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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젊은이들에게 북한의 현실 제대로 알려주고 싶어요

[나라사랑 人] 탈북 영화감독 정성산

2011년 11월 개봉한 영화 〈량강도 아이들〉은 북한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정치색이나 이념 갈등 대신 순수한 동심의 세계를 그린 영화다. 영화를 만든 사람은 탈북자 출신인 정성산 감독. 평양연극영화대 졸업, 러시아 모스크바대 영화연출 전공, 동국대 연극영화과 졸업이라는 독특한 이력은 그의 평탄치 않은 삶의 궤적이기도 하다. 현재 영화감독이자 문화기획자로 전방위적인 활동을 펴고 있는 그는 “문화라는 매개체를 통해 북한의 현실을 제대로 알려주고 싶다”고 한다.
남한에서 풍선에 띄워 보낸 크리스마스 선물이 북한의 어느 시골 마을에 뚝 떨어지면서 시작되는 에피소드들을 그린 〈량강도 아이들〉은 개봉하기까지 무려 7년이 걸렸다. 2004년 만들기 시작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2006년에야 촬영을 마쳤다. 그 후로도 개봉관을 잡지 못해 애태우다 2011년 11월에야 겨우 관객들과 만났다. 하지만 엉뚱하게도 독립영화로 분류돼 상영관 수는 턱없이 적었고, 그마저도 다른 영화와 번갈아 보여주는 교차 상영이었다.

첫 장편이자 데뷔작이라는 생각에 이 영화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는 정성산 감독은 그동안 여러 인터뷰를 통해 〈량강도 아이들〉이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는 현실에 서운함을 드러냈다. “북한의 현실이 처참하지만 그 안에서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그는 “짧게라도 개봉하게 된 지금은 오히려 운이 좋은 편이라고 해야 맞는 것 같다”며 웃었다. 마음고생한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씁쓸한 미소였다.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량강도 아이들〉 덕분에 저도 이제 영화감독 타이틀을 달게 됐습니다. 마음의 짐도 많이 내려놓았고요.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았고, 대종상 신인감독상 후보에도 올랐으니 그것으로 만족해야죠.”

북한에서 나고 자란 정성산 감독은 1995년 남한으로 왔다. 부친이 자동차 수입 업무를 담당해 비교적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그는 영화연출에 관심이 많아 평양연극영화대를 마쳤고, 러시아에서도 공부했다. 하지만 군복무 중 남한 라디오 방송을 듣다 들켜 군인 수용소로 끌려가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탈출해 중국·베트남 등지를 거쳐 한국으로 왔다.

환경은 바뀌었지만 영화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아 탈북 이듬해인 1996년 동국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다.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영안실에서 시신을 닦는 일부터 포장마차 주방 일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영화 작업에도 꾸준히 참여해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등 북한과 관련된 영화 시나리오를 각색하고 배우들의 말투·억양 등을 지도하는 일도 맡았다. 임권택 감독의 연출부에서도 일했고, 1997년에는 KBS 드라마 작가 공모전에도 당선됐다.

그러던 중 오랜 준비 끝에 데뷔작으로 〈량강도 아이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투자 문제로 촬영이 잠시 중단되었을 때, 그가 탈북한 후 수용소에 수감되었다는 부모님이 공개 처형당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견디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늘 가슴속에 응어리처럼 남아 있는 부모님, 그는 그 한을 담아 단숨에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내용은 만족스러웠지만 투자자가 없어 영화로 만드는 일은 포기하고 뮤지컬로 방향을 틀었다. 그것이 그에게 유명세를 안겨준 뮤지컬 〈요덕 스토리〉(2006년)다.

▣ 1·21사건

30년 전 1968년 1월 21일, 북한의 124군부대소속의 무장 게릴라 31명이 서울에 침투했습니다. 이 사건이 바로 1·21 사건입니다. 당시 총격으로 비상근무지휘중이던 종로경찰서장 최규식 총경이 순직했으며, 이에 우리 정부는 북한의 비정규전에 대비하기 위해 향토예비군을 창설하고, 전역 대기 중이던 병사들의 복무기간을 6개월 연장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습니다. 최근 보도된 왕재산 간첩단사건처럼 간첩사건은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실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국가보훈처 제공)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한 안보 관련 콘텐츠 개발

<요덕 스토리>는 북한 1급 정치범 수용소에서 일어나는 삶과 사랑을 그린 작품. 초연 이후 4년 동안 국내외에서 300여 차례 공연을 했고, 35만 관객을 동원했다. 거쳐 간 배우만도 400여 명에 달한다.

“2010년 국립극장 무대를 끝으로 잠시 쉬고 있는데 또 할 겁니다. 원래 10년 정도 내다보고 시작한 작품인데,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해전이 터지면서 중단됐어요. 바다에서, 육지에서 그 귀한 젊음들이 이유 없이 숨졌는데도 북한의 소행이 아니라는 둥, 음모론이라는 둥 여기저기서 헛소리를 하는데 화가 나서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충격적인 두 사건을 겪으며 그는 영화감독에서 전방위 문화기획자로 변신했다.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통해 북한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적극 나선 것. ‘목숨 내놓고 노래하는 사람들’의 준말인 ‘목내노사’를 결성해 김정일을 풍자하는 랩을 만드는가 하면,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해전으로 안타깝게 숨진 우리 장병들을 추모하는 노래를 직접 가사까지 써서 만들었다. 지금은 중단되었지만, 논산훈련소 입소 신병들을 위해 〈요덕 스토리〉를 상설 공연 형태로 무대에 올린 적도 있다.

“연평도 해전 이후 해병대 자원자가 오히려 늘어난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았어요. 젊은이들의 그 에너지가 놀라웠죠. 저는 영화, 음악, 애니메이션, 콘서트 등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이들의 심장을 끓게 하고 싶어요. 이런 작은 변화들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가 이처럼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한 안보 관련 콘텐츠 개발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또 다른 이유는 안보를 생각하는 사람들의 연령이 고령화되었다는 걱정에서다. 젊은이들이 자주 찾는 웹사이트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북한 관련 자료, 경험담 등을 자주 올리며 그들과 소통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그는 “한국 사람들은 북한에 대해 너무 모른다”며 <요덕 스토리> 시나리오 완성 당시 상황을 들려주었다.


“시나리오 평가도 받을 겸 한국 사람들과 탈북자들에게 각각 보여줬는데 반응이 완전히 달랐어요. 한국 사람들은 ‘너무 잔인하고 끔찍하다. 좀 과장한 것 아니냐’고 하는 반면, 수용소 생활을 직접 해본 탈북자들은 ‘애들 장난도 아니고, 좀 더 실감나게 그려야지, 이게 뭐냐’고 화를 냈어요. 지금 남과 북은 경제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북한의 실상을 제대로 안다면 오히려 통일은 상상하기 힘들 겁니다. 양쪽 모두에서 살아본 제가 다양한 장르를 통해 그 모습을 전달함으로써 간극을 줄이는, 일종의 완충재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제가 어떤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입니다.”

사진 : 양수열
  • 2012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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