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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 안에 사는 사람들을 아세요?

마을을 변화시킨 ‘대안공간 눈’ 만든 김정집·이윤숙 부부

조선 22대 왕 정조가 방어 기능을 갖춘 계획도시를 만들기 위해 축성한 수원 화성(華城). 당대 최고 지식인들이 동서양의 과학과 기술을 총집결해 건설한 화성은 근대 성곽건축의 백미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됐다. 그렇다면 둘레 5520m에 달하는 성곽 안에 사는 사람들의 현재 삶은 어떨까?
이윤숙 대표(왼쪽)와 김정집 관장.
이 성곽 안에 지은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소년, 성곽 안에 있는 학교를 다니면서 아침저녁 화성을 바라보던 소녀가 있었다. 자연과 인공 구조물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성을 바라보는 게 행복했던 두 사람. 그러나 수원의 다른 지역이 개발되는 동안 성 안 마을은 점점 낙후되어갔다. 문화재 보호를 이유로 개발이 제한됐기 때문이다. 마을 발전에 대한 뚜렷한 방향이나 계획이 나오지 않으면서 이전에는 동경의 대상이었던 ‘성 안 사람들’은 자부심을 잃고 ‘어떻게 하면 빨리 보상받고 떠날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부부가 되어 소년의 아버지가 지은 집에서 살게 된 두 사람은 ‘이 마을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없을까?’ 함께 고민했다. 고심 끝에 부모님이 물려주신 집을 레노베이션해 전시장과 찻집, 도서관을 들이고 누구든 드나들 수 있게 문을 열어뒀다. 국내외 아티스트들을 불러들여 골목골목에 벽화도 그렸다. 이곳을 찾은 블로거들이 예술적 감각이 넘치는 벽화 골목을 사진 찍어 소개하면서 이곳은 금방 유명해졌고, 아마추어 사진가들의 ‘출사 명소’가 되었다. 그들로 인해 성곽만 급히 둘러보고 떠나던 관광객들이 골목골목을 누비기 시작했다. 오래된 음식점들에도 손님이 몰리면서 주말에는 길게 줄을 섰다.

‘수원 행궁동 예술마을 만들기 프로젝트’를 해온 두 사람, ‘대안공간 눈’의 이윤숙 대표와 김정집 관장이 ‘2011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에서 대상인 대통령상을 받았다. 수원 화성 장안문과 화홍문 사이 골목에 자리 잡은 ‘대안공간 눈’은 찾기 어렵지 않았다. 나지막한 건물들이 이어지는 아기자기한 골목의 담장에 그려진 벽화들이 먼저 반겼다. 활짝 열린 문 안으로 들어서자 오래된 집 특유의 편안함이 느껴졌다. 가운데 마당을 둘러싸고, 전시실과 찻집, 2층 도서관이 놓여 있었다.

“토목기사였던 아버님이 이 집을 짓다 돌아가셨지요. 찻집으로 쓰는 이곳은 임시로 지은 건물로, 집을 다 짓고 나면 허물어 정원을 만들려고 하셨대요. 건너편 전시실이 아버님이 원래 계획했던 집인데, 쓰러지시는 바람에 미완성되었다 합니다. 집안 사정이 기울면서 임시로 지은 건물도 허물지 않고 세를 줘서, 여러 가구가 함께 살았습니다.”

마을 벽화를 함께 그리는 어르신들.
이 집이 지어진 것은 46년 전, 김정집씨가 초등학교 때였다. 1988년 결혼한 두 사람은 이 집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살기도 했다. 이윤숙 씨는 성신여대 조소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조각가. 서울 바탕골예술관, 장흥 토탈미술관, 제주도 신천지미술관 등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고, 성당과 수녀원의 십자가상, 성모자상을 조각하는 등 교회미술에도 활발하게 참여했다. 수원 토박이인 두 사람이 만난 것은 대학원에 다니던 이윤숙씨가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던 미술학원을 김정집씨가 인수하면서였다.

“남편이 학원의 3분의 1을 뚝 떼어 작업실로 내줬어요. 학생을 가르쳐야 한다는 조건도 없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미술부 활동을 하면서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미대에 진학하지 못하고 경영학을 전공했던 남편은 열심히 작업하는 후배들을 보면 말없이 지원하곤 했거든요.”


김정집씨의 진실성이 마음에 와 닿았던 이윤숙씨는 “내가 먼저 결혼하자고 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중풍에 치매까지 겹친 시어머니를 모시면서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든 적도 있었다. 대학과 미술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개인전 준비까지 하면서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모시는 것은 쉽지 않았다. 자신의 일을 하나하나 포기해야 했다.

“다른 사람 도움을 받으려 해도 1주일 이상 견디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어느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일이라 정말 힘들었지요. 이웃에 계신 할머니가 ‘건희 엄마 불쌍하다’며 와 계시기도 했습니다.”

전시장.
죽을 만큼 힘들었던 그는 유치원에 다니던 아들까지 놓아두고 32박33일 인도로 여행을 떠났다.

“걸으면서 끊임없이 나와 대화했습니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었지요. 그 여행에서 돌아오니 생각이 많이 달라지고, 견딜 만했습니다. ‘난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생각하게 되었죠.”

그는 그때 그 경험이 주변을 돌아보며 ‘판’을 벌이는 지금의 자신을 만든 것 같다고 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부부는 미술학원 문을 닫고 농사를 지었다.

“환자였던 어머니가 안 계시니 돈을 벌어야 한다는 필요도 못 느꼈습니다. 스콧 니어링과 헬렌 니어링 부부의 ‘소박하고 조화로운 삶’을 동경해 제초제도 쓰지 않고 일일이 풀 베고 땀 흘려 농사를 지었습니다. 농사짓는 과정을 기록하고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자연콩 프로젝트’도 했지요.”

마을 골목과 집들에 그려진 벽화.
2003년 남편은 “어머님이 사시던 집을 후배 작가들을 위해 내놓으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외환위기 이후 수원에 몇 개 있던 화랑조차 거의 문을 닫았어요. 유학까지 마치고 와서도 전시 공간을 찾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습니다. 수원의 문화적 환경이 열악해지는 것도 안타까웠고요.”

이윤숙씨는 “내 작업을 못할 것 같아 처음에는 고민스러웠다”고 한다. 그 집에 세 들었던 사람들이 모두 나가기를 기다려 대안공간으로 꾸민 것이 2005년 4월. 대지 300㎡(90여 평)에 66㎡(20평)의 1전시실과 33㎡(10평)의 2전시실, 33㎡(10평)의 아트숍 겸 카페, 33㎡(10평) 규모의 소그룹 회의 공간 겸 도서관, 100㎡(30여 평)의 야외 전시공간을 갖추었다. 최근에는 골목에서 관람할 수 있는 조그만 윈도 전시실도 만들었다. 이들은 작품이 잘 팔리는 작가 대신 실험적인 작업을 하면서 전시 기회를 갖기 어려운 작가들에게 먼저 문을 열었다.

“매년 여름 인터넷 공모로 작가를 선정하는 100% 기획 전시로, 대관료는 없습니다. 인터넷과 이메일 등을 통해 작가 홍보도 대신해주지요. 집을 고쳐 만든 곳이어서 전시 공간이 재미있다고 좋아하는 작가들이 많습니다.”

고무신에 그림을 그리며 작가가 된 마을 어르신들.
‘대안공간 눈’의 활동영역은 이 공간에 국한되지 않았다. 2007년에는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당하리, 부부가 농사짓던 땅을 작가들의 창작공간으로 내주면서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한 북카페와 갤러리를 만들었다. 2009년부터는 화성 안에 있는 철거예정 건물을 작가들의 창작공간으로 내주는 ‘행궁동레지던시’를 시작했고, 2010년부터는 전 세계 아티스트들을 불러 모아 ‘국제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수원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 중 하나를 가장 예술적인 공간으로 만든 것이다. 나이든 어르신이 많이 사는 마을에서 시대를 앞서가는 작품을 소개하는 대안공간을 만든 이들. 이들의 작업은 그러나 주민과 괴리되지 않았다. 어머니 친구 분이셨던 동네 어르신들을 전시장에 모시고 들어와 작품을 설명하고, ‘현대미술 쉽게 읽기’ ‘작가와의 만남’을 열어 주민과 작품 사이 거리를 좁혔다. 무엇보다 어르신들을 ‘작가’로 만들어드렸다. 어르신들의 솜씨로 전시회를 연 것. 오픈 행사는 출품한 어르신들의 자식들이 떡을 보내고 가까운 음식점이 막걸리와 음식을 보내면서 성대해졌다. 음악회와 인문학 강연도 자주 열어 주민들을 불러들였다.

브라질 작가가 여인숙 담장에 그린 물고기 벽화.
공모를 통과한 4개국 14명의 작가들이 참여한 지난해 ‘이웃과 공감하는 예술프로젝트 행궁동 사람들’에서 작가들은 주민,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담장을 칠하고, 주민들을 작품에 등장시키거나 참여시켰다. 벽화에는 담장 안에 사는 사람들이 등장하기도 하고, 벗겨진 페인트, 낙서 등 담장의 역사까지 고스란히 담겼다. 브라질의 라켈 심브라씨는 오래된 골목의 오래된 여인숙인 ‘금보여인숙’ 담장에 거대한 물고기 ‘gold fish’를 그려 넣었다. 검은 기와를 얹은 지붕에 빨강과 검정으로 된 간판 글씨가 금색 비늘에 빨간 지느러미를 한 대담한 물고기 벽화와 맞춤인 듯 어울린다. 벽화가 유명해지면서 주말이면 이 여인숙에서 하룻밤 자고 싶다는 사람들로 예약이 꽉 찬다고 한다.

대안공간 마당은 야외 전시장이자 공연장으로 활용된다.
“일부러 골목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마을 사람들도 자부심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집과 골목을 깨끗이 단장하고, 표정도 달라졌지요. 예전에는 으슥한 골목에서 담배를 피우는 청소년이 많았는데, 이제 스스로 자제합니다. 공방이나 카페 등 문화적인 공간도 많아지고 있고요. 화성을 보러온 사람들이 성곽만이 아닌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과거와 현재도 함께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개발제한으로 낙후된 채 생기를 잃어가던 유서 깊은 마을. 부부는 이 마을에 가장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실험적인 작가들을 끌어들이면서 마을을 변화시켜나가고 있다. 상식을 뒤엎는 도전이 결실을 맺고 있다. 이윤숙씨는 “제가 오지랖 넓게 사람들을 모으고 일을 벌인다면, 남편은 나서지 않고 생색내지 않으면서 뒷일을 찬찬하게 챙기고 마무리한다”고 남편에게 공을 돌린다.

사진 : 박상현
  • 2012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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