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선 SYNN 대표

‘이야기가 있는 구두’ 만드는 구두 디자이너

얼마 전 막을 내린 드라마 〈아이두 아이두〉의 주인공은 구두에 대한 애정이 대단한 열정적인 구두 디자이너(김선아 분)였다. 작가는 현직 구두 디자이너이자 구두 브랜드 신(SYNN)의 대표인 김미선씨를 모델로 드라마를 썼다. 의상디자인을 전공했지만 구두가 좋아 무작정 구두공장 주소 하나만 들고 찾아가 구두 만드는 법을 배우고, 온라인 쇼핑몰을 열고, 불모지나 다름없던 웨딩슈즈 영역을 개척해 브랜드 인지도를 단숨에 높인 김미선 대표에게 구두는 곧 삶이다.

구두 디자이너가 되기 전, 그는 한 의류회사의 막내 디자이너였다.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그에게 옷을 만드는 일은 당연해 보였다. 하지만 재미를 느낄 수 없었다. 옷보다 구두에 더 관심이 갔다. 결국 사직서를 내고 한동안 방황의 시간을 보내다 구두 디자이너가 되기로 마음을 굳혔다. 구두 디자인을 배우기 위해 그는 몇 달 동안 수제화를 판매하는 동대문시장을 들락거리며 어렵게 공장 주소 하나를 얻었다. 무작정 주소만 들고 서울 성수동 제화업체 밀집지역에 있던 한 구두공장을 찾아갔다. 거래처의 신참 디자이너라고 생각해 자리를 내준 구두공장 사장은 “실은 구두를 배우고 싶어 찾아왔다”고 간청하는 그를 내치지 않았다.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공장에서 살다시피 하며 구두 제작과정을 배웠다. 그의 열정에 공장 직원들도 마음을 열어 현장에서 얻은 유용한 정보들을 전수해주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귀찮을 정도로 질문을 많이 했는데도 다들 잘 가르쳐주셨다”며 고마워했다.

“지금 생각하면 무슨 배짱이었는지 모르겠어요. 그저 구두에 미쳐 있었다는 말로밖에는 설명이 안 돼요. 좋아하니까 배워서 하면 될 거야, 그렇게 쉽게 생각했거든요. 지금 하라면 못 할 것 같아요.(웃음)”

구두를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구두 디자이너가 된 그는 ‘SYNN’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자신이 만든 구두를 팔기 위해 2005년, 온라인 쇼핑몰도 만들었다. ‘구두는 직접 신어보고 사야 한다’는 상식을 깬, 과감한 결정이었다.

“사업 경험도 없고, 구두 디자인도 처음이었지만 ‘내 구두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팔면 된다’는 소신(?)을 가지고 시작한 일이었기 때문에 잘 팔리지 않는 것에 대한 걱정 같은 건 없었어요. 그렇게 조금씩 키워나갈 생각이었는데, 어느 날 인터넷에서 유명한 파워 블로거가 제 구두를 여러 켤레 주문한 거예요. 그중 하나를 블로그에 올리면서 갑작스럽게 관심을 받게 되었죠. 동시에 판매량이 엄청나게 늘었어요. 사업 규모도 커졌고요. 또 구두를 직접 보고 싶다는 요청이 많아서 온라인과 별도로 청담동에 매장을 내게 됐어요. 순식간에 일어난 변화들이라 처음엔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구두를 통한 소통 위해 갤러리도 운영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이 놀라운 성장세에 힘입어 그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드레스 속에 감추어져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웨딩슈즈에 눈을 돌린 것. 웨딩드레스에 맞게 새틴이나 실크 소재를 사용해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을 살린 웨딩슈즈는 예비 신부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세계적인 드레스 디자이너 베라왕의 요청으로 함께 웨딩드레스 쇼 무대에 서기도 했다. 웨딩슈즈는 일반 구두와 달리 상담을 통해 맞춤 제작한다. 상담은 예비 신부와 나누는 일종의 수다다. 예비 신랑을 어떻게 만나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는지, 그들의 연애담을 들으며 머릿속으로 어울리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이미지에 따라 레드・블루 등 파격적인 색상을 사용하기도 한다.

“웨딩슈즈뿐만 아니라 저는 구두를 만들 때 항상 스토리를 만들고, 그에 맞는 이름을 붙여요.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에요. 신문에서 어느 외국 디자이너의 인터뷰 사진을 봤는데 굉장한 카리스마가 느껴졌어요. 순간, ‘이런 사람들은 어떤 구두를 신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의 일상을 상상해봤어요. 그리고 그 라이프스타일에 어울릴 만한 디자인을 떠올려보는 거죠. 무난해 보이면서도 세련되고 시크한 매력이 있는 구두가 잘 맞을 것 같더라고요. 이름에서도 뭔가 당당함이 느껴지도록 ‘힐다’라고 지었어요. 라페・제인・베일리・카밀라・로에나 같은 구두 이름들이 다 그렇게 만들어졌죠.”

그는 이 ‘이야기가 있는’ 구두를 보다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어 서울 도산공원 인근에 ‘갤러리 신(SYNN)’을 열었다. 올해 초 이곳에서 열린 <콜라보레이션 슈즈>전은 ‘여자’를 주제로 구두·의상·가방 등의 디자이너와 셰프, 메이크업 아티스트, 화가, 스타일리스트 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각자 생각하는 여성의 모습과 여성관을 풀어내 화제를 모았다. 이날 도네이션 박스에 모인 모금액은 강남 장애인복지관에서 운영하는 Active Art Company에 기부했다. 그는 앞으로도 이 공간에서 예술작품과 구두가 연결된 의미 있는 전시 작업을 비롯,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있는 젊은 예술가들의 전시 후원도 꾸준히 진행할 예정이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아 30대 중반의 나이에 성공한 CEO의 반열에 오른 비결을 물으니 그는 “아직 성공을 말하기는 이르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면서도 “편안하면서 예쁜 구두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가장 좋은 신발은 편한 신발이라고 생각해요. ‘이 신발 너무 편해요’라는 이야기가 가장 큰 칭찬으로 들려요. 사람의 발은 백 사람이면 백 사람 모두 다른 모양이어서 모두에게 편한 신발을 만들 수는 없지만, 가급적 많은 사람이 만족할 수 있는 제품을 내놓고 싶어요. 어릴 때부터 구두를 좋아해 신발을 많이 신어본 것이 많은 도움이 되더라고요. 또 고객들의 평만큼 정확한 게 없기 때문에 지금도 자주 매장에 나가 그분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게 비결이라면 비결이죠.”


구두수집가이기도 한 그는 현재 2000켤레가 넘는 구두를 소장하고 있다. 먼 훗날 기회가 된다면 구두박물관을 열 계획이다. 작은 공방에서 시작해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로 키운 이탈리아의 구두장인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디자인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만든 ‘페라가모박물관’처럼, 그 역시 구두와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와 볼거리가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아직 젊기에 서둘지 않는다. 그저 지금 이 순간, 구두와 열렬히 연애하고 있어 더없이 행복할 뿐이다.

사진 : 김선아
  • 2012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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