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 셰프에서 신사동 가로수길에 매장 낸 ‘그릴5타코’ 김현철 대표

한국식 타코의 성공비화 들어보실래요?

최근 오픈한 타코 전문점 ‘그릴5타코’가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에서 수입한 트럭을 개조해 한식을 기반으로 만든 퓨전 타코로 이슈를 만든 것이 지난해 여름. 김현철 대표가 직접 개발했다는 그릴5타코의 외형은 타코와 부리토지만 입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갈비쌈과 비빔밥이 된다. 트위터를 통해 판매장소를 미리 공지하는 방식의 마케팅으로 많은 팬을 만들었던 그릴5타코 트럭은 식품위생법상 문제와 주민들의 신고로 결국 두 달 만에 영업을 중단했다. 수개월이 지났지만 매장 준비 소문만 무성하고 ‘합법적’인 판매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기다리던 사람들도 지쳐갈 무렵, 지난 8월 드디어 신사동 가로수길에 그릴5타코 매장이 탄생했다. 오픈 2주 만에 가로수길에서 제일 잘나가는 가게 중 하나가 된 그릴5타코. 파란만장한 인생 반전의 스토리가 숨어 있는 그릴5타코의 탄생비화를 김현철 대표의 육성으로 전한다. “친구들, 내 얘기 한번 들어볼래?”
나는 이른바 밤의 자식이었다. 나이트클럽 DJ로서 산 12년간은 술과 여자, 밤의 열기로 자욱했다. 논 것을 이력서에 쓰면 다 읽지도 못할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 생활이 지겨워졌다. 나이도 들어가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도 느껴졌다. 밤과 작별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계획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벌어놓은 돈을 펑펑 써댔다. 그렇게 철없는 짓을 하다 보니 홀어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고민이 시작되었다.

방황의 장소로 일본을 택했다. 갖고 있던 외제차를 판 돈을 쥐고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다. 어느 날 거리를 배회하던 중 타코야키(문어빵)가 눈앞에 나타났다. ‘타코야키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행하듯 타코야키만 먹었다. ‘문어빵 귀신’으로 살기를 두어 달, 타코야키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한국으로 돌아와 소형 밴을 개조해 이동식 가게를 만들었다. 절박한 심정으로 무조건 뜯어고쳤다. 마침내 개시하던 날. 한때 밤마다 수백 명을 춤추게 하던 밤의 용사였지만, 대낮에 아파트 단지 앞에서는 치과 진료를 기다리는 아이나 다름없었다. 아이들이 “짱구보다 더 못 만든다”며 놀려댔다. 낙심했지만 더 맛있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어느 날, 맛있다고 다시 찾아오는 아이가 생겼다. 처음 느꼈다. 가치 있는 일을 했을 때의 기쁨을, 나이트클럽 시절에는 느껴본 적 없는 보람을.

공부는 해본 적 없지만 요리는 달랐다. 음식 관련 다큐멘터리를 섭렵하면서 더 맛있는 타코야키를 만들기 위해 공부했다. 어느덧 타코야키의 마스터 수준이 돼 있었다. 규모를 키우고 싶었다. 공장을 섭외하고, 브랜드를 만들고,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했다. 1년이 지나자 28개의 가맹점이 생겼다. 나 자신도 놀랐다. 하지만 곧 다시 시련이 닥쳤다. 잦은 단속과 벌금, 좁은 차 안에서의 스트레스에 치여 어제의 동지들이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두 번째 작별을 했다. 타코야키를 접은 것이다.


타코야키에 대한 미련은 없었지만, 음식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태어나 처음 느껴본 거대한 자족감을 잊을 수 없었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던 시기, 지독하게 외로웠다. 그때 그녀가 나타났다. 그녀는 내 생의 구원자였다. 그녀와 함께 다음 도약을 준비했다. 부티크 레스토랑부터 시장바닥까지 곳곳을 누볐다. 그러던 중 그녀가 재미교포 로이 최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한국인 할머니에게 배운 한식과 멕시칸 타코를 접목해 만든 로이 최의 음식이 LA를 강타했다는 얘기였다. 이것은 계시였다. 무엇보다 로이 최의 푸드트럭은 나의 타코야키 밴과 닮지 않았나. 드디어 다시 안개가 걷혔다. 타코트럭, 그것이 내가 갈 길이었다.

가로수길에 위치한 그릴5타코 매장.
음식 주문 시 기호에 따라 재료를 고를 수 있다.
트럭을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이베이 한국 담당자를 찾아가 무작정 부탁했다. 어렵사리 만난 텍사스의 구식 트럭. 문제는 수리였다. 단종된 트럭을 수리하기 위해 전국을 수소문했다. 막막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태원의 은둔고수인 찰리 아저씨를 만났다. 운명처럼 만난 그분과 함께 불가능할 것 같던 트럭 수리를 끝낼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타코가 없었다. 또 다시 오사카에서처럼, 식당순례를 하던 것처럼 타코 가게를 다니기 시작했다. 하루에 7~8곳의 타코를 먹었다. 원조 타코를 안 먹어봤음에도 진짜배기 타코는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진짜 타코를 찾아 헤매던 그때, 타코벨이 한국에 재상륙했다. 그것은 하나의 상징이었다. 한국에도 타코시장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갈 길은 퓨전이었다. 로이 최의 타코와 같이.

어머니는 40년 넘게 식당을 하셨다. 한식과 타코를 연구하면서 점차 내 피를 깨달아갔다. 어머니의 진한 음식 유전자는 내 혈관에도 흐르고 있으리라. 끝없는 연구 끝에 마침내 나만의 요리를 완성했다. BOOM! 그릴5타코 탄생.

트위터를 통해 트럭의 위치를 알리며 첫 장사를 시작했다. 세계 음식의 성지 같은 이태원부터 공략했다. 그러나 성지의 벽은 높았다. 그들은 음식이 아니라 트럭에만 관심을 가졌다. 다음은 강남이었다. 가로수길에서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타코를 찾는 사람이 늘어갔고, 5일이 지나자 줄을 서기 시작했다. BANG! 마침내 터졌다.

하지만 그릴5타코에는 치명적 약점이 있었다. 트럭에서 음식을 파는 것은 불법이었다. 주민들의 신고와 단속 아래 설 곳을 잃어갔다. 경찰서와 법원을 들락거리는 사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벌금을 물었다. 장사를 접어야 할 것 같았다. 영광의 순간은 너무도 짧았다.

2010년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다시 외롭고 추운 겨울이 시작되었다. 그사이 여자 친구와 일을 도와주던 친구들도 떠나갔다. 좌절해 있던 나를 다시 세운 것은 ‘힘내라’는 트위터의 메시지들, 그리고 혹한 속에서 만난 주형이었다. 거칠고 자유롭지만 느긋하고 여유를 잃지 않는 주형이의 뜻도 나와 같았다. 음식이 천하지대본이며, 좋은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는. 우리는 그릴5타코를 위해 결의했다. 꼭 좋은 음식을 만들겠노라고. 합법적으로.

그릴5타코 매장을 내기까지 과정은 가시밭길이었다. 투자자를 구하기 위해 밤새워 사업 프레젠테이션을 구상하고 발표연습을 했다. 드디어 투자자를 만났다. 하지만 그들은 6개월 동안 그릴5타코의 미래를 계산만 하면서 우리를 지치게 했다. 그릴5타코의 부활을 지켜보는 이들에게 미안해졌다. 무엇보다 나만 믿고 따라와준 동료 주형이의 눈빛이 말하고 있었다, 이건 아니라고. 계약서를 뒤에 두고 말했다.

“이건 아닌 것 같아요. 계약 파기할게요. 하지만 언젠가는 후회하실 겁니다.”

순식간에 갈 곳이 없어졌다. 그러나 기회는 의외로 가까이 있었다. 아는 분을 통해 수소문한 지 4일째, 흔쾌히 우리 미래에 투자하겠다는 사람을 만났다. 그 후로는 일사천리. 처음 트럭으로 시작했을 때와 같이 뜨거운 여름, 우리는 가로수길에 돌아올 수 있었다. 합법적으로!

때로는 막연한 목표가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타코야키 시절도 그랬고, 타코 트럭을 하던 시기에도 그랬다. 그저 막연히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싶었다. 비록 정식으로 요리를 배운 적 없는 길거리 셰프지만, 남들이 못하는 것을 결국 해냈다. 이제는 외국인 친구들도 줄 서서 먹는 한국식 타코. 이것이 바로 그릴5타코다.

사진 : 김선아
  • 2011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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