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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행복해집니다

15년 만에 《광수생각》으로 돌아온 만화가 박광수

‘힐링’ 열풍이 거세다. 경쟁에 치이고 속도전에 지치고 사랑에 아파하는 이들에게 ‘괜찮아. 너만 그런 것 아니야’ 하며 다독이는 힐링 코드는 서점가는 물론 방송·음식·여행 등 우리의 삶 곳곳을 파고들고 있다. 15년 전 조선일보에 연재한 만화 《광수생각》은 당시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힐링 역할을 톡톡히 했다. 소위 ‘잘나가는’ 전문가의 교조적이고 착한 어투 대신 별반 ‘내세울 것 없는’ 주인공 ‘신뽀리’가 전하는 짤막한 일상의 깨달음은 그 어떤 장문보다 위력이 셌다. 그가 추억하는 사랑, 그가 꿈꾸는 우정, 그가 표현하는 어머니, 아버지에 대한 마음은 다 ‘내 얘기’였다.
박광수가 《광수생각》으로 돌아왔다. 그간 박광수는 ‘외도’를 많이 했다. 성(性)을 소재로 한 19금(禁) 만화 《나쁜 광수생각》을 비롯해 여행 에세이 《앗싸라비아》 등을 썼고, 연기자로 변신해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 〈아들 찾아 삼만리〉 등에 출연했다. 영화 제작에도 손을 댔고, 시나리오도 썼다. 캐릭터 사업에 도전했다가 폭삭 망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초심으로 돌아가 15년 전 연재했던 만화와 동명의 단행본 《광수생각》을 냈다. 한 무가지에 연재했던 만화를 기반으로 이에 어울리는 에세이를 한편 한편 써서 엮은 것이다. 박광수를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15년 만에 《광수생각》을 낸 소감은?
“고향을 찾아온 기분이랄까? 사진집・에세이 등 다양한 책을 내봤는데 주위에서 ‘야, 너는 왜 네가 잘하는 걸 안 하고 왜 다른 걸 하느냐’고 하더라. 이병률씨의 《끌림》 같은 걸 보면서 ‘나 이것보다 더 잘 만들 수 있어’ 했고, 양영순씨의 《누들누드》 보면서 ‘나 야한 얘기 고급스럽게 잘할 수 있어’ 하면서 따라 해봤다. 결과적으로 아니더라.”

한 작가가 15년 동안 이렇게 다양한 스타일의 책을 낸 경우는 드물다.
“다양한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함량이 문제다. 결과적으로 그 책들은 함량 미달이었다. 세 번째 사진집을 낸 후 두 번째 사진집을 보니 부끄럽더라. 너무 졸속으로 만들었다. 난 미술을 전공했기 때문에(단국대 시각디자인과) 석고 데생을 많이 했는데, 사는 게 석고 데생 같다고 생각했다. 자리에 앉아서 석고 데생 본을 뜨고 있으면 어디가 잘못된 건지 모른다. 먼 거리에서 봐야 비로소 보인다. 책도 마찬가지다. 책이 출간된 후 제삼자의 시선으로 보니 후회가 많이 되더라.”

《광수생각》을 보고 첫사랑을 다시 만났다는 사람도 있었고, 부모님께 사랑한다고 뒤늦은 고백을 했다는 사연도 보았다. 작정하고 치유의 메시지를 건넨 건가?
“맞다. 본의 아니었지만 어렸을 땐 그랬다. 만화를 하고 허명을 얻으면서 무형의 권력이 생겼고, 욕심도 자랐다. 내가 사람을 바꿀 수 있고,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아닌가?
“10% 정도는 여전히 그렇다. 내 과오를 되풀이 하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다. 공부 안 하고, 말썽 피우고, 부모님한테 표현 못 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건 고찰해봤으면 좋겠어’ 하는 정도다. 난 누군가를 가르칠 만한 인품이 아니다.”

이번 《광수생각》에는 15년간이라는 시간의 깊이가 묻어나더라. 가수 이문세, 탤런트 이종원 등 주변 사람들의 일화도 등장하고, 이혼 고백을 하면서 결혼에 대한 생각도 진지하게 피력하고. ‘돌아온 광수’를 환영하는 사람이 많나?
“예전 글이 더 좋다는 사람이 많다. 이유를 분석해봤다. 이제까지 책을 13~14권 냈다. 처음 책을 낼 때에는 맞춤법과 띄어쓰기도 잘 몰랐다. 글을 잘 쓸 줄 모르니까 언어들이 거칠었다. 세련되지 않았고, 가감 없고, 솔직했다. 지금은 많이 다듬는다. 여러 번 정독하고 고친다. 솔직하게 쓰려 해도 솔직하게 쓰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15년의 세월은 박광수를 어떤 사람으로 변화시켰나?
“글쎄, 15년 전에는 훨씬 더 자애로웠다. 모든 게 풍성했으니까. 물질도, 사람도 풍요로웠고, 엄마도 아프지 않았다(박광수의 엄마는 치매다). 주변 사람들이 실수를 해도 ‘그럴 수 있지’ 하고 넘겼다.”

대개 사람은 나이 들면서 둥글어지지 않나?
“난 아닌 것 같다. 지나치게 솔직해서 안 해도 되는 말을 많이 한다. 내 성격에 모난 부분이 있는 것도 안다. 고치고 싶은데 잘 안 된다. 사람은 절대 안 바뀌는 것 같다. 딱히 만날 이유가 없는 사람이 계속 연락하면 일부러 전화해서 전화하지 말라고 한다. ‘우리는 우정도 없고,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도 아닌데 왜 만나는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상대방은 굉장히 당황한다. 하지만 이게 내 방식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갑자기 넘쳐난 사람들을 감당할 수 없겠더라. 정말 소중한 사람만 보듬으면서 살면 내 삶이 훨씬 더 따뜻해질 것 같다.”

만화 《광수, 광수씨, 광수놈》 제목이 박광수 작가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듯하다.
“맞다. 내가 욕먹는 지점은 늘 광수놈이다. 나에게는 광수도 있고, 광수씨 같은 면도 있다. 책에도 그런 이야기를 썼다. 나라는 사람은 주사위 같아서 육면체를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은 4만 보고 나를 안다고 하고, 4에 대해서만 말하고 다닌다. 곤욕스럽다. 나에게는 1도, 2도, 6도 있다. 내 인생에 아주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면 1부터 6까지 다 보여줄 이유가 없지 않나.”

캐릭터 사업을 하다가 50억원 이상을 날렸다. 사업 실패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논현동에 사옥까지 만들면서 크게 벌이다 1년 반 만에 다 말아먹었다. 전문경영인을 따로 뒀으니 그땐 경영인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 내 잘못이다. 내 이름을 건 회사였으니까. 디자인만 간여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업의 패착이었다. 전반적인 것을 보는 눈이 없었다.”

《광수생각》에서 매일매일 새로운 구상을 하는 비법에 대해 “자꾸 하다보면 됩니다. 내 일이 소를 키우는 일보다, 논에 물을 대고 벼농사를 짓는 것보다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했다. 통찰력의 소스는 뭔가?
“책을 많이 읽었다. 사형제 중 막내다. 유복한 편이라 방을 각각 썼고, 용돈도 많이 받았다. 형들은 용돈을 받으면 서점으로 달려가 책을 샀다. 누구 책꽂이에 책이 더 많이 꽂혀 있는지 내기하듯이 말이다. 나는 그 돈으로 먹을 것을 사먹었다. 다 먹고나면 할 일이 없지 않나. 형들 방을 기웃거리면서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게 자양분이 된 것 같다. 지금도 서점에 가서 맘에 드는 책이 있으면 닥치는 대로 산다.”

《광수생각》의 큰 주제는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건가’더라. 이에 대한 결론은 내렸나?
“맞다. 그 고민만 한다. 주변에 소위 개차반인 형이 있다. 그 형과 술을 마시며 그런 이야기를 한다. 형이랑 나랑 지옥에 가면 지옥 입구에서 크게 한 번 웃자고. 결론적으로 잘못 살고 있다. 이혼해서 아이들한테 상처를 준 것도 그렇고. 어렸을 때 입은 상처는 보듬어줄 수 없으니까.”

한 인터뷰에서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했는데, 어떤 차원인가?
“많은 걸 이루고 싶었고, 하나도 못 이루었지만, 돌이켜보면 ‘이만큼 온 것도 어디야. 이 정도에 만족하면서 살자’ 즈음인 것 같다. 가장 행복한 시기를 꼽으라면 고등학교 시절과 최근이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첫사랑이 있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건가?
“당연히 행복하게 사는 거다. 사람들한테 ‘왜 사세요? 어떻게 살고 싶으세요?’ 물어보면 대부분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대답한다. 그러면 다시 묻는다. ‘어떨 때 행복하세요?’ 하고. 대부분 대답을 못 하더라.”

그럼 박광수씨는 언제 행복한가?
“야구할 때, 만화책 보면서 라면 먹을 때, 엄마를 꼭 안아줄 때…. 행복하기 위해서는 어떨 때 행복한지 고민을 많이 해야 한다. 로또복권에 당첨되길 원하는 사람은 로또복권을 사야 하지 않나. 내가 행복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행복할 수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준비 중인 책이 많다. 야구에 대한 책은 다 썼고, 행복론에 대한 책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코스타리카》(가제)를 쓰고 있다. 끝나면 소설을 쓸 것이다. 이미 써놓은 시나리오가 있는데 ‘칸감인데, 흥행은 안 되겠어’ 하는 반응이더라. ‘소설로 써서 반응이 괜찮으면 영화제작 의뢰가 들어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다. 늙은 창녀 이야기로, 구원에 대한 시나리오다.”

《광수생각》을 관통하는 주제는 ‘행복’과 ‘사랑’이다. 책에서는 여전히 불멸의 사랑을 믿더라. 지금 박광수가 생각하는 사랑이란 뭔가?
“사랑, 어려운 부분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통통해서 제대로 된 사랑을 하기 힘들었다. 사랑에 대해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사랑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본 사람이다. 못난이들이 그런 고민을 많이 한다. 잘난 사람은 연애하기 바빠서 고민할 시간이 없다. 테이의 〈사랑은 하나다〉 가사를 고등학교 때 썼다. 어린이대공원 정문 시계탑에서 여섯 시간 동안 누군가를 기다리다가 나온 가사다.”

테이의 〈사랑은 하나다〉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시간아 먼저 떠나라 / 조금 난 늦을 것 같다 / 이곳에 더 멈춰서 난 기다릴 테다 / 목숨이 하나듯 사는 동안 / 내겐 그 사람은 사랑은 하나다.”

박광수는 아직도 첫사랑을 못 잊는다고 했다. 그는 이번 책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백하는 말을 숨겨두었다고 한다.

사진 : 김선아
  • 2012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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