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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도둑들〉에서 말괄량이 도둑 아가씨로 매력 발산한 배우 전지현

“누가 더 예쁘냐, 누가 더 몸매가 좋으냐고들 하시는데, 다른 이도 아니고 전지현인데 누구와 비교를 하겠어요? 아름답고 빼어난 외모를 가진 연예인은 언제든지 있어요. 우리가 알고 있는 전지현은 그것 말고 어떤 특별함이 있죠. 우리가 알고 있는 전지현이 과연 실체와 얼마나 가까울까? 대중은 그걸 알고 싶어 했던 거죠. 그런데 전지현은 지금까지 끊임없이 노력했지만 이 특별한 여배우를 다룰 수 있는 매체도, 감독도, 루트(길)도 부족했어요. 이번 작품은 전지현이 선택한 최동훈(감독), 최동훈이 선택한 전지현이라는 데 큰 의미가 있어요. 김혜수와 전지현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각각의 세대를 대표하는 두 여배우를 한작품에서 볼 수 있다는 게 뜻 깊고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아마도 앞으로 김혜수와 전지현을 투 쇼트(2인 장면)로 한프레임에서 볼 수 있는 작품은 나오기 어려울 걸요?”

개봉 첫날부터 한국 영화의 각종 흥행 기록을 갈아치우며 기세등등한 관객몰이를 하고 있는 〈도둑들〉에서 전지현(31)과 함께 출연한 김혜수(42)의 말이다. 김혜수는 열한 살 아래의 후배를 가리켜 단 한마디로 “말로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특별함을 갖고 있는 스타”라고 했다. 이어 “그렇게 특별한 스타는 나오기도 힘들뿐더러 그의 세계가 더욱 확장되고 더 큰 별로 자리매김해나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어느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다”며 “그 현장과 과정을 목격하고 같이 있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라고 전지현이 이번 영화를 통해 이룬 성과를 치하했다. “전지현과 이런 주제로 말을 나눠보진 않았지만 언젠가는 그녀도 스스로의 언어로 자신이 가진 세계를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도 했다.

따로 인터뷰를 청해서 서로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며칠 후 만난 전지현도 화답했다.

“‘김혜수’라는 배우는 저에게 처음부터 톱스타였죠. 이번 영화(〈도둑들〉)로 처음 만났는데 괜히 김혜수인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수식어를 붙여도 그 이상인 배우가 또 누가 있겠어요? 여자 김혜수, 스타 김혜수가 변치 않고 선배로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면 저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아요. 보통 배우들이 빠지는 함정이 자신에게 갇히는 것인데, 혜수 언니는 달라요. 여배우로서뿐 아니라 제3자의 관찰자적 시선을 잃지 않고 넓은 시야로 객관적인 평가를 해요. 그런 포스를 내는 여배우는 없죠.”


10대 중반에 데뷔해 뭇 남학생들의 책받침과 연습장 표지를 장식했던 1980년대의 하이틴 스타 김혜수와 1990년대 후반 스무 살도 되기 전에 이미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각광받으며 등장했던 전지현. 후배에게 선배는 처음부터 ‘톱스타’였고, 선배에게 후배는 ‘새로운 세대, 특별한 스타’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였다. 그리고 이제 두 스타는 많게는 20년 이상, 적게는 10년 이상을 먼저 걸었던 길의 저 끝에서 이제 막 솟기 시작한 김수현(24)이라는 새로운 별을 목격한 선배이자 동지가 됐다. 김수현은 드라마 〈해를 품은 달〉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스타로, 역시 〈도둑들〉에 출연했다. 스크린에 남겨진 이미지는 영원한 젊음과 아름다움 속에 봉인되지만 카메라 바깥의 시간은 모든 이에게 평등한 법이다. 김혜수가 그랬던 것처럼, 영원한 소녀일 것 같던 전지현도 한살 한살 더해갔고, 작품도 쌓아갔다. 그리고 결혼도 했다. 세월은 젊음과 가능성을 빼앗아가지만, 지혜와 자기성찰을 선물한다.

“만약 다시 할 수 있다면 자기는 일을 선택할 거야, 추억을 선택할 거야?” “음… 난 추억이지. 당신은?” “난 일!”

며칠 전 ‘새댁’ 전지현과 새신랑인 남편이 나눈 대화다. 전지현은 “결혼 후에 둘이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신랑은 ‘난 대학 입학할 때는 말이야…’ ‘내가 졸업할 때는…’이라고 하다가 문득 ‘그때 너는 뭐 찍고 있었지?’라고 묻곤 한다”며 “내겐 남편처럼 학창시절의 추억이 없다, 기억이라곤 다 작품과 연결된 것뿐”이라고 말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좀 더 연애를 많이 했으면 좋았을까?’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아요. 만약에 다른 삶, 내가 가지 않은 길에 대해 알고 있었다면 20대 내내 집과 촬영장만 오가는 생활이 힘들었겠죠. 몰랐기 때문에 그 생활이 재미없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어요. 다른 이들 같은 추억은 없지만 내가 겪은 게 아름답고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대화 끝에 조지 버나드 쇼의 “젊음을 젊은이에게 주기 아깝다”는 말이 나오자, 손뼉을 치며 맞장구치는 전지현이다. 서울 한 호텔에서 만난 빨간 드레스 차림의 전지현에겐 한낮의 태양처럼 강렬한 젊음과 막 결혼한 ‘새댁’의 조신함, 데뷔 15년차 톱스타 여배우의 성숙함이 섞여 있었다. 국내 굴지 가전 브랜드의 프린터 광고에서 선보인 섹시하고 발랄한 춤으로 1990년대 후반 화려하게 등장한 전지현. 선배인 장동건이나 김혜수가 그랬던 것처럼 전지현은 당대의 톱스타를 상징하는 이름이자 상징이 됐다. 하지만 늘 ‘배우’보다는 ‘스타’라는 꼬리표가 뒤따랐고, 〈엽기적인 그녀〉의 거대한 성공 후 어떤 출연작들에선 ‘움직이는 화보’라는 비아냥 섞인 평을 받아야 했다. 배우로서의 반전을 꿈꾸며 야심차게 도전했던 공포영화 〈4인용 식탁〉이나 〈슈퍼맨이었던 사나이〉의 의욕적인 연기도 객석과 평단의 냉랭한 반응 속에 묻혔다.

십 수년 전 일이지만 데뷔 당시 신드롬에 가까웠던 반응을 떠올리며 전지현은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대단한 일이었는데, 당시에는 그런 상황을 다 누리고 즐기지 못한 아쉬움이 든다”며 “무슨 배짱인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인 것이 오히려 후광이 사라지고 혼자가 됐을 때도 동요하지 않는 데 힘이 됐다”고 말했다. CF만 한다는 비난이나 배우로서 받았던 혹평에 대해서도 “20대 여배우에게 결론짓고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온당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한편에선 목마름이 있었다.

“원톱영화(주연 1명이 끌고 가는 작품)를 계속하면서 갈증이 있었죠. 〈엽기적인 그녀〉 이후 그 성공에 기댄 기획도 많았고, 뭐를 해도 〈엽기적인 그녀〉에 가렸어요. 그럴수록 자신의 색깔과 세계에 대한 명확한 표현을 가진 감독을 만나고 싶었죠. 감독이 가진 그릇의 크기가 넓으면 모자라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게 채울 자신은 있었거든요.”

〈도둑들〉은 당대 최고의 도둑들이 모여 마카오 카지노에 숨겨진 수백억원짜리 다이아몬드를 훔치기 위해 나선다는 이야기를 담았다. 김윤석・김혜수・이정재・김수현・오달수 등과 함께 출연한 전지현은 섹시한 줄타기 전문도둑 ‘예니콜’ 역을 맡았다. 엉뚱하고 톡톡 튀고 거침없는 여도둑이다.

“〈4인용 식탁〉을 하면서 안수현 PD(최동훈 감독의 부인)를 알게 됐고, 그 인연으로 최동훈 감독과도 자주 만날 기회가 있었죠. 〈도둑들〉 시나리오를 쓴다는 이야기를 듣고부터 관심을 이미 갖고 있었어요. 시나리오를 받고는 단번에 OK했죠. ‘예니콜’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이 넘쳐나는 캐릭터였어요. ‘내가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알았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신이 있었어요.”

그토록 기다리던 임자를 만난 셈이다. 최동훈 감독은 이제껏 작품이나 매체에서 노출되지 않은 전지현의 또 다른 매력을 극중 ‘예니콜’이라는 캐릭터에 녹여냈다. 최 감독은 전지현을 만날 때마다 “나, 자기 이제 알 것 같애!” “자기, 어떤 식인지 알겠어!” “전지현이 어떤 배우인지 감이 와!”라고 말하곤 했다. 현장에서도 항상 뛰어다닐 정도로 활기차고 입심 좋은 최 감독이다. 전지현은 극중 막말이나 욕설까지도 서슴없이 쏟아내며 감독의 의중에 화답한다. 악의는 없지만 자신밖에는 관심이 없는 말괄량이 도둑 아가씨. 너무 가볍지도 너무 무겁지도 않다. 최동훈 감독은 전지현에게 제 나이와 제 색깔을 찾아줬고, 전지현은 서른한 살의 배우로서 또 다른 ‘전지현다움’을 꺼낼 수 있었다.

“촬영 초반에는 예니콜이라는 인물이나 그의 대사가 착 붙지는 않았어요.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으니까 처음에는 힘들었죠. 그 이상을 뽑아낼 수 있다는 생각이 컸으니까. 의욕만 충만하니까 자꾸 오버액션이 나오고. 감독님이 많이 잡아줬죠. 욕도 더 많았는데 조금 완화해줬어요. 그래도 예니콜을 연기하면서 재미있고 후련한 느낌이었어요. 자기중심적이고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될대로 돼라’는 캐릭터였거든요. 실제의 저는 항상 중심에 있었고, 주위를 의식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죠. 그래서 화통하고 화끈한 예니콜이라는 인물이 통쾌했어요.”

영화에는 전지현이 연기한 ‘예니콜’이 금고털이 전문범 ‘펩시’ 역의 김혜수와 나이와 미모 등을 두고 첫 만남부터 신경전을 벌이는 장면이 있다.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당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서 두 여배우가 한작품에 나와 수작을 벌인다. 개인적으로도, 배우로서도 두 사람이 말을 섞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전지현은 “만나보니 괜히 김혜수가 아니더라, 괜히 높은 자리에 있는 게 아니더라”며 “어떤 수식어를 붙여도 모자란 배우가 혜수 언니 말고 또 누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정말 멋지고 굉장히 아름다운 배우라고 생각한다. 스타로서, 선배로서 늘 그 자리에 지키고 있었으면 좋겠다”며 “하지만 같은 여배우로서 그 자리를 지켜나가는 게 얼마나 외로울까, 여리고 약한 면도 있을 텐데 보호해주고 싶은 느낌도 든다”고 덧붙였다. 전지현을 보면서 김혜수가 어린 시절 자신을 떠올렸듯, 김혜수에게서 전지현은 스스로의 훗날을 그려봤을 것이다.


전지현은 지난 4월 어린 시절부터 잘 알고 지내던 동갑내기이자 금융전문가인 최준혁씨와 결혼했다. 남편은 디자이너 이영희씨의 손자이자 어머니의 대를 이은 디자이너 이정우씨의 아들이다. 결혼은 한 뼘 더 스스로를 성숙하게 했다.

“사람을 좋아하고 아낀다는 일의 또 다른 깊이를 발견하게 됐어요. 자식을 낳으면 또 달라지겠죠? 주위에서 절 어른처럼 대해주기도 하고 어른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것도 결혼 후에 달라진 점이죠.”

차기작 〈베를린〉의 촬영이 이어지는 바쁜 생활에도 ‘새댁의 일상’은 있다. 전지현은 “매일 수퍼마켓에 가고, 매일 설거지하고, 오늘 뭐해 먹을까 고민한다”고 말했다.

사진 : 김선아
  • 2012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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