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지 ‘수지킴도시락아트’ 대표

도시락, 예술이 되다

평범한 도시락이 그의 손을 거치면 신기하게도 ‘작품’이 된다. 먹는 즐거움에 보는 즐거움까지 더해진 ‘특별한 도시락’으로 ‘도시락 아트’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김수지씨가 그 주인공. 받는 사람을 감동시키는 그의 도시락은 바쁜 촬영 일정에 쫓겨 식사를 거르기 일쑤인 연예인들 사이에서 특히 유명하다.
김수지 대표를 만난 곳은 명동성당 맞은편에 자리 잡은 ‘수지킴도시락아트’의 작업장에서였다. 주방에서는 음식을 만드느라 분주했고, 한쪽 방에서는 여러 가지 천과 리본 등을 펼쳐놓고 도시락통을 꾸미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큰 키에 서글서글한 미소가 인상적인 그에게선 호탕한 사업가 기질이 엿보였다. 실제로도 그는 도시락 사업을 하기 전, 경기도 퇴촌에 있는 꽤 큰 규모의 닭백숙 전문점에서 ‘주방장이자 월급 사장’으로 일했다. 비어 있던 음식점을 직접 운영하며 수익을 반씩 나누는 조건이었다.

“얼떨결에 조리까지 맡게 됐는데, 규모가 커서 정말 힘들었어요. 대신 100명 이상의 손님을 치러야 할 때 재료는 어느 정도 준비해야 하는지, 간은 어떻게 맞추어야 하는지 등을 배웠지요. 그게 도시락 사업으로 전업할 때 많은 도움이 됐어요.”

‘좋은 재료를 쓰고, 맛있고, 인심까지 좋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폐가처럼 방치돼 있던 음식점은 활기를 되찾았다. 그렇게 매일 250마리의 닭을 삶으며 정신없이 살고 있던 어느 날 미국에 사는 친구가 “강호동의 열렬한 팬”이라며, “그에게 도시락을 선물하고 싶은데 네가 좀 맡아주면 좋겠다”는 전화를 걸어왔다.


“이왕이면 예쁘게, 눈에 띄게 만들어 보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메뉴를 구상한 뒤에는 포장재를 찾아 남대문・동대문・방산시장까지 뒤지고 다녔어요. 직접 원단을 끊어다 젓가락 주머니며, 포장할 보자기도 만들었죠. 강호동씨는 고기를 좋아하니까 LA갈비를 주메뉴로 정하고, 날씨가 더울 때라 음식이 상할까봐 살균력이 있는 연잎밥을 만들었어요. 직접 산지에 가서 장당 500원씩 주고 생 연잎을 사다 일일이 밥을 쌌지요. 스태프를 위해서는 수제 햄버거를 만들었고요. 식재료며 포장재 모두 좋은 것들만 구하기 위해 발품을 많이 팔았어요. 130인 분 만드는 데 꼬박 3일이 걸렸죠.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완성해 보내고 난 뒤 며칠 동안 못 일어나겠더라고요.”

그는 이렇게 만든 도시락 사진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 며칠 뒤 접속해보니 낯선 아이디로 댓글들이 달려 있었다. ‘도시락을 주문하고 싶다’고. 연예인 팬클럽 회원들이었다. 도시락이 ‘꽤 괜찮은 사업 아이템’이라고 직감한 그는 2010년, 음식점을 그만두고 곧바로 ‘수지킴도시락아트’의 문을 열었다.

요리를 전공한 적도, 미술을 공부한 적도 없지만 어려서부터 손으로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자신 있었던 그에게 ‘도시락’은 자신의 감각을 한껏 펼쳐 보일 수 있는 좋은 대상이었다. 마침 미술을 공부하는 둘째딸이 힘을 보탰다. ‘강호동 도시락’ 이후 주문도 쉴 새 없이 이어져 이승기, 장근석, 샤이니, 2PM, 원빈, 2NE1, 소녀시대, 주상욱 등 많은 연예인들의 도시락을 만들었다. 한류 스타들의 경우 해외 팬들이 주문하기도 했다. 그는 받는 사람의 식성, 취향 등을 분석해 그에 맞는 ‘맞춤 도시락’을 만든다. 유노윤호의 뮤지컬 <궁> 출연을 기념한 도시락을 만들 때는 전통적인 느낌을 살리기 위해 한복을 구입해 문양을 일일이 잘라 한땀 한땀 바느질해 ‘왕자님 도시락’으로 만들었다. 새 앨범 발매를 축하하는 가수의 도시락은 재킷 앨범과 똑같은 디자인으로 꾸미느라 며칠 밤을 새우기도 한다.


기념일 도시락 주문도 많다. 결혼기념일 도시락, 프러포즈 도시락, 결혼식 당일에 끼니를 챙기기 어려운 신랑 신부를 위한 웨딩 도시락 등 그에게 부탁하는 도시락엔 저마다 특별한 사연이 담겨 있다. 그가 도시락에 각별한 정성을 쏟는 이유다.

“보내는 사람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게 하고 싶어요. 그래서 포장에 신경을 많이 써요. 그렇다고 맛을 소홀히 할 수는 없지요, 도시락의 생명인데. 저는 맛간장을 직접 달여 천연조미료로 활용하고, 복분자·매실·오미자 청을 만들어 설탕 대신 사용해요. 대부분의 식재료는 명동성당 인근의 유기농 매장에서 구입합니다. 재료들의 원가가 워낙 높아 많이 남지는 않아요. 그래도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최고의 도시락을 만든다는 자부심이 있어요.”

작은 장식 하나도 아무것이나 쓰지 않는 고집 덕분에 그는 창업 2년 만에 도시락업계의 강자로 우뚝 섰다. 최근에는 도시락 레시피, 데커레이션 노하우 등을 담은 《수지킴의 도시락아트》라는 책도 펴냈다.

10만원 안팎에서 100만원 이상까지, 그의 도시락은 제법 값이 나가지만 주문이 끊이지 않는다. 현재 월매출은 3000만원 선에 이른다. 유명세를 타면서 프랜차이즈를 하자는 제안도 많았지만 모두 거절했다. 대신 창업준비반을 열어 소수의 수강생들을 도제식으로 가르친다. 2~3개월 함께 숙식하며 모든 노하우를 전수하는 방식이다. ‘제자’들이 ‘하산’할 때가 되었다고 판단되면 수료증을 주고, 창업을 지원한다. 한 지역에 하나의 수지킴도시락아트만 허용하고 있어 현재 대구・전주・울산・일산・천안・분당 등 각 지역에 20명의 ‘수지킴’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의 성공을 지켜보는 일이 더없이 뿌듯하다”는 그는 앞으로 조금씩 사업을 확장해가며 경력 단절 여성들의 재취업이나 형편이 어려운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을 도울 생각이다. 네 아이를 키우며, 그 역시 경제적인 어려움을 많이 겪었기에 그들의 현실이 남의 일 같지 않은 까닭이다.

“그저 즐겁게 일했을 뿐인데 여기까지 왔어요.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 매일매일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지금이 저는 아주 행복해요. 그래서 이 행복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눌 수 있는 길을 찾아보려고 해요.”

사진 : 김선아
  • 2013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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