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용 LP팩토리 대표

추억의 LP음반 되살린 공장장

단돈 몇 천원이면 스마트폰으로도 원하는 음악을 마음껏 내려받는 시대, CD를 사는 일도 귀찮거나 사치스러운 일로 여겨지는 시대, 카세트테이프가 ‘1990년대 감성’ 마케팅으로 영화나 드라마에서 소품으로 등장하는 시대,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젊은이 중에 ‘턴테이블’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태반인 시대… 이런 시대에 용감하게도 LP 공장을 차린 공장장이 있다. 이제는 ‘공룡’과도 같이 구시대 유물로만 여겨지는 그 ‘빽판’ LP 말이다.
LP를 마지막으로 턴테이블에 올려본 것이 언제입니까? 몇몇 애호가를 제외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최소 20년 전 추억을 더듬을 것이다. 열 몇 곡을 듣기 위한 방식으로는 LP의 크기가 너무 크다고 여겨지는 2012년, 경기도 김포시에 LP를 생산하는 공장이 생겼다. 마지막 LP공장이었던 ‘서라벌레코드’가 사라진 지 8년 만이다. LP라는 매체 자체가 생소하게 여겨지는 지금, 이런 공장의 재등장은 무모한 도전으로 보인다. 실제로 ‘공장장’ 이길용 대표는 무모하게 시작했다.

“(친한 형들과) 술 먹다가 이야기가 나왔어요. ‘우리도 빽판이나 찍어볼까?’ 재미있을 것 같아서 알아보다 벨기에에서 LP 생산기계가 매물로 나온 것을 봤어요. 당시 회사에 여윳돈이 있어서 일단 주문부터 했죠. 그때는 수익분석 같은 것도 생각 안 했어요.”

어떤 마니아의 객기일까, 아니면 남아도는 돈을 주체하지 못한 부자의 비싼 취미생활일까. 어떤 경우라도 LP 제작은 음반과 음악에 대한 열정과 애정 없이는 섣불리 하기 어렵다. 이길용 대표는 해외 뮤지션들의 내한공연과 굵직한 록페스티벌을 기획했던 이력이 있다. 하지만 그는 의외의 대답을 했다.

“원래 음악을 많이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어쩌다보니 이쪽 세계에 들어온 거죠.”

이길용 대표와 음악사업의 인연은 20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5년, 치기 어리지만 뜨겁게 사랑했던 젊은 날의 연애가 끝났다. 3년을 만났던 여자 친구와 헤어진 후 이길용 대표에게 남은 것은 지독한 괴로움이었다. 괴로움을 잊을 수 있는 방법을 찾던 때, 친구들은 ‘육체가 힘들면 정신적 괴로움은 별것 아니다’고 조언했다. 그는 소위 ‘노가다’를 했다. 힘든 노동을 통해 마음을 치유하자는 것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노가다’는 마음의 치유 따위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들었다. 눈을 돌려 대학로에서 공연 포스터 붙이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이것도 만만치 않아 당시 아르바이트생들은 100장을 받아오면 50장은 버리고 50장만 붙이는 ‘꼼수’를 부렸다. 하지만 수행하듯 노동을 택한 이길용 대표는 성실하게 100장이면 100장, 200장이면 200장을 다 붙이고 다녔다. 낮에는 힘들게 일하면서 헤어진 여자친구를 잊고, 밤에는 그날 번 돈으로 술을 마시는 생활을 반복했다. 동기야 어찌 됐건 이길용 대표의 성실성은 공연업계 관계자들의 눈에도 띄었다. 당시 케니 지와 본 조비 등의 내한공연을 기획하던 회사인 예스컴의 윤창주 대표는 “도대체 누가 우리 공연 포스터를 이렇게 열심히 붙이느냐”며 이길용 대표를 수소문했다. 이길용 대표는 그 길로 예스컴에 입사하게 된다.

해외 유명 뮤지션들의 내한공연을 기획하는 일을 주로 하던 예스컴은 새로운 사업을 구상한다. 당시 국내엔 전무하던 ‘록페스티벌’을 기획한 것이다. 일본의 후지 록페스티벌과 영국의 글래스톤베리 록페스티벌을 보면서 ‘음악 종합선물세트’를 한국에서도 열어보는 것이 그들의 로망이었다.

“해외 페스티벌의 분위기를 갖고 싶었어요. 많은 아티스트와 콘텐츠, 그리고 그것을 즐길 줄 아는 관객이 한곳에 모이는 거잖아요. 아침부터 밤까지 다들 미친 듯이 노는 그런 문화가 좋아 보였어요.”

그렇게 처음 시도한 것이 ‘전설의’ 1999년 인천 트라이포트 록페스티벌이다. 트라이포트 페스티벌은 국내 최초로 열린 대규모 록페스티벌이었지만, 악천후로 공연 이틀째에 중단됐다. 회사는 망했고 직원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하지만 이길용 대표의 록페스티벌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고, 7년 뒤인 2006년 다시 인천 펜타포트 록페스티벌을 열었다. 이후 매년 여름이면 어김없이 록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다. 그렇게 공연업계에서 기획자로 몇 년 동안 살아오던 이길용 대표는 다른 일을 벌이고 싶어졌다.

“이제 공연이 재미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음반제작 일도 하고 그랬죠. 어느 날 같이 일하던 형들과 술 한잔하다 농담처럼 나온 이야기가 LP공장 설립이었어요.”

2011년 10월, 벨기에에서 기계를 들여오긴 했지만 별 계획은 없었다. 같이 기계를 들여온 이길용 대표와 두 형은 고민을 시작했다. 이것으로 뭘 어떡하지?

“그 형들은 월급의 절반을 LP에 쏟아붓는 마니아 중 마니아였어요. 마니아가 사업을 하면 망한다고 해서 제가 맡겠다고 했죠. 나만의 콘텐츠를 갖는 것이 일생의 목표인데, LP 공장은 유형의 콘텐츠잖아요? 그래서 올인하게 됐죠.”

아끼던 외제차들과 집 전세 보증금을 빼서 공장운영을 시작했다. LP 제작에 대한 지식과 정보가 전무했기에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 식으로 연구했다. 기계부품부터 LP의 재료인 PVC까지 하나하나 새로 배우고 실험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2012년 4월 11일에야 비로소 첫 작품을 찍어낼 수 있었다. 이후 패티김・림지훈・얄개들・조동익의 음반을 LP로 제작해왔다.

“아시아에는 LP공장이 저희 빼고 일본에 딱 한 군데밖에 없어요. 일본에서 처리하지 못하는 것은 미국에서 찍어왔죠. 이제 그런 걸 한국에서 찍을 수 있기 때문에 LP팩토리가 경쟁력이 있다고 봐요. 퀄리티도 다른 곳에 비해 떨어지지 않아요.”

이길용 대표가 바라는 것은 LP가 다시 대중화되는 것이다. 그는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에서 아날로그 사운드를 다시 찾아 들을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고 싶다며, LP를 소유한다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게 무모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면 서점에 가요. 요즘은 디지털로도 책을 얼마든지 볼 수 있지만 서점에는 여전히 사람들로 가득해요. 출판시장도 많이 죽었다지만 사람들은 책장에 책이 꽂혀 있기를 바라잖아요. LP도 그런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CD나 MP3로는 느낄 수 없는 빅 사이즈의 매력도 있고요.”

최근 대형 아이돌 기획사에서도 LP 마케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팬들을 대상으로 LP를 화보집과 같이 발매하는 아이디어가 오가는 것이다. 해외 뮤지션들은 이미 이런 패키지 아이템을 판매하고 있다. 그는 LP를 구시대 유물이 아니라 새로운 마케팅으로 보고 있다. LP팩토리의 미래를 묻자 그는 즐거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막 시작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욕심 부리지 않고 500장 정도 한정판 위주로 찍으려고 합니다. 일본과 대만에서도 주문받아 제작할 예정이고요. 수익이 나면 제 사비로 재능 있는 음악가들의 LP를 찍어주고 싶어요. 뭐 돈이 얼마나 들겠어요? 제 공장인데.(웃음)”


LP가 중장년층의 전유물이라고요?

지금 LP판은 2030층에서 부활 중!

LP 제작공장인 ‘LP팩토리’의 등장과 더불어 지난해와 올해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 LP 및 음반 판매행사인 ‘레코드페어’가 성공리에 개최되었다. 특히 LP에 대한 관심이 돋보였는데, 주목할 만한 점은 20~30대 젊은 층이 행사장을 가득 메웠다는 것이다. 이렇듯 LP가 추억의 아이템이 아니라 새로운 구매 대상이 되고 있다. 근래에는 LP를 다루는 신생 레코드숍이 여럿 생겨나고 있다. 그중에서도 뚜렷한 개성을 가진 두 레코드숍을 인터뷰해 LP의 부활을 조망해보았다.
rm360

디제이 기반, 독보적인 음반 다수 보유
박민준(dj soulscape)
서울 서초구 방배동 985-11 1층, http://rm360.kr

다른 레코드숍과의 차별점은?
디제이들이 기반이 되어 시작한 레코드숍이기 때문에 펑크·재즈·힙합과 같은 음악을 주로 다루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장르의 음악을 다 취급한다.

왜 LP를 다루는 레코드숍인가?
음반을 파는 곳이 없기 때문에 더더욱 시작하게 됐다.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 플레이하는 음악들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이 많다. 우리가 선택한 음악을 판다는 것이 의미 있다.

현재 가장 이슈거나 반응이 좋은, 혹은 rm360에서 ‘밀고 있는’ 음반은?
드러머이자 비트메이커인 ‘카림 리긴스’의 첫 앨범이다. 재즈 드러머이자 폴 매카트니의 신작에도 참여한 천재 드러머로, 그가 만든 힙합 비트들로 구성된 음반이다. 우리 숍에만 있다.

가장 반응이 좋았던 음반이나 자부심을 가진 음반은?
j dilla(제이 딜라)의 레코드는 많이 찾는다. 우리가 제작한 3인조 재즈 펑크 밴드인 second session(세컨세션)의 앨범 또한 자부심을 갖고 판매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재즈펑크 트리오다.

취급하는 레코드의 가격대는?
신보는 대부분 2만~3만원대이며, 2000~3000원부터 10만원을 넘나드는 고가 음반도 있다.

고객 연령대와 특징은?
20~30대가 대부분이다. 우연한 계기로 레코드를 사 모으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오히려 젊은 친구들이 처음 레코드를 접하고 모으기 시작하는 경우도 많다.

기억에 남는 고객은?
최근 축구 한일전에서 승리한 후 하루 동안 일본 국적인 분들께 50% 할인행사를 한 적이 있는데, 단골 일본 손님이 왔었다. 손사래를 치며 50% 할인을 사양했는데 그래도 할인해주었다.

LP와 관련된 ‘문화’에 대한 생각은?
특별히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다기보다는 ‘레코드숍으로서’ ‘동네 가게로서’ 꾸준히 재밌게 뭔가를 만들어보자는 자세로 시작했다. 현재는 다양한 문화와 현상을 접할 수 있는 ‘작은 움직임’이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에 우리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을 판매함으로써 LP 문화를 공유하고 싶다.

독자에게 한마디.
레코드 스토어라고 해서 굉장히 마니악한 곳은 아니다. 다양한 음악, 그리고 새로운 음악도 있으니 부담 갖지 말고 들러줬으면 좋겠다.


봄비노레코드

레게 전문 온라인 레코드점
정희석(dj Von Bueno)
http://bombinorecords.cafe24.com/

다른 레코드숍과의 차별점은?
레게는 물론, 덥·칼립소·록스테디·스카 등 레게는 아니지만 레게의 DNA가 느껴지는 음악을 소개하는 데 흥미를 갖고 있는 온라인 레코드숍이다. ‘밥 말리’만 있던 우리나라에 자메이카와 영국을 통해 세계로 퍼져나간 사운드 시스템 문화에 기반한 다양한 음악을 소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재고를 남기지 않기 위해 ‘팔리지 않으면 내가 가져도 좋은 음반’을 선택한다.

왜 ‘지금’ 같은 시기에 LP 전문 레코드숍을 시작했나?
소장하고 있는 음반을 처분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음악은 상당수가 CD나 음원파일로는 유통되지 않기 때문에 음반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어딘가에는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젊은 사람들에게 바이닐 레코드(축음기 음반)가 멋진 아이템이라는 인식이 생겨나면서 관심 연령대가 넓어졌다. 적절한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현재 가장 이슈거나 반응이 좋은, 혹은 봄비노레코드에서 ‘밀고 있는’ 음반은?
Major Lazer의 7인치 레코드들이다. 케이팝 스타와 작업하거나 내한공연도 수차례 하며 많이 알려진 미국의 프로듀서 디플로의 댄스홀 프로젝트인데, 언뜻 레게가 아닌 것 같지만 레게를 기본 요소의 하나로 삼고 있어 봄비노레코드가 말하는 ‘레게가 아닌데 어딘지 레게인 음악’을 잘 설명할 수 있는 음반이다.

가장 반응이 좋았던 음반이나 자부심을 가진 음반은?
3 Titans의 〈College〉 7인치 레코드. 레게 음반은 아니지만 당시만 해도 중고가 아닌 신품 펑크, 소울 7인치 레코드를 취급하는 곳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반응이 좋았다.

취급하는 레코드의 가격대는?
7인치 싱글 레코드 기준 최저가는 4000원 정도, 최고는 1만3000원 정도다. 그 이상 가격대의 앨범이나 12인치 레코드도 취급하지만 소수다.

고객 연령대와 특징은?
취급하는 음반의 장르적 한계 때문인지 20대가 주 고객이다. 이들이 수집가여서 바이닐 레코드를 구입한다기보다는 음원시대에 더 이상 소장의 만족감을 주지 못하는 CD의 대체재로 선택하는 사람이거나 뮤지션 혹은 DJ인 경우가 많다.

LP와 관련된 ‘문화’에 대한 생각은?
최근 LP 부흥의 기미는 무척 환영할 만하다. 특히 고무적인 것은 이전의 중장년층 애호가들과는 다른 환경에서 음악을 즐기며 다른 취향을 가진 새로운 LP 팬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단지 ‘추억팔이’가 아니라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고 경험할 기회가 많아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전과는 다른 음악적 감식안을 가진 새로운 팬들에게 이에 부응하는 음악을 소개하고, 같이 즐길 수 있는 통로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봄비노레코드와 다양한 장르의 레코드를 즐기는 ‘베이스먼트(BASSment)’라는 파티가 그런 통로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독자에게 한마디.
음악은 다 소중하지만 바이닐 레코드를 통한 음악은 음악 이상의 즐거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턴테이블이 없으면 어떤가. 그 음악가의 팬으로서 소장하는 것만으로도 멋쟁이가 된 기분이 든다면 그것으로도 좋지 않을까.

사진 : 김선아
  • 2012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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