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기행》 펴낸 민속학자 주강현

제주의 문화적 원형질을 찾아보세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제주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하지만 ‘진정한 제주’의 모습을 우리는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 여행지로서 제주를 그저 아름다운 곳으로만 인식하는 이들에게 “제주는 단순히 아름답기만한 곳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인문학자가 있다. 민속학자이자 해양학자인 주강현씨(54・제주대 석좌교수・해양문화연구원장)다. 그는 최근 제주의 역사・자연・신화・생태・민속・관광을 총체적으로 바라보는 통섭적 시각으로 풀어낸 《제주기행》을 통해 우리에게 새로운 눈으로‘제주’를 보라고 말한다. 제주도는 화산섬으로 탐라시대부터 이어진 오랜 역사의 섬, 산과 바다가 아름다운 생태의 섬이며, 전통문화가 남아 있는 민속의 섬이자 민란이 거듭된 반란의 섬이기도 하다. 하지만 제주도를 역사・문화적으로 접근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제주도를 육지에 딸린 변방이 섬이 아니라 드넓은 바다로 진출한 역동적인 섬으로 치환해서 봐야 합니다. 이 관점에 기반해 동아시아 역사를 베이징–서울–도쿄로 연결하지 않고 타이완–제주–오키나와로 연결해본다면 전혀 새로운 시각의 역사가 탄생한다는 것이지요.”

올레길.
지금도 오키나와・타이완・괌・하이난 등 섬은 본토와 갈등 중인 곳이 많단다. 그는 이렇게 해양을 중심으로 볼 때 제주의 역사뿐 아니라 세계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게오르그 짐멜(Georg Simmel)은 토착민보다 이방인이 그 땅을 더욱 면밀히 탐색하며 적응한다고 했습니다. 경계인의 시선으로 탐라의 DNA를 밝혀보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이면서도 우리나라가 아닌 이방의 섬 제주에 대해 알아보려고 일산에 위치한 그의 연구소 ‘정발학연(鼎鉢學硏)’을 찾았다.


제주는 육지에 딸린 변방의 섬이 아니라 드넓은 바다로 진출한 역동적인 섬

연구소로 들어가는 출입문 계단부터 천장까지 책으로 꽉 찬 연구실은 유럽의 어느 도서실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한국어뿐 아니라 영어・일어・중국어 등 방대한 외국 서적과 지도, 해도, 사소한 메모까지 그가 얼마나 전국과 세계를 누볐는지를 짐작케 했다. 책장 위에 놓인 청자와 빈티지 올림푸스 카메라, 캐논 등 갖가지 카메라, 바이칼에서 가져온 샤먼의 일러스트 엽서까지 그의 연구실은 재미난 것들로 넘쳤다. 그는 현재 문화 종다양성 및 해양문명의 원형질을 탐구 중이다. 아시아의 바다를 비롯해 시베리아·태평양 연안, 지중해와 대서양을 아우르는 비교해양문명사를 연구하고 있다. 그는 해양문화재단의 〈해양과 문화〉 편집주간, 해양문화연구원장, 해양아카데미 원장으로도 활동 중이며, 2012 여수세계박람회 해양수산자문위원으로 해양문명도시관과 주제관을 자문하고 있다. 그는 그동안 《우리 문화의 수수께끼》를 비롯해 《제국의 바다 식민의 바다》 《관해기》 《독도견문록》 《적도의 침묵》 《상하이 세계박람회》 등 40여 권의 책을 펴낸 파워 라이터다.

제주에서 올라온 지 이틀 되었다는 그는 며칠 후 바이칼로 현장답사를 떠난다고 했다. 바이칼에서 돌아오면 곧이어 한국문화 강연을 위해 일본 오카야마현으로 떠난다고 했다. ‘바다도시와 해양문명’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40개국 항구도시를 모두 돌았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킬리만자로의 표범’이에요. 이런 가사가 나오죠. ‘묻지 마라 왜냐고 왜 그렇게 높은 곳까지 오르려 애쓰는지 묻지를 마라’라고요. 하하. 저도 왜 이렇게 다니느냐고 묻지 말라고 하고 싶네요.”

제주폭낭.
그는 현장을 발로 뛰어다니는 부지런한 학자다. 바다로, 들로, 산으로…. 연구실에서 글을 쓰지 않으면 나머지 시간은 모두 밖에 있는 셈이다. 한여름 폭염에도 에어컨을 틀지 않는다는데, 어떤 현장에서나 몸을 맞출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이라고 한다. 《제주기행》은 청년 시절부터 제주대 석좌교수로 있는 지금까지 30여 년 동안 보고 연구한 것을 총결집한 것이다. 《제주기행》은 제주도를 바람・돌・여자・곶자왈・귤・신・화산・잠녀・우영팟・삼촌 등 15개의 DNA로 분류해 제주의 원형질에 접근하고 있다.

“제주는 신들의 섬입니다. 문화유산보다는 무형의 유산이 강한 사회예요. 또 중앙적 관점보다는 변방적 관점, 민중적 관점으로 봐야 해요.”

탐라순력도감귤봉진.
제주인들이 《제주기행》 ‘서문’의 이 구절을 보고 감격했다는 뒷얘기가 있다.

“테마파크형 대형마트가 번성하는 시대에 제주도 아이들도 햄버거집에 앉아 도시풍에 젖습니다. 제주 아이들도 더 이상 애기구덕에서 자라지 않으며, 유모차에 실린 채 치킨 냄새를 맡으며 자라납니다. 그래도 해녀들은 수백 년 전 선조들이 해오던 방식대로 찬물에 뛰어들어 숨비소리를 내뱉고 잠수굿판에 심방을 모시고 간절하게 요왕에게 기원하는 일상의 나날을 살아갑니다. 곶자왈에서는 여전히 노루떼가 새끼를 낳고 동백나무가 1만 년 전과 마찬가지로 한겨울에도 초록의 잎을 내밀고 있습니다.”

여행서가 아닌 이 책은 어떤 여행서보다 제주의 내면으로 들어가고 싶은 간절함을 일으킨다. 스스로 ‘경계인’이라고 하지만, 그가 얼마나 제주에 깊이 들어가 있는지를 느낄 수 있다. 제주 하면 감귤을 떠올린다. 감귤은 탐라시대에도 재배되던 유서 깊은 과일로, 육지에서 흔히 볼 수 없다는 특성 때문에 감귤은 곧바로 착취의 대상이 되었다. 탐라국은 백제나 신라에 감귤을 공물로 바쳤다.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까지 감귤은 계속 진상되었고, 1894년에 이르러서야 감귤 진상이 해제되었다. 민가에서 재배하는 감귤나무에 열매가 맺히면 관리들이 찾아가 열매마다 꼬리표를 달아놓고 하나라도 없어지면 엄하게 처벌했다고 한다. 백성들은 ‘감귤나무는 통을 주는 나무’라 하여 일부러 죽이는 경우까지 생겨났다. 하지만 이제 감귤 농사는 온주밀감 위주의 단작에서 벗어나려고 노력 중이다.

잠녀, 즉 해녀가 멀리 중국・러시아・일본 등 동북아 지역으로 원정 물질을 한 사례도 담겨 있다. 섬이라는 지리적 조건으로 인한 바람신 등 민속과 신화를 통해 본 제주는 애틋하다. 일본이나 멀리 베트남까지 표류한 이야기와 제주도로 표류해온 외국인에 관련된 이야기, 말을 키우는 테우리, 한라산학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책의 곳곳에 우리가 몰라서 보이지 않던 제주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돌챙이.
“제주에는 이 당 저 당, 당이 최고라는 말이 있어요. 제주도 당은 육지의 친족과 달라요. 처갓집과 화장실은 멀리 떨어질수록 좋다는 말은 육지에나 해당하는 이야기죠. 친족은 아버지, 어머니 쪽 모두를 포괄합니다. 상부상조, 밤샘문화 등은 여전히 남아 있어요.”

테마파크로 변해가는 오늘의 제주와 신화, 역사, 생태의 섬이라는 본질적인 요소를 어떻게 조화시킬까가 숙제로 남아 있다. 이는 제주인뿐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그는 세계 각 지역의 민속이나 바다 위주의 사진으로 현재 30만 장의 사진 아카이브를 갖고 있다. 앞으로 그의 꿈은 제주에 ‘사진 아카이브’를 짓는 것이라고 한다.

사진 : 김선아
사진 제공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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