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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 서서 빵 사가는 작은 동네빵집

[음식 칼럼니스트 이용재가 찾은 맛] ‘오월의 종’ 베이커리 정웅 제빵사

설 연휴가 막 끝난 금요일, 이른 새벽에 길을 나섰다. 빵 만드는 과정을 처음부터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아직 어둑한 새벽이지만 빵집은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오전에 찾아오는 손님을 맞기 위해서다. 하나의 빵을 굽는 데는 적어도 세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제빵사의 첫 번째 덕목은 부지런함이다. 이태원에 있는 ‘오월의 종’ 베이커리 앞에 다다르자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참으로 시기적절한 눈이었다. 처음 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그가 눈을 화제로 삼았던 기억이 아직도 선하기 때문이다.

“중학교 2학년쯤, 집을 나와 깊은 산속 기도원에서 머무른 적이 있습니다. 눈이 펑펑 내리던 어느 날, 옆 기도실에 있는 할아버지가 빵을 먹겠느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산골짜기 기도원에서 빵이라니, 처음에는 개떡 같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함석을 잘라 즉석에서 틀을 만드시더니, 장작불을 때서 식빵을 구워주셨지요. 눈이 펑펑 내리는 가운데 먹었던, 그 따뜻한 식빵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었어요.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고민하던 시기에 그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바로 그 눈처럼 고운 밀가루가 하나의 빵으로 완성되는 과정은, 고되면서도 섬세한 몸놀림과 기다릴 줄 아는 지혜 사이의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다. 발효 때문이다. 빵의 푹신 또는 쫄깃한 식감을 책임질 뿐만 아니라 특유의 감칠맛을 불어넣는다는 측면에서 발효는 제빵의 핵심이다. 재료의 배합과 반죽, 그리고 온도와 습도 조절을 통해 효모가 발효할 수 있는 최적의 여건을 마련해주는 건 사람의 몫이고, 이후 과정은 효모의 몫이다. 거기에 굽기 위해 뜨거운 열과 씨름하는 과정까지 감안하면 잘 만든 빵 한 덩이는 장인의 손에서만 태어난다.

“설 연휴 잘 지내셨느냐”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평소 일이 워낙 고되니 연휴에는 좀 쉬셨느냐는 의미를 담은 물음이었다. “빵쟁이가 뭐하겠어요. 나와서 빵 만들었지.” 사흘 연휴 동안 계속 나와 새로운 빵 레시피를 시험해보았다는 것이다. 그는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빵을 만들다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림을 그리거나, 그도 아니면 결국 또 빵을 만들어요. 영업이 끝나고 난 밤 시간에 혼자서 차분하게 예전에 만들어보지 않은 빵들을 만들어봅니다. 집중해서 빵을 만들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고 마음이 차분해지거든요. 결국 ‘아, 내가 할 일은 빵 만들기구나’라는 결론을 다시 한번 내리게 됩니다.”


늦깎이로 제빵에 입문한 그가 그만의 색깔을 지닌 빵으로 인정받게 된 비결이다. 오월의 종, 빵집 치고는 독특한 이름의 유래를 물어보자 좋아하는 비지스의 노래 〈First of May〉에서 ‘May’를 따와서 붙이려는데 비슷한 이름의 중식당이 있어 혼선을 피하고자 ‘종’을 붙였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빵을 향한 그의 여정 또한 독특한 구석이 있다.

“고등학교 때 미술을 했는데, 이런저런 여건 때문에 미술로 진학하지 못했습니다. 공대를 졸업하고 장교로 군 복무를 하게 되었지요. 군에 몸담을 계획을 세웠지만 그 또한 사정이 여의치 않아 전역 후 시멘트회사에 취직했습니다. 처음에는 연구소에 있었는데, 내성적인 성격을 고쳐보겠느냐는 권유에 영업을 시작했고요. 5~6년을 하고 나자, 앞으로도 계속 똑같은 일만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빵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멀쩡한 직장을 그만두고 빵을 배우겠다고 했으니, 주변 사람들의 반대 또한 만만치 않았다.

“가족도 가족이지만, 시멘트회사 사장님이 이해를 못 하셨어요. 6개월 동안 사표 결재를 해주지 않으셨죠. 회사뿐 아니라 학군단 선배님이자 인생 선배로 형님처럼 따르던 분이라 남자의 의리를 생각해서라도 꼭 설득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회사를 떠날 때까지도 제 결정을 지지해주지 않으셨죠. 결국 3년 후 가게에 들르셔서는 제가 구운 빵을 드시고 ‘이해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리고는 격려금이라며 빳빳한 1000원짜리 지폐로 100만원을 주셨습니다.”


형님. 정웅 제빵사 또한 함께 일하는 두 명의 식구들에게 바로 그러한 존재다. “정말 형님처럼 잘 가르쳐주세요.” 잠시 화장실에 가기 위해 그가 자리를 비웠을 때, 좋은 기회다 싶어 직원들에게 그에 대해 물어보자 두 사람은 입을 모아 그렇게 대답했다. 빵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반죽부터 두 번의 발효, 굽기에서 포장까지 세 사람의 손발이 정말 착착 맞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새벽부터 오전 11시까지 장시간에 걸친 제빵의 여정에서, 역할은 조금씩 바뀌지만 세 사람의 호흡만은 전혀 흐트러지지 않는다. 믹서며 발효기, 오븐 등 덩치 큰 기계에 대부분의 자리를 내준 공간, 말 대신 반죽 치대는 소리, 타이머 소리만이 메운다.

“한 가지 일만 맡기지 않고, 전체 공정에서 조금씩 역할을 바꿔가며 일할 수 있도록 배려합니다. 그래야 큰 그림을 파악하고 빨리 배울 수 있죠. 훗날 자기 가게를 내더라도 더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그는 함께 일하는 식구들에 대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늦게 시작하다 보니 빵을 배우는 것 자체도 쉽지 않았어요. 전문 과정에서는 나이가 많다고 받아주지도 않으려 했죠. 우여곡절 끝에 1년짜리 전문 과정에서 배운 뒤 소개를 받아 다른 곳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나이 때문에 받아주지 않을까 걱정해서, 개의치 말고 가르쳐달라고 어린 사람들에게 이야기했지요.”

호흡이 착착 맞는 움직임 가운데 사방이 밝아오면서 오전 10시가 되자 슬슬 오늘의 빵이 나오기 시작한다. 밤새 텅 비어 있던 빵바구니를 하나, 둘씩 빵이 채우기 시작한다. 그러나 빵바구니들이 완전히 채워지는 경우는 드물다. 정식 영업시간 전부터 마음 급한 손님들이 부지런히 드나들기 때문이다. 10시 30분부터 시작된 손님의 행렬이 두 시간 넘게 이어진다. 때때로 관광버스가 가게 앞에 멈춰 서고, 일본인 관광객들이 발을 들인다. 빵을 받아들자마자 입에 넣고는 “오이시이~”를 연발한다. 근처 대사관이며 외국인 손님들도 빵바구니를 들고 계산 차례를 기다린다.

“자신만의 빵을 굽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식구들에게도 그렇게 이야기하지요. 여느 빵집들 것과 다른 빵을 구워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요. 레시피도 다르지만, 빵은 평균보다 10~20℃ 높은 온도에서 굽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짧은 대신 껍질은 훨씬 더 색이 짙으면서 딱딱하죠. 이태원으로 이사오기 전에는 일산에서 오월의 종을 꾸렸었는데요, 빵이 오래되어 굳은 거 아니냐고 항의하는 손님도 종종 있었습니다.(웃음)”

오후 세 시가 넘자 애초에 가득 채워질 기회조차 못 가졌던 빵바구니가 대부분 다시 바닥을 드러낸다.

“빵이 얼마 없네요, 죄송합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들의 눈에 가득한 아쉬움을 읽는 그의 인사말이다. 그러고는 맛이나 보시라며 남은 빵을 손에 쥐여준다.

“항상 빵은 생명이라는 이야기를 하세요. 그렇게 다뤄야 한다는 의미겠지요.” 식구들이 귀띔해준다. 우리의 전통음식 김치처럼 미생물의 발효가 완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빵 또한 생명을 다루는 중요한 작업이다. 오늘도 ‘오월의 종’에서는 그렇게 섬세한 마음으로 완성된 빵이 바구니를 채우고 있다.

사진 : 김선아
  • 2012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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