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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 아이들에게 사진 촬영 가르치는 선생님

다큐멘터리 영화 〈안녕, 하세요!〉로 화제가 된 인천혜광학교 이상봉 선생님

천부적인 음감을 지녔지만 주사 맞는 것을 무서워하는 초등학교 1학년 지혜, “넌 앞을 못 보니까 자전거를 못 타!”라는 친구의 말을 듣고 자전거 타기에 도전해 멋지게 성공해내는 2학년 예은이, 암과 싸우면서 작가를 꿈꾸는 명선이, 늘 모자를 푹 눌러쓴 채 하얀 손수건을 쥐고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6학년 지훈이, 어디든 꼭 붙어 다니는 단짝 친구인 중학교 3학년 희원이와 수빈이, 전국국악경연대회 판소리 부문에서 대상을 받은 소리꾼 보혜,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는 고등학생 혁이….

이상봉 <소래에서>.
눈이 아닌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시각장애 아이들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안녕, 하세요!〉의 주인공들이다. 각자의 재능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들이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고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겪는 과정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는 이 영화가 잔잔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아이들의 꿈을 따라가는 영화의 톤은 시종일관 따스하다. 왜 시각장애가 됐는지 같은 과거는 배제하고 미래의 꿈과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매진하는 현재를 담는다.

“눈이 안 보인 뒤로 눈이 많아진 것 같아요. 귀에도, 손에도, 발에도 눈이 생긴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채은이와 수정이의 흐릿한 눈동자에는 꿈이 가득하다. 이들의 초점 잃은 눈동자와 절반가량 감긴 눈은 말한다. ‘눈으로 보는 세상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세상도 아름다울 수 있어요’ ‘행복을 추구하고 행복을 느끼는 마음의 크기는 누구나 같아요’라고.


〈안녕, 하세요!〉의 탄생 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면 한 교사의 열정과 만난다. 앞을 보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사진 찍는 법을 가르치는 인천혜광학교 이상봉 선생님. 사진동아리 ‘잠상’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사진 찍는 법을 가르치고, 아이들을 데리고 공원으로, 시내로 나가 각자의 카메라에 세상을 담게 하는 그는 아이들이 찍은 사진으로 전시회까지 열었다. 그 전시회(<나-드러내기>)는 시각장애 학생들이 세상에 당당하게 나서는 계기가 됐다. 아이들의 꾸밈없는 모습에 반한 사진갤러리 공간루의 조인숙 대표가 ‘이 사진의 주인공들을 더 많은 이들에게 보여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영화화가 추진됐다. 메가폰은 <안녕, 형아>의 임태형 감독이 잡았다.


영화 제작의 열쇠는 혜광학교 아이들이 쥐고 있었다. ‘장애인으로서 자신들의 삶을 불특정 다수에게 당당하게 보여줄 수 있을까’가 관건이었다. 이상봉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조심스레 영화 이야기를 꺼냈다. 어른들의 걱정은 기우였다. 아이들은 흔쾌히 “해요, 재밌을 것 같아요”라며 해맑게 웃었다. 사진전을 통해 이미 자신을 세상에 드러냈던 아이들은 영화를 통해 자신들의 삶이 보여지는 것에 대해서도 거리낌이 없었다. 2010년부터 10개월간 임 감독은 아이들은 물론 혜광학교 교사, 학부모들과 동고동락하면서 이들의 삶을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혜광심포니 오케스트라.
영화 탄생의 단초를 제공한 이상봉 선생님을 만나러 인천혜광학교를 찾았다. 혜광학교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본 이 선생님은 “영화를 본 아이들이 신기해해요. 자신감이 더 생긴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혜광학교 사진동아리 ‘잠상’ 고등부도 사진 촬영에 기꺼이 응했다. 사진부에는 영화 속 주인공도 꽤 보였다. 천부적인 음감의 희승이와 두 단짝 친구 수빈이・희원이, 혁이의 짝사랑 그녀도 있다. 희승이가 사진동아리 회장이고, 희원이가 부회장이다. 둘은 사진동아리 회원자격 심사를 맡는다. 희승이는 “영화에는 내 멋진 모습이 덜 담긴 것 같다”며 아쉬워했고, 희원이는 “길을 찾을 때 너무 많이 헤맨 게 들켜서 속상하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밝고 유쾌했다. 사진을 찍으면서 이들의 넘치는 에너지를 꾹꾹 눌러야 할 지경이었다. 이상봉 선생님은 “혜광학교 학생 중에서도 적극적인 아이들이 사진동아리에 많이 온다”고 했다.

이상봉 선생님이 혜광학교 아이들에게 사진을 가르치기 시작한 건 1995년이다. 특별활동 부서의 하나로 사진부를 만들었다. 이 선생님은 “사진에 대해 전문적 지식이 많지 않았지만 그저 사진이 좋아서, 아이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서 시작했다”고 했다. 교내에서 사진 전시회를 열고 인천 사진작가협회에서 입상을 시키는 등 크고 작은 성과를 내던 중 2010년에 본격적으로 사진동아리 ‘잠상’을 만들었다. 사진을 좋아하는 혜광학교 중・고등학생 누구나 들어올 수 있다. 현재 ‘잠상’ 회원은 23명이다. 시각장애인들은 어떻게 사진을 찍을까? 자신이 찍은 사진을 볼 수 없는 이들에게 사진은 어떤 의미일까?

“사진부에는 전맹 학생과 저시력 학생이 섞여 있습니다. 처음엔 걱정스러웠죠. ‘전맹 아이들에게 사진 찍기가 오히려 상처가 되지 않을까’ 하고요. 하지만 뭐든 안 될 거라는 생각은 안 했습니다. 아이들 스스로 극복하고 수용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했죠. 내가 찍은 사진을 꼭 내가 봐야 한다는 건 보는 사람의 관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학생들은 사진뿐 아니라 다 안 보이니까요. 저도 처음엔 자기가 찍은 사진을 꼭 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니더군요. 찍는 행위와 셔터 소리, 남들이 자신의 사진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 등 일련의 과정이 아이들에게는 모두 의미가 있습니다.”

김수빈 <창 너머 정지된 시간>.
‘잠상’부는 한 달에 한 번, 토요일마다 야외로 사진 촬영을 나간다. 봄꽃이 좋은 계절에는 인천자유공원, 인천대공원 등으로, 바닷바람을 담고 싶으면 월미도로, 가을 하늘이 좋으면 서울 삼청동까지 나간다. 촬영할 때에는 전맹 학생과 저시력 학생이 짝을 이룬다. 저시력 학생이 전맹 학생에게 어디에 무엇이 보이는지, 그 느낌은 어떤지, 빛은 어느 정도인지 등을 설명해주면 전맹 학생은 그 지점에 다가가 손으로 만져보며 시각 대신 촉각으로 사물을 ‘본다.’ 그리고 ‘마음으로’ 사진을 찍는다. 그렇게 찍은 사진은 독특한 느낌을 자아내는 한 폭의 풍경화가 된다.


“시각장애인이 찍은 사진이라고 하니까 ‘형편없을 것이다, 구도도 엉망일 것이다’라고 생각하는데, 막상 보면 독특한 여운을 주는 사진이 많아요. 일반인이 생각하는 구도도 아니고, 초점도 맞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신선한 충격을 주죠. 우리는 반듯한 사진만 보잖아요. 그런데 이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그것도 독특한 구조로 담아와요. 그 익숙지 않은 풍경이 새로운 감동을 자아냅니다.”

이상봉 선생님은 사진전시회를 열면서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네가 찍은 사진을 네가 보든 안 보든 상관없다. 네 사진이 다른 사람들에게 뭔가 다른 느낌과 작은 감동을 준다면 너희들이 이 사회에 공헌한 것이다”라고.

이상봉 선생님은 척추장애인이다. 세 살 때 교통사고를 당한 후유증이다. 일찌감치 신체적 결함을 안고 살면서 그는 생각했다. ‘장애를 가진 사람이 정상인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대구대학교 특수교육과에서 시각장애를 전공한 그는 제주맹학교 등을 거쳐 25년째 혜광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다. 수학을 가르치다 컴퓨터를 가르친다. 장애인으로서, 장애인과 함께하는 삶 속에서 평생을 살아온 그의 바람은 한결같다. 사진전의 주제처럼 ‘나-드러내기’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시각장애인은 사람들에게 노출될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어요. 이동할 때에는 대부분 장애인용 택시나 콜택시를 이용하니까요. 시각장애인의 모습이 많이 노출돼야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어울려 사는 사람이다’라는 인식이 퍼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참 신기합니다. 저는 사진을 가르치는 한 가지 행위를 했을 뿐인데, 목적에 부합되는 일들이 이렇게 하나 둘 만들어지니 말입니다. 더 많은 사람이 이 영화를 보고 시각장애인에 대해 친근한 이미지를 안고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진 : 김선아
사진제공 : 이상봉
  • 2012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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