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로 가는 괴물 투수 류현진

털털한 성격이 큰 매력, 개인보다 팀 승리를 우선시하는 진정한 에이스

사진 : OSEN·연합뉴스
구대성이 뉴욕 메츠서 돌아와 친정팀 한화에서 새로운 시즌을 앞둔 2006년, 인터뷰 중 이런 말을 했다. “똑같은 걸 가르쳐도 확실히 배우는 사람에 따라 차이가 나요.” 한 선수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대표팀에 갔을 때 좌완 투수들한테 뭘 좀 가르쳤는데 잘 못 따라오더라고요. ‘확실히 금방 되는 건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했죠. 그런데 한화에 합류해서 그 생각을 바꾸게 됐어요. 사흘 만에 해내는 애가 있더라고요.”

구대성이 말한 그 ‘애’는 당시 고졸 신인이던 류현진이었다. 그가 류현진에게 전수한 구종은 이후 류현진을 대한민국 최고 투수로 만들어준 ‘체인지업’이었다.

당시 류현진은 ‘잘해야 구멍 난 선발 한자리를 채울 5선발’ 정도로 여겨졌다. 실제로 그를 주목하는 전문가는 그리 많지 않았다. 프로야구에서 한 시즌을 제대로 치를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확실치 않았다. 고교 시절 팔꿈치 수술 전력 탓에 그의 스카우팅 리포트엔 늘 ‘조심스럽게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이 붙어 있었다.

하지만 류현진은 상상 그 이상의 것을 만들어냈다. 그저 공만 잘 던지는 것이 아니었다. 마운드에 선 류현진은 마치 20년차 투수처럼 여유 있었다. 문제 있다던 팔꿈치도 전혀 탈이 나지 않았다. 간혹 팔에 무리가 오는 경우는 있었지만 보통의 투수들도 흔히 겪는 수준이었다. ‘괴물’이라는 별명은 그렇게 탄생했다. 한국 프로야구의 판을 흔들며 화려하게 등장한 류현진은 하나씩 평정해나갔다. 데뷔 첫 해 18승을 거두며 신인왕과 MVP를 모두 거머쥐었고, 이후 5년 동안 내리 두 자릿수 승수를 거뒀고, 탈삼진 왕은 7시즌 중 무려 5번이나 차지했다. 한화가 2008년 이후로는 만년 하위권 팀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가 얼마나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왔는지 알 수 있다.

그런 류현진이 또 한 번 한국 야구를 놀라게 했다. 한국 프로야구 선수로서는 최초로 메이저리그에 직행하는 길을 열었기 때문이다. 그는 2573만 달러라는 놀라운 포스팅 금액을 이끌어냈으며, 결국 LA다저스와 6년간 총액 3600만 달러의 계약을 성사시켰다.


포스팅 머니 2500만 달러의 위력

프로야구 비즈니스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류현진이 이끌어낸 포스팅 머니 2573만 달러(정확히는 2573만7737달러33센트. LA 지역지인 오렌지카운티 레지스터는 “7과 3이 한국에서 행운의 숫자이기 때문에 다저스가 2500만 뒤 숫자로 7과 3을 붙인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부터 설명을 해야 할 것 같다. 류현진 이전까지 한국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포스팅을 신청했을 당시 최고액은 65만 달러(2002년 임창용)였다. 그해 최고 마무리 투수로 평가받았던 진필중(당시 두산)은 2만5000달러를 제시받았다. 당시만 해도 한국 프로야구는 메이저리그의 더블A 수준으로 여겨졌던 탓이다. 하지만 1, 2회 WBC와 베이징올림픽을 거치며 한국 야구는 세계무대에서 재평가받기 시작했고, 그 첫 수혜자가 류현진이었던 셈이다.

한국인 첫 메이저리거인 박찬호는 “내가 처음 문을 열었다면 현진이는 그 문을 더욱 크게 만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누구도 류현진이 그만큼의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 크게 치솟은 몸값은 역설적으로 류현진의 메이저리그 성공 가능성도 높이고 있다. 메이저리그는 철저한 돈의 논리로 운영된다. 많은 돈을 투자한 선수는 그 값어치를 할 때까지 기회를 주는 무대다. 이상훈・구대성 등 앞서 메이저리그에 도전했던 선배들이 “돈 욕심을 위해서가 아니라 기회를 위해 최대한의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조언한 이유다.

LA다저스가 류현진에게 배팅한 돈의 가치는 최소 3선발 이상의 역할을 해줄 수 있다는 믿음의 표시다. 메이저리그에 적응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릴 수는 있어도 기회가 부족해 진가를 발휘하지 못하는 억울한 일은 당하지 않을 것이다. 류현진에 대한 최소 기대치인 ‘시즌 10승’ 가능성도 덩달아 높아진 셈이다.


류현진의 진짜 무기는 직구

‘류현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구종은 역시 ‘체인지업’이다. 구대성에게 처음 배운 체인지업을 자기 스타일로 확실하게 만들어낸 것이 류현진의 성공 비결이다. 류현진표 체인지업이 위력적인 것은 직구와 똑같은 폼에서 던질 수 있기 때문이다. 체인지업은 쉽게 말하면 ‘힘을 빼고 던지는 공’이라 할 수 있다. 상대를 힘으로 압도하는 것이 아니라 직구인 줄 알고 속아 힘껏 스윙하게 만드는 공이다. 당연히 직구와 같은 폼으로 던질 때 상대를 속일 수 있는 확률도 높아진다.

직구의 힘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류현진의 체인지업은 빛을 잃는다. 류현진은 이런 의혹에서도 한 걸음 비켜나 있다. 명품 체인지업에 가려 오히려 진가가 드러나지 않았을 뿐, 류현진의 직구는 리그에서 가장 강력한 공으로 전문가들에게 평가받는다. SK 코치 시절, 최고의 전력분석가로 이름 높았던 김정준 SBSESPN 해설위원은 “오승환의 공을 돌직구라고 하는데 류현진의 파워도 이에 못지않다. 전력 분석 코치 시절에는 잘 몰랐는데, 해설위원으로서 포수의 시점으로 보니 류현진의 직구가 얼마나 위력적인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류현진 직구의 평균 구속은 140km대 중·후반. 평균 150km를 찍는 선수들이 즐비한 메이저리그에선 그리 빠르다고 할 수 없지만 스피드가 전부가 아니다. 한 메이저리그 구단 스카우트는 “류현진의 직구는 매우 매력적이다. 안정된 제구력과 함께 묵직한 볼 끝이 장점이다. 우리 구단 역시 그를 3선발급 투수로 평가해 포스팅에 참여했다. 그를 놓친 건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고 밝혔다.


야구 바보


류현진이 빠져나간 한화는 여전히 공허함과 먹먹함에 쌓여 있다. 단순히 팀 전력의 절반이던 에이스의 공백 탓만은 아니다. 언제든 편안하게 기댈 수 있었던 기둥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류현진은 단순히 야구만 잘했던 선수가 아니다. 개인이 아니라 팀으로서 이기는 걸 좋아했던, 그래서 더 동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던 진짜 에이스였다. 한화의 한 선수는 “꼴찌 팀의 에이스로 산다는 것이 즐거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진이는 조금도 티를 내거나 잰 척하지 않았다. 전지훈련 출국할 때에도 태도가 달랐다. 그 많은 도구와 장비를 다 나를 때까지 늘 앞장섰다. 그런 모습이 선수들에겐 더 큰 감동이 됐다”고 말했다.

류현진은 한화에서 참 어렵게 공을 던졌다. 유독 부실한 수비는 뻔히 아웃이 될 수 있는 선수들을 번번이 살려줬고, 빈약한 득점 지원은 그의 승리를 적어도 30% 이상 까먹었다. 그러나 류현진은 좀처럼 티를 내지 않았다. 지난 7년간 마운드 위에서 류현진이 아쉬워하는 표정을 본 건 손가락으로 꼽아야 할 정도였다. 한대화 전 한화 감독은 “어떨 때 보면 바보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8회를 1점밖에 안 주고도 점수를 못 내 승리 투수 요건을 갖추지 못하고 강판될 때도 끝까지 덕아웃에 남아 동료들을 응원하곤 했었다. 감독으로서 미안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신인이던 류현진을 과감하게 기용해 지금의 대한민국 에이스로 길러낸 김인식 전 감독(현 KBO기술위원장)도 비슷한 말을 했다. “처음엔 얼굴에 표현이 좀 나오기도 했었다. 하지만 몇 번 지적하고 나니 그런 부분이 완전히 없어졌다. 일찌감치 에이스가 될 자질이 있었던 셈이다.”

이런 성격은 류현진이 메이저리그에서 높은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받는 여러 이유 중 하나다. 늘 긍정적이고 팀원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모습은 생소한 문화와 환경을 이겨내는 데 큰 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의 수퍼 에이전트인 스캇 보라스가 선뜻 류현진의 대리인을 맡게 된 배경에도 이런 털털한 성격이 적잖이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진정한 빅 리거의 조건

물론 류현진의 메이저리그 도전이 무조건 장밋빛인 것만은 아니다. 그가 밟을 메이저리그라는 무대는 세계에서 야구를 가장 잘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절대 호락호락 정상을 내줄 곳이 아니다. 아시아인으로서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뒀다는 평을 듣는 이치로(뉴욕 양키스)는 1회 WBC를 앞두고 대표팀 선수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도망갈 수 있는 곳은 아시아 무대뿐이다. 미국에선 피할 곳이 없다. 부딪쳐 이기지 못하면 지는 일만 남은 것이다.”

류현진의 최고 장점을 ‘허허실실(虛虛實實)’로 꼽는 전문가들이 많다. 힘을 줄 때와 뺄 때를 아는 선수라는 뜻이다. 한 타자를 상대로 던지는 공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흐름을 쥐락펴락하는 것이 류현진의 진면목이다. 쉽게 말하자면 만만한 타자를 상대할 때 비축한 힘을 강타자를 만났을 때 터뜨리는 투구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선 이게 잘 통했다. 류현진의 공을 제대로 공략할 수 있는 타자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장점이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한다고 장담할 순 없다. 그곳에도 분명 상대적으로 타력이 약한 선수들이 있다. 상-하위 타선의 구분도 뚜렷하다. 하지만 누구나 언제든 한 방을 쳐낼 수 있는 곳이 또한 메이저리그다. ‘허허실실’투가 자칫 삐끗하면 대량 실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맘껏 몸 쪽 승부를 할 수 없다는 점도 분명 적잖은 장벽이 될 수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활약 중인 추신수는 WBC와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합류했을 때 스트라이크 존 때문에 적잖은 어려움을 겪었다. 메이저리그보다 상대적으로 몸 쪽에 후했기 때문이다. 추신수는 “메이저리그에선 공격적인 흐름을 위해 몸 쪽 스트라이크를 잘 잡아주지 않는다. 투수에겐 불리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류현진은 우타자 몸 쪽 승부에 매우 능한 투수였다. 몸 쪽에 바싹 붙인 뒤 바깥쪽으로 떨어지는 체인지업으로 헛스윙을 유도하는 패턴은 그의 전매특허나 다름없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도 같은 방식이 통할지는 지켜봐야 한다. 몸 쪽 스트라이크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질 경우 전체적인 밸런스가 무너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장벽을 넘어 류현진의 위력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을지에 한국 야구팬들의 눈과 귀가 쏠려 있다.
  • 2013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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