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칼럼니스트 이용재가 찾은 맛] 한식 레스토랑 ‘이스트빌리지’ 권오중 셰프

일본, 미국에서 한식 세계화 실험한 경험 바탕으로 ‘나만의 메뉴’ 만듭니다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저널리스트 출신의 말콤 글래드웰 교수가 자기계발서 《아웃라이어(Outliers)》에서 소개한 개념이다. 무슨 일이든 1만 시간(하루 3시간씩이라면 약 10년간)을 투자하면 달인의 경지에 접어들 수 있다는 의미로, 끊임없는 노력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목표를 정하고 이를 성취하기 위해 개척자 정신과 행동으로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모차르트는 1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려서야 세상의 인정을 받았고, 비틀스도 약 1200회에 이르는 콘서트를 경험한 후에야 성공의 발판을 마련했다.

인터뷰 당일도 ‘이스트빌리지’ 권오중 셰프의 일과는 새벽 6시에 시작됐다. 후배 요리사 한 명과 수산시장에서 장을 본 뒤 곧장 주방으로 향해 야채며 생선 손질을 비롯해 요리의 기본인 칼질을 가르쳤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가 꺼낸 이야기가 바로 ‘1만 시간의 법칙’이었다.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요리에서도 기본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1만 시간의 힘을 믿습니다. 쉽지 않지만 후배들을 직접 가르쳐가며 일합니다. 셰프라면 후진 양성에도 신경 써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조리학교 출신이라도 제가 원하는 만큼의 기본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라, 내 사람으로 함께 일하려면 가르치는 수밖에 없습니다. 손발이 잘 맞을 때쯤 떠나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숙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야흐로 젊은 셰프의 시대라고들 한다. 외국의 요리학교를 졸업한 30대 오너 셰프들이 매체를 통해 집중적으로 소개되는 현실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음식에서 시간과 함께 무르익은 노력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운 경우를 종종 본다. 대학 진학 위주의 교육이 아직도 대세인 우리나라의 현실을 따져볼 때, 장인의 경지에 이른 젊은 셰프들이 많은 외국처럼 아주 어린 나이부터 1만 시간을 쌓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권오중 셰프 또한 이제 불과 서른 셋, 1만이라는 숫자를 입에 올리기에 부족한 나이가 아니냐고 물어볼 만도 하다. 그러나 요리에 얽힌 그의 개인사는 이미 10년을 훌쩍 넘긴 지 오래다.

“CF 감독이신 아버지 덕분에 어릴 때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취미 삼아 요리를 하면서 일찌감치 진로를 그쪽으로 정하고, 대학에서 호텔조리를 전공했습니다. 대학생활이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한식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어릴 때부터 먹고 자란 음식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스트빌리지에서 내놓는 그의 음식에는, 세계 주요 미식 도시인 도쿄와 뉴욕을 거친 경험이 담겨 있다. 한식 셰프가 되겠다는 마음을 먹었지만, 졸업 직후 호텔의 한식당들이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했다. 본의 아니게 양식당과 중식당을 거치며 실전의 기본기를 다진 그는, 도쿄에 한식당을 여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한식 셰프로서의 수련 기회를 얻는다.

“일본에서 통할 수 있는 한식 메뉴를 개발하면서 넓은 세상을 경험했습니다. 다른 나라의 음식 문화도 배웠고요. 일본을 경험하고 나니 미국에도 가보고 싶어서 영문 이력서 스무 장을 써 들고는 무작정 뉴욕으로 향했습니다.”

이렇게 찾아간 뉴욕에서 그에게 요리세계를 펼칠 기회가 우연히 찾아들었다. 새로 개업하는 일식당에서 곁다리로 들어갈 한식 대표 메뉴 몇 가지를 도와달라고 요청한 것. 이에 그는 일본에서 쌓은 메뉴 개발 경험을 살려 만든 몇 가지 음식으로 주인을 설득해 아예 한식당으로 탈바꿈시킨다.

“지금 이스트빌리지의 바탕을 이루는,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스스로 만든 음식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결정적 기회가 된 것은 물론, 레스토랑의 이름 또한 자유분방함을 추구하겠다는 의미로 맨해튼의 이스트빌리지에서 따왔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만든 음식이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소유주의 급작스러운 건강 악화로 레스토랑이 매각되면서 그는 귀국길에 오른다. 서울에서 그는 레스토랑의 메뉴 개발 및 개장에 참여하는 한편, 이스트빌리지를 위한 정지작업에 들어간다. 그 작업의 첫 번째 단계는 바로 장류를 준비하는 것. 칼질이 기술로서 요리의 기본이라면, 콩을 주재료로 한 장류는 재료로서 한식의 기본이다. 이제 꼭 한 돌을 넘긴 이스트빌리지지만, 그 기본은 이미 3년 전 쌓기 시작했다.

“어머니를 스승으로 모시고 직접 메주를 쑤어 장 담그는 법을 배웠습니다. 콩을 불리고 장작불에 가마솥을 올려 열두 시간 동안 삶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만든 메주를 가지고 장을 담갔습니다. 단백질 함량이 적지만, 야생의 맛이 좋아 부모님의 주말농장이 있는 가평 명지산 산자락에서 나는 콩을 쓰고요. 이렇게 만든 메주로 된장과 간장을 직접 담가 쓰니, 한식 셰프로서 부끄럽지 않습니다.”

한편 셰프로서 반드시 갖춰야 하는 레스토랑 운영의 노하우를 깨우치기 위해 그는 논현동에 고깃집을 연다.

“메뉴 개발을 하면서 대중이 좋아하는 맛을 알고 있었으므로 곧 손님을 많이 모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제 요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 1년 만에 넘기고 이스트빌리지를 열었습니다.”


몇 해 전, 특급 호텔의 한식당이 네 군데만 남았다는 기사에 세간의 이목이 몰린 적이 있다. 기본이 되는 장류나 김치를 포함, 한식 요리에 손이 많이 가는 탓도 있지만 단지 우리 음식이라는 이유로 각자의 기준으로 판단하거나 아예 관심을 품지 않는 까닭도 있다.

“처음 문을 열고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같은 시기에 문을 열어 매체에 소개된 양식당은 예약이 줄을 잇는 반면, 이스트빌리지는 단 한 자리도 못 채우기가 일쑤였지요. 아직도 많은 이문을 남기는 상황은 아니지만, 현상 유지는 합니다.”

어려움은 단지 손님이 찾아온다고만 해서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처음 문을 열었을 때는 냉면이며 빈대떡과 같은, 다른 한식당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을 선보였지만 사람들의 비교가 끊이지 않았다.

“비교 불가능한 메뉴로 승부수를 걸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아버지 덕분에 생각이 자유로운 데다 외국 생활을 하면서 눈에 띄는 대로 먹어본 경험 덕분인지 메뉴 개발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살아남은’ 이스트빌리지의 음식은, 우리의 당면 과제인 한식의 세계화에 모범 사례가 될 자격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무엇보다 싱싱한 제철 재료를 바탕으로 모든 양념이 재료의 맛을 윽박지를 정도로 두드러지지 않는다. 특히 요즘 한식에서 두드러지는 단맛이며 간장의 발효 풍미가 적절한 균형을 이룬다. 참고할 만한 레시피가 없어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는 육포나 어란 등 맛보기를 위한 음식부터 떡갈비, 가평에서 직접 짠 들기름의 그윽한 향이 긴 여운을 남기는 민들레국수 등이 인상적이다.

“처음 문을 열 때 세 가지 목표를 세웠습니다. 첫째, 일단 망하지 않겠다는 것. 둘째는 젊은 사람들이 소개팅이며 기념일을 챙길 수 있는 한식 레스토랑으로 자리 잡겠다는 것. 마지막으로는 후배나 동료 요리사들에게 한식 레스토랑의 성공 사례로 각인되는 것입니다.”

사진 : 김선아
  • 2012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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