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LG배 한국 여자야구대회 우승팀, 서울 블랙펄스

꽃보다 야구

칼같이 날카로운 바람이 얼굴을 긁는 12월의 새벽, 인천 부영공원 야구장에는 몸을 풀고 있는 여자선수들의 우렁찬 기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날은 여자야구리그인 부평국화리그의 시즌 막바지 경기가 열리던 날이었다. 오전 8시 30분에 시작된 이날 경기에서 서울 블랙펄스는 구리 나인빅스에게 중반부터 큰 점수 차로 밀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블랙펄스의 선수들은 마지막 이닝까지 최선을 다하자며 특유의 경쾌한 동작을 곁들여 서로의 응원가를 큰소리로 불러주었다.


경기 내용도 남자야구 못지않게 흥미로웠다. 투수들은 스트라이크 존에 거침없이 꽂히는 강속구를 뿌렸고, 포수의 리드와 미트질도 수준급이었다. 타석에 선 타자들도 나무 배트보다 가벼운 알루미늄 배트를 휘둘러 안타와 홈런을 빵빵 때려냈다. 프로야구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수비실책이 종종 나오기는 했지만, 야수들도 강한 어깨를 이용한 ‘빨랫줄 송구’로 주자들을 척척 잡아냈다.

경기 후 선수와 감독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는 곽대이 감독의 부름에 블랙펄스의 팀원들이 미팅을 가졌다. 결과는 큰 점수 차의 패배였지만, 곽 감독은 선수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호명하면서 그날 잘한 점과 보완해야 할 점을 일일이 꼽아 이야기해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1년간 이어져온 리그가 막바지에 다다른 소회가 남달랐던지 몇몇 선수들은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미팅을 마무리 짓고 식사 장소로 향했다. 경기장에서 멀지 않은 뼈다귀 해장국집. 역시 이탤리언 음식점이나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을 선호하는 많은 젊은 여성들과는 사뭇 다른 선택이다. 뼈다귀 해장국 한 그릇씩을 깨끗이 비우고 나서는 한 선수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커다란 케이크가 식탁에 올려졌고, 모두가 목소리를 모아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서울 블랙펄스는 올해 처음 만들어진 LG배 한국여자야구대회에서 전승으로 우승을 차지한 여자야구계 불세출의 강호다. 2008년 창단하여 KSG 대한스포츠의 강형선씨가 단장을, 실업팀 출신의 신상민 총감독이 지휘를 맡고 있으며, 일본인 선수를 포함해 25여 명의 선수들이 소속되어 있다. 이 팀은 여자야구팀 중 유일하게 응원단장이 있고, 선수 전원이 개인 응원가를 가지고 있을 만큼 팀워크와 치어링이 뛰어나다.

야구용품 회사를 운영하는 단장의 도움을 받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여자야구단은 소속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가 십시일반으로 보태는 사비, 그리고 리그에서 따낸 상금으로 운영된다. 총감독부터 선수들까지 모두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본업은 따로 있다. 야구연습장 운영부터 주부, 학원 강사까지 직업군도 다양하다. 그렇기 때문에 훈련이나 경기를 위해서는 주말에만 모이고, 개인 연습이 필요한 경우 개별적으로 평일에 짬을 내어 야구연습장을 찾는다. 반나절 동안 이들을 지켜본 결과, 이들은 분명 가족, 연인보다 단단한 우애를 나누는 사람들이었다.


곽대이 감독과의 일문일답

먼저 LG배 한국 여자야구대회 우승을 축하합니다.
소감 한 말씀 해주시지요.

LG의 통 큰 후원이 따랐던 첫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해서 기쁩니다. 저희 팀이 먼 거리까지 원정을 다니면서 대회에 열심히 임했는데요, 그에 상응하는 상금과 상품이 주어져서 더 기쁘고요.(웃음) 적극적으로 열심히 뛰어준 팀원들에게 너무 고맙고, 내년 대회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블랙펄스는 여자야구단 최초로 5개 대회 연속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기도 했고, 이번 LG배 대회에서도 전승으로 우승을 차지하는 등 여자야구계에서는 범접 불가능한 강팀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다른 팀들과 차별화되는 블랙펄스만의 강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오늘 경기에서도 보셨듯이, 저희 팀의 전매특허는 선수 개인의 응원가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 LG배를 중계해준 캐스터와 해설자도 이런 문화는 다른 팀들도 벤치마킹을 해야 한다고 역설하셨어요. 이런 적극적인 응원이 결국 팀워크로 연결되고, 어느 팀보다 견고한 팀워크가 저희 팀을 강팀으로 만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여자야구단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강팀인 만큼 입단 조건이 까다로울 것 같습니다.
저희는 주말에만 모이는 팀인 만큼, 주말 이틀 모두 시간이 되어야 해요. 먼저 수습 신분으로 6주 동안 운동장에서 저희와 함께한 후 정식 입단이 가능합니다. 가장 까다로운 조건은 저희와 함께하는 MT에 참가해서 장기자랑을 꼭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웃음) 실력도 실력이지만, 기존 선수들과 스스럼없이 친해지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으로 꼭 필요합니다.

일본인 2루수 ‘호소야 마리코’씨는 어떤 계기로 입단하게 됐나요?
원래 일반 사회인 야구팀에서 남자들과 함께 뛰고 있었는데, 저희 신상민 총감독님의 권유로 입단하게 됐어요. 저희 팀의 조직력과 팀워크가 마음에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얼마 전 경기를 뛰다가 무릎에 큰 부상을 당해서 치료받고 있는 중입니다.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병원비가 보통의 3배 정도의 들던데, 미안하고 안타까워요. 실력도 타격이 조금 아쉬운 것만 빼면 저희 주전 2루수를 꿰차고 있을 만큼 뛰어나요. 저희 팀원들 사이에서는 ‘일본말 잘하는 한국인’으로 통할 만큼 허물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취미 수준을 넘어선 야구를 합니다.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의 반대는 없었나요?

저는 대학 때까지 소프트볼 선수였는데요, 고등학교 때 처음 운동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부모님의 반대가 굉장히 거셌어요. 지금은 저희 팀이 원정경기를 하는 지방에까지 응원을 오실 만큼 인정해주십니다. 한 살 터울의 언니와 함께 오는 조카는 제가 야구하는 것을 보더니 제 팬이 되었다면서 사인을 부탁하기도 했죠.


선수들 모두 직업은 따로 가지고 있던데, 생업과 야구를 병행하는 것이 힘들지 않나요?
저는 주5일제 직장에 다니기 때문에 주말에 훈련하거나 경기 뛰는 것에 무리가 따르지는 않는데요, 학원 강사같이 주말에 일해야 하는 선수의 경우에는 직장을 빠지고 경기하러 오세요. 그런 분들을 보면 고맙고 대견하지만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지 걱정됩니다.

야구를 하려면 각 포지션에 맞게 근육도 키우고 살도 찌워야 할 텐데요.
여자로서 그런 부분이 안타까웠던 적은 없나요?

야구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포지션별로 신체 부위의 근육이 발달합니다. 저희는 부상 방지를 위한 기본적인 근력 훈련은 하지만, 인위적으로 살을 찌우거나 근육을 키우지는 않아요. 여자로서의 매력을 포기하면서까지 무리하는 분이 많지는 않습니다.

포지션과 출전 멤버는 어떻게 정해지나요?
저희는 동호회 수준의 야구팀이기 때문에 실력과 신체조건에 따라 포지션을 정하지는 않습니다. 각자 원하는 포지션에 배치되어야 흥미를 잃지 않고 재미있게 야구를 할 수 있으니까요. LG배 대회 등 높은 수준의 대회는 실력이 출중한 선수들이 출전 기회를 얻게 되는데요, 경기를 많이 뛰지 못한 선수들에게 정말 미안합니다. 그래서 대회를 준비하는 동안에는 최대한 출전 기회를 고르게 주기 위한 배려를 하고 있습니다.

여자야구는 공식적으로 7회 말까지가 정규 이닝입니다.
이외에도 남자야구와 다른 여자야구만의 특이한 규정이 있나요?

이번 LG배 대회 때는 생방송 시간 배분 관계로 임시로 정한 ‘도루 금지’의 규칙이 있었습니다. 그 룰이 굉장히 아쉬웠어요. 저희는 치고 달리는 ‘발야구’를 해야 더 재미있는 경기를 만들 수 있거든요. 하지만 이것도 임시로 정한 규칙이었고, 알루미늄 배트를 사용한다는 것 외에 경기장 규격을 포함한 다른 규정은 똑같습니다.

야구단 운영비는 선수들 사비로 충당한다고 들었습니다.
야구단을 이끌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원정 경기 때 이동이 가장 큰 문제예요. 차량이 충분치 않거든요. 총감독님과 코치님이 스폰서를 유치하기 위해 여러 기업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데요, 아직은 한국 여자야구가 동호회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얼마 전 일본 여자야구 대학팀과의 친선경기에서 아쉽게 석패했는데요, 일본 여자야구팀은 어떤가요?
경기장을 대하는 경건한 태도,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게 상대팀을 배려했어요. 선수 수급이나 인프라 등 외적인 문제보다 선수들의 마음가짐 같은 내실이 먼저 잘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 한국여자야구팀들도 그런 부분을 본받았으면 좋겠어요.

블랙펄스의 최종 목표가 궁금합니다.
스폰서를 유치해서 선수들과 스태프들이 마음 편히 야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 여자야구팀 모두 기업이나 지역의 후원을 받는 실업팀이 되어서 전국체전에 포함되었으면 하고요. 무엇보다 지금처럼 팀원들이 깊은 우애를 나누면서 좋은 성적도 꾸준히 낼 수 있는 팀으로 유지하고 싶습니다.

사진 : 김선아
  • 2013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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