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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나의 연애 이야기, 들으실래요?

외고, 서울대, 로스쿨 출신의 뮤지션 버벌진트

“좋아 보여 잘 지내나봐 헤어스타일도 바꿨네 역시 태가 나 예쁜 얼굴이니 뭘 해도 어울리지…”
새벽 2시 일기장에나 끄적일 법한 가사. 가수 버벌진트의 ‘좋아 보여’는 매력적 멜로디와 솔직한 가사로 화제가 됐다. 외고와 서울대, 로스쿨을 거친 연예계의 대표적 고학력자로 알려진 그는 최근 현대카드, LG전자 등 각종 광고에서 성우로 활약하고, 예능 프로그램에도 종종 얼굴을 내민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버벌진트는 뮤지션이다. 이것은 그와 음악의 연애담이다.
첫..만.남., 내겐 너무 완벽한 그녀

“어렸을 때는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완벽한 여자였어요. 흐트러짐과 질서가 황금비율로 갖춰진. 너무 우월해서 몰래 닮고 싶었던 그런 여자.”

그 여자는 바로 음악이다. 버벌진트는 초등학교 1학년 때 부모님 손에 이끌려 처음 피아노를 배운다. 초등학교 6년간 피아노를 쳤지만 그다지 연주에 재능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한껏 차려입고 나간 콩쿠르에선 예선 탈락이었다.

“클래식보다 대중음악에 관심이 갔어요. 서태지, 현진영, 듀스 같은 가수들이 좋았어요. 자연스럽게 AFKN 라디오에서 팝 음악도 많이 접했죠. 그 관심이 조금 심했어요.”

라디오를 끼고 살았던 그는 음악 수집욕이 강했다. 팝 음악에 심취하면서 직접 곡을 만들고 싶어졌다. 중학시절엔 다시 피아노를 독학하면서 팝 음악을 베끼기도 하고, 기타로 어설픈 작곡도 했다. ‘스매싱 펌킨스’ 같은 외국 밴드에 대한 동경이 강했다. 외고에 입학해서는 자연스럽게 학교 밴드부에 들어갔다. 영어과・독어과 등 과별로 밴드가 있던 밴드춘추전국의 학교에서 그의 밴드부가 제일 잘했다. 그러나 작곡에는 항상 만족하질 못했다. 외국의 10대 밴드를 보면서 ‘언제쯤 어설픈 작곡을 벗어나서 프로다운 음악을 할 수 있을까’ 매일 고민했다. 그에게 음악은 완벽한 여자였다. 범접하기 힘든, 그러나 항상 닮고 싶은 완벽한 동경의 대상.


관.계.의..발.전., 이제는 나를 좀 알리고 싶어

1998년 KBS에서 방영된 다큐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를 보면 한 고등학생이 라디오 랩 콘테스트에서 진행자들을 놀라게 하는 랩을 한다. 그가 바로 버벌진트다. 그 랩이 그의 첫 랩 가사였다. 대학입시에 불리해 외고 자퇴열풍이 불던 1998년, 버벌진트도 자퇴를 결심한다. 그렇다고 학업을 포기하고 음악에 올인했다는 흔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공부를 포기함으로써 제가 하는 음악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싫었어요. 학교는 그만뒀지만, 음악을 하면서도 성적이나 입시공부가 필요하다면 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언제나 자신감은 있었어요.”

독학으로 서울대에 진학한 뒤에는 좀더 자유롭게 음악활동을 할 수 있었다. 대학시절 PC통신을 통해 한 흑인음악 동호회에 가입했다. 그 동호회는 그의 터질 것 같은 음악욕(欲)에 기폭제가 됐다. 음악 이야기를 언제나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고, 뜨거운 창작에의 열정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다. 진지함이 부족한 인디밴드 생활에서는 재미를 느끼지 못하던 그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힙합 음악을 시작했다. 버벌진트는 당시 국내 힙합 팬들 사이에서 이슈였다.

“지금 보면 유치하지만, 그때는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어요. 단순히 외국의 랩 음악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작가 정신을 가지고 음악에 진지하게 임하는 걸 보여주고 싶었죠. 그 과정에서 까탈스러운 트러블메이커로서의 이미지가 생긴 것 같아요.”

한국 힙합계에 다소 불편하게 등장한 버벌진트.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완벽한 그녀(음악)에게 자신의 이름을 확실하게 새겼다.


본.격.적.인..연.애., 잘나가는 그녀에게 어울리기

“말하자면 그녀가 엄청 잘나가는 여자인 거죠. 그래서 제가 가진 것보다 더 있어 보이려 노력하고, 더 좋은 옷을 입어야 하고, 더 세고 멋있는 척해야만 했던 거예요.”

군 제대 후 평범한 대학생으로 살아가던 그에게 어느 날 솔깃한 제안이 왔다. 중학시절부터 동경했던 015B의 곡 작업에 참여하겠냐는 것이었다. 그는 흔쾌히 수락했고 015B의 ‘그녀에게 전화 오게 하는 방법’이 탄생했다. 당시 015B의 10년 만의 컴백 앨범이기도 해서 반응이 뜨거웠다. 사람들은 물었다. “도대체 버벌진트가 누구야?”

버벌진트는 본격적으로 대중에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서울대 엄친아 래퍼’ 등의 수식어가 따라붙기 시작했다. 015B의 회사에서 첫 메이저 앨범인 Favorite EP도 발매했다. 그는 자신이 가진 모든 역량을 발휘해 만들었지만 반응은 좋지 않았다. 힙합 팬들은 랩이 아닌 ‘가요’를 만든 그를 변절이라며 외면했고, 가요 팬들에게서도 뜨거운 반응이 일지는 않았다. 불만이 많은 시절이었다. 그는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곡을 써내려갔다. ‘무명’과 ‘누명’, 제목부터 ‘까칠하고’ 불만이 가득한 앨범들이 나왔다. 트러블메이커의 복귀였다.

“이젠 어느 정도 친해졌다 생각했는데도 편하지 않은 관계였던 거예요. 그래서 더 힘주고, 잘 보이려고 포장하고, 더 멋있어 보이려 했죠. 마치 여자 친구의 잘난 친구들을 만나는 자리에 가는 것처럼.”


좀.더..편.한..만.남.으.로., 솔직하게, 자연스럽게

“이제는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음악)이 좋아요. 자연스럽고 편하게 만나기로 태도를 바꾸었어요. 긍정적이 됐죠.”

불편한 만남은 소모적이었다. ‘까칠한’ 음악 덕에 소위 안티도 많이 생겼다. 여러 사람과 디스(Diss, 랩을 통해 남을 비방하는 것)가 오갔다. 대학 졸업 후 입학한 로스쿨 생활도 쉽지 않았다. 평범한 생활을 기대하고 입학한 터라 치열하게 살아가는 분위기에 섞이지 못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람 몇몇이 세상을 떠났다. 그의 두 영웅이었던 노무현과 마이클 잭슨이다.

“저에게 의미가 컸던 인물들이에요. 그분들이 떠난 뒤 허무감이 밀려오더라고요. 왜 이렇게 부정적 에너지에만 집착할까. 왜 로스쿨에 와서 힘겨워할까. 이제는 긍정적이고 생명력 있는 노래를 하고 싶어요.”

그는 어깨 힘을 빼고 초심으로 돌아갔다. 어느덧 서른이 된 자신을 돌아보는 ‘원숭이띠 미혼남’과 현실적 연애담 ‘좋아 보여’ 등이 실린 앨범 는 그렇게 나왔다. 버벌진트는 이제 솔직함과 긍정을 노래한다. 더 많은 사람이 즐겨줄 것이라는 자신감도 있다. 오는 3월에는 첫 번째 전국투어 콘서트를 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음악과의 연애는 어떻게 될 것 같으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이제는 편하기 때문에 제멋대로 하고 싶어요. 어리광도 부리고 제 맘대로 하면서 가끔씩은 챙겨주기도 하는. 나쁜 남자 스타일로요.”

사진 : 김선아
  • 2012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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