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칼럼니스트 이용재가 찾은 맛] 칵테일 바 ‘팩토리’ 한규선 대표・박시영 바텐더

똥고집 대표와 풀 다듬는 바텐더가 만들어낸 환상의 칵테일!

어릴 적, 짝꿍과 나 사이 / 정확히 반 나눠 줄 그어놓고 / 지우개 반쪽으로 합의 봤던 / 그런 공간 나누기와는 좀 다른 / 손님과 바텐더의 오지랖과 무관심 사이의 공간 나누기 / 80cm 뛰어넘어 방정 떨면 오지랖 / 80cm 뒤에 서서 나 몰라라 하면 무관심 / 나는 오늘 하루, 오지랖과 무관심 사이의 친밀한 줄타기를 잘했었던가.
80cm, 홍대 주차장 골목 근처 ‘팩토리’의 바 폭이다. 바치고는 좀 넓은 편이다. 건축을 전공한데다 바를 좋아해서, 여행하는 도시마다 한두 군데씩 바를 꼭 들러보곤 하는 필자가 잘 안다. 바의 폭은 대개 45~60cm다. ‘안 보면 멀어진다’는 말처럼, 물리적인 거리는 심리적인 거리로 귀결된다. 이 정도 폭이라면 손님과 바텐더의 거리가 살짝 멀어지니 서비스도, 또 이야기도 조금은 불편할 수가 있다. 분명 이유가 있어 보인다. 이를 팩토리의 한규선 대표는 블로그(www.barfactory.co.kr)에 설명해놓았다. ‘오지랖과 무관심 사이’란다.

좋은 재료와 전통, 그리고 섬세함. 좋은 칵테일을 이루는 세 가지 요소다. 한규선이 블로그를 통해 내는 목소리는 호흡이 길거나 무겁지 않으면서도 차분하게 이 세 가지 요소에 기대는 팩토리의 철학을 설파한다. ‘풀 다듬는 바텐더’라는 글이 그렇다. 제목만 놓고 보면 학창시절 배웠던 수필 ‘방망이 깎던 노인’의 느낌이 나는 이 글에서 그녀는, 칵테일의 표정을 좌우하는 재료인 과일이나 허브의 중요성이며 손질을 포함한 준비 과정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모히토에 넣는 민트의 경우, 잎을 하나하나 다듬어야 합니다. 줄기까지 빻아서 칵테일을 만들면 쓴맛이 올라오거든요.” 그래서 박시영은 ‘풀 다듬는 바텐더’가 되었다. 이제는 여름철 대표 칵테일로 자리 잡은 모히토에는 반드시 민트와 라임이 들어가야 한다. 열대의 무더위를 달래주기 위해 탄생한만큼 청량감이 두드러져야 하기 때문이다. 헤밍웨이가 쿠바에서 즐겨 마셨던 이유이기도 하다. 모히토의 대중화로 인해 그래도 민트는 예전보다 구하기가 수월해 정성을 다해 다듬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라임의 속내는 다르다. 원산지에서는 레몬보다 싸지만 여전히 수입이 원활하지 않아 팩토리를 비롯, 신선한 칵테일을 손님에게 내려는 바에는 골칫거리다. 그 80cm 바 건너편 손님들이 그녀의 칵테일에 행복해져도, 라임이 떨어져가는 것을 보며 바텐더는 한숨을 쉴 때가 있다. 그래도 라임은 칵테일 교육을 할 만한 ‘사수’가 없어 겪는 어려움보다 사정이 조금 나을지도 모른다.

“진지하게 바텐더의 길로 접어들겠다고 마음먹고 나니 ‘사수’를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원래 박시영의 전공은 시각디자인이다. 팩토리의 메뉴는 물론, 디자인에도 그녀의 손길이 깃들어 있다. 대학 졸업 후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꾸리게 된 가게에서, 그녀는 정식 바텐더 수업의 동기를 얻는다.

“제가 처음 진지하게 바텐더의 길을 걷기 위해 시도하던 시절에는 ‘웨스턴 바’가 유행이었습니다. 그런 곳은 칵테일을 만드는 과정을 퍼포먼스로 보여주는 ‘플레어(flair)’ 위주였는데, 흥미로웠지만 그보다는 칵테일의 맛 자체를 공부해보고 싶었어요. 호텔 바가 유일한 경로였는데 그보다는 자유로운 분위기를 추구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배울 곳이 없어 결국 시행착오를 곁들인 독학으로 칵테일을 깨우쳤어요. 만들고 싶은 칵테일이 생기면 레시피를 구해 한번 만들어보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수정해서 다음에 다시 만들어보는 과정을 거듭했지요. 인터넷을 통한 소통이 지금처럼 활발하지 않던 시절,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칵테일 ‘스크류드라이버’가 뉴요커들에게 인기인 것을 보고, 만들어보고 싶어 손님에게 부탁해 레시피를 공수해오기도 했습니다.”

각각의 역사와 전통 때문에 칵테일에서 형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척 크다. 잔만 놓고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레시피를 바탕으로, 정성껏 다듬은 풀을 더해 만들었다고 해도 제 짝이 아닌 잔에 담으면 칵테일이 완성되지 않는 것은 물론, 온도며 맛이 금방 변한다. 문화는 물론이거니와, 칵테일이 탄생한 지역의 기후며 온도까지도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모히토를 위한 잔은 ‘콜린스 글라스’다. 300~410ml들이의 좁고 긴 잔으로, 여러 칵테일에 두루 쓰이므로 바에서는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는 살림살이다. 청량감을 강조하는 칵테일은 대부분 이렇게 좁고 긴 잔을 쓴다.

한규선 대표.
또 다른 여름의 대표 칵테일인 ‘모스코 뮬(Moscow Mule)’은 구리 머그잔이 둘도 없는 제 짝이다. 처음 칵테일이 만들어졌을 때 구리 머그잔에 담겼다는 사연 때문이다. 그래서 전통 좀 뽐낸다는 외국의 바에서는 반드시 구리 머그잔을 갖추고 손님을 맞는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모스코 뮬을 찾기가 쉽지 않다. 심지어 한국바텐더협회조차 구리 머그잔에 얽힌 사연은 소개하되, 칵테일 사진은 유리잔에 담은 것을 홈페이지에 실었을 정도다. 한규선이 스스로 ‘똥고집’이라고 일컫기를 주저하지 않는, 전통을 향한 존경 때문에 팩토리의 모스코 뮬은 구리잔에 담겨 나온다.

“마티니 한 잔이 마티니 글라스에 담겼을 때 그 멋이 완성되는 것처럼, 모스코 뮬도 이 구리컵에 담겨야 그 시절 멋까지 담아낼 수 있습니다.”

대학 재학시절 스쿨밴드에서 키보드를 연주하며 음악에 대한 애정을 키우고, 그를 통해 박시영과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친구가 되어 함께 바를 꾸려나가는 한규선은 서비스 정신이 자아내는 행복감이 바 운영의 묘미라고 말한다.

“손님을 맞는 일을 하면서 마음이 오히려 많이 편해졌습니다. 밖에서 아무리 힘들고 기분 나쁜 일이 있더라도, 일단 바에 발을 들여놓으면 웃는 얼굴로 손님을 맞아야 하니까요. 그렇게 손님을 맞다 보면 힘든 일도 잊게 됩니다.”

바텐더 박시영.
바는 특성상 실내가 어두울 수밖에 없지만, 좋은 칵테일의 마지막 요소인 섬세함은 그래도 빛난다. 물론 레시피가 바탕이지만, 레시피만으로는 칵테일이 완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음식과 마찬가지로 칵테일 또한 레시피의 행간에 숨어 있는, 재료와 재료가 만나 이루어내는 상태의 변화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의 감각에 따라 완성도가 달라진다.

“얼음의 형태에 따라 녹는 정도가 달라지므로 바텐더는 대부분 선호하는 제빙기가 따로 있습니다. 칵테일이 워낙 온도에 민감하다 보니, 그 중심이 되는 리큐르의 보관 온도 또한 다르고요.”

얼음을 원하는 만큼만 정확하게 녹이기 위해 조심스레 젓개로 잔과 얼음 사이를 젓는 바텐더는, 칵테일에 재료를 하나씩 섞을 때마다 손등에 칵테일을 찍어 맛을 본다. 박시영에게 바와 칵테일을 즐기는 비법을 알려달라고 청했다.

“무엇보다 소통이 중요합니다. 손님도 바텐더에게 부담 없이,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지요. 메뉴를 보고 모르는 것을 물어보는 차원은 물론, 날씨, 기분, 몸 상태나 먹은 음식 등 다양한 요소에 따라 각기 다른 칵테일을 손님에게 대접하고 싶으니까요. 칵테일은 5~10분 안에 마시는 게 좋습니다. 오래 두면 얼음이 녹아 온도가 내려가고 맛 또한 변하기 때문입니다.”

사진 : 김선아
  • 2012년 07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는 로그인 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201910

201910

구독신청
낱권구매
전체기사

event2019.10

event
event 신청하기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30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