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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컨설턴트가 웬 전쟁소설이냐고요? 일본인들에게 말을 걸고 싶었어요

영화 〈마이웨이〉 원작소설 《디데이》 펴낸 김병인 작가

강제규 감독의 영화 〈마이웨이〉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태극기 휘날리며〉로 1000만 관객 시대를 연 흥행 감독이 330억원을 들여 만든 대작 영화라는 점에서도 그렇고, 극중 두 주인공인 한국인 준식(장동건 분)과 일본인 타츠오(오다기리 조 분)의 대립과 화해를 두고서도 반일영화다, 친일영화다 논란이 거세다. 이 논란을 따라가다 보면 원작소설 《디데이》가 종종 언급된다. 소설 《디데이》는 영화 〈마이웨이〉의 시나리오를 처음 쓴 원작자가 애초의 시나리오 대본을 저본 삼아 소설로 다시 쓴 것이다. 영화 〈마이웨이〉는 김 작가의 시나리오에 기초했지만 상당 부분 강제규 감독의 각색을 거쳤다. 전쟁에 원치 않게 휘말리게 된 국적 다른 두 남자가 이야기를 끌어간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영화를 보고 소설 《디데이》를 읽은 독자 대부분은 소설에 더 높은 점수를 매긴다. 《디데이》가 인물의 심경 변화를 더 현실감 있게 표현했고, 반일감정을 더 균형감 있게 그려냈다는 것이 이유다.

〈마이웨이〉의 원작자는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매킨지에서 경영 컨설턴트로 근무한 김병인씨다. 창작에 대해 배운 적도, 소설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는 그가 어떻게 한국・일본・러시아・프랑스・독일 등 5개국을 아우르는 광대한 스케일의 전쟁 스토리를 쓰게 됐을까. 모든 것은 사진 한 장에서 비롯됐다. 김 작가는 아버지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관한 책에서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독일 군복을 입은 채 미군에게 생포되는 빛바랜 사진을 보았다는 것이었다. 그 사진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일제 식민지라는 국권피탈 상황, 러일전쟁, 1・2차 세계대전 등 크고 작은 전쟁이 끊이지 않던 시대. 왜소한 체구의 이 한국인은 어떻게 독일 군복을 입고 미군에게 생포됐을까. 그는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면 화제작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머릿속에 구상한 스토리를 들려주면 다들 이상하게 봤어요.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들렸나 봐요. 신인작가가 그런 엄청난 스케일의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하니 그럴 만하죠. 그런데 이상하게 확신이 있었어요. 이 스토리는 꼭 영화화될 것이고, 그 영화는 사건적인 영화가 될 것이라는 확신 말이에요.”

노르망디 코리안에 대한 시나리오를 쓰기로 결심한 그는 역사 공부를 시작했다. 관련 자료를 샅샅이 찾아 읽고, 군사전문가이자 피겨 작가인 김세랑씨를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이것으로도 모자라 해외로 현지답사를 떠났다. 서울에서 만주를 거쳐 러시아의 볼고그라드, 프랑스의 노르망디로 이어지는 기나긴 루트였다. 러시아에서는 스탈린 전투에 참전했던 할아버지들을 만나 인터뷰했고, 유적지를 다니면서 국내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동방 부대에 대한 자료도 구했다. 역사 공부를 할수록, 일본인들을 알수록 과거사 문제에 대한 사명감이 일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는데, 충격을 많이 받았습니다. ‘일본의 역사적 과오도 있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구나. 인간적인 면도 강하구나’ 하고 느꼈어요. 일본인들은 정서상 그들이 저지른 과거사를 알면 사과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민족성을 가졌다는 걸 알았어요. 문제는 일본 정부가 일본 식민지사에 대해 정책적으로 가르치지 않는다는 거죠. 일본인들에게 편안한 목소리로 말을 걸고 싶었어요. ‘너희들이 모르는 과거사가 있다. 우리가 화내지 않을 테니 일단 차분하게 한번 들여다봐라’ 하고요.”

영화 <마이웨이>
<마이웨이> 개봉 다음 날 영화를 봤다는 그는 영화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이 “친일영화 같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 원래의 기획의도와 정반대의 반응이었다. 이 시나리오가 영화화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시나리오 집필은 11년 전인 2001년 시작됐다. 원래 이 영화는 할리우드의 워너브라더스 측에서 제작하기로 돼 있었다. 아시아를 소재로 한 대작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워너 측은 변호사를 고용해 아시아의 시나리오를 검토하게 했고, 김 작가의 시나리오를 접한 워너 측은 불과 몇 개월 만에 제작 의사를 타진해왔다. 영화계 유명인사의 지원 없이 무명작가의 처녀작이 이런 과정을 거쳐 영화화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워너 측에서는 강제규 감독에게 연출 제안을 했다. 민감한 한일 정서를 잘 이해할 만한 감독, 검증된 흥행 감독이라는 강점 때문이었다. 2007년 8월, 김병인 작가는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순간을 맞는다. 세계적인 영화 제작사인 워너브라더스의 리처드 폭스 사장, 한국 최고의 흥행 감독인 강제규 감독과 그, 이렇게 셋이서 제작 회의를 겸한 오찬을 하게 된 것.

“제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어요. 공상과학영화를 찍고 있는 것 같았죠. ‘진짜 이런 일이 벌어지는구나’ 라는 생각에 실감이 안 났어요. 그동안은 될 것이라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만으로 밀어붙여왔지만, 그 믿음을 뒷받침할 만한 객관적인 증거는 없었어요. ‘내가 진짜 과대망상증이 아닌가. 남들처럼 좀더 안정적인 길, 검증된 길을 갔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그 오찬 자리에서 그간의 고통과 어려움에 대해 한꺼번에 보상받는 것 같았죠.”

하지만 2010년 워너 측은 투자 철회를 공식 통보해왔다. 강 감독이 수정한 대본이 김 작가의 원작 대본과 달라 제작 의도와 맞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김 작가 역시 강 감독이 수정한 시나리오의 방향이 썩 내키지 않았지만 강 감독의 역량을 믿었기에 강 감독에게 시나리오를 넘겼다.

김병인 작가는 대중의 기호를 읽어내는 동물적인 감각을 가졌다. 《디데이》는 흡입력이 강한 소설이다. 창작에 대한 공부가 전무한 상태에서 쓴 소설이라 문장은 투박한 감이 없지 않지만 사건을 풀어가는 방식이나 인물의 갈등을 부각시키는 방식이 탁월하다. 그의 이런 감각은 거저 얻은 것이 아니다. 고등학교 시절, 그는 반 친구들을 대상으로 연재소설을 쓰면서 대중에 대한 감각에 눈떴다. 자신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소설 《병인일기》, 사춘기 소년들이 좋아할 연애소설을 썼다. 소설을 돌려보는 친구들의 반응을 보면서 어느 대목에서 열광하고, 어느 대목에서 시큰둥한지를 살폈고, 그걸 감안해 다음 회를 연재했다. 맥킨지에서 경영 컨설턴트로 근무하면서는 투자대상이 될 만한 것을 짚어내는 안목을 길렀다. 맥킨지를 나와서는 일신창업투자회사, 대성창업투자회사에서 영화 분야의 일을 하면서 흥행 영화의 공식을 연구했다.

그는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한다. 거창해 보이지만 방법은 소박하다. 바로 스토리를 통해서다. 하고 싶을 말을 재미있는 이야기로 만들어서 많은 사람이 보고 듣게 하는 것. 그는 “세상을 위해서 무언가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때 창작 의욕이 솟는다”며 “내 이야기로 인해 다만 1cm라도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품고 있다”고 했다. 노르망디 코리안 이야기를 통해 일본인들에게 과거사 문제를 들여다보라고 말을 걸었던 그는 다음 소재를 정했다. 바로 북한 이야기다.

“김정일이 죽고 김정은이 표면에 드러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예요. 상당 부분 썼는데, 이미 1단계는 현실이 됐죠. 기본적으로 자유의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북한의 문제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자본주의와의 경쟁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자유의지를 얼마나 존중해주느냐에 달렸다고 생각해요. 북한뿐 아니라 자유의지가 억압당했을 때 벌어지는 인간 본성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사진 : 김선아
  • 2012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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