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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책 펴낸 김수영문학상 수상 시인

야구 에세이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 낸 서효인

한국 프로야구 출범 한 해 전이던 1981년. 목포의 한 평범한 가정집에서는 개구쟁이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아이는 프로야구와 함께 무럭무럭 성장했다. 아이에게 야구장은 학교였고 놀이터였고 세상 전부였다. 프로야구의 역사는 곧 소년의 역사가 되었고, 그의 기록은 곧 프로야구의 기록이 되었다. 그렇게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소년은 어른이 되었다. 그는 야구만큼 글쓰기도 사랑해서 시인의 길을 택했지만 여전히 때때로 야구를 보며 세상을 읽는다. 시인 서효인이 출간한 에세이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는 얼핏 단순한 야구 관람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젊고 유쾌한 시인이 적어내리는 우리의 인생 관람기다. 야구팬은 물론이거니와 야구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전혀 낯설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프로야구가 그 역사적인 첫발을 내딛은 때로부터 약 30년이 지난 2011년. 프로야구는 680만 관중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이 수많은 사람이 야구장을 찾는 이유는 각양각색이겠지만 시인은 야구의 매력을 “기다림”이라고 말한다. 축구나 하키를 비롯한 다른 스포츠는 대부분 공에 달려들어야 하지만, 야구는 그 자리에 서서 공이 오는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투수가 공을 던지는 순간, 타자가 그 공을 경쾌하게 날리는 순간, 그 짧은 순간을 위해 모두 버티고 기다린다.

“(타자가)가끔 좋은 타구를 칠 때가 있잖아요. 공이 날아가는 포물선이 무척 아름다워요. 그런데 그걸 보려면 엄청 기다려야 해요. 9명의 타자가 있으니까 그 순서를 기다려야 하고 또 순서가 왔다고 해서 무조건 그런 타구를 날릴 수는 없으니까. 그 기다림 끝에 근사한 순간이 오는 거죠.”

이러한 기다림의 미학은 정치・경제적으로 어려운 현실을 견디고 있다고 느끼는 동시대인들에게 큰 위로가 된다. 시인은 스물여섯 살에 등단했고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를 출간하기 전 첫 시집 《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을 냈다. 남들에 비해 비교적 빠른 출발이지만 그 역시 인생에서의 근사한 순간을 위해 인내하고 기다려야 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그는 알아주는 말썽꾸러기였다. 초등학생 때는 야구를 보기 위해 어린 사촌 동생들을 데리고 야구장 담벼락에 붙어 있는 건물 2층 높이의 사다리를 맨몸으로 기어오르는 위험천만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고,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성적은 밑에서 세는 게 빨랐다. 전형적인 문제아였다. 고등학교 때 그의 재능을 알아본 담임 선생님의 강권으로 문예부에 들어가 자신의 재능을 확인하고는 막연하게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확신은 없었다.

군 제대 이후에는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몰라 방황했다. 어영부영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 석 달 만에 때려치우기도 했다. 2009년 대학원 졸업 후 시를 쓰기 위해 무작정 서울에 올라왔지만 극심한 생활고를 겪었다. 당시 그는 요즘 흔히 말하는 ‘88만원 세대’였다.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집세 내느라 밥값이 없어서 도시락을 싸가지고 출근하고 버스비 900원이 없어 이리저리 동전을 긁어모은 날도 허다하다. 어느 날은 회사 경리가 밀린 월급을 통장으로 부쳐준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고 퇴근길에 그토록 먹고 싶었던 간짜장 곱빼기를 시켜 먹었다가 월급이 들어오지 않아 고향에 계신 어머니께 3만원만 부쳐달라고 구조 요청한 적도 있다. 많이 힘들었겠다고 하자 그는 “요즘 흔한 얘기기도 하고 원래 자기가 겪는 고통이 가장 크게 느껴지는 법”이라고 했다. 그의 이러한 경험은 현재 2030 세대가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밑바탕이 되었다.

“제 내면에 집중하고 천착해서 시를 쓰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타인이나 사회 부조리에 관심을 두는 편이에요. 조금 더 힘든 사람, 조금 더 아픈 사람. 그러다 보니 야구도 그쪽으로 연결되더라고요. 이 책은 야구를 핑계로 한 청춘 이야기예요.”

야구에 깊은 애정이 있다는 것을 안 출판사에서 그에게 야구 관련 에세이를 써볼 것을 제안했다. 삼십 평생 꾸준히 야구를 봐왔지만 야구에 대해서 책을 쓰는 것이 처음에는 두려웠다. 선수나 기자 출신도 아닌 자신이 무슨 전문가인양 이런 책을 써도 되나, 걱정스러워 도무지 진도가 나가질 않았다. 그러나 자기 이야기, 자기가 공감하는 친구 이야기를 쓰듯 쉽게 쓰기로 마음먹자 두 달 만에 책을 완성할 수 있었다. 야구 전문가의 시각이 아닌 젊은 시인의 시각으로 썼기에 특색 있는 야구 에세이가 탄생했다.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에 나오는 등장인물은 특정 야구 선수나 가상의 인물에 그치지 않는다. 한때 최고의 유망주였던 무명 외야수에게서는 사회의 주역에서 밀려나 은퇴해야만 하는 우리네 아버지들의 모습을, 드래프트에서 선발되지 못한 채 쓸쓸하게 발걸음을 돌리는 선수들에게서는 높은 취업문에 부딪히고 깨지는 청춘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시인은 “빛나는 순간을 기다리는 이들이 역전 만루 홈런을 치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그들을 격려하고 위로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힌다.

다시 태어나도 시인이 되고 싶으냐고 묻자 그는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큰일 날 소리 한다”고 했다. 다시 태어나면 한번쯤 부자가 돼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지금도 지인들은 그가 안정된 직장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을 걱정한다고 한다. 다시 태어나면 가난한 시인이 아니라 골을 넣고 마음껏 환호할 수 있고, 돈도 많이 받는 미국 프로농구 선수로 태어나고 싶다고 대답한 그였다. 하지만 현재는 자신이 어쩌면 큰 부자가 된 것 같다고도 말했다. “시집을 내고 굉장히 얼떨떨해요. 등단한 것도, 지금 인터뷰하고 있는 것도 얼떨떨하고.” 그런 그에게 책을 두 권이나 냈으니 홈런 친 기분일 것 같다고 하니 “홈런을 안 쳐봐서 모르겠다”며 “굳이 비유하자면 이제 막 타석에 들어선 기분”이라고 했다. “2군 선수나 후보 선수는 일단 타석에 들어가는 게 목적이잖아요. 그런 느낌이에요. 겨우 타석에 들어서서 투수가 던지는 공을 기다리며 벌벌 떨고 있는 기분.”

그는 겸손하게 대답했지만 그의 두 번째 시집이자 2011년 11월 말 제30회 김수영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도 출간을 앞두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간단명료하게 답했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좋은 글을 많이 쓰는 것.” 그것이 단타가 되든 장타가 되든 젊은 작가가 사회와 소통하며 쓴 진솔한 작품이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며 한국 문단과 한국 사회에 안착했으면 좋겠다.

사진 : 김선아
  • 2012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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