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FC 코리안탑팀 정찬성 선수

‘7초 드라마’로 한국인의 투지와 강인함 알린 ‘코리안 좀비’

2011년 12월 11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세계 최대 종합 격투기대회인 UFC(Ultimate Fighting Championship)가 열렸다. 이 대회의 페더급(66㎏ 이하) 경기에서 ‘코리안 좀비’ 정찬성(25・코리안탑팀)이 승리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정찬성의 상대 마크 호미닉은 페더급의 강자로 손꼽히며 챔피언을 노리는 캐나다 선수였고, 에어 캐나다 센터를 가득 메운 캐나다 관중들은 정찬성에게 야유를 퍼부었다. 정찬성의 한국 팬들조차 그가 적지에서 호미닉을 이길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선수들의 투지와 관중들의 열기가 최고조로 치닫는 가운데 경기가 시작됐다. 호미닉은 거침없이 정찬성을 향해 왼손 훅을 날렸다. 이를 가볍게 피한 정찬성은 곧바로 오른 주먹으로 반격했고 호미닉은 나동그라졌다. 쓰러진 그의 얼굴 위로 정찬성의 주먹세례가 이어졌다. 심판은 황급히 경기를 중단시켰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7초. 눈 깜빡할 사이 벌어진 정찬성의 KO 승리였다. UFC 역대 최단 시간 경기 타이 기록이다. 두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 없는 마법 같은 7초였다. 정찬성에게 호미닉과의 경기 전 어떤 심경이었냐고 묻자 그가 씩 웃으면서 답했다.

“저는 이길 거라고 생각했는데 남들은 그렇게 생각 안 했겠죠. 전 항상 제가 이길 거라는 생각으로 시합을 해요.”

다부진 몸과 날카로운 눈매가 인상적인 이 스물다섯 살 청년은 겸손하면서도 당찼다. 그는 이 역사적인 경기로 인해 대중에게 알려졌고 그의 말을 빌리면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거액의 상금도 손에 쥐었다. ‘7초의 기적’ 뒤에는 오랜 고생의 시간이 존재했다. 열일곱 살에 운동을 시작한 이후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미국 진출 전인 21~23세 때였다. 그를 가장 괴롭힌 것은 경제적인 어려움이었다. 대구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운동을 계속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지만 수중에는 돈이 없었다. 3000원짜리 도시락으로 허기를 때우고 낮에는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고 밤에는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노래방, PC방, 술집, 편의점, 놀이동산 등 안 해본 일이 없다고 한다. 잠은 체육관이나 친구 집에서 얹혀 잤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연승 가도를 달리던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미국의 종합 격투기 단체인 WEC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온 것이다. WEC에서 치른 레오나르도 가르시아(미국)와의 1차전은 그의 격투기 인생을 바꾸어놓았다. 데뷔 무대에서 정찬성은 한 치도 물러서지않는 격렬한 혈투를 벌였다. 눈을 뗄 수 없던 흥미진진한 경기였고 3라운드를 모두 마치고 나서도 패자를 예측할 수 없을 만큼 비등한 대결이었다. 정찬성은 그날 석연치 않은 판정패를 당했다.

“당시엔 분했죠. 시합이 끝나고 당연히 이겼다고 생각해서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은 사람들을 말하려고 준비까지 다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 경기로 인해 제가 지금 미국에서 먹고사는 거예요.”

그의 투지 넘치는 경기는 미국인들에게 아무리 쓰러져도 끈질기게 다시 일어서는 ‘코리안 좀비’의 존재를 각인시켰을 뿐만 아니라 동정표까지 더해져 정찬성의 인기에 불을 지폈다. 하지만 시련은 다시 찾아왔다. WEC 두 번째 경기에서 만난 조지 루프(미국)에게 데뷔 첫 KO패를 당하며 2연패를 기록한 것이다. 이후 그를 향한 대중의 관심은 눈에 띄게 줄면서 퇴출 위기까지 닥쳤다.

다행히 WEC를 인수・합병한 UFC는 정찬성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줬다. 상대는 데뷔전에서 만난 가르시아였다. 정찬성은 가르시아와의 2차전에서 UFC 사상 최초로 ‘트위스터(허벅지와 목뼈를 감고 반대로 비트는 기술)’를 사용한 탭아웃(기권)승을 얻어내며 1차전의 설욕을 풀었다. 이 경기로 그는 미국 스포츠 채널 ESPN이 뽑은 ‘올해의 서브미션상(상대가 경기를 포기하는 것)’을 수상했고 다시 한번 이름을 떨쳤다. 그리고 이어진 ‘7초 드라마’로 UFC 연승 행진을 이어갔다.

정찬성은 경기를 치르며 성장해왔다. 그는 2연패를 통해 부담감을 이기는 법을 배웠기 때문에 현재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관심과 기대에 큰 부담감을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두 차례에 걸친 가르시아와의 경기에서는 싸움이 아닌 스포츠를 하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전에는 ‘쟤를 죽여야 내가 산다’는 생각으로 싸웠어요. 이 생각이 시합에서 항상 먹혔고요. 그런데 수준 있는 무대에서는 이게 안 먹히더라고요. 제가 가르시아와의 경기에서 졌을 때 느낀 것이 저는 싸움을 하고, 상대는 스포츠를 한다는 것이었어요. 가르시아와 2차전을 할 때부터 저도 스타일을 많이 바꾸었죠. 상대를 차분하게 ‘요리하겠다’는 생각으로 상대 선수의 시합 영상을 보면서 움직임을 연구한 뒤 제가 준비한 기술을 씁니다.”


올해 그의 목표는 챔피언이다. 그에게는 지금 당장 페더급 챔피언 조제 알도와 붙어도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모두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해도 자신만은 항상 스스로를 믿는 것, 그것이 정찬성의 원동력이고 팬들이 열광하는 ‘의외성’의 원천이다.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 세계무대에 당당하게 선 그이지만 아직은 20대 중반, 다른 길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나이다. 또래 친구들의 평범한 삶이 부러울 때가 있는지 물었다. 그는 운동이 너무 힘들거나 부상을 입었을 땐 그런 생각이 든다고 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오히려 자신처럼 살아보고 싶을 것 같다며 웃었다.

“세계가 다 지켜보는 자리에서 내가 제일 강하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는 것은 남자로서의 로망이랄까요. 제가 세다는 걸 공식적으로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과연 그랬다. 사람들이 그의 ‘7초 드라마’에 열광한 이유는 한국인의 신체적 불리함과 국내 격투기 종목 시스템의 열악함을 극복하고 서양인들과 순수하게 힘으로 맞대결해 이겼다는 사실에 있었다. ‘코리안 좀비’는 한국 남자들을 대표해 한국 남자의 투지와 끈기 그리고 강인함을 전 세계에 보여준 셈이다. 그는 더욱 성공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바람은 자신을 보며 격투기의 꿈을 키우는 사람이 더 많이 나오고 나아가 한국에서 격투기의 저변이 넓어지는 것이다.

“중고등학생들에게 꿈을 물어보면 검사, 판사, 대통령 되겠다는 사람은 많지만 UFC 선수가 되겠다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저를 보고 격투기를 잘하면 저렇게 잘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사진 : 김선아
  • 2012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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