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성 최초 내셔널 지오그래픽 다이버 자격증 취득한 와이진

스타일리스트에서 수중사진가로

최근 <내셔널 지오그래픽> 아시아판 7월호에는 ‘제주도 산호를 보호해야 하는 이유’를 주제로 제주 바닷속 사진이 실렸다. 국내 수중사진가 와이진(본명 김윤진)의 작품으로, 훼손된 바다 사진을 통해 ‘자연보호’라는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달했다는 평을 얻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내셔널 지오그래픽 다이버 자격증을 가진 수중사진가’ 와이진은 유명 스타일리스트 출신이라는 독특한 이력으로도 눈길을 끈다.
와이진의 본명은 김윤진이다. 뉴욕에서 사진전을 할 때 미국에 진출한 배우 김윤진과 혼동하는 사람이 많아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윤’의 영문 이니셜인 ‘Y(와이)’에 ‘진(Zin)’을 붙여 만든 예명이다. 작은 체구에 동안이기까지 한 와이진은 나이(33세)보다 훨씬 어려 보였다. 그 가녀린 모습에서 커다란 산소탱크 두 개를 메고, 수중카메라까지 든 상태로 수십미터 바닷속을 누비는 수중사진가를 상상하는 건 더욱 어렵다. 게다가 보통사람과 달리 폐가 작고 심장이 가운데 있어 심장박동과 호흡이 빠르다. 물을 무서워하고, 수영도 잘하지 못한다. 이런 악조건을 딛고 수중사진을 찍게 된 것은 ‘최초’라는 단어가 그의 도전정신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수중사진을 하려면 다이빙을 할 줄 알아야 하니까 우선 다이버 교육기관을 찾아갔어요. 제가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 코치님이 ‘내친김에 내셔널 지오그래픽 다이버 자격증을 따라’는 거예요. ‘그러면 네가 우리나라 여성으로는 처음’이라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6개월 동안 힘들게 훈련해 자격증을 손에 넣었지요. 이후 1년간은 수중에서 장비 다루는 방법을 연습했고요. 그렇게 1년 반을 물속에서 보냈어요.”


목표한 대로, 그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내셔널 지오그래픽 다이버 자격증을 가진 수중사진가’가 되었다. 그동안 그의 작품은 사진가들에게는 ‘꿈의 잡지’로 불리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에도 몇 차례 실렸다. 이후 촬영기획이 있을 때면 아시아 담당자로부터 연락이 온다. 사실 내셔널 지오그래픽 다이버 자격증과 세계적으로 유명한 잡지〈내셔널 지오그래픽〉은 이름만 같을 뿐, 서로 관계가 없다. 따라서 이 자격증이 있다고 해서 잡지에 사진을 게재하는 데 혜택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까다로운 과정을 통과해 얻은 다이버 자격인 만큼 수중사진을 보다 안전하게, 잘 찍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증거로 인정받는다.

그동안 ‘최초’라는 수식어가 무색하지 않게 그는 활발한 활동으로 우리나라 수중사진의 지평을 넓혀왔다. 국내에 수중사진 화보를 처음 선보인 것도 그였다. 2010년 그가 수중에서 작업해 만든 포스터는 수중사진가 와이진의 이름을 대중에게 알린 계기였다. 작은 수족관이 아닌 진짜 물속에서, 수중모델을 기용해 조명은 물론, 헤어·메이크업까지 전 스태프가 수중에서 함께 작업한 것도 새로운 시도로 화제가 되었다.


그는 지금도 팀 단위로 움직인다. 혼자 작업하는 것보다 질적으로 훨씬 우수한 사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규모가 크다보니 일반 촬영에 비해 경비는 세 배 이상 들어간다. 그는 “드라마, 영화, 앨범 재킷, 잡지 화보 등 상업사진에서 버는 돈을 모두 수중사진에 쓴다”며 웃었다.

“더 좋은 사진을 만들고 싶어서 자꾸 욕심을 내게 돼요. 수중촬영은 앵글의 제한이 없이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어서 좋아요. 옷의 흩날림을 표현할 때도 무중력 상태에서 저절로 움직이니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필요가 없고요. 그런 것들이 볼 때마다 신기하고 재미있어요.”



비·보아·이효리·송윤아·조인성·최강희 스타일리스트 출신

수중사진가가 되기 전, 그는 스타일리스트로 이름을 날렸다. 3년 남짓 일하며 비・보아・이효리・송윤아・조인성・최강희 등 내로라하는 스타들을 담당했다. 그를 스타일리스트의 길로 인도한 사람은 지금은 고인이 된 디자이너 앙드레 김이었다. 동덕여대 의상디자인과 1학년 때, 그는 앙드레 김의 패션쇼 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무대 뒤에서 그는 시키는 일만 하지 않았다. 간단한 바느질 도구들을 챙겨와 디자이너들이 미처 신경 쓰지 못하는 간단한 수선을 하고, 구두가 헐거워 런웨이에서 벗겨질 것 같은 모델에게는 구두 밑에 양면테이프를 붙여주었다. 쇼가 끝난 후 앙드레 김이 그를 불렀다. “다음 주부터 우리 매장으로 나오라”고.

“교수님께 말씀드렸더니 ‘흔한 기회가 아니니 당장 가라’고 하셨어요. 그때부터 앙드레 김 패션쇼 현장을 쫓아다니며 일했죠. 당시 앙드레 김 선생님이 쇼를 많이 하실 때라 정말 바빴어요. 당대 최고의 헤어·메이크업 전문가들이 총출동해서 스타일링하는 것을 옆에서 보면서 많이 배웠죠. 그러던 어느 날 대학 동기인 (박)경림이가 ‘시트콤에 출연하는데 스타일리스트가 없으니 도와달라’는 거예요. 함께 대본 읽으며 캐릭터를 잡고, 거기에 맞게 헤어스타일, 의상 등을 만들어나갔어요. 그게 반응이 좋아서 방송가에 입소문이 났고요. 학생이면서 앙드레 김 옷을 협찬받을 수 있는 유일한 스타일리스트로도 유명했어요.(웃음)”

일이 많아지자 어느새 10명 가까운 후배들을 거느린 ‘실장’이 되었다. 그때 그의 나이 겨우 스물한 살이었다. 20대 초반에 거둔 성공, 하지만 그는 스스로 정상에서 내려왔다. 온갖 시기와 질투가 난무하는 험난한 비즈니스 세계는 어린 나이의 그가 감당하기에는 버거웠다.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받는 상처를 견디기가 어려웠다.


6개월간의 칩거 끝에 그가 다시 찾은 일은 ‘사진’이었다. 앙드레 김이 그를 스타일리스트로 키웠다면, 그에게 “사진을 하라”고 권한 사람은 사진가 김중만이었다. “아프리카 하면 김중만을 떠올리듯, 너만의 사진을 하라”는 스승의 조언을 가슴에 새긴 그는 수중사진에서 그 답을 찾았다. 이제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 그는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수심 100m 아래로 내려가 그 안에 형성된 수중동굴을 탐사할 계획이다. 그 미지의 세계를 만날 생각에 벌써부터 설렌다. 언젠가 서울에 제대로 된 수중사진 스튜디오를 만드는 게 꿈이라는 와이진. 꿈이 이루어진다면, 그 안에서 후배들을 키우며 세계적인 수중사진가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발품 팔아 배운 지식을 기꺼이 나눌 생각이다. 그래서 이 땅에 더 많은 수중사진가들이 생겨나길 바란다. 그것이 앞서 걸어가는 사람의 의무라고, 그는 믿기 때문이다.

사진 : 김선아
  • 2012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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