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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할까 두려워 말고 시도해보세요 당신의 재능을 발견할 거예요

《내가 즐거우면 세상도 즐겁다》 펴낸 일러스트 밥장

“Life is like a box of chocolates.
삶이란 초콜릿이 잔뜩 들어 있는 상자와 같아.

you never know what you're gonna get”
뭘 집을지 절대 알 수 없지.

일러스트레이터 ‘밥장’ 장석원을 만나고 난 후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이 대사가 생각났다. 동글동글 귀엽고 편안한 필선으로 몽실몽실 꿈과 희망이 피어나는 그림을 그리는 밥장. 우리나라에 수많은 일러스트레이터가 있지만, 밥장의 그림은 한번 보면 머릿속에 각인될 정도로 개성이 뚜렷하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몸도 가벼워져 둥실 떠오를 것 같다.

그런데 그의 삶을 플래시백으로 되돌려보자. 2005년, 그는 처음 펜을 들고 그리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그는 그림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삶을 살았다. 미술 관련 상을 받기는커녕 선생님으로부터 ‘그림 잘 그린다’는 칭찬 한번 받아보지 못했다. 그는 그저 공부 잘해 좋은 대학 가고, 좋은 직장에 취업한 모범생이었다. 연세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ROTC로 군생활을 마쳤고, 대기업 회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7년의 직장생활을 거친 후 2003년 독립, 웹디자인 회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사업은 쉽지 않았다. 집세나 카드값을 막는 데도 급급했다. 무엇보다 그 일을 열정적으로 평생 할 자신이 없었다. 이혼까지 했다. 그가 펜을 들고 뭔가 그리기 시작한 때가 바로 그때, 2005년이었다.

“서른다섯이 되던 해인 2005년을 저 스스로 ‘판타스틱 서티 파이브’라 명명했어요. 정말 판타스틱하게 제 삶의 바닥을 찍을 때였죠.”

그는 볼펜으로 눈앞에 보이는 손톱깎이부터 그리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생각과 감정들… 그림은 말로 정리되지 않는 응어리를 풀어주고, 마음을 다스려주었다.

“모범적으로 열심히 살려고 했는데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나쁜 사람이 되었고, ‘똑바로 하지 그랬어’라는 받지 않아도 될 것 같던 평가를 받고, 이상하게 모든 게 꼬이더라고요. 이러나저러나 마찬가지라면 욕 좀 먹더라도 재미있게 살자고 마음먹었죠. 언젠가 죽게 될 인생, 누릴 수 있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한정되어 있는 것 아닙니까? 지나간 것에 발목 잡히지 말고 내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을 맘껏 하면서 살자고요.”

그로부터 7년 후인 2012년 초, 홍대 앞 수제 햄버거집 ‘감싸롱’에서 만난 그는 밝고 경쾌했다. ‘감싸롱’은 그가 벽에 그린 일러스트로 더욱 유명해진 곳이다. 색색의 셔츠와 청바지에 하얀 벨트, 노란색 파카를 입고 나타난 그는 카메라 렌즈를 향해 장난스럽게 웃었고, 번지르르한 포장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담백하고 진솔하게 털어놓았다. 구불구불한 머리는 파마를 한 것이라고 했다. 곽 잡힌 직장생활을 하던 그는 스스로 ‘비정규 아티스트’가 되면서 작품뿐 아니라 겉모습에서도 자신만의 캐릭터를 확실히 하고 있었다. 그에게 최근의 작업에 대해 물었다. 신세계 강남점 8층 아동매장의 벽화작업, 캥거루장갑 캐릭터 개발, 베르사체 아틀리에에서 전시… 줄줄이 일이 이어지고 있지만, 그는 쫓기는 듯한 표정을 짓지 않았다. 진정 일을 즐기는 자만이 가진 여유였다. 단역이긴 하지만 영화에도 출연했다 한다.

“조성규 감독의 영화 〈내가 고백을 하면〉에서 ‘비빔남’으로 등장해요. 김태우・예지원이 남녀 주인공인데, 극장에서 여자와 낄낄대며 비비는 역할이에요. 감독이 연기 잘한다며 다음 기회에 또 하자고 하던데요. 무모하지만 새로운 시도를 하다 보면 희한한 인연을 만나고, 그게 또 다양한 기회를 열어줍니다. 뉴칼레도니아에 갔을 때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청해 그곳 아티스트들이 공연을 하는 무대에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들과 친해졌을 뿐 아니라, 우연히 제 그림을 본 갤러리 대표와도 인연이 생겨 전시를 했죠. 앞으로도 미래에 대해 미리 한정하지 않고 흐물흐물하게 열어둘 생각이에요.”


그림을 한 번도 따로 배워본 적 없이, 순전히 독학으로 일러스트레이터가 된 그. 타고난 재능을 늦게 발견한 것일까.

“요즘 와서 그런 말을 들어요. ‘너 그렇게 될 줄 알았다’고요. 그러면 ‘왜 미리 말해주지 않았느냐’고 하죠. 제가 처음 그림을 그린다 할 때 ‘중고등학교 때부터 그려도 될까 말까인데, 네가 무슨 그림이냐’며 비웃는 사람이 대부분이었거든요. 자신이 어떤 재능을 가지고 있는지, 자기 패를 자기도 몰라요. 패를 뒤집어보기 전에는, 시도해보기 전에는 모르는 거지요. 자신의 재능을 어떻게 아느냐고요? 뭔가 좋아서 꾸준히 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재능입니다.”


몽실몽실 구름이 날아다니고, 아이는 천사날개를 달고 있고, 하트도 뿅뿅 그려져 있는, 따뜻함과 긍정, 꿈과 희망으로 가득한 그의 그림. 어떻게 그런 그림체가 나왔느냐 물으니 “솔직히 나도 분명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엉덩이와 손에서 나오는 게 있어요. 저는 제 속에 담긴 것을 털어내고 편해지기 위해 그림을 그립니다. 순전히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즐거움에서 출발하지요. 그런데 그림이 자신을 비추는 거울 같아서 밝은 그림을 그리면 밝은 면이 강화되는 것 같아요. 따뜻한 것을 그리워하니 따뜻하게 그리는 것 아닐까요?”라고 설명한다.

그는 그림뿐 아니라 글쓰기에도 능하다. 2006년부터 《비정규 아티스트의 홀로그림》 《핫(HOT)》 《그림 그려 보아요》 《나는 일러스트레이터다》 《내가 즐거우면 세상도 즐겁다》 등 다섯 권의 책을 펴냈다. 책을 읽다 감명을 받은 구절,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과 이미지가 있으면 늘 가지고 다니는 수첩에 만년필로 메모를 해둔다. 그걸 바탕으로 작업하고, 블로그에 글을 쓰고, 또 책으로 엮어낸다. 그의 글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경쾌하고 유머러스한 게 그의 그림체와도 닮았다. 그런데 스스로 글에는 재능이 없는 줄 알았다 한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제가 쓴 일기를 보고 선생님이 ‘몇 학년 글일까요? 1학년? 2학년?’이라고 평을 달아놓아 크게 상처받았어요. 초등학생 일기는 보통 날씨와 그날 있었던 일을 쓰고, 교훈적인 내용으로 마무리해야 하는데, 제가 ‘친구들과 춤추고 노는 꿈’을 꾼 것에 대해 썼거든요.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을 벗은 것은 30대가 지나서였어요. 블로그에 매일 조금씩 생각을 정리해 올리면서 글쓰기 훈련이 된 것 같아요.”


최근 펴낸 《내가 즐거우면 세상도 즐겁다》에서 그는 재능기부를 하면서 겪은 일, 기쁨과 보람에 관해 쓰고 있다. 재능기부를 시작한 것은 2007년, 그림만 가지고 먹고살기 시작할 때였다. 한 단체의 기금모금용 티셔츠에 그림을 그려줘 저작권 기부를 하려 했는데, 단체의 사정상 비용을 받게 되었다. ‘재능기부’의 뜻을 이루지 못하자 그는 자신의 재능을 기부할 곳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2008년부터는 지방 곳곳의 작은 도서관, 학교, 네팔까지 찾아가 현지 주민들과 함께 벽화를 그렸다. 그가 그림을 그리면서 경험한 것은 나누고 싶어서다. 그는 무엇보다 청소년 시절의 예술적 체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집에 있던 《세계의 명화》 전집을 틈만 나면 들춰 봤던 게 지금의 그를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전국 구석구석을 다니며 경험한 것을 서울로 가지고 오고 싶었고, 최근 자신이 사는 서울 은평구 구산동 아파트 벽에 동네 아이들을 그려 넣어 다시 화제가 됐다. 재능기부에 대해 그는 “착한 일을 해야 오래가는 전략”이라고 말한다. 남을 위해서뿐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제가 일러스트를 그려준 홍대 앞 음식점들의 특징이 ‘꼼수를 쓰지 않는다’입니다. 좋은 재료를 넉넉히 넣고, 직원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해 대우를 잘해주고. 돈 생각하면 할 수 없는 일들을 하지요. 그러면서 ‘원가계산 정확히 안 해도 많이 팔면 돼’라고 이야기해요. 재능기부는 제 일의 저변을 확대하는 실속 있는 일이기도 하지요.”

그에게 돈을 받고 한 작업 중 대표작 3가지를 꼽아달라고 했다. 그는 이효리가 걸어가던 뉴욕 거리가 놀이동산으로 바뀌는 한 카드회사의 방송 광고, 2009년 부천판타스틱영화제의 포스터, 2010년 포스코 송도국제신도시 R&D센터에 설치된 가로 6m, 세로 9m 작품을 들었다.


“부천판타스틱영화제는 제가 여름마다 표를 사서 찾던 영화제라, ‘저 포스터를 그려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죠. 그걸 의뢰받으니 작가로 인정받는 것 같아 정말 기뻤습니다. 제가 집에서 조그맣게 손톱깎이를 그리고 있을 때 점쟁이가 ‘5년 후 가로 6m, 세로 9m 작품을 의뢰받을 것’이라고 점쳤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을 거예요. 삶은 우리에게 어떤 선물을 준비하고 있는지 모르는 일 아닙니까?”

시도했다 실패하면 어쩌냐고? 그 역시 ‘소심한 A형’이었는데, ‘한번 해볼까?’ 하고 덤비다 보니 ‘별거 아니네’라는 생각이 들고, 성격도 바뀌었다고 한다.

“실패할까 봐 걱정할 것 없어요. 저도 그림을 그리다 꼬일 때가 있는 데 겁먹지 않고 차근차근 풀어나가면 보통 더 좋은 결과가 나오더라고요.”

사진 : 김선아
  • 2012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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