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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 기법으로 전통 맛 재현하는 ‘셰프의 떡집’

한식 디저트 카페 合

지난해 가을, 인사동에 ‘합(合)’이라는 이름을 단 독특한 떡집이 들어섰다. 네 평(13m2) 남짓한 공간은 전면이 유리로 되어 있어 밖에서도 떡 만드는 과정을 훤히 볼 수 있고, 공간 대부분을 작업 테이블이 차지해 포장만 가능하다. 한입 크기로 만들어 오븐에 구워내는 증편이 대표 메뉴. 개당 2000원이라는 제법 비싼 가격임에도 이 집의 떡은 이미 미식가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났다. 알고 보니 ‘合’은 유명 레스토랑을 두루 거치고 마침내 떡에 안착한 신용일 셰프의 야심작이었다.
신용일 대표를 만나기 위해 ‘합(合)’을 찾은 날, 그는 한창 증편을 만들고 있었다. 멥쌀가루에 막걸리를 넣어 발효한 반죽을 증편 틀에 조금씩 짜 넣고 그 위에 각각 유자와 올리브를 얹은 뒤 오븐에 넣었다. “떡을 오븐에 굽느냐”고 묻자 그는 “스팀 오븐”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증편은 온도・습도에 아주 예민한 떡이에요. 적당히 잘 부풀어 오르게 해야 하고, 꺼낸 뒤에도 푹 꺼지지 않도록 해야 해요. 그러면서 속까지 고루 잘 익혀야 하고 상황에 따라 온・습도를 조절해야 하는데 전통적인 찜솥은 그런 기능이 없으니 옛날 어른들은 감으로 만들었죠. 실패하는 경우도 생기고요. 스팀 오븐은 조절이 가능해 편리하고, 정확한 계량으로 만드니까 맛이 일정합니다. 저희는 약과도 기름에 튀기지 않고 오븐에 굽는데, 그걸 두고 퓨전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문헌에 보면 약과를 튀기기 이전에 기왓장에 구워서 먹었다는 기록이 있어요. 퓨전이 아니라 과거로 더 거슬러 올라간 진짜 옛 맛인 셈이죠.”

진열대에 늘어선 떡들은 한결같이 앙증맞다. ‘달콤한 양반들의 간식 주악’ ‘오븐에 구운 약과’ ‘포실포실 감자단자’ ‘장모님이 키워주신 팥으로 만든 팥 증편’ ‘짭조름한 맛이 일품인 올리브 증편’ ‘할머니께서 알려주신 백증편’ 등 꼬리표에 붙은 이름도 재미있다. 그가 만든 떡은 한입에 쏙 들어가는 크기라 먹기에 부담이 없고, 그리스산 올리브를 빼고는 우리 땅에서 나는 좋은 재료만 엄선해 건강에도 좋다는 것이 특징. 발효가 생명인 증편도 이스트 같은 일체의 첨가물 없이 막걸리만 쓴다.

현대인의 취향에 맞춰 한입 크기로 만든 떡들.
“인사동에 외국인이 많으니 이왕이면 우리 떡을 좀 알리고 싶었어요. 우리나라 사람과 외국인이 두루 좋아할 만한 것을 고민하다 증편・주악・약과 등을 하게 됐지요. 외국인이 떡을 싫어하는 이유가 ‘찐득한 식감 때문’이라고 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모양새가 비호감이기 때문이에요. 시루팥떡을 보면 우리는 맛있겠다고 생각하지만 외국인들은 징그럽다고 느껴요. 제가 셰프로 일할 때, 외국인 상에 예쁜 꽃으로 장식한 화전을 자주 올렸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찹쌀가루로 만들어 무척 찐득거리는데도 잘 먹더라고요. 우선 예쁘게 잘 만들어, 먹고 싶다는 호기심을 자극하면 식감은 나중 문제예요. 우리 떡을 맛보라며 덩어리로 뚝뚝 잘라주는 것보다 이렇게 만들면 한결 거부감 없이 접할 수 있잖아요.”

그러더니 그는 “우리나라 사람들부터 떡을 아껴야 하는데…”라며 한숨을 쉬었다. “빵은 세계 어디서나 다 만들지만 떡은 한국 사람이 아니면 누가 만들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던 대로, 레스토랑이나 카페를 열었다면 더 편했겠지만 그가 굳이 떡집을 내고, 최근 떡카페까지 낸 것은 일종의 사명감 때문이었다.

“요리를 하겠다고 나서는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프랑스나 이탈리아 요리를 하고 싶어 하고 제과제빵에 관심을 더 갖지, 떡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한식의 세계화가 이슈가 되고 있는 지금은 떡을 한식 디저트의 개념으로 새롭게 변화시킬 때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아무도 나서지 않으니 저라도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누구든 방법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는 다 가르쳐줄 생각입니다. 그래서 주방을 이렇게 시원하게 오픈했어요. 무엇이든 여럿이 경쟁하면서 가야 발전도 하는 법이니까요. 얼마 전 증편 공장에 다닌다는 젊은이, 지방에서 떡카페를 한다는 분이 다녀갔어요. 하루 이틀 만에 배울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관심 갖는 사람이 많다는 점에서 아주 고무적이죠.”


동서양 요리에 모두 능한 실력파

올해 나이 서른아홉, 떡집을 하기까지 그의 이력은 참으로 다채롭다. 연세대 체육교육과를 졸업한 그는 패션을 부전공하여 졸업 후 1년 반 동안 패션회사에서 일했다. 일찍이 요리를 좋아해 대학 시절 MT를 가면 가장 먼저 일어나 다른 친구들의 식사를 준비하는 학생으로도 유명했다. 그의 요리 솜씨를 눈여겨 본 학과 친구가 방송국 요리 프로그램 작가에게 그를 추천했고, 그것이 인연이 돼 다수의 방송・잡지에 출연하며 아마추어 요리사로 큰 인기를 끌었다.

결국 요리로 전업해 지화자궁중음식연구원에서 전통 음식을 익혔다. 지화자에서 운영하던 동명의 떡집에서 일하며 떡 만드는 기술도 배웠다. 이후 프랑스 르노토르 제과학교에 유학해 서양식 디저트까지 두루 배웠다. 그가 한식 디저트로서 떡에 주목하게 된 계기다. 유명 푸드 스타일리스트 노영희씨의 스튜디오에서도 일한 바 있는 그는 배우 배용준이 일본에서 오픈한 한식당 ‘고시래’ 부주방장, 스웨덴 주재 한국대사관저 전속 요리사, 모던 한식 레스토랑 ‘품 서울’ 셰프 등을 지냈다. 독립하기 위해 일을 잠시 쉬고 있던 지난해 4월에는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윈도 베이커리 전시회’를 기획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윈도 베이커리란 커다란 창문으로 주인의 빵 굽는 모습이 그대로 보이는, 한마디로 동네 빵집이라는 뜻이에요. 프랑스 유학 가기 전에 자주 다니던 빵집들이 있었는데 돌아와보니 다 없어지고 그 자리에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집들이 들어섰더라고요. 제게는 충격이었어요. 대기업 빵집이 시장을 독식하면 소비자들은 다양한 빵 맛을 볼 수 없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동네 빵집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고 싶어서 그 행사를 마련했지요. 호응이 대단해 깜짝 놀랐어요. 올 9월에는 떡 전시회를 해보려고 해요.”


그 기획전이 인연이 돼 그는 인사동에 자리를 잡았다. 당시 행사에 참여했던 지금의 건물주가 그에게 직접 연락해 새로 짓는 건물 1층에 떡집을 내달라고 요청한 것. 간판도 없이, 큰 길가에서는 잘 보이지도 않는 건물 모퉁이 가게였지만 호기심에 찾아온 손님들과 그들이 블로그 등을 통해 입소문을 낸 데 힘입어 그날 만든 떡은 그날 다 파는 매진사례를 8개월째 이어오고 있다.

최근에는 지하층에 떡카페까지 냈다. 1층에서 구운 증편・약과 등을 커피・유자차・배숙 등과 즐길 수 있다. 처가에서 농사지은 팥을 가져다 그가 직접 삶아 졸여 내는 팥빙수는 요즘 가장 인기 있는 메뉴. 판매를 시작한 지 1주일 만에 한 일간지 기자가 소문을 듣고 찾아와 ‘팥빙수 특집 기사’에 소개하기도 했다. 앞으로 ‘합(合)’을 한식 디저트의 중심지로 만들고 싶다는 신용일 대표. 동서양 요리에 모두 능하고, 국제 감각에 외국어 실력까지 갖춘 이 젊은 셰프의 도전이 흥미롭다. 그를 통해 우리 떡이 또 하나의 한류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사진 : 김선아
  • 2011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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