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파닥파닥〉 이대희 감독

파닥파닥, 세상을 바꾸는 작은 움직임

회사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횟집이 하나 있었다. 막 직장생활을 시작한 사회 초년생은 횟집을 지날 때마다 어항 속 물고기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꼼짝없이 갇혀 있는 물고기도, 직장생활에 시달리는 자신도 안쓰러웠다. 얼마나 지났을까. 좁은 어항 속을 쉴 새 없이 오가는 물고기가 그의 눈에 띄었다. 코에 멍이 들면서도 끊임없이 유리를 향해 돌진하는 물고기는 고등어였다. 파닥파닥, 은빛 비늘이 반짝였다.
〈파닥파닥〉은 횟집 어항 속 물고기들의 이야기를 그린 애니메이션이다. 직장인이었던 이대희 감독은 출퇴근길에 본 횟집 어항 풍경에 영감을 받아 틈틈이 이야기를 구상했다. 작품의 무대인 횟집 어항은 인간사회의 축소판 같다. 지배자 ‘올드 넙치’를 중심으로 아나고・줄돔・도미・농어・놀래미에 이르기까지 물고기들은 엄격한 위계질서 안에서 생활한다. 어느 날, 바다에 살던 고등어가 어항 속으로 들어오면서 경직된 ‘어항사회’는 조금씩 변해간다. 변화의 시작은 고등어의 파닥거리는 움직임이었다. 보이지 않는 벽을 넘어 바다로 나가려는 고등어의 몸짓은 잿빛 어항에 푸른 희망을 불어넣는다. 올해 7월 개봉한 〈파닥파닥〉은 개봉에 앞서 2012년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 경쟁부문에 진출했으며, 2012년 전주국제영화제 CGV무비콜라주상을 수상했다.

〈파닥파닥〉은 12세 이상만 관람이 가능하다. 애니메이션이 대부분 10세 이하 어린이를 타깃으로 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래서일까. 작품에는 꿈과 환상의 세계 대신 냉엄한 현실이, 가벼운 웃음 대신 묵직한 통찰이 자리 잡고 있다.

“처음부터 수익을 염두에 두고 만든 게 아니라서 그런 것 같아요. 직장생활을 하면서 겪은 제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었죠. 작품 속 고등어처럼 애니메이션에 대한 선입관에 정면으로 부딪쳐보고 싶기도 했고요. 애니메이션 하면 특정 이미지, 특정 주제를 떠올리는 사람들에게 그렇지 않은 애니메이션도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했어요.”

〈파닥파닥〉의 묘미는 생생한 화면이다. 수산시장, 바닷가 앞 횟집의 모습이 마치 사진으로 찍은 듯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비결은 전국 각지에서 얻은 경험과 정보다. “애니메이션을 만들기로 결심한 후 회사를 그만두고 전국을 돌아다녔어요. 인천, 부산, 동해안 지역 등 바닷가 주변을 돌며 사진을 찍었어요. 횟집 사장님들과 인터뷰도 하고요. 현장의 분위기를 체험하고 싶은 마음에 횟집에서 아르바이트도 했죠. 식탁에 오른 생선의 입에 담배를 물리는 장면이나 꼬마가 관상어 수족관에 고등어를 넣는 장면은 그때 직접 경험한 것들이에요.”

운명적 만남도 있었다. 강원도 속초에서 머릿속에 그리던 작품 속 배경과 놀랍도록 흡사한 횟집을 발견한 것이다. “세 가지 조건이 필요했어요. 물고기가 바다로 나갈 수 있을 만큼 횟집이 바다 가까이에 있고, 어항이 4개 있으면서 회를 뜨는 모습이 어항 안에서 보이는 구조여야 했죠. 신기하게도 세 가지 조건을 다 만족하더라고요. 냉큼 사장님께 부탁해 구석구석 사진을 찍었어요.”


전체적으로 어두운 애니메이션의 분위기에 순간순간 활력을 불어넣는 장면이 있다. 침침한 어항 속에 ‘팡’ 하고 불빛이 비친다. 갑작스럽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물고기는 나지막한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서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영상과 노랫소리가 어우러져 관객을 환상 속으로 인도한다.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 느낌이다. 그러나 노래가 끝나는 순간, 꿈에서 깨듯 조명이 걷히고 다시 어둠이 찾아온다. 이런 장면을 삽입한 이유는 현실과의 대비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꿈과 현실 간의 간격이 클수록 관객이 느끼는 감정의 폭도 클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전반적 작품 분위기와 판이한 분위기를 내려고 했죠. 작품에 탁한 색채를 썼다면 뮤지컬 장면은 산뜻한 색채를 쓰고, 어항 속으로 한정된 작품의 좁은 앵글을 벗어나 멀리서 바라보는 앵글을 사용했어요.”

이 감독의 첫인상은 ‘얌전한 모범생’ 같았다. 수수한 셔츠 차림으로 카페에 들어선 그는 낮은 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 말을 하다 중간에 “할 말을 까먹었네” 하며 멋쩍게 웃기도 했다. 이런 그에게 뜻밖의 이력이 있다. 대학시절, 록그룹 ‘럭스’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며 록음악에 심취했던 것이다. “그때는 화려한 색깔로 염색도 하고 머리도 치렁치렁 길렀었다”며 얼굴을 붉히던 그는 자신의 젊은 시절을 “고민이 많았다”고 회상한다. “애니메이션학과에 진학하긴 했지만, 꼭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무엇 하나를 정해놓고 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렸죠.”


제대 후에는 9분짜리 단편 애니메이션 〈페이퍼 보이〉를 만들었다. 이 작품은 프랑스・이탈리아 등 세계 각국의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주목받았다. 그러나 정작 그는 자신의 첫 작품이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 “뭔가 있어 보이지만, 난해하다는 반응이 많았어요. 인물의 움직임을 표현하고 싶다는 욕심이 앞선 나머지, 제 생각을 풀어서 전달하는 방법을 몰랐던 거죠. 〈파닥파닥〉은 그런 점에서 성장한 것 같아요. 제가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을 관객들이 잘 알아봐주셨거든요. 대표적 예로 사악한 지도자인 ‘올드 넙치’의 감정 변화를 동공의 크기 변화로 나타냈는데, 그걸 알아보시더라고요.”

직장생활을 하면서까지 줄곧 진로고민에 시달렸다는 그는 〈파닥파닥〉을 만들면서 애니메이션 감독의 길을 걷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그에게 애니메이션 제작과정은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는 일이다. 가장 행복할 때를 묻는 질문에 그는 망설임 없이 “오르막을 오를 때요”라고 대답한다. 정상에 올라섰을 때를 상상하는 설렘 때문이 아니다. 힘겹게 내딛는 걸음에서 살아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파닥파닥〉은 기획하고 5년 후에야 세상에 나왔다. 제작기간이 길어지고, 지원이 끊기자 제작비를 사비로 충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진정 힘들다고 느낀 시기는 〈파닥파닥〉 제작이 끝난 올해 4월이었다. “그때는 허공에 두 발이 붕 뜬 느낌이었다”는 그는 최근 차기작을 준비하며 다시 오르막을 향해 발을 디뎠다. 차기작은 로봇 이야기다.

“다음 작품은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작품이 될 거예요. 네 살 된 제 딸아이도 아빠가 만든 애니메이션을 볼 수 있겠죠. (웃음) 〈파닥파닥〉이 주제의식이 앞선 영화라면, 다음 작품은 캐릭터에 좀 더 초점을 맞춰 제작할 계획입니다.”

요즘은 어떤 공부를 하느냐는 물음에 그는 말없이 가방에서 책 한 권을 꺼낸다. 로봇 관련 책이다. 로봇공학기초 공부에 푹 빠져 지낸다는 그의 말이 인상적이다.

“작품을 만들면서 매번 다른 세계를 갉아먹는 기분이 참 좋아요.”

‘사각사각’, 또 하나의 세계가 그의 눈 안으로 들어왔다.

사진 : 김선아
  • 2012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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