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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하나로 캐릭터에 숨결을 불어넣는 사람들

새 연재 | 직업의 세계 ③ 성우

우리말이라는 게 미묘하다고들 한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도 있다. 성우(聲優)의 세계가 그렇다. 문자 그대로의 뜻만 따져본다면 목소리로 연기하는 배우가 맞기는 하다. 문제는 ‘목소리로’ 연기하느냐, 아니면 ‘목소리로만’ 연기하느냐의 차이다. 겨우 한 글자 차이지만 성우라는 직업의 정체성을 판가름할 만큼 미묘하다. 그게 이번 달 ‘직업의 세계’에서 만난 성우들이 입을 모아 강조한 스스로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목소리가 최종 표현 수단이되, 그 연기 자체만큼은 온몸으로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다.
한국고용정보원이 2010~2011년 두 해에 걸쳐 759개 직업 현직 종사자 2만6000여 명을 대상으로 직업 만족도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성우가 2위(1위는 초등학교 교장)를 차지했다. 이는 ‘직업의 세계’에서 기사를 기획하는 데 원동력으로 작용했음은 물론, 성우들에게 던지는 가장 큰 화두이기도 했다. 반응은 거의 한결같았다. 좋아서 선택했고, 다른 성우들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대답이었다. 다른 직업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이야기 또한 들을 수 있었으니, 지면에는 옮기기 어려운 인터뷰의 분위기까지 감안한다면 ‘천직(天職)’이라는 표현을 써도 그리 과장은 아닐 것이다. 천직이라는 의미는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다면, 금전적인 보상이 아주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더라도 감수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게 천직이라는 표현마저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이유에 높은 진입장벽이 한몫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방송국 공채를 통해 협회 회원 자격을 획득하는 것이 일반적인 성우 활동의 출발점인데, 공중파 방송의 경우 유일하게 KBS만 매년 남녀 각 5명 정도를 선발한다. 케이블 방송의 경우 대교나 대원 등에서 비슷한 수를 뽑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경쟁률이 치열해 성우 지망생은 성우 아카데미 등에서 전문 교육을 받으며 준비한다. 성우는 공채에 합격하면 일정 기간 전속 과정을 거쳐 프리랜서로 활동하는데, 전속 기간은 3년이었다가 최근 2년으로 줄었다. 40년 동안 성우의 길을 걸어온 원로 성우 박은숙은 방송국 소속으로 활동하는 전속 기간을 “선배들과 함께 일하며 배우는 수련 기간”이었다고 회고하는 반면, 보다 젊은 세대인 안지환은 “아카데미 같은 전문 교육기관이 있어 젊은 세대들이 준비를 많이 해서 들어온다”고 했다.

공중파 방송에서 성우를 뽑지 않는 건 시각매체 위주의 패러다임 변화로 성우의 영역이 축소되었기 때문이다. 라디오 드라마의 비중이 줄었으며, 외화 또한 더빙에서 자막 위주로 전환된 지 오래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성우들 또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현재 또는 미래에 대한 질문에서, 현역으로 왕성하게 활동 중인 성우들은 자신의 고민을 바탕으로 다양한 대답을 들려주었다. 상상력의 여지를 주지 않는 시각매체에 지친 시청자들이 라디오를 비롯한 청각매체로 돌아올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고, 운전을 하거나 걸으면서도 들을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서양에서는 이미 인기 매체가 된 오디오북 시장이 활성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있었다.

성우의 장점을 십분 활용한 결혼식 사회 및 주례 서비스 또한 새로운 전문 영역을 개척한다는 측면에서 의미 있는 시도라고 할 수 있고, 벌써 많은 관심과 수요를 모으고 있다. 뮤지컬 〈헤어스프레이〉에도 출연하는 등, 목소리 연기를 포함한 모든 연기를 동일선상에 두고 도전하는 안지환처럼 “예능 프로그램에 성우의 영역이 새로이 생겼듯, 방송이 살아 있는 한 성우의 영역은 새롭게 생겨날 것”이라는 견해도 있었다.

이렇게 매체의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가운데 예전과는 다른 틈새를 통해 성우의 길에 발을 들여놓는 젊은 세대들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우리나라만의 독자적인 장르라고 할 수 있는 웹툰을 바탕으로 한 웹툰 애니메이션이 그 첫 번째 예다.

웹툰 애니메이션은 완전히 정지된 그림으로만 이루어진 웹툰과 ‘셀’을 통한 움직임이 이루어지는 애니메이션의 중간매체라고 할 수 있는데, 목소리로 표현하는 연기는 자체 제작하는 음향 효과 등과 더불어 매체에 입체감과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스스로를 목소리 연기는 물론,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제작 집단’이라고 정의하는 ‘쇼킹보이스’를 만나 틈새시장을 노리는 이들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고민도 들어보았다.

인터넷을 바탕으로 한 팟캐스트 또한 소리 위주의 매체라는 측면에서, 성우의 활동과 같은 맥락에서 담론이 가능하다. 책 낭독을 바탕으로 효과음 등을 입혀 라디오 드라마 수준의 팟캐스트 〈한뼘 이야기〉를 운영하는 교통방송 PD 김나연을 만난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성우 지망생, 또 ‘인디 성우’로 활동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그가 계속해서 시도하는 작업은 ‘소리가 다른 매체와 손잡고 일궈내는 상생’이라고 할 수 있다. 활자인 책이며, 감상을 위한 진입 장벽이 높은 공연 형식인 뮤지컬과 라디오를 접목하는 시도를 권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성우는 목소리만으로 연기하는 직업이 아니다. 온몸으로 이루어지는 연기를 목소리를 통해 표현하는 것이다. 오늘도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 성우 지망생들에게 〈톱클래스〉가 만난 중견 성우들의 메시지를 전한다. 거울을 보는(안지환) 한편, 소리를 듣고 흉내만 내지 말고 생각해서 자신만의 색깔을 담아 표현(박은숙)하는 것 또한 그들 나름대로 소중한 비결이다. 물론 그 원동력은 끊임없는 노력이다.

사진 : 김선아


서혜정

성우는 간절히 원하는 사람이 택하는 직업이에요

1982년 KBS 공채 17기 / 2011년 한국방송대상 성우상 수상
오락 프로그램 〈재밌는 TV 롤러코스터 ‘남녀탐구생활’〉, 외화 〈X파일(스컬리 요원)〉, 애니메이션 <세일러 문(세일러 마스)> <베르사이유의 장미(오스칼)>, 다큐멘터리 <생로병사의 비밀> 등


직업 만족도 설문조사에서 성우가 2위를 차지했다. 이유가 뭘까.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기 때문이다.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성우를 지망하는 사람은 없다. 그럴 만한 여건도 아니다. 영화도 더빙보다 자막의 비율이 높아지는 등 예전보다 성우의 영역이 축소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하고 싶으니까 선택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만족한다.

성우의 영역이 줄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자극적인 시각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사람들이 오디오의 편안함을 찾는 시대가 돌아오리라 예상한다. 수채화 같은, 음악과 글이 결합된 낭독 프로그램 같은 것도 있고 오디오북 시장 또한 가능성이 있다. 한류의 인기가 높아지는 가운데, 외국인을 상대로 한 한국어 교육이나 교재 등에도 성우의 영역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직업병 같은 건 없나. 있다면 어떻게 극복하나.
앉아서 연기하지만 마이크를 벗어나면 안 되므로 목과 어깨 부위에 힘을 많이 주는 경향이 있다. 뭉친 부위를 풀어주기 위해 운동이 필요하다. 등산도 좋고, 주로 걷는다. 요즘은 무리하게 연기하면 목이 힘든 경우가 있는데, 어차피 목소리는 몸 전체의 상태에 따라 달라지므로 전반적인 건강 유지를 위해 예전보다 더 신경을 쓴다. 건강한 식생활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일반 연기자의 경우 배역에 몰입했다가 빠져나오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목소리 연기는 어떤가.
극중 인물 자체가 되는 ‘메소드 연기’를 해야 하는 경우, 오랜 트레이닝을 거쳐 필요에 따라 몰입하고 빠져나오기도 하는 법을 배운다. 일반 연기와 달리 목소리 연기는 몰입하는 시간이 짧은 편이다. 이를테면 아침에 한 역할에 몰입해 더빙한 후 점심을 먹으면서 그 역할에서 빠져나오고, 또 오후에 다른 역할에 몰입해서 더빙하는 식이다. 그래서인지, 성우 인생 30년 동안 내가 아닌 배역으로 살아온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많은 사람이 〈X파일〉의 스컬리로 기억한다. 특정 역할로 인식되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나.
워낙 좋은 작품을 많이 했다. 특정 배역을 기억하고 아껴주시는 분들에게 ‘이런저런 역할도 했다’며 반박할 필요성은 못 느낀다.

‘팟캐스트’같이 새로운 매체를 통해 목소리 연기의 문을 두드리는 젊은 세대들이 있다.
성우가 가지고 있는 전문성 또는 소프트웨어를 잘 활용할 수 있도록 비즈니스적 시각에서 시스템이나 하드웨어를 구축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해줄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다. 목소리 연기에 도전하는 젊은 세대에게는 무엇보다 재능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목과 귀 모두 타고나야 하는 부분이 있다. 재능이 있어야 즐기면서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 연기와 달리 기획이나 연출처럼 파생된 영역이 없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최근 카메오 연기에 도전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일반 연기로 영역을 확장할 계획이 있는지.
일반 연기와 목소리 연기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이번 카메오 연기에서도 그런 점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앞으로도 성우가 가진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수준의 배역이라면 도전해보고 싶다.

연기에는 영감이 필요하다. 직업인으로 성장하기 위한 영감의 원천은.
나의 모든 것은 책에서 비롯된다. 어려웠던 어린 시절에는 위인전이나 〈백설공주〉 〈신데렐라〉와 같은 동화책, 이후 힘든 시기에는 〈베르사이유의 궁전〉 같은 만화책에서 위안을 얻었다. 고난 이후의 성장, 또는 보답의 이야기를 읽으며 어려운 시기를 헤쳐 나갈 수 있는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키울 수 있었다. 요즘은 성경에 빠져 있다. 책을 워낙 좋아한다. 전원생활을 하면서 방 하나를 스튜디오로 꾸며놓고 녹음하는 꿈을 가지고 있다.


박은숙

성우가 되고 싶은가요? 자기 색깔부터 찾으세요

1973년 기독교방송 공채
애니메이션 〈보노보노(보노보노)〉 〈카드캡터 체리(케로)〉 등


직업 만족도 설문조사에서 성우가 2위를 차지했다. 이유가 뭘까.
40여 년 성우의 길을 걸었는데, 다른 길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라디오 드라마 등을 듣고 자란 세대라서 성우에게 많은 매력을 느꼈다. 재미있는 직업이다. 그렇게 선택해서 만족도가 높지 않은가 생각한다. 요즘 세대에게도 그렇다니 좋은 일이다.

관문이 좁은데, 어떻게 성우가 됐나.
방송국 공채가 있었고, 다른 연기를 하던 사람을 위한 특채도 있었다. 몇 백대 일의 관문을 통과해야 했는데 지금처럼 교육기관이 따로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선배가 특별 지도를 해주는 경우가 가끔 있었지만 거의 백지 상태나 다름없었다. 잠재력을 보고 뽑은 것 같다.

성우 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요즘에는 방송국 공채가 많이 줄었다. 공채 후 3년, 요즘은 2년이면 전속에서 풀려 프리랜서가 되는데, 옛날에는 그보다 전속 기간이 길었다. 일종의 연습 기간으로, 선배들과 호흡을 맞추며 배우는 데 초점을 맞췄다. 요즘 후배들을 보면 잘한다는 생각이 든다. 전문 교육기관이며, 다양한 문물을 접할 기회가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준비되어 있고 그래서 전속기간이 짧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더빙도 줄고 라디오 시대도 지났다. 전속과 프리랜서의 차이는 어떤가.
사람마다 다른데, 나의 경우는 복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처음 목소리 연기를 시작했을 때는 라디오 드라마 등이 인기가 많아 연기를 많이 할 수 있었다. 전속이 된 이후에도 내 영역이 있었고 선배의 도움 등으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요즘에는 나에게 꼭 맞는 역할에 집중한다. 성우의 영역이 축소되어 후배 중에는 연극 등 일반 연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

가장 인상적인 배역인 〈보노보노〉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원작보다 더 뛰어나다는 이야기도 있다.
내 목소리가 잘 맞는다며 의뢰가 들어왔다. 연기할 당시 색다르고 재미있다는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큰 인기를 얻을 거라는 생각은 못했다. <보노보노>는 만화를 처음 보는 순간 내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감이 바로 왔다. 보노보노가 성우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보노보노> 때문인지 만화와 동물 역할을 많이 한다. 역할이 고정되어서 부담스럽지는 않은가. 동물의 경우 연기 준비는 어떻게 하나.
부담은 없다. <보노보노>가 인기를 많이 얻어서 그렇지 그 외에도 다양한, 그리고 하고 싶은 역할을 해봤기 때문이다. 동물 연기를 좋아한다. 원작의 이미지를 보았을 때 자연스레 떠오르는 방향으로 준비하기도 하고 동물을 접한 경험도 참고하는데, 천직인지 그런 소리가 쏙쏙 잘 들어온다. 연출자의 의견이 다르면 조정하기도 하는데, 많은 경우 나의 목소리 색깔을 파악하고 의뢰하므로 어렵지 않다.

연기를 위한 영감은 어디에서 얻는지.
처음 시작할 때는 선배들의 연기를 참조했다. 주변의 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고 소화해서 내 것으로 표현한다.

평소 관리는 어떻게 하는가.
목이 마르지 않도록 신경 쓴다. 목만을 위해 운동을 하지는 않았다. 성대결절 같은 어려움을 겪지 않은 것으로 보아 목은 타고난 것 같다.

인터넷 시대다. 시대에 맞춰 새로운 분야를 경험해본 적이 있나.
있다고 들었지만 개인적으로 경험한 적은 없다. 에너지를 생각해보면 예상보다 더 오래 일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수요가 많다고는 할 수 없다. 후배들이 잘 해나가고 있으니 그런 면에서 긍정적이다.

성우 지망생에게 조언 한마디.
요즘은 영화보다 만화 더빙 위주라 참고자료가 적다. 누군가의 연기를 듣고 그대로 흉내 내는 것보다 일단 소화한 다음 자신의 색깔을 찾아 다시 표현하는 연습을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목소리 연기는 입에서 소리를 만들어 정확한 발음으로 표현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감정을 실을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동물 역할을 맡았다면, ‘저 동물이 사람이었다면 어떻게 표현했을까?’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표현해보는 식이다. 한마디로 ‘자기 색깔을 찾기 위한 생각과 연구’가 필요하다.


김나연

목소리 연기도 하고 연출도 하죠

교통방송 PD / 교통방송 〈배기성의 라디오킹〉 등 연출
팟캐스트 〈한뼘 이야기〉 운영


성우 지망생이었다가 라디오 PD가 되었다고 들었다.
어릴 때 구연동화대회에서 상을 많이 받았다. 아버지께 몸동작 곁들이는 법을 배웠는데, 그게 주효했던 것 같다. 스무 살 때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을 보고 연기에 대해 다시 생각했는데, 연기가 아닌 연출의 길을 걷고 싶었다. 그래서 방송을 전공하고 극단에 들어갔다가 개인 사정으로 그만두었다. 이후 교회 아이들을 위해 구연동화를 재개했는데, 더 잘해보려고 다녔던 성우학원에서 공채에 응시해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몇 번 도전했는데 실패하고 ‘인디 성우(공채를 거치지 않은, 협회 소속이 아닌 성우를 일컫는 용어)’로 CM이나 내레이션 등을 녹음했다. 이후 위성 DMB의 탄생과 더불어 북채널의 라디오 드라마에 출연 겸 연출을 했는데 매력을 느꼈고, 더 많은 사람에게 내가 만든 방송을 들려주고 싶어 라디오 PD에 도전했다. 출연보다 제작이 더 적성에 맞는다.

목소리 연기가 연출에 도움이 되는지.
소리가 주 전달 매체이다 보니 문장의 흐름이나 고저, 강약 등을 더 잘 짚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장점을 살려 연출자의 관점에서 출연하거나 진행자에게 도움을 주려 하되, 각자의 영역을 침범하지는 않으려 신경 쓴다. 부담이 될까 봐 목소리 연기를 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목소리 연기와 연출, 두 가지를 모두 경험했다. 영역 확장을 위해 시도하는 것이 있나.
‘라디오극을 활용한 공연 예술의 확장’을 꾸준히 시도한다. 더 많은 사람이 즐겼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극예술연구회 등에서 라디오 시청자를 대상으로 공연했다는 기록이 있다. 작년 크리스마스에 찰스 디킨스 원작의 〈크리스마스 캐럴〉을 라디오 뮤지컬로 제작, 방송한 것 또한 그 연장 선상이었다. 라디오에 맞춰 각색하고 곡 또한 새롭게 썼다.

라디오, 넓게 보아 소리의 미래를 어떻게 보는가.
라디오 자체로는 살아남기가 힘들다. 다른 영역과 손을 잡으면 기회가 더 많아질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책과 함께하는 북 콘서트다. 책은 죽지 않는다. 잘 읽지 않는 책을 모아 꼭 필요한 곳에 전달하는 프로젝트 ‘기적의 책꽂이’에 참여해 낭독과 공연 등이 어우러지는 북 콘서트를 열고 라디오로 송출한다.

책 낭독 팟캐스트 〈한뼘 이야기〉를 운영하게 된 계기는.
소리만을 매체로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콘텐츠를 만드는 게 목표다.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측면에서 소리가 촉각이나 청각보다 더 큰 힘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효과음 등을 잘 활용해서 더 입체적인 소리를 만들려 한다. 팟캐스트는 비교적 자유롭게 제작할 수 있어 라디오 방송과는 다른,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다. 팟캐스트는 목소리 출연부터 효과음 만들기나 녹음, 믹싱을 비롯한 전 과정을 혼자서 하는 1인 제작 시스템이다. 이를 통해 쌓은 노하우나 새로운 시도를 다시 라디오 방송에 반영한다는 측면도 긍정적이다. 팟캐스트는 언제 어디서나 들을 수 있다. 이러한 가능성을 적극 활용해 청취자를 확보하고, 또 그렇게 가까워진 청취자를 오프라인으로 만나는 모임으로까지 확장하는 가능성 또한 염두에 두고 있다.


안지환

새로운 영역에 대비해 끝없이 공부합니다

1993년 MBC 공채 11기 / 2005년 한국방송대상 성우상 수상, 2007년 제19회 한국방송 프로듀서상 성우부문 수상
오락 프로그램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위기탈출 넘버원〉 〈황금어장 ‘무릎팍 도사’〉 등 / 외화 〈미션 임파서블(톰 크루즈)〉 〈황비홍(이연걸)〉


직업 만족도 설문조사에서 성우가 2위를 차지했다. 이유가 뭘까.
성우는 철저히 준비해서 도전하는 직업이다. 길거리 캐스팅 같은 게 없다. 나도 연기자 지망생이었다가 성우 시험을 봤다. 다른 연기를 하다가 도전하는 경우도 있지만 요즘에는 성우를 목표로 준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요즘 세대는 학원을 다니고, 다른 나라 목소리 연기 성향 같은 것까지 파악하고 있다. 꿈꾸며 오랜 시간 준비하기 때문에 만족도가 높은 것이 아닐까. 경제적인 부분까지 말하는 건 아니다. 다들 원해서 성우의 길을 걷기 때문에 직업적 만족도가 큰 것이다.

배우 지망생이었다가 성우가 됐다. 목소리로 표현하는 연기를 위한 전환 과정 같은 것이 있었나.
없었다. 초등학교 때 연극을 했고, 대한민국 연극제에서 상을 탄 게 계기가 되어 연기를 꿈꿔왔다. 군 제대 후 가장 먼저 공고가 나서 경험 삼아 응시했는데, 운이 좋았는지 붙었다. 다른 분야로 전직을 생각하지 않은 건, 지금 하는 일에서 1등을 하고 싶어서였다. 그렇지 못하면 다른 걸 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행인 1’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조연을 잘할 수 있나. ‘이건 못하지만 다른 건 잘할 수 있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기회가 오지 않는다. 기회는 내가 원하는 대로 오는 것도 아니다. 기회가 왔을 때 잡아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뮤지컬 〈헤어스프레이〉에 캐스팅되었다. 배우의 연기와 목소리 연기는 어떻게 다른가.
일반 연기, 목소리 연기, 뮤지컬,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선, 즉 연기 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전환 과정’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고 말한 이유다. 성우이기 때문에 다른 연기를 ‘투 잡’으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성우가 연기를 마이크에 담는다면 배우는 같은 걸 카메라에 담는다.

뮤지컬 등을 할 때 진입장벽이나 기존 연기자들의 선입견은 없나.
배우나 가수가 내레이션과 더빙을 하듯, 성우가 뮤지컬이나 일반 연기에 도전하는 것도 가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함께 일할 때 나이나 경력에 상관없이 예의를 잘 지키고, 그 무리에 완전히 동화되려고 노력한다. 연습도 가능한 한 많이 하려고 노력한다. ‘힘들게 굴릴 테니 각오하라’는 이야기도 듣는데, 그건 걱정 안 한다. 못 따라갈까 봐 걱정일 뿐이다.

PD 지망생들의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하는 동영상을 보았다. 멘토링에 대한 생각이 있나.
프로로서 참여했기 때문에 지망생들도 프로로 대하려 했다. 즉 ‘레슨’을 주고받는 관계처럼 여기지 않았다. 누군가 원한다면 멘토가 되어줄 수 있겠지만, 아직도 배우는 입장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배우는 데는 선후배를 가리지 않는다. 죽을 때까지 배우는 것이다. 그래서 대학원(중앙대학교 예술경영대학원 연극 전공)에 들어갔는데, 이후 신문방송이나 언론정보, 국문학이나 영화연출도 배우고 싶다. 나보다 어린 교수도 있지만 전혀 거리낌 없다. 부족해서 배우는 거니까. 공부하고 변화하지 않으면 죽는다. ‘고인 물은 썩는다’는 말도 있지 않나.

성우라는 직업의 미래를 어떻게 보나.
뮤지컬이든 목소리든, 모든 연기 활동은 ‘성우’라는 직함 아래 이루어진다. ‘On-Air’ 사인이 들어오는, 즉 방송이 존재하는 한 성우의 자리는 존재한다. 라디오 드라마만 있던 시절에는 더빙을 예상하지 못했다. 시대가 바뀌면서 성우의 활동 영역이 다양해지고 있다. 광고와 예능 프로그램에도 성우가 필요하다. 지금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영역에서 성우의 영역이 또 생길 것이다. 그때를 위해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마부작침(磨斧作針)’, 즉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드는 것처럼 끈기 있게 노력해야 한다.

성우 지망생을 위한 조언 한마디.
성우를 단순히 ‘목소리 연기자’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목소리를 녹음해서 가지고 다니며 성우 준비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자신의 목소리에 익숙해져서 도움이 안 된다. 녹음해서 듣더라도 거울을 보고 표정을 보아가며 연습한 다음이어야 한다.


쇼킹보이스

웹툰에 목소리를 입히는 집단… 콘텐츠도 개발할 거예요

2009년 결성
웹툰 애니메이션 〈3단합체 김창남〉 〈삼봉이발소〉 등


소개를 부탁한다.
정영수 : 쇼킹보이스는 2009년, 목소리 연기를 좋아하는 사람끼리 동호회 형식으로 뭉쳐 시작했다. 이후 내부 사정으로 정체기를 겪다가 플래시 애니메이션 전문 제작팀인 오인용의 김창후를 제작 감독으로 영입, 그림으로만 이루어진 웹툰과 셀로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의 중간 형태인 ‘웹툰 애니메이션’을 전문으로 제작하는 팀을 결성해 활동 중이다. 웹툰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매체, 장르다. 궁극적으로 독창적인 웹툰 애니메이션 제작이 목표다. 이를 위해 전문 인력과 계약을 맺고 음향 효과를 자체 해결하고, 연기 활동을 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쌓고 있다. 현재 목소리 연기를 맡은 팀원만 14명이고, 충원이 필요할 경우 공개 오디션을 연다.

성우의 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쇼킹보이스는 어떤 집단인가.
김은영 : 성우 지망생으로 팀에 몸담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성우가 되기 전의 관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는 드물다. 목소리 연기가 우리의 공통 관심사는 아니다. 웹툰 애니메이션 콘텐츠까지 개발하려 한다. 콘텐츠 개발 집단으로 사업자 등록도 되어 있으니 수익 창출 집단으로서 자리매김할 것이다.

팀원들이 쇼킹 보이스에 몸담고 있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다. 경험을 쌓는 과정에서 목소리 연기는 어떻게 다가오나.
김은영 : 몸짓이나 표정, 심지어 외모에도 기대지 않고 목소리만으로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성우가 훨씬 더 어렵다. 그만큼 역량을 더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곽유진 : 목소리 연기가 더 난이도가 높다. 쇼킹보이스는 실전을 통해 그러한 역량을 갖추는 데 도움을 준다.

영리추구 집단이 아닌데, 제 비용은 어떻게 충당하나.
김창후 : 녹음 비용 등은 사비를 조금씩 걷어서 충당한다. 현재 웹툰 애니메이션을 ‘어플’로 제작해 국내는 물론 중국 등 해외시장을 개척하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우리도 참여하려 한다. 현실화된다면 수익 창출 활동으로는 최초가 될 것이다. 아직 수익을 내지 못했지만 좋아하는 일을 함께 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돈이 들어가는 취미도 있지 않나. 그런 것의 연장 선상으로 생각하면 된다.

쇼킹보이스같이 독립적인 목소리 연기 또는 웹툰 애니메이션 콘텐츠를 제작하는 집단의 미래를 어떻게 보나.
정영수 : 우리만의 콘텐츠를 제작해서 저변을 넓히는 일이 급선무다. 활동을 통해 이러한 집단이 존재하며, 목소리 연기에 이러한 영역도 있다는 걸 알리고 있다.
성우를 연기자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그저 ‘목소리만 좋으면 된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목소리 연기와 성대모사는 엄연히 다르다.

쇼킹보이스가 성공한다면 모방하는 집단도 나올 텐데, 이에 대한 대비는 되어 있나.
김창후 : 그렇지 않다. 팀원 대부분이 목소리 연기를 하는 상황이다 보니 편집을 비롯한 제작이나 홍보, 그 외 사업과 관련된 일을 맡아서 할 만한 사람이 없다. 충원이 필요하지만 아직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어 다른 분야로 영역을 넓히지 못하고 있다. 어플이 성공해서 본격적으로 수익이 창출되면 더 재미있고 신나는 일을 많이 계획할 것이다.
  • 2012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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