 촉구하는 방식이라면, PR은 지속적으로 제품을 알려 제품 구매에 이르도록 하는 방식이다. 소비자에게 제품을 각인시켜 소비자와 제품을 연결해주는 것이다. PR은 우리나라말로 ‘홍보’라 번역되기도 한다. 하지만 홍보가 보도자료 배포 같은 일방적 활동만을 의미하는 반면, PR은 사용 후기 작성이나 이벤트 참여 같은 소비자의 반응까지 의미하는 폭넓은 개념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PR전문가는 PR컨설팅회사에서 고객사를 대신해 PR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을 뜻한다. 넓게 보면 기업의 홍보실이나 관공서 공보실에서 PR업무를 맡는 사람도 PR전문가의 범주에 포함된다. 현재 국내 PR컨설팅회사에서 일하는 PR전문가는 3000~4000명, 기업 홍보실이나 관공서 공보실에서 일하는 PR전문가까지 합치면 3만 명 가량의 사람들이 PR을 업으로 삼고 있다. PR의 범위가 넓은 만큼 PR전문가가 하는 일도 다양하다. 고객사와 관련된 언론보도 및 여론을 분석하고 대응책을 모색한다. 이벤트나 캠페인, 홍보 문구 등에 관한 PR전략을 세워 실행하는 일도 PR전문가의 몫이다. 고객사 관계자와의 의견교환을 통해 고객사의 소식을 수시로 파악하고, 중요한 이슈가 생기면 보도자료를 만들어 다양한 매체에 고객사를 알린다.

언론보도나 여론에 즉각 대응하기 위해 늘 각종 매체를 예의주시하고 있어야 하고, PR의 전 과정에 관여하기 때문에 PR전문가는 업무강도가 높은 직업이다. 그러나 다양한 분야의 기업과 제품을 접할 수 있으며, 직접 PR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성과를 얻는 경험을 통해 성장하는 기쁨이 큰 직업이기도 하다. 소비자와 기업 사이의 소통을 담당하는 직업의 특성상 조리 있게 말하는 능력과 작문실력이 요구된다. 색다른 발상이 일의 성패를 좌우하므로 번뜩이는 창의력도 필요하다. 사회적 트렌드를 읽는 안목 역시 중요한 자질이다. 대중의 관심분야를 재빨리 파악해야 더 큰 PR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PR전문가의 출신학과는 다양하다. PR은 언론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분야이므로 광고홍보학이나 신문방송학 전공자가 많지만, 경영학이나 사회학, 심리학, 어문학 등의 지식도 업무를 수행하는 데 두루 도움이 된다. 취업 전에 대학 및 각종 교육기관에 개설된 PR교육과정을 이수하거나 홍보대사, 명예기자, 공모전 출품 등의 활동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PR전문가 자격시험에는 한국 PR협회가 매년 1회 시행하는 인증시험이 있다. PR업계 입문을 위한 시험이라기보다는 업계에서 경력을 쌓은 사람을 전문가로 양성하는 성격이 강한 시험이다. 대학교 졸업 후 PR업계에서 3년 이상 일했거나 대학원 졸업 후 PR업계에서 2년 이상 일한 사람에게 응시자격이 주어지며, 응시 전 한국PR협회가 실시하는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시험은 이론과목인 PR론과 실무능력을 측정하는 PR기획, 윤리강령을 중심으로 자질을 평가하는 구두시험으로 구성돼 있다.

이전에 PR은 기업이나 국가 같은 대규모 집단만의 일로 인식됐다. 그러나 요즘은 자신의 존재를 타인에게 알리고, 타인과 자신을 잇는 의미를 만들고 싶어 하는 주체라면 누구나 PR을 이용한다. PR을 원하는 주체가 많아진 만큼, PR전문가의 필요성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1980년대 말,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던 국내 PR회사 수는 현재 300군데 이상으로 늘었으며, 앞으로도 이런 상승세는 지속될 전망이다.

〈톱클래스〉가 만난 ‘머스트 커뮤니케이션즈’ 김민구 대표는 32세의 젊은 PR전문가다. 국내외 최대 PR회사에서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2년 전 PR회사를 설립한 그의 일과를 따라가본다.


머스트 커뮤니케이션즈 김민구 대표

마음을 움직이는 메시지 디자이너, PR전문가의 하루

  아주대학교 경영대학 e비즈니스학부 졸업
PR전문기업 ‘머스트 커뮤니케이션즈’ 대표

스물여덟 살, 펜대를 바꿔 들었다.

기사를 써오던 펜대였다. 기자는 나의 오랜 꿈이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대학교 재학시절 교내 신문사 기자로 활동했다. 1년 넘게 잡지사에서 인턴기자로 일하기도 했다. 졸업 후 여러 언론사의 문을 두드렸지만, 굳게 닫힌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학교 도서관에 틀어박혀 시간을 보내던 중 PR에 관한 책이 눈에 들어왔고, 순간의 우연이 나를 바꿨다. 기사가 아니라 기삿거리를 만드는 PR전문가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PR회사에 취직했고, 일이 손에 익자 “PR이야말로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자신감과 함께 PR의 전 과정을 내 손으로 직접 해보고 싶다는 열망도 커져갔다. 2011년 가을, 회사를 나왔다. 퇴직금으로 마련한 방 한 칸짜리 사무실에 붙인 이름 ‘머스트 커뮤니케이션즈’. PR을 만나고 5년 후, 나는 PR회사 대표가 됐다. 가슴이 벅찼다. 심장박동만큼 일상의 리듬도 빨라지기 시작했다.

오전 6시,
베개 맡에 둔 휴대전화 알람소리에 잠에서 깬다. 일어나자마자 노트북을 켜고 인터넷에 접속한다. 밤사이 보도된 고객사에 대한 기사와 블로그, SNS에 게시된 고객사 관련 글을 살핀다. 모니터링 담당 직원들이 이메일로 보낸 모니터링 결과도 함께 확인한다. 언론보도 및 여론 모니터링을 담당하는 2명의 직원은 7시 이전에 출근해 모니터링 결과를 담은 자료를 작성한다. 급히 처리해야 할 사안이 생기면 전화를 걸어오기도 한다. 항상 손에 닿는 위치에 휴대전화를 놓고 잠드는 이유다.

오전 8시,
회사로 출근해 직원들과 언론보도 및 여론 분석결과에 대해 회의를 한다. 밤새 보도된 기사 내용, 온라인 및 SNS 상에서의 소비자 반응을 꼼꼼히 살피고, 향후 PR전략을 세운다. PR경로와 기간, 타깃층에 대한 구체적 논의가 이뤄진다. 부정적인 내용의 언론보도나 소비자 반응이 있을 경우, 나를 비롯한 직원들은 분주해진다. 부정적 메시지는 긍정적 메시지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확산되기 때문에 초기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PR은 기업이나 제품의 좋은 점을 알리는 일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인데, 좋지 않은 정보를 즉각 감지해 대응방안을 마련하는 일도 PR의 중요한 부분이다. 회의를 통해 대응책을 모색하고, 고객사 관계자와의 논의를 거쳐 최종적인 해결책을 도출해낸다.

낮 12시
‘카레 클린트’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고객들을 살핀다. 우리 회사에서 PR을 맡고 있는 가구회사가 운영하는 퍼니처 카페다. 2년 전 가구시장에 발걸음을 내딛은 젊은 대표들이 운영하고 있다. 우리 회사가 PR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기업 가운데는 설립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벤처기업이 많다. PR의 성공 여부가 기업의 성공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기업들이다.
카레 클린트 대표와 점심식사를 한다. 식사시간도 업무의 연장이다. PR 진행상황을 이야기하고 고객사의 의견을 묻는다. 새 제품 출시나 제품협찬과 같은 고객사의 최근 소식도 소상히 듣고,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조언을 건네기도 한다.

오후 2시,
회사에 돌아와 언론사에 배포할 보도자료를 작성한다. 고객사의 새로운 이슈 가운데 언론에 알릴 만한 정보를 뽑아내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자료다. 이메일을 통해 각 언론사에 전달하면 기자나 방송사 PD 등 미디어 관계자가 유의미하다고 판단되는 보도자료를 선택해 기사화하거나 방송으로 제작한다. 내가 작성한 보도자료가 신문기사나 방송뉴스로 재탄생되는 것을 볼 때 PR전문가로서 성취감을 느낀다. 마치 내 얼굴이 신문이나 TV에 등장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다음 달부터 진행될 캠페인 슬로건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인터넷으로 관련정보를 검색하며 떠오른 생각을 하나씩 적기 시작한다. 중간중간 사무실 책상 위 전화벨이 울린다. 언론사에서 걸려오는 전화다. 고객사의 입장을 대변해 관련사항에 대해 인터뷰를 하는 것도 PR전문가의 임무다. 수시로 걸려오는 언론사의 전화에 답하고, 이메일로 답신을 보내기도 한다.

오후 7시,
택시에 오른다. 신문사 기자와의 저녁식사가 있기 때문이다. PR과 언론은 뗄 수 없는 관계다. PR전문가는 언론보도를 통해 PR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고, 언론관계자는 고객사의 입장을 대변하는 PR전문가를 통해 고객사에 관해 심층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동 중에도 태블릿 PC를 통해 신문기사를 읽는다. PR전문가는 고객사의 소식과 함께 정치·경제· 문화 등 사회 다방면의 최신 소식을 실시간 파악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도착한 곳은 ‘더 믹스드 원’ 레스토랑. 내 첫 고객인 에드워드 권 셰프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이다. 창업자본금 가운데 남은 100만원을 투자해 레스토랑에 있는 음식을 맛보며 제안서를 썼다. 2011년 겨울, 그는 나의 첫 고객이 되었고, ‘더 믹스드 원’ 레스토랑의 PR과 함께 최근 한식 알리기에 나선 그의 아시아 갈라투어 PR을 맡고 있다.

오후 9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근처 마트에 들러 장을 본다. 장보기는 소소한 즐거움이자, 생활 속 공부다. 장을 보면서 품목별로 다양한 제품을 눈여겨 보고, 눈에 띄는 제품이 있으면 장바구니에 담는다. 이런 호기심은 PR전문가로 일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길을 걸을 때도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습관이 있다. 2012년부터 PR을 맡고 있는 ‘벤타코리아’와의 만남도 그렇게 시작됐다. 길을 걷다 악기전시장을 구경하던 중 피아노 옆에 놓여 있는 ‘벤타에어워셔’ 공기청정기를 발견했다. 벤타에어워셔가 해외에서의 유명세에 비해 국내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제품이라는 걸 알았고, 국내 수입사인 벤타코리아에 전화를 걸어 PR을 제안했다.

밤 12시,
집에 들어와 노트북을 켠다. SNS사이트에 접속해 PR일기를 쓴다. PR 일을 시작하고 쓰기 시작한 PR일기에는 PR전문가로 일하면서 겪는 갖가지 에피소드와 소회가 담겨 있다. PR전문가는 수월한 직업이 아니다. 일의 양도 들쑥날쑥 일정치 않으며, 새 제품 출시행사 같은 큰 프로젝트를 맡았을 때는 주말을 반납하고, 야근도 불사해야 한다. 하지만 기업을 알리는 메시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맛보는 즐거움은 달콤하다. PR전문가는 메시지를 디자인하는 사람이다. 패션디자이너가 옷을 만들 때 세세한 곡선 하나하나에 관심을 쏟듯, PR전문가는 보도자료나 기업의 홍보문구를 만들 때 한 글자, 한 문장에 공을 들인다. PR전문가로서 나의 무기는 정성이다. PR전문가가 담당하는 제품의 종류는 천차만별이다. 낯선 제품과 친해지는 방법은 단 하나, 여러 번 사용해보고 열심히 공부하는 것뿐이다. 최근 PR을 맡게 된 맥주회사 ‘세븐브로이’의 PR제안서를 쓸 때는 매일 저녁 세븐브로이 맥주와 경쟁사 맥주를 번갈아 마셨다.
카레 클린트의 가구 PR를 맡으면서는 사무실의 가구를 카레클린트에서 제작한 것으로 바꾸고 직접 의자에 앉아 가구의 결을 만져보며 홍보문구를 만들었다.

새벽 2시,
침대에 누워 잔잔한 음악을 듣는다. 하루 종일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잠깐 긴장을 푸는 순간 고객사의 중요한 이슈를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음악으로 날선 감성을 이완시키면서 잠시 생각에 잠긴다. 미처 다하지 못한 말들, 생각나지 않던 글귀가 하나 둘 떠올라 쉬 잠들지 못한다. 떠오른 말과 글귀를 휴대전화 메모란에 기록하고서야 잠이 든다.


서른두 살, 사랑에 빠져 있다.

내가 이해하는 PR의 정의는 ‘사랑’이다. 사랑에 빠진 이는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러브레터를 쓴다. PR전문가가 언론사에 보내는 보도자료가 그것이다. 때로는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벌이기도 한다. PR전문가가 기획하는 각종 이벤트가 그것이다. 직접 사랑한다 말하기가 멋쩍은 이들은 주변 사람들을 총동원해 자신의 장점을 알린다. 전문가 같은 제3자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법이 그것이다. 갖가지 방법으로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을 통틀어 사람들은 PR이라 부르는 것이 아닐까. 나는 사랑받고 싶은 사람이다.

사진 : 김선아
  • 2013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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