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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인을 통해 활자 매체의 힘을 말하고 싶습니다

《별을 스치는 바람》 낸 소설가 이정명

이번에는 윤동주다. 《바람의 화원》에서는 김홍도와 신윤복의 그림에 담긴 한국의 예술혼을, 《뿌리 깊은 나무》에서는 한글 창제 과정을 통해 우리나라 문자의 우수성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내 ‘한국형 팩션의 새로운 장을 연 소설가’라는 타이틀을 단 이정명. 그가 이번에는 윤동주의 생애를 소재로 한 소설 《별을 스치는 바람》(1·2)을 통해 우리나라 문학, 더 나아가 활자 매체의 힘을 이야기한다. 다소 교조적으로 보일 법한 메시지는 추리소설의 기법을 통해 흡입력 있고, 속도감 있게 전달된다. 매혹적인 서사의 옷을 입은 윤동주의 일생에 독자들의 호응이 대단하다. 이 책에 매혹된 건 국내 독자만이 아니다. 출간되기 전 영국·프랑스·폴란드 등 5개국에 판권이 팔렸다.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의 소설 판권이 현지에서 출간되기 전 팔린 첫 사례로, 선인세가 국내 작가 중 최고 수준이다.
이정명을 강남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만났다. 작가는 만나기 전 사진 촬영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책 뒤에 꼭꼭 숨어 있던 그가 인터뷰를 수락한 것도 예외적인 일이었다.

“글 쓰는 데에만 집중하고 싶어서 인터뷰는 잘 안 했습니다. 그런데 워낙 과분하게 사랑해주시니까 독자들과 소통하는 것도 하나의 일이겠다 싶더군요. 사진 촬영이요? 사진 찍히는 것에 대한 심리적인 노이로제 같은 게 있어요. 기자 시절 수많은 사람의 사진을 찍기도 하고 연출도 하면서 힘들었나봐요.”

《별을 스치는 바람》은 악질 간수이자 검열관인 스기야마 도잔이 참혹하게 살해당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미지의 살인사건의 유일한 단서는 도잔의 간수복 윗주머니에 있던 시 한 편. 화자이자 일본인 문학청년 와타나베 유이치가 이 사건의 조사를 맡으면서 교도소에 숨겨진 거대한 음모와 반인륜적인 행위가 하나 둘 드러난다. 그 과정에서 창살에 갇힌 시인과 창살 밖에서 그를 지키는 검열관의 운명적인 대결이 숨 가쁘게 펼쳐진다. 대결의 도구는 시어와 문장. 악명 높은 검열관은 단어와 문장의 행간에 숨은 진의를 파헤쳐가며 점점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

이 사건은 윤동주 시인의 마지막 생애 1년을 파고든다. 일본 유학 도중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구형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된 윤동주. 행동 없는 지식인으로서의 부끄러움과 조국 독립의 열망을 서정적인 시어에 녹여내던 그는 1945년 2월 16일, 원인 불명의 사인(死因)으로 29세에 요절했다. 광복 6개월 전이었다. 그의 사인은 훗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자행된 비인도적인 생체실험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 소설은 작가가 ‘활자 매체의 힘을 보여주마’ 하고 작정하고 쓴 소설이다. 활자에 담긴 문장이, 문장에 표현된 의미 하나하나가 얼마나 한 사람의 영혼에 깊이 침투할 수 있는지, 더 나아가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역설한다. 영상 매체의 홍수 속에 활자 매체의 힘을 이야기하는 소설. 그는 “시대에 역행하는 소설로 보일 수 있지만”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요즘 같은 영상물의 홍수 시대에 케케묵은 활자를 가지고 활자의 힘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자체가 무모할 수도 있겠죠. 시와 문학은 현대에 와서 거의 쓸모없는, 어떤 면에서는 무가치한 것으로 폄하되기도 하는데 그것들만이 줄 수 있는 가치가 있어요. 심해 다이빙 같다고 할까요. 인간의 아주 깊은 곳까지 내려가서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힘이 있어요. 궁극적으로 사람을 변화시키고 영혼을 살찌운다고 할까요? 어떤 세상이든 결국 인간을 위한 세상이 되어야 하잖아요. 활자를 바탕으로 한 인문학은 인간 영혼에 대한 탐구이자 인간을 이해하는 창이 되죠.”

그는 이 소설에서 벼리고 갈아낸 단어와 탄탄한 문장으로 활자의 힘을 이야기한다. 적절한 비유로 의미를 강화하고 반복적인 대구로 리듬감을 불어넣는다. 가령 이런 구절.

“어떤 책을 읽은 사람은 그 책을 읽기 전의 사람이 아니다. 문장은 한 인간을 송두리째 변화시키는 불치의 병이다. 단어와 구두점들은 몸 여기저기에 세균과 바이러스처럼 스멀스멀 기어 다닌다. 문장들은 뼈에 새겨지고 세포 속에 스며들고, 자음과 모음은 혈관을 타고 흐른다. 수많은 상징과 비유는 뇌세포를 물들이고 영혼을 재구성한다. 그는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없으며 돌아가서도 안 된다.”

혹은 이런 구절.

“한 권의 책은 누군가의 마음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간다. 낱말과 조사와 구두점이 모인 문장은 누군가에게 읽히는 순간 삶을 시작한다. 책은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고, 헌책방과 도서관으로 긴 여행을 한다. 누군가의 가슴에 떨어져 뿌리를 내리고 거대한 우듬지를 이루는 동안 책장은 찢어지고 표지는 낡고 글자들은 바랜다. 그리고 어느 날 먼지와 어둠 속에서 숨을 거두지만 그 영혼은 우리 가슴 속에 살아남는다. 그러므로 책은 죽지 않는다.”

작가가 이 책에서 동일시하는 대상은 윤동주가 아니다. 그는 “윤동주를 정면으로 다루려 했다면 쓰지 못했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서정 시인(작가는 윤동주를 “서정시로 보이는 시를 쓴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중 한 명인 윤동주의 문장과 언어를 불러내는 일은 작가에게 감당키 어려운 부담이다. 그는 윤동주를 음각 내지 음화 같은 방식으로 부각시켰다. 윤동주는 가만히 있고 주변 사람들의 증언과 행동 양상을 통해 윤동주를 돋보이게 하는 방식. 작가가 집필하면서 감정이입한 대상은 악질 간수 스기야마 도잔이다. 보기만 해도 치를 떨 정도로 무자비한 간수로 알려진 스기야마. 하지만 활자와 문장의 힘에 매료되면서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인물.

“동일시한 인물이 있다면 윤동주보다 스기야마입니다. 문장에 의해 제 자신이 변화해온 과정이 스기야마와 비슷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가 글을 읽기 시작하면서 무언가를 느끼고, 책 한 권에서 큰 감흥을 받아서 조금씩 변화하는 경험을 누구나 해봤을 겁니다. 그 책이 어떤 책인가는 사람마다 다 다르겠죠. 책을 읽으면서 마음과 영혼의 근육이 단단해지는 느낌을 스기야마에 실었습니다.”

그가 우리나라의 문자(《뿌리 깊은 나무》), 그림(《바람의 화원》), 문학(《별을 스치는 바람》)을 다루면서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 ‘우리 것 새롭게 보기’다.

“한글과 풍속화, 윤동주의 시는 오래전부터 존재했고, 질리도록 봐왔지만 보는 관점에 따라 전혀 새롭게 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우리 것을 기존의 방식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짠’ 하고 보여주고 싶은 욕망이라고 할까요. 《뿌리 깊은 나무》를 보고 ‘한글을 다시 보게 됐’고, 《바람의 화원》을 보고 ‘우리 풍속화가 이렇게 아름다운지 몰랐’으며, 《별을 스치는 바람》을 보고 ‘윤동주 시인의 시집을 한 권 사서 읽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제 소설은 성공했다고 생각해요. 문학적인 완성도를 떠나서.”

그의 전작 두 편은 드라마로 제작됐다. 《바람의 화원》은 문근영・박신양 주연의 드라마로, 《뿌리 깊은 나무》는 한석규・신세경 주연의 드라마로 만들어져 큰 사랑을 받았다. 드라마에 빠진 시청자들은 서점으로 달려가 이정명의 원작을 찾아 읽었고, 그의 소설들은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그의 소설을 일컫는 ‘스크린셀러’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별을 스치는 바람》 역시 드라마와 영화 제작사에서 문의가 빗발치는데, 아직 결정된 바는 없다고 한다.

이정명은 ‘작가’라는 호칭을 어색해한다. 그는 30대 중반에 소설가가 됐다. 어렸을 때 그는 소설가를 꿈꾼 적이 없었고, 문단에도 정식으로 등단하지 않았다. 그는 십 수년간 일간지 등에서 기자생활을 했다. 그의 나이 서른 즈음, 소설을 쓰게 된 계기가 생겼다.

“회사 부근 정동교회 예배당을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죠. ‘예수님은 33세에 돌아가셨는데, 2000년대까지 많은 이들에게 영혼의 선물을 주시는구나. 나는 다른 사람에게 줄 만한 인물은 못 되지만 나한테라도 뭔가를 남기고 싶다. 33세가 됐을 때 덜 부끄러운 사람이 되고 싶다’고요. 그래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낮에는 회사에 다니고, 밤에는 소설을 썼다. 아무리 피곤해도 단 한 줄이라도 썼다. 그렇게 해서 33세에 소설 한 편이 완성됐다. 이때 쓴 소설이 비류백제와 고구려, 일본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애틋한 사랑이야기 《천년 후에》다. 소설은 책상 서랍 속에 갇혀 있었다. 작가는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꺼내 보고 고쳐도 보면서 자족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출판사와 연결되면서 소설이 세상에 나오게 됐다. 전업 작가가 된 그는 여전히 ‘직장인 마인드’로 집필한다. “직장인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책상앞에 앉아 구상하고 작업하고 자료 조사하는 게 편하고 효율적”이라고 한다. 소설 쓰기 또한 ‘직장인 마인드’로 한다. 작가는 천형이냐, 축복이냐를 운운하며 작중 인물의 감정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작가가 얼마나 많은가. 소설가 신경숙은 “지금도 창밖을 보면 ‘저 속에 《기차는 7시에 떠나네》의 하진이가 섞여 있을지 몰라, 《바이올렛》의 오산이가 실종됐다가 돌아와 저 거리를 걷고 있을지 몰라’라는 생각을 해요”라고 했다. 그러나 이정명은 소설 속 세계와 일상이 철저하게 분리되는 몇 안 되는 작가다.

“제가 작업하는 방식은 공학적이라고 할까요? 모든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어떻게 하면 작중 인물과 상황에 제대로 다가갈 수 있을까?’에만 집중해요. 작가로서 냉철함을 유지해야 소설의 견고한 구조나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힘이 생기는 것 같거든요.”

심지어 그는 여러 편의 소설을 동시에 작업한다. 《별을 스치는 바람》도 마찬가지다. 3년 전 초고를 완성했는데, 계속 마무리 작업을 하면서 다음 작품인 《악의 추억》을 집필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새로운 작품을 구상했다. 스스로 “번잡스럽고 산만한 면이 있고, 하나에 푹 빠지지 못하는 스타일”이라며 “이 작품에서 저 작품으로 옮겨가는 상황에서 리프레시가 된다”고 말했다.

《별을 스치는 바람》은 작가의 가슴속에 오래전부터 똬리를 틀어왔다. 대학 1학년 때 일본 교토로 여행을 갔다 우연히 윤동주 시인의 까마득한 후배인 도샤시대학 영문과 학생을 만났고, 그와 함께 교정을 걸었다. 그곳에서 본 일본어로 된 윤동주 시인의 〈서시〉 시비는 그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이후 윤동주와 관련된 자료를 하나 둘 모으기 시작했다. 윤동주 생애에 대한 자료에서부터 태평양전쟁, 일제시대 관련 자료를 탐독했다. 소설가가 되기 이전부터 애착의 대상이었던 윤동주. 작가에게 ‘왜 지금 윤동주인가’에 대한 이유는 분명하다.

“윤동주는 펜과 시라는 무기로 시대와 정면으로 맞서며 대적한 인물이에요. 시대적인 상황 때문에 나약한 지식인이라는 인상이 있는데, 그 시대에 그런 (저항)시를 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굉장히 강인한 사람이에요. 윤동주 시인이야말로 이 시대의 멘토가 될 수 있는 분이 아닌가 싶어요. 양극화, 청년실업, 경제위기 등 혼돈스럽고 해답이 없는 시대인데, 일제 강점기는 지금보다 훨씬 더 암담했고 한 줄기 희망조차 없었죠. 그런 시기에 시라는 무기를 가지고 정면 돌파한 윤동주 시인이야말로 시대를 뛰어넘어 혼돈의 삶을 사는 데 하나의 길잡이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진제공 : 은행나무
  • 2012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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