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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인문학은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사유의 힘을 길러줍니다

대중 철학자 강신주

가장 두려운 악인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존재하는 한 죽음은 우리와 함께 있지 않으며, 죽음이 오면 이미 우리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죽음은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 모두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산 사람에게 아직 죽음이 오지 않았고, 죽은 사람은 이미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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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로스,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내는 편지〉 중


사실 영원히 살 수 없다는 점에서 우리는 누구나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살아 있는 동안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오직 그럴 때에만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언젠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두려움으로 아름다운 자태와 향내에 소홀한 꽃을 본 적이 있는가. 인간이 이름 모를 꽃보다 어리석어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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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필요한 시간》 중
강신주는 ‘대중 철학자’ ‘현장 철학자’로 불린다. 어려운 철학 이론을 대중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 쓰고, 대학 강단이 아닌 각계각층의 다양한 대중을 대상으로 강연을 펼친다고 해서 생긴 수식어다. 그는 철학 분야에서 단연 첫손 꼽히는 베스트셀러 작가다. 한 대형서점 철학 코너에는 강신주의 책이 무려 6권이나 진열돼 있다.

그를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든 책은 2011년 2월 출간한 《철학이 필요한 시간》이다. 철학서로는 드물게 출간한 지 1년도 안 돼 5만 부가 팔렸다. 인간의 본성은 상처받기 쉬우므로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숙명적인 상처의 화두를 철학적으로 풀어낸 이 책은 심리학 저서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상처를 어루만진다. 삶의 근원적 모순에 부닥쳐 힘겨워하는 이들에게 폭넓은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철학책을 읽지 않던 사람들이 철학책을 집어 들었고, 그의 전작들이 다시 조명받았다.

지난 10년간 그가 쓴 철학서는 무려 20여 권에 이른다. 연세대에서 〈장자철학에서의 소통의 논리〉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동양철학을 전공했지만, 서양철학과 국내외 고전, 현대시를 섭렵하며 인문학의 세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다루는 깊이 또한 천차만별이다.

‘인문학 카운슬링’이라는 부제를 단 《철학이 필요한 시간》이 입문 편에 속한다면, 김수영・김춘수・황지우・기형도 등 우리나라 현대 시인을 들뢰즈・푸코・사르트르 등 서양의 현대 철학자들과 비교한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이나 이 책의 후속 편인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은 그보다 조금 더 인문학적 깊이를 요구한다. 또한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가’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 공동체가 가능한가’의 명제를 각각 공자 vs 묵자, 양주 vs 한비자의 철학으로 설명하는 《철학 vs 철학》은 900페이지가 넘는 책으로 한층 더 집중도가 요구된다. 최근작인 《제자백가의 귀환》은 본격적인 철학서다. 총 12권 출간할 예정인데 현재 1, 2권 출간된 상태이며, 2014년 완간할 예정이다.

강신주는 상아탑에 갇힌 철학을 현실 무대로 불러낸다. “인문학의 목적은 인간의 행복이고, 인문학은 인간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삼는 학문”이라는 그는, 철학을 인간의 풍요로운 사고를 위한 도구 내지 틀로 본다. 역사 속에 사장된 학문이 아니라 현재의 고민과 상처를 해결하고 새로운 삶의 규칙과 논리를 제시할 수 있는 학문이야말로 진정한 철학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그는 인문학 주치의 역할을 자처한다. 인간의 상처를 직시하고, 그 상처를 치유할 사유의 힘을 길러주는 철학서를 쓴다.

상처의 크기와 종류는 제각각이다. 사랑과 이별로 인한 상처나 소통 부재로 인한 상처 등 개별적인 상처부터 무한경쟁과 약육강식이 난무하는 시대의 상처까지. 전자의 상처를 《철학이 필요한 시간》에서 다룬다면, 후자의 상처는 《제자백가의 귀환》에서 다룬다. 《철학이 필요한 시간》의 경우, 삶의 실제적 고민을 먼저 정한 후 이 고민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철학자의 사상을 나중에 적용했다.

주치의로서의 역할은 강연 현장에서도 이어진다. 그는 대중 강연에 강하다. 청중의 관심사와 상처를 파악하고 그에 맞게 맞춤 강연을 한다. 강연 도중 강연 주제가 잘 먹히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주제를 확 바꾼다. 그는 “몇 마디 말을 섞어보면 5분 안에 청중의 전체적인 경향과 정신 상태, 몇몇 위험인물이 보인다”고 했다. 그에게 강연 요청을 하는 곳은 다양한데, 부르면 무조건 달려가는 곳이 있다. 바로 고등학교와 자신의 책을 끝까지 다 읽은 독자들이다.

“고등학생들은 강연의 효과가 커요. 마치 부채와 같아서 이만큼 말하면 저만큼 퍼지면서 반응하죠. 학생들에게는 주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강연 도중 우는 아이도 많아요. 고통이 없는 사람에게는 인문학이 잘 안 먹혀요. 인문학은 온실의 유리를 깨고 태양과 바람을 맞으면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거니까요. 제 책을 다 읽은 사람들이 부를 때도 꼭 가려 합니다. 책은 말을 거는 거잖아요. 말을 걸었으니 대화를 주고받아야죠.”

요즘 그의 스케줄을 보면 스타 철학자로서의 인기가 실감 난다. 인터뷰 당일에도 그는 오전과 오후에 강연이 각각 있고, 출판사 관계자 미팅이 두 건 있다고 했다. 하루 평균 수면시간은 3~4시간. 어떻게 전화번호를 알았는지 밤늦게 전화해서 고민 상담을 해오는 독자도 있고, 술 취해 넋두리를 늘어놓는 독자도 있단다. 그는 “강연 도중 코피를 흘린 적도 있다”며 “그건 내 자긍심이에요”라고 말했다.

그를 철학자의 길로 이끈 건 ‘애정 결핍’과 강한 ‘호승지심(好勝之心)’이다. 경남 함양 출신인 그는 가난한 집안의 2남1녀 중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의 부모는 상경해 쪽방을 하나 얻어 온 가족이 바글거리며 살았다. 어머니는 늘 부업에 묻혀 사느라 자식들 옷 갈아입힐 여유가 없었다. 비염이 있어 콧물을 줄줄 흘리고, 옷도 자주 못 갈아입어 온 소매가 콧물로 반질반질하던 그는 아이들의 기피대상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여자 짝꿍 부모의 요청으로 1주일 만에 자리를 바꾼 적도 있다. 관심과 애정은 그에게 사치였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사랑받지 못하는 외로운 소년이었다.

그러다 전환의 계기가 생긴다. 특활로 택한 독서반에서 써낸 글이 서울시교육청에서 상을 받은 것. 그는 조회 시간에 전교생 앞에서 그 글을 낭독했다. 그리고 교실에 들어오자 자신이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 아이들의 시선이 달라지고,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 알았다. 글을 쓰면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애정 결핍은 그에게 글쓰기의 동력이다. 그는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을 때 글을 더 많이 쓴다고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유난히 가슴이 허하던 2011년 그는 결막염까지 얻어가며 다섯 권의 책을 썼다.

전공을 선택할 때에도 가난이 벽이 됐다. 사회학과를 가고 싶었지만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그의 부모는 그를 공대에 보냈다. 연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유공(현 SK)에 입사했다. 하지만 몸이 거부반응을 보였다. 그는 “정전기가 점점 심해져서 문고리도 잡기 힘들 정도가 됐다”고 했다. 입사한 지 4년 6개월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인문학으로 돌아왔다. 대학원에서 동양철학 책들을 탐독하면서 심리적 안정감을 찾았다. 그에게 공학의 세계는 일종의 도피처다. 정답도, 해법도 정해지지 않은 인문학의 세계와 달리 답이 딱 떨어지는 공학의 세계는 명쾌했다.

그는 “우울하면 열역학 문제를 푼다”며 “세상이 딱 떨어지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강신주의 집필 속도는 놀랍다. 300여 쪽짜리 《노자 : 국가의 발견과 제국의 형이상학》은 2주 만에 끝냈고, 출간을 앞둔 김수영 시인 관련 400여 쪽짜리 책은 새벽 1~5시에 3개월간 썼다. 그는 자신의 최대 강점을 “집중도”라고 말한다. 10년 동안 20여 권이 넘는 방대한 철학서를 집필할 수 있었던 원동력 또한 집중도다.

“텍스트를 읽을 때 전체가 100구절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면 두 구절부터 핵심에 대한 가설을 세워요. 세 번째 구절부터는 검증에 들어가고, 가설이 틀렸으면 수정해서 다시 검증하면서 읽는 식이죠. 열 구절 정도면 그 철학가의 핵심 사상이 거의 다 파악돼요. 나머지는 복습이죠. 일부를 보고 전체를 복원해내는 고고학자 같은 감각을 가진 것 같아요.”

그는 대부분의 저술가들이 하듯, 색 띠지를 붙여 표시하거나 메모 하나 하지 않는다. 읽은 책의 유일한 저장고는 그의 뇌다. “해당 텍스트는 그 문맥에서만 읽히기 때문에 책을 집필할 때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그 이유다. 그는 책 집필 과정을 오케스트라 지휘에 비유한다.

“집필에 필요한 책을 캐스팅해서 쌓아두고 다시 읽어요. 처음 읽을 때 한 달 걸린 책을 다시 읽으면 2~3시간이면 끝나죠. 읽었던 추억이 있고, 넘기는 순간의 기억이 되살아나니까요. 전체의 곡에 대한 감응은 있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책에 휘둘리죠. 지휘자인데 바이올린에 휘둘리면 안 되잖아요? ‘베르그송, 넌 이 대사 쳐,’ 이런 식으로 마주침의 순간이 모여서 책이 됩니다.”

그는 산을 좋아한다. 우울하거나 새로운 발상이 필요할 때마다 산에 오른다. 산은 그의 친구이자, 인생의 깨우침을 주는 공간이다. 난해한 철학자를 공부할 때에도 산을 정복하는 기분으로 올랐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산에 오르고 보니, 그 철학자를 정복하고 보니 비로소 알았다. “철학이라는 것, 시라는 것이 결국 자기 자신에 이르는 길이었다”는 것을.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공동체 또한 “등산과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산은 자기 걸음으로 올라가야 해요. 부유하든 학력이 높든 간에 자기 힘에 닿는 만큼 갑니다. 헬기로 오른 사람은 산에 오르는 희열을 못 느껴요. 남 흉내 안 내고 내 걸음으로 올라가야 ‘아, 잘 살았다’ 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죠. 아이가 힘들어한다고 업어주면 그 아이가 정상에서 느낄 희열을 엄마가 뺏는 겁니다. 보폭이 달라서 힘들어하는 친구가 있으면 맞춰줘야죠. 빨리 가자고 손으로 잡아 끌 필요 없어요. ‘여기까지만 와도 돼. 그만 내려가자’ 하면 되잖아요?”

강신주는 달린다. 대중이 그를 필요로 할수록 그의 집필에는 가속도가 붙고, 강연 횟수는 늘어난다. 자신을 찾는 사람이 많을수록 힘이 난다는 40대 중반의 철학자 강신주. 웬만한 동서고금의 철학자를 거의 섭렵하고 저서로 남긴 그는 얼마나 더 멀리, 더 깊이 달릴 수 있을까.

“저는 아직 저자가 아닙니다. 제 글을 쓴 건 하나도 없잖아요. 다 해설서죠. 해설하되 강신주식으로 하고 있을 뿐입니다. 루소가 루소식인 것처럼 해야죠. 우리나라에 진정한 철학자가 있는지 보면 회의감이 듭니다. 거의 다 해설가들이죠. 50세 정도면 해설가가 아니라 철학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자백가 시리즈를 마친 다음에는 그때 보이는 걸 해야죠. 이성복 시인이 그랬어요. ‘방법이 있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라고요. 사랑 대신 삶을 넣어도 돼요. 가장 마지막에 가봐야 알아요.”

사진 : 장은주
  • 2012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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