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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사・작곡에 노래와 피아노 연주까지, 욕심이 너무 많나요?

뮤지션 윤한

기본기가 탄탄한 그의 음악은 쉬우면서도 감정의 과잉이 없다.
멜랑콜리하면서도 끈적거리지 않는 적당한 감미로움.
색으로 표현하면 연보랏빛이다.
‘오르페우스와 나르시스를 닮은 아티스트’, 팝 피아니스트 윤한을 두고 하는 말이다. 버클리 음대를 졸업하고 작사와 작곡, 피아노 연주와 노래까지 하는 데다, 연예인급 외모, 런웨이에 서도 손색없는 체격 요건까지 두루 갖춘 그는, 마음을 홀리는 하프 연주로 지하세계의 신인 하데스마저 감동시킨 그리스 로마신화 최고의 악인(樂人) 오르페우스, 그리고 스스로의 아름다움에 도취된 미소년 님프 나르시스의 이미지를 가졌다.

이 ‘엄친아스러운’ 스펙을 갖춘 아티스트가 음악시장에 잔잔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해 말 전곡을 직접 작사, 작곡, 노래와 피아노 연주까지 해서 만든 1집 가 발매 직후부터 핫트랙스, 한터차트 등 각종 음반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꾸준히 인기몰이를 하더니, 올해 5월에는 일본의 유명 음반사 포니캐니언 측의 러브콜을 받아 연주음반인 를 냈다.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의 OST ‘그대를 그리다’를 연주하면서 대중적인 인지도가 한층 넓어졌다.

는 한 여자와의 만남과 사랑, 이별을 그린 노래와 연주곡으로 차 있다. 5년간 사귀다 1년 전쯤 헤어진 여자 친구가 뮤즈다. 헤어진 후 회상하면서 만든 곡이 아니라, 5년 동안 꾸준히 쓴 곡이어서 사랑의 생로병사가 현재진행형으로 흐른다. 기본기가 탄탄한 그의 음악은 쉬우면서도 감정의 과잉이 없다. 멜랑콜리하면서도 끈적거리지 않는 적당한 감미로움. 색으로 표현하면 연보랏빛이다. 작사와 작곡을 동시에 하기 때문에 선율과 노랫말이 하나가 되어 흐른다. 직접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기에 곡의 느낌이 더 잘 산다. 가을밤, 누군가를 잃고 쓰린 가슴을 어쩌지 못해 잠 못 드는 이에게 선사하면 좋을 곡들이다.


그의 음반은 고급 레스토랑의 코스 요리 같다. 재즈와 발라드, 솔(soul)과 팝, 심지어 클래식 느낌이 묻어나는 곡까지, 다양한 레퍼토리의 음악이 각각 펼쳐지지만 전체적으로 오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가장 인기 많은 노래이자 헤어진 연인을 떠올리며 부르는 〈바보처럼〉은 발라드 같고, 영문으로 작사한 노래 〈Just Friends〉와 〈London〉은 팝 같다. 이 다채로운 색채의 음반 장르를 뭐라고 해야 할까.

“제가 생각해도 장르가 복합적이에요. 미국에 가서 처음엔 재즈피아노를 배웠어요. 그다음엔 월드뮤직을 접하면서 흑인 밴드, 백인 밴드의 음악을 했고요. 지금은 영화음악 전공으로 박사과정 중이에요. 그러다 보니 앨범에도 다양한 색채가 묻어나는 것 같아요. 이제 1집이 나왔잖아요. 앞으로 제가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나가야죠.”

외모가 눈에 띄는 그는 소위 ‘길거리 캐스팅’을 여러 번 받았다. SM엔터테인먼트에서 카메라 테스트를 받기도 했고, 한 케이블TV의 오디션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웬만한 아이돌 스타 못지않은 외모와 노래 실력, 게다가 음악성까지 갖추었으니 계속 오디션을 봤다면 어느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던 어느날, 그의 진로를 바꾼 사건이 생겼다. TV의 한 음악 프로그램에서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 한 남자에게 마음을 뺏긴 것. 김동률이었다. 피아노를 치면서 자신이 만든 노래 <2년 후에>를 부르는 김동률을 보면서 ‘나도 저런 음악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김동률이 버클리 음대에 진학할 예정이라는 것을 알고 ‘나도 버클리 음대에 가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이전까지 그는 뚜렷한 꿈이 없었다. 학교 성적이 좋았으니 막연히 의사나 변호사를 생각했을 뿐.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그는 인생의 궤도를 대대적으로 수정했다. 꼭 버클리 음대여야 했다. 버클리 음대를 가기 위해 철두철미하게 준비했다. 악기 하나를 다뤄야 해서 초등학교 때 잠시 배우다가 재미없어 그만둔 피아노 앞에 다시 앉았다. 버클리 음대 출신 피아니스트를 수소문해 피아노 레슨을 받고, 죽어라 토플공부를 했다. 그는 그 시절을 “잠자는 시간을 빼고 피아노 연습과 토플 공부에 몰두했다”고 회상한다. 그렇게 준비하기 시작해 6개월 만에 꿈에 그리던 버클리 음대에 거짓말처럼 합격했다.

그 비결이 뭘까. 이전까지는 음악 전공을 생각해본 적도 없던 그는 어떻게 이 짧은 기간 동안 수준급 음악 실력을 갖춘 걸까. 그는 “그냥 재미있어서 하다 보니 이렇게 됐네요”라며 웃는다.

“처음에는 레슨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만 했어요. 버클리 음대에 가야 한다는 생각에 기계적으로 연습했죠. 그런데 연습하면서 음악 자체에 푹 빠졌어요. 너무 늦게 시작한 게 아니냐는 질문들을 많이 하시는데,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오히려 백지 상태에서 새로운 장르를 접하니까 편견 없이 스펀지처럼 흡수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버클리 음대에서 그는 진학 준비시절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다. 그랜드 피아노가 있는 연습실을 차지하기 위해 새벽에 등교했고, 강의가 빌 때마다 틈틈이 연습했다. 하교 시간은 새벽 2시. 그는 가장 늦게 학교를 나서는 학생이었다고 한다.

“하루에 12~13시간씩 연습했어요. 그런데 연습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네요. 그냥 재미있고 좋아서 피아노를 친 거니까요. 그렇게 하다 보니 스스로 실력이 느는 게 느껴져서 더 재미있고요.”

재주 많은 이 신인은 운동도 잘한다. 수영과 골프에도 소질이 있고, 라켓볼은 세미프로 수준이다. 사람을 좋아하고 리더십이 있어 주변에는 사람이 들끓고 학창시절 내내 반장을 도맡아 했다. 그는 그저 음악이 좋고, 음악을 좋아하는 자신이 좋다고 한다. 인터뷰를 하면서 윤한의 연주앨범 을 틀어놓았는데, “자신의 음반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느냐” 묻자 “오! 잘 치는데”라며 농을 섞어 답한다. 차에도 늘 자신의 음반을 틀어놓고, 콤플렉스가 없느냐는 질문에 “단점도 장점으로 생각하는 편이라 콤플렉스가 없다”고 말하는 그는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나르시스를 꼭 닮았다.

음악가가 된 이후 그의 꿈은 바람대로 착착 이루어지고 있다. 버클리 재학 시절 ‘내 음반을 꼭 하나 내고 싶다’던 꿈은 이루었고, 음반을 낸 후 ‘예술의전당 무대에 서고 싶다’던 꿈도 이루었다. 그의 다음 꿈은 올림픽 체조경기장 무대에 서는 것이라고 한다. 벌써 5집 음반까지 구체적으로 계획을 짜놓았다.

“1집은 세상에 저를 알리는 음반이었어요. 2집은 좀더 다듬어서 세련되고 대중적으로 만들 계획이에요. 곡은 이미 많이 써놨어요. 내년 초 발매가 목표예요. 3집은 제가 갔던 도시들을 테마로 해서 만들고 싶고요, 4집은 기존의 명곡들을 재해석해보고 싶어요. 5집이요? 전공 분야를 살려서 영화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오케스트라 연주와 함께 웅장하게 말이에요.”

그는 어떤 장르의 수식어도 없이 그냥 ‘윤한’으로 불리고 싶어 한다. 이 꿈이야말로 야무지지 않은가. 자신의 이름이 곧 하나의 장르가 되는 것이니 말이다.

사진 : 김선아
  • 2011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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