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파브르’ 김성호 교수

딱따구리 관찰하려 움막 짓고 살았죠

2007년 어느 봄날, 한 남자는 지리산 자락을 더듬다 큰오색딱따구리 한 쌍과 마주쳤다. 남자는 새끼를 키울 둥지를 막 짓기 시작한 이들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새끼를 키워내는 과정을 보고 싶어 80일 동안 새들 옆에서 그들의 생태를 낱낱이 관찰했다. 큰오색딱따구리 한 쌍은 소임을 다한 후 둥지를 떠났지만 남자는 마음 정리를 하지 못했다. 그 미련은 큰오색딱따구리 둥지를 리모델링해 사는 동고비에게로 옮겨졌고, 동고비 곁에서 50여 일을 함께했다. 그리고 다음해에는 까막딱따구리 한 쌍을 2년간 관찰했다. 그렇게 남자는 5년간 새들과 그 주변 생물의 생태를 관찰해 네 권의 책을 냈다.
서남대학교 김성호 교수. 전북 남원의 지리산 기슭에 사는 그는 ‘한국의 파브르’로 불린다. 《큰오색딱따구리의 육아일기》 《동고비와 함께한 80일》 《까막딱따구리 숲》 등 새의 번식과정을 관찰한 책을 5년간 줄줄이 냈고, 최근엔 지리산 자락과 섬진강 줄기에서 만난 다채로운 자연의 모습을 담은 《나의 생명수업》을 냈다. 《나의 생명수업》은 저자가 지리산 부근에 있는 서남대에 부임한 직후 쓰기 시작해 20년간 써내려간 생태 관찰일기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은 김성호 교수에 대해 “자연과학적 사실과 감성을 뒤섞는 뛰어난 관찰자임과 동시에 뛰어난 시인”이라고 평했다.

그가 펴낸 일련의 책들이 의미가 있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의 속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는 그의 책의 주연인 딱따구리와 조연급인 원앙, 호반새, 파랑새, 소쩍새, 하늘다람쥐 등의 생활권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그저 우직하게 관찰한다. 어떤 편견이나 사전 정보 없이 분 단위로 세세히 기록한 생물들의 행태 하나하나는 귀중한 생물학적 자료가 된다. 그는 혹여 새들이 침입자의 존재를 느끼고 불편해하거나 행동 양식이 달라질까 봐 둥지 근처에 낮은 움막을 지어 생활하면서, 그들의 생활권을 지날 때에는 나뭇잎으로 만든 위장막을 썼다.

“새들의 사생활을 엿보는 거잖아요. 기본적인 예의는 지키자는 생각에 움막을 지었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친구들은 다 알아요. 예를 들어 제가 둥지에 가까이 가면 신경을 안 쓰는데, 낯선 사람이 오면 바로 날아가버리죠. 저는 자기들을 해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기막히게 알아요. 예의를 지키는 사람이라는 걸 아는 것 같아요.”

까막딱따구리는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딱따구리 가운데 가장 큰 새로, 천연기념물 제242호로 지정됐으며 멸종위기의 야생동물이다. 지리산에서도 까막딱따구리 한 쌍을 만났지만 너무 높은 지대에 있어 관찰이 어려워 강원도 화천까지 갔다. 그는 까막딱따구리 한 쌍의 서식처인 은사시나무 숲에 움막을 짓고 첫 해는 두 달, 두 번째 해는 네 달간 하루에 두세 시간씩 자면서 성실하게 이들의 둥지를 관찰했다.

“까막딱따구리는 4월에 짝짓기를 시작해 둥지를 짓고 알을 낳고, 품어 새끼를 기릅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장마가 오기 전에 끝나요. 새끼는 스스로 독립하는 시기가 되면 둥지를 떠나요. 그러면 암컷과 수컷은 헤어져 각자의 시간을 보냅니다. 다음 해 봄이면 다시 짝짓기를 시작하는데 작년과 동일한 파트너인지, 다른 개체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네요. 유전자 검사를 할 수 없으니 말입니다.”

맨살로 새끼를 더 따뜻하게 품기 위해 제 몸의 털을 뽑는 까막딱따구리.
딱따구리 부모가 새끼를 키워내는 과정은 눈물겹다. 알을 안전하게 지켜내 씩씩하게 독립할 때까지 키워내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부성애와 모성애는 인간만의 전유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알을 낳으면 암컷과 수컷은 단 한순간도 둥지를 비우지 않고 교대로 지킨다. 하루에 네 번 교대하는데, 그 교대 시간이 신기할 정도로 정확하다고 한다.

“몸속에 생물 시계가 있는 것 같아요. 한 매체에서 동행 취재한 적이 있는데 기자단이 혀를 내둘렀지요. 겨울에는 ‘아침 8시에 일어나 고개를 내밀고 10초간 있다가 둥지를 떠난다. 그리고 오후 4시에 다시 돌아온다’ 했는데 정확해요. 오차가 분 단위를 넘기지 않아요. 4월부터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면 활동 시간이 조금씩 당겨져 여름에는 오전 5시 30분에 나갔다가 오후 7시에 들어옵니다. 참 신기하죠. 해 뜨는 시간을 보고 움직이는 게 아니냐고들 하는데, 그것도 아니에요. 아주 흐린 날, 안개가 자욱한 날에도 정확하거든요.”

알둥지를 지키기 위해 딱따구리 부부가 교대하는 모습.
김성호 교수는 큰오색딱따구리와 함께하면서 삶의 태도가 달라졌다고 한다. 관찰 대상이었던 그들은 차츰 애정의 대상으로 바뀌었고, 그들이 남긴 사랑은 그의 삶을 풍요롭게 했다. 자식에 대한 희생적인 사랑을 온몸으로 보여준 새들을 보며 자신의 모습을 투영했고, 더 올라가 그의 아버지가 자신에게 베풀어준 사랑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는 새들의 찡한 모성애・부성애에 코끝이 시큰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라고 한다. 큰오색딱따구리 관찰 50일째, 성장한 새끼가 둥지를 떠난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찾아다니는 아빠 새, 새끼에게 주려고 네 시간 전에 물고 온 먹이를 부리에 문 채 주변 숲을 샅샅이 뒤지는 아빠 새를 보면서 그는 펑펑 울었다. 새끼를 다 독립시킨 새 부부가 드디어 숲에서 떠나는 마지막 모습을 보면서 그는, 앞으로 새를 보면서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알을 더 따뜻하게 품기 위해 제 몸의 털을 스스로 뽑아내는 새들을 보면서 또 한 번 감동했다. 새들은 알을 품을 즈음이면 호르몬의 변화 때문에 알을 품는 배 쪽 털이 쉽게 빠진다. 깃털을 완전히 뽑으면 그 부위로 혈관이 집중되어 체온이 더 올라가기 때문에 알을 더 따뜻하게 품을 수 있다고 한다.

새끼에게 먹이를 주는 딱따구리.
그의 관찰 방식은 미련하다 싶을 정도로 우직하다. 둥지 근처에 움막을 지어놓고 새벽 4시부터 밤 10시까지 새 둥지에서 눈을 떼지 않고 관찰했다. 체력의 한계 때문에 두 번 쓰러졌다. 모든 것을 사비로 충당하다 보니 비용을 아끼기 위해 찜질방에서 쪽잠을 자고, 식사 또한 제대로 못했다. 아침은 굶었고, 점심은 움막 근처에 사시는 노부부의 집에서 해결하고, 저녁은 화천의 시장통에서 때우기 일쑤였다. 남들은 왜 그렇게 미련하게 관찰하느냐며 “CCTV를 켜놓으면 되지 않느냐” “패턴을 알았으니 교대 시간에만 관찰하면 되지 않느냐”고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다르다.

“둥지 주변의 상황을 종합적으로 봐야 해요. 주변의 사소한 소리까지 놓치면 안 되거든요. 까막딱따구리는 소리를 내면서 와요. 9시간 기다리다 멀리서 소리가 들렸을 때의 그 기쁨은 영상을 통해서는 느낄 수 없어요. 눈으로 보고, 소리를 듣고, 가슴으로 느끼는 거죠. 또 언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고요. 과학적인 사실의 기록이잖아요. 빈 자리를 저의 상상력으로 채울 수는 없어요.”

그는 ‘기록의 왕’이다. 신설 대학인 서남대에 부임하면서 그는 꼬박 10년간 ‘학교일기’를 썼다. 그렇게 하루도 빠짐없이 학교의 대소사를 기록하다 보면 학교의 역사가 보이고 바람직한 발전 방향이 한눈에 보일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아내와의 ‘데이트일기’도 썼다. 10년간 연애 끝에 결혼했다는 부부는 1000번째 만나는 날 결혼식을 올렸다. “1000번을 채우기 위해 하루 두 번, 세 번 만난 적도 있다”며 웃는다.

그는 서남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로 정년까지 근무할 예정이다. 지리산 자락을 이고, 섬진강변을 마주한 이곳에서 그는 틈나는 대로 자연의 속살을 보기위해, 자연의 마음을 읽기 위해 달려갈 것이다. 그는 기자에게 자신의 책을 건네면서 이렇게 사인을 했다.

“자연의 마음을 작은 목소리라도 세상에 전하고 싶었습니다.”
  • 2011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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