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식 농업인 선정된 조옥향 은아목장 대표

그림 같은 목장에 놀러 오세요

꽃이나 나무를 보기 위해 산으로 들로 봄나들이하기 좋은 계절이다. 그런데 요즘, 이곳이 봄맞이 장소로 인기다. 푸르게 펼쳐진 초지(草地)와 봄꽃들, 그리고 순한 눈의 젖소들에 백마・칠면조・오리 등 갖가지 동물들을 만날 수 있는 목장이다. 경기도 여주군 가남면 금당리 ‘은아목장’으로 봄맞이를 갔다. 산모퉁이를 돌아 들어가자 그림 같은 목장 풍경이 나타났다. 긴 속눈썹의 송아지가 눈을 끔뻑이며 분홍색 코를 벌름대고, 멀끔하게 잘생긴 백마는 손님을 기다렸다는 듯 친근하게 다가온다. 칠면조와 오리는 목청을 돋운다. 초지는 눈이 시리도록 푸르고, 길가에는 봄꽃들이 저마다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뾰족 지붕의 그림 같은 집들이 자리 잡고 있고, 젖소 모형과 그네, 벤치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다.

30년 전, 20대 주부의 몸으로 이 산속으로 들어와 이 모습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일궈나간 조옥향 은아목장 대표가 최근 신지식 농업인으로 선정됐다. 은아목장을 찾은 월요일은 원래 목장 식구들이 쉬는 날이었다. 안 그래도 많은 목장 일에 체험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 새벽부터 밤까지 눈코 뜰 새가 없기에 “1주일에 하루는 쉬어야 해요”라고 조 대표는 말했다. 그런데 그날도 그는 한시도 쉴 틈이 없어 보였다. 오후 두 시까지 목장 체험을 하고 간 팀이 있었다면서 그는 “딸들은 프로그램이 끝난 후 여주 읍내로 나갔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점심도 거르고 고무호스를 끌어다 여기저기 피어 있는 목장의 꽃들에 물을 주고 있었다. “이렇게 햇볕이 쨍쨍하니 저 꽃들이 얼마나 목이 마르겠느냐?”며 자신의 몸을 돌보기보다 꽃들을 먼저 생각했다. 목장의 목가적인 풍경에 한몫하는, 여기저기에 그려져 있는 그림들도 조 대표 솜씨다. “오늘 트랙터에 그림을 그릴 예정이었는데”라고 마음이 급하다. 그의 어릴 적 꿈은 화가였다 한다.


지금은 천국 같은 모습이지만, 1983년 그가 남편과 함께 이곳에 들어왔을 때는 그저 수풀이 우거진 산속이었다. 스물아홉 살 신혼 주부는 이곳에 텐트를 치고 살면서 돌 고르고 풀 뽑으며 초지를 조성하고 목장을 만들었다. 한동안 전기도 안 들어오는 산속에서 개울물에 쌀을 씻고, 나뭇가지를 주워 불을 피워 살았다. 그의 아버지는 치과의사. 2남3녀 중 맏딸로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 건설회사에 다니는 남편과 결혼했으니, 사서 고생한 셈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시발택시를 타고 관악산 근처에 있는 목장을 찾은 적이 있어요. 땅거미가 질 무렵이었는데, 기울어가는 햇살에 반짝이는 초지 모습이나 크고 순한 눈을 끔뻑이는 젖소, 자전거를 타고 우유배달을 나가는 목장주인 아저씨의 모습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어요. 평화롭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 풍경이 제 그리움과 갈망의 대상이 되었지요.”

해외근무를 나가게 되어 있던 남편을 그는 “가족과 떨어져 사느니 목장을 해보자. 목장일이 자유롭고 창조적인 데다 또 은퇴도 없지 않느냐”고 설득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물려주신 땅이 있는 이곳으로 들어왔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독학으로 의사가 되었던 아버지 역시 그를 지지했다. 그러나 파리・모기와 싸우는 척박한 생활이 처음부터 만만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그는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가 불편한 몸이었다. 땅과 싸우느라 다리뼈도 여러 번 부서졌다.

“아버지가 생선이니 고기니 먹을거리를 사서 주말마다 찾아오셨어요. 그리고 월요일 아침 7시 첫 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셨지요. 9시부터 환자를 봐야 하니까요. 비가 오는 날이면 비닐 포대를 뒤집어쓰고 1.5km를 걸어 내려가셨는데, 마을사람들이 ‘불구새끼를 둬서 친정아버지가 고생한다. 불쌍하다’고 하는 거예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어떻게든 이겨내 꿈을 이루겠다. 10년만 참자’고 다짐했죠.”

젖소 두 마리로 시작한 그의 목장은 그의 다짐대로 최고의 목장이 되었다. 1990년 우리나라 우유로는 처음으로 미군에 납품할 정도로 우유의 품질을 인정받았고, 우량젖소 품평대회인 ‘한국홀스타인 품평회’에서 12번에 걸쳐 챔피언을 차지했다. 우수한 종자를 가려내 품종개량을 하고, 사랑으로 돌본 결과였다. 오랫동안 젖소를 키워보니 잘생기고 품위 있는 소가 우유도 잘 나왔다.

“저는 젖소들에게 하나하나 이름을 붙여줍니다. 죄수도 아니고 1호, 2호, 3호가 뭡니까. 삼월이・사월이・완호 등 모두 이름이 있죠. 딸아이 첫사랑 이름을 따오기도 했어요. 그리고 만날 때마다 다정하게 말을 붙입니다. 젖을 짤 때면 젖소들이 잔뜩 겁을 먹고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이 때문에 유방염에도 걸리기도 하지요. 그런데 ‘엄마 왔다’고 이야기를 걸고 만져주고 마사지를 해주면 편안해합니다. 우유 양도 많아지고요.”


완호가 품평대회에 나갔을 때 그는 한 바퀴 워킹을 하는 완호에게 “완호야 잘해. 엄마 여기에 있어”라고 소리쳤는데, 그때마다 완호가 귀를 쫑긋거리며 들어 사람들이 신기해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정부가 수급안정을 이유로 우유 감산정책을 쓰면서 그는 다시 활로를 고민해야 했다.

“‘젖소부인들 모여라’며 여성낙농조직을 결성해 처음에는 우유빈대떡 등 우유 소비를 촉진하는 방법을 홍보했지만, 한계가 있겠더라고요. 한국낙농육우협회 여성분과위원장도 맡았는데, 이때 만난 일본 낙농학원대학의 안도 고이츠 교수가 새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그분의 바짓가랑이를 물고 늘어졌는데, 저희 목장을 여러 번 찾아와 하나하나 조언해주셨습니다. 일본의 낙농가는 1980년대에 이미 그런 위기를 겪으면서 새로운 수익모델을 찾았다고 하면서요. 둘째 딸도 그분께 보내 공부시켰습니다. 저 역시 요즘 중국 길림성에 가서 낙농기술을 전하고 있습니다. 내가 받은 것을 나눠야 한다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우유를 치즈, 요구르트, 버터 등 유제품으로 만들어 팔면 우유만 생산할 때보다 4~5배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그는 치즈 만드는 법을 배우기 위해 일본・네덜란드・독일・이탈리아 등지에서 단기 강좌를 듣고 둘째 딸을 일본에 유학시켰다. 개별 목장에서도 유가공제품을 생산-판매할 수 있도록 끈질기게 법 개정을 요구해 결국 성사시켰다. 2002년 대산농촌문화상을 받은 그는 유럽 등 외국의 농가들을 시찰하면서 농가의 새로운 수익모델을 찾았다. 스위스나 독일의 경우 소가 7~8마리만 있어도 충분히 생활할 수 있었다. 시골마을에서 조용히 휴식을 취하고 싶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민박사업을 하면서였다. 은아목장의 체험 프로그램은 이를 벤치마킹해 발전시킨 결과다. 은아목장의 체험 프로그램은 젖소에게 여물 주기, 송아지에게 우유 주기, 트랙터 타고 목장 돌기부터 치즈, 우유 넣은 소시지, 아이스크림, 피자 만들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 하룻밤 머물고 가고 싶다면 펜션에서 숙박을 할 수도 있다.

“제가 어릴 적 강한 인상을 받았던 목장의 추억을 요즘 아이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6월의 목장 저녁’이란 프로그램도 시작할 계획입니다. 저녁 6시부터 8시까지 땅거미가 질 무렵 초지에 원탁을 늘어놓고 바비큐와 와인으로 저녁식사를 하는 거지요. 그때쯤이면 아카시아 향이 가득해 정말 좋을 거예요. 얼마 전 와인 마니아 분들이 저희 목장을 찾으셨는데 정말 좋아하셨거든요. 목장에서의 디너 파티뿐 아니라 결혼식, 음악회 등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너무 많아요. 얼마 전 목장 입구에 조그만 카페를 만들었는데, 그곳에서 은아목장의 유제품도 팔 생각입니다. 서울 등 대도시와 중국 등 외국에도 진출해 브랜치를 내겠다는 꿈도 있고요.”


그의 꿈은 점점 더 그 테두리를 넓혀가는 중이다. 은아목장은 내국인뿐 아니라 외국인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매년 3000명 정도의 외국인이 찾아오는데, 4월 한 달만 500여 명이 찾았다 한다. 싱가포르・말레이시아・홍콩 등 목장을 보기 어려운 도시국가 사람들이 특히 좋아한다고 한다.

‘은아목장’이란 이름은 그의 두 딸 김지은・김지아의 이름을 한 자씩 따서 지은 이름. 그 이름처럼 두 딸은 엄마 못지않게 목장 일에 열심이다. 디자인을 전공한 큰딸은 숙명여대 르 코르동 블루에서 제과과정을 공부한 후 ‘은아목장표’ 치즈 케이크, 쿠키 등을 만들어냈고, 둘째 딸은 건국대 축산학과를 거쳐 세계유일의 낙농대학인 일본 북해도의 낙농학원대학에서 공부했다.

“농사짓는 사람들도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면 교육문제 때문에 다들 고민해요. 그런데 저는 ‘농촌에서 자라는 게 아이들에게 더 좋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우리 아이들을 실험대상으로 삼았습니다. 동물 돌보고 집안일 거들면서 성장하면 생명 귀한 줄 알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아이, 사람의 도리를 아는 인간으로 성장할 것이라 생각했죠. 사계절의 변화, 자연재해를 겪으면서 때를 기다리며 인내하는 법도 배우고요.”

새벽 4시 30분이면 어김없이 소를 돌보러 나가는 남편과 그, 그리고 두 딸은 이렇게 착착 호흡을 맞춰가며 강소농의 새로운 모델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 : 김선아
  • 2012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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