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회에서 ‘드로잉 퍼포먼스’ 하는 김묵원 작가

음악과 그림이 한 무대에서 만나다

9월 18일 저녁,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열린 서울드럼페스티벌의 <타악궤범 프로젝트> 공연. 세계 각국의 악기와 목소리, 플라멩코의 발장단까지 강렬한 비트로 메워진 무대에 특별한 코너가 있었다. 커다란 캔버스가 무대 한가운데로 들어오더니 타악기의 연주에 맞춰 한 획 한 획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화가는 캔버스 뒤에 있어 모습이 보이지 않고, 관객은 한 획씩 그려지는 붓놀림을 숨죽인채 지켜봤다. 얼마 후 캔버스에는 붉고 강렬한 꽃송이가 피어났다. 9월 22~23일 저녁, 서울 대치동 한국문화의집KOUS에서 열린 25현 가야금 연주회 <가야금, 폭풍의 전설>. 개량한복을 입은 가야금 연주자들이 꽃봉오리처럼 앉아서 연주하는 이 무대 한쪽에 커다란 캔버스가 세워졌다. 가야금이 고즈넉하고 청아하게 연주되는 동안 캔버스에는 흐르는 듯한 붓질이 이어지더니 무대 배경과 같은 산이 들어섰다. 10월 1일 저녁, 서울와우북페스티벌 개막공연 무대에도 이 캔버스가 올랐다.

예술혼을 벼리며 ‘자기와의 싸움’을 하는 화가의 작업실. 그 작업실을 무대로 옮겨 음악가들과 호흡을 맞추며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있다. ‘드로잉 퍼포먼스’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김묵원씨다. 그는 요즘 누구보다 바쁜 날을 보내고 있다. 다양한 음악회와 각종 행사에 초청받아 관객들 앞에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타악궤범 프로젝트> 공연이 끝난 후 만난 그는 여전히 타악 연주의 리듬을 타듯 신이 나 있었다.

“정말 멋진 친구들이었어요. 저도 재미있고 신이났죠. 꼭 다시 만나 함께 공연하자고 약속했어요.”

음악회를 ‘듣고 또 보는 공연’으로 만들고 있는 그. 관객 입장에서는 연주만 들을 때보다 그림 작업을 함께 보고 있으니 무대에 대한 집중도가 높아지면서 훨씬 더 입체적으로 느껴졌다. ‘드로잉 퍼포먼스’로 완성된 작품은 그 후 어떻게 될까. 이 작품을 사겠다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아예 공연 전부터 ‘예약’해두는 사람도 있다고. 의미 있는 행사장에서 퍼포먼스를 했을 때는 주최 측에 기증하기도 한다. 한 무대에서 그림과 음악이 어우러지는 ‘드로잉 퍼포먼스’는 그림, 그리고 음악을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그에게 ‘맞춤’인 듯했다.

그는 이 길에 이르기까지 많은 길을 돌아서 왔다. 그는 어릴 적부터 ‘그림 잘 그리는 아이’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선생님으로부터 그림을 잘 그린다고 칭찬을 받았고, 사생대회에 나가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대회 심사위원이었던 화가가 집에 찾아와 “아이 재능이 아까우니 내가 가르치겠다”고 부모님을 설득하기도 했다. 그러나 부모님은 “환쟁이가 되려고 하느냐”면서 그의 재능을 마뜩해하지 않았다. 커다란 한옥에서 4남매와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고모, 친척오빠들에 하숙생까지 그득하게 살았던 터라 그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그는 겨우 부모를 설득해 고등학교 3학년 5월부터 미술학원에 다녔고, 홍익대 미대 동양화과에 입학했다.

“준비기간이 워낙 짧아 떨어질 거라 생각하면서도 보내주셨던 것 같아요. 밤 12시가 넘어 학원에서 돌아오면 아버지가 마중 나와 있다 화구통을 확 빼앗아 들고는 뚜벅뚜벅 앞서 걸으셨죠. 지금 생각해도 그때가 제일 행복했어요. 덕소 집에서 청량리에 있는 화실까지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에도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머릿속으로 계속 그렸어요. 지금도 그때 그 벌판, 햇빛을 받아 반짝이던 플라타너스 나뭇잎, 감나무의 감이 머릿속에 생생해요.”

그러나 막상 대학에 들어간 후에는 그림에서 멀어졌다. 노래가 좋아서 들어간 동아리는 운동권 서클이었다. 여기저기 시위 현장을 다녔고, 미대생이란 이유로 현수막에 글씨 쓰는 일이나 무대미술을 맡았다.

“현수막에 글씨를 워낙 많이 써서 제 글씨가 ‘묵원체’로 불리기도 했어요. 현수막 글씨도 어떻게 예술적으로 만들까, 필체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림이 좋아 미대에 갔지만, ‘사회 현실을 외면한 채 내 그림만 그린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림이 사람들에게 어떤 감동을 줄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지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림과 멀어진 거죠.”

대학 졸업 후에는 미술잡지 기자, 이벤트 회사 PD, 인디 저널리스트, 미술치료사 등 다양한 일을 했다.

“결혼 후에는 애들 키우면서 요리, 재봉, 인테리어 등 집안일에 푹 빠져 지낸 적도 있어요. 제가 워낙 지금 하는 일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고 살거든요.”

미술로 다시 돌아온 것은 미술치료 공부를 하면서였다.

“먼저 저 자신을 들여다보면서 치료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제가 껍데기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스스로가 중심이 되지 못하고 남에게 보이기 위한, 꾸민 삶을 살고 있었죠. 집에 누가 갑자기 와도 흠 잡히지 않으려 집안을 완벽하게 정리해놓고는 소파에 제대로 눕지도 못하는 식이었죠. ‘그림도 제대로 안 그리면서 뭐 홍대 미대 졸업생이야’라는 자격지심에 그림을 더 멀리했었는데, 그걸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배고프면 밥을 먹어야 하듯 그리고 싶고 표현하고 싶은 것 역시 본능적인 것인데, 그걸 억지로 눌러온 게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정신질환자들을 대상으로 미술치료를 했는데, 아주 좋은 시간이었어요. 무의식에서 나온 그들의 그림은 ‘진짜’였거든요. 너무 매력적이어서 훔치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2004년부터 누드 크로키를 하면서 그는 다시 붓을 잡기 시작했다. 누드 모델이 1, 2분 혹은 30초마다 바꾸는 포즈를 포착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기 싸움을 해야 한다. 그는 “‘날 어떻게 해봐’라는 듯 포즈를 취하는 모델에게 잡아먹히지 않고, 1초 안에 내면의 표정까지 읽어내 재빨리 스케치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팽팽한 긴장감이 좋았다. 누드 크로키를 하면서 그는 그림 하나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던 고3때의 열정을 되살렸다. 요즘도 그는 눈에 보이는 것들을 머릿속으로 그린다고 한다. 그의 누드 크로키를 보면 유려하면서도 힘 있는 필선에, 생동감이 넘친다. ‘그리기’로 돌아간 그는 뜻하지 않게 ‘드로잉 퍼포먼스’를 시작하게 됐다.

“영화 〈워낭소리〉의 OST를 만들었던 퓨전국악 보컬그룹 ‘아나야’의 허훈 음악감독이 ‘우리 공연에 그림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누나가 그림 좀 그려주면 안 될까’라고 하는 거예요. 사람들 앞에서 먹물을 튀기면서 요란하게 그림을 그리기는 싫었어요. 고심 끝에 캔버스 뒤에서 그리기로 했지요. 그런데 그림 그리는 사람이 보이지 않으니, 붓이 어떻게 움직일지 몰라 사람들이 더 집중하더라고요.”


그는 2007년, ‘아나야’의 콘서트에서 처음 실크천으로 가로 세로 110×300cm짜리 커다란 캔버스를 만들어 세우고 뒤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한 획 한 획이 중요한 동양화를 전공한 데다 순식간에 그려내는 누드 크로키 훈련을 한 게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사군자나 산수화같이 조용하고 정적인 그림보다 역동적인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그에게 ‘드로잉 퍼포먼스’는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 이벤트 회사 PD를 하면서 이천도자기축제 개막식 등을 기획했던 것도 무대와 관객을 이해하는 바탕이 되고 있다. 드로잉 퍼포먼스에서 그는 그때그때 떠오르는 느낌을 흘려 쓰면서 마무리하는데, 대학시절 열심히 현수막을 썼던 게 도움이 된다.

“지금 생각하니 제가 거쳐 온 모든 과정이 ‘드로잉 퍼포먼스’의 자산이 되고 있어요. 그때는 길을 몰라 헤맸던 것 같은데, 지나오고 보니 모든 게 하나로 모이고 있네요.”

드로잉 퍼포먼스를 시작한 지 4~5년 된 그는 익숙해지는 것을 스스로 경계한다고 말한다. 첫 무대에서의 긴장과 몰입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최고를 보여주려면 무대에 오르기 전 과정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작업실에서 계속 필력을 단련하고, 영감을 받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요.”

그는 11월 30일 서울 인사동 이즈갤러리에서 <그림 콘서트>를 연다. 이번에는 그가 음악가들을 초청해 ‘드로잉 퍼포먼스’와 함께 콘서트를 연다.

사진 : 김선아
  • 2011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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