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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구잡이로 달리는 영화가 좋아요

영화 〈시체가 돌아왔다〉에 출연한 색깔 있는 배우 김옥빈

영화에서와 달리 여배우 김옥빈(27)은 단정한 단발머리에 캐주얼 차림이었다. 가끔 수줍은 미소년 같은 웃음을 지었지만 어떤 때는 “재미없는 질문은 싫어요”라며 하품이라도 할 기세였다.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에 ‘하핫’ 하며 카페가 떠나갈 듯 웃기도 했고, 스스럼없이 휴대전화의 사진을 보여주며 즐거워하기도 했다. 지루한 것은 못 참는 10대 소녀, 자신의 세상을 자랑하고 누구와든 같이하고 싶어 안달난 여동생, 자기를 성찰하며 전진하는 20대 여성. 이 모든 것을 김옥빈에게서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영화 〈시체가 돌아왔다〉에서 김옥빈이 등장하는 첫 장면은 록음악이 온몸을 울려대는 클럽이다. 핑크색 단발머리에 가죽 재킷, 미니스커트, 망사 스타킹 차림이다. 어디서 마주쳐도 김옥빈은 클럽을 막 빠져나온 ‘펑크걸’일 듯싶다. 김옥빈은 실제로 케이블TV의 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펑크록 밴드 멤버들과 함께 프로젝트 그룹 ‘오케이펑크’를 결성해 노래를 불렀다. 공개된 실제 연인은 록밴드 스키조의 멤버 허재훈이다. 영화 〈박쥐〉에서 그와 함께 작업했던 박찬욱 감독은 김옥빈을 일러 “한국영화의 새로운 종자”라고 말했다. 같은 작품에서 공연한 송강호는 “양식을 하면 죽어버리니까 자연산만 가능한 물고기, 도다리 같은 배우”라고 평했다.

김옥빈 스스로는 “마구잡이로 달리는 영화가 좋다”고 했고 “하드보일드하고 그로테스크한 소설을 즐겨읽는다”고 했다. 한국의 젊은 여배우 중에서 이렇듯 건강하고 도발적이며 에너지가 넘치고, 강렬하며 음영이 뚜렷한 색깔을 가진 스타가 있을까. 무라카미 하루키와 루이스 캐럴의 소설, 김옥빈의 말과 출연작 제목을 빌리자면 그녀는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 온 괴담 같은 소녀 혹은 다세포 여배우’다. 영화 속 펑크 스타일에서 벗어나 얌전한 옷차림으로 마주한 김옥빈은 영화 〈박쥐〉에서 “저 부끄럼 타는 여자 아니에요”라고 했듯 “저 그런 여자 아니에요, 반항기는 지났어요”라고 대꾸하면서도 다른 이들에게 비친 강렬한 이미지를 오히려 반겼다.

“그런 평가를 싫어할 수 없죠. 듣기 좋고 유쾌한 말이에요. 그렇게 강한 인상이 배우로서 손해가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예를 들면 제가 가진 이미지와 완전히 다른 로맨스 영화를 억지로 하고 싶지는 않아요. 저에게 맞는 역할로 찾아주는 작품을 하면 되죠. 저에게 어울리지 않는 인물을 위해 억지로 꾸밀 생각 없어요. 자연스럽게 변신해가는 것이 좋아요.”

〈시체가 돌아왔다〉는 한 시신을 두고 몇 무리의 인간들이 물고 물리는 추격전을 펼치는 액션 코미디 영화다. 자사의 연구원들이 개발한 수천억원 가치의 마이크로 칩을 자신의 피부에 이식해 해외로 도피하려던 기업주가 죽고, 시신을 노린 이들이 쫓고 쫓기는 쟁탈전을 벌인다. 김옥빈은 기업주의 음모로 억울하게 피해와 사고를 당한 연구원의 딸 ‘동화’ 역을 맡아 극중 아버지의 연구소 후배인 ‘현철’(이범수 분)과 소동극에 동참한다. 아버지에게는 엇나가기만 하는 망나니 같은 딸이었지만, 아버지가 회사만을 위해서 일하다가 월급 한 푼 못 받고 교통사고까지 당해 몸져눕자 복수를 대신하고 보상을 받기 위해 나선다. 극중 ‘뼛속 깊이 다크한 소녀’로 소개되는 ‘동화’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월급 몇 십만원을 떼이자 주인의 결혼식장을 찾아가 주례 옆에 선 채 협박을 가하는 소녀다. 억울하거나 지고는 못 사는 인물. 김옥빈을 <여괴괴담4-목소리>(2005년)로 데뷔시키고 이번 작품도 제작한 영화사 씨네2000의 이춘연 대표는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동화는 옥빈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데뷔할 때 제 모습과 동화가 닮아 있죠. 철없고 당돌한 모습이요. 이춘연 대표님이 보시기에 당시 저는 어리고 귀엽고 열정도 있어 보이고 씩씩했던 것 같아요. 영화에선 삼촌뻘인 현철에게 반말로 ‘틱틱거리기도’ 하고 말도 안 되는 작전을 하자고 떼를 쓰기도 하는 장면에서 제 예전 모습이 연상됐나 봐요.”

시나리오는 보자마자 역할을 떠나서 너무 웃겨 자지러질 정도였다. 김옥빈은 “끝을 알 수 없게 마구잡이로 달리는 영화를 좋아하는데 이번 작품이 꼭 그랬다”며 “책(시나리오)을 읽고 다음날 감독님께 전화해서 꼭 이렇게 만들어줘야 한다고 했다”고 전했다. 돌이켜보면 전작들의 역할도 어디 한 군데 평범한 구석이 없다. 〈고지전〉에서는 한국전쟁 당시 전선에서 “총소리가 들린 후 2초 후면 누군가가 고꾸라진다”는 공포의 북한 저격수 역할을 맡았다. 〈박쥐〉에서는 오갈 데 없는 자신을 거둬 기른 여자의 병약한 아들과 짝을 맺는 여인으로, 뱀파이어가 된 신부(송강호)를 유혹해 타락시킨다. 애완견으로 자랐으나 암늑대의 발톱을 갖고 있고, 육질의 관능과 사탄의 매혹을 한몸에 지닌 여자였다. 기성세대에겐 해괴망측하다 할 웹툰 원작의 영화 〈다세포소녀〉에선 원조교제로 가족을 부양하는 ‘가난을 등에 업은 소녀’로 등장했고, 〈여괴괴담4〉에선 목소리로 떠도는 여고생 혼령이었다.

“무난하지 않아서 더 좋아요. 똑바로 가면 재미없잖아요? 주위 분들이 저한테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고 하세요. 제가 ‘똥고집’이 만만치 않거든요, 욕먹을 짓도 있었고. 배우가 돈을 벌어야 하는데 광고가 들어와도 콘티가 마음에 안 들면 싫다고 우기기도 하니. 하하”

2년 전 〈박쥐〉 때 김옥빈의 말이다. 이번에는 반성과 결의를 앞세웠다. 1년에 평균 한 편, 젊은 배우로는 뜸한 편이다. 김옥빈 스스로도 알고 있다.

“이번 영화를 끝내고 나서는 ‘현장 경험이 너무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부터라도 바쁜 배우가 되고 싶어요. 현장에서 남은 20대를 보내야죠. 물론 30대는 더 바빠야겠죠.”

인터넷 포털사이트에는 김옥빈에 대해 “합기도 3단에다 태권도가 2단, 무에타이와 권투도 취미 삼아 배웠다” “양손을 똑같이 능숙하게 쓸 수 있고, 체스가 취미” “이상형은 할리우드 스타 조니 뎁”이라고 쓰여 있다. 사실 확인을 부탁했다.

“여름에는 수영이나 수상스키를 즐기곤 했지만 지금은 잘 못해요. 오히려 여행을 가거나 집에 틀어박혀 있는 걸 더 좋아하죠. 겨울이면 아는 분들이 ‘우리 스노보드 한번 타러 가야지’ 하시는데, 저 이제까지 스키장에 한 번도 안 가봤어요. 태권도나 합기도 단수도 맞고 양손을 모두 자유롭게 쓰는 편이고, 체스는 어릴 때부터 삼촌들하고 잘 뒀어요. 아, 이상형은 바뀌었어요. 제임스 맥어보이요.”

그러면서 김옥빈은 자신의 휴대전화 화면에 떠 있는 제임스 맥어보이 사진을 보여줬다. 〈원티드〉 〈엑스맨-퍼스트클래스〉 등으로 유명한 할리우드의 젊고 잘생긴 스타다. 그러다가 얼른 휴대전화를 수습하며 “남자친구가 알면 삐치는데”라며 웃었다. 김옥빈은 팝이나 록에 관한 한 마니아 수준의 귀와 취향을 갖고 있다. 그래서 몇 개월 전 케이블TV 음악 채널의 록밴드 결성 리얼리티 쇼에도 기꺼이 참여했다.

“호기심과 순수한 열정으로 하게 됐죠. 재밌겠다, 죽이겠다 싶은 생각에 선뜻 나섰는데, 제가 음악을 좋아해서 하는 것과 방송을 위해 하는 것은 다르더라고요. 시간 압박과 스트레스 때문에 후유증이 오래갔어요. 그래도 좋은 친구들을 알게 됐고, 작사나 음반 녹음, 무대공연도 경험 했어요. 음악을 하는 사람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됐고요. 다시 해보겠느냐 하면 방송 프로그램을 끼지 않고 순수하게 음악만을 해보고 싶어요.”

요새 김옥빈은 올드 댄스음악에 푹 빠져 있다. 다시 휴대전화를 꺼내 70년대 말~80년대 초 디스코 열풍의 주인공 중 하나인 4인조 여성그룹 ‘놀란스’의 사진을 보여준다. 국내엔 ‘섹시 뮤직’으로 잘 알려진 밴드로 김옥빈은 운전할 때, 집에서 혼자 있을 때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춘다고 했다. “바람 잔뜩 든 파마 머리에 일명 ‘나팔바지’를 입은 기분으로, <토요일밤의 열기>의 존 트라볼타가 된 느낌으로” 말이다. 김옥빈은 솔직하고 꾸밈없는 성격 때문에 한때 안티팬들의 공격도 받아야 했다.

“성격 때문에 힘든 때가 있었죠. 배우, 연예계 생활이 맞지 않는 게 아닐까 의심도 많이 했고요. 다른 배우들은 어떨까 궁금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의외로 저 같은 사람이 많아요. 배우는 외향적일 것이라고 많이들 오해하시는데 우리나라뿐 아니라 할리우드나 외국 스타들도 연기할 때는 천생 배우지만 현장만 빠져나가면 실제는 내성적이어서 방송이나 다른 일은 잘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배우들이 연기할 때의 모습과 일상에서의 다른 면을 팬들이 인정해줬으면 해요.”

김옥빈에게 배우란 여전히 어린 시절 동경했던 환상 속 존재다. “홍콩영화에서 휙휙 날아다니던 임청하, 멋진 드레스를 입은 장만옥을 보면서 마치 배우란 하늘하늘한 옷을 입은 바비인형같이 아름다운 존재로 느껴졌다”며 “TV나 영화에 나오는 신비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늘 자신감 넘치는 김옥빈이지만 정작 스스로는 배우라는 호칭을 영 어색해하고 부끄러워했다. “아직도 ‘나는 배우다’라고 하기는 민망하다”고 했다. “배우로서의 자질은 데뷔 이후에도 늘 의심해왔고 그것이 사라진 것은 〈박쥐〉 때”라며 “자신감도 생겼고, 진짜 배우가 되고 싶다는 열망도 생겼다”고 말했다. 1년에 한 편 할 정도로 뜸했지만 “내가 출연한 영화 DVD를 보여주며 자랑할 수 있을 정도로 작품 활동을 많이, 열심히 하고 싶다”고도 했다.

김옥빈은 “에너지 넘치는 잡식성 배우가 되고 싶다, 다량섭취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옥빈은 차기작으로 〈시라노 연애조작단〉을 제작한 김현석 감독의 〈AM 11:00〉에 출연할 예정이다.

사진 : 김선아
  • 2012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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