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의 詩와 詩人을 찾아서 (50) 김종길 〈가을〉

노시인에게 찾아든 또 한 번의 가을

먼 산이 한결 가까이 다가선다.

사물의 명암과 윤곽이
더욱 또렷해진다.

가을이다.

아 내 삶이 맞는
또 한 번의 가을!

허나 더욱 성글어지는 내 머리칼
더욱 엷어지는 내 그림자

해가 많이 짧아졌다.

- 김종길 〈가을〉



하지와 동지 사이에 돌연 가을이 들어앉아 있다. 한 해 중에서 가장 긴 낮. 한 해 중에서 가장 긴 밤. 태양은 그 사이를 왕복운동한다. 가을은 어떤 끝들을 앞당긴다. 새들과 꽃들이 서둘러 떠난다. 들에 있는 물웅덩이가 마르고, 낙엽수들은 잎을 떨어뜨리고, 한해살이 풀들이 씨앗들을 떨구며 시든다. 이별들은 도처에서 오고, 창대했던 것들은 갑자기 쇠락한다. 그리운 것들은 그리운 것으로 남고, 주인을 알 수 없는 무주총(無主塚)들이 파헤쳐지고, 어떤 사건들은 영구미제(永久未濟)로 남는다. 갈잎들이 지는 하루. 아아, 새로 태어나는 것보다 죽는 것들이 더 많다. 쓸쓸함은 영장류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저 대서양 심해 생명 100만 종에게도 가을의 쓸쓸함이번져 무한 증식한다.

가을이다.

가을은 그 안에 많은 것들을 함축한다. 유순한 그늘들이 늘고 그림자들은 덧없이 길어진다. 먼 곳이 가까워지고, 고향을 떠나 이국의먼 곳을 정처 없이 떠도는 방랑자들은 제가 태어난 곳으로 끝내 돌아오지 못한다. 조락(凋落)과 죽음의 계절로서 가을을 겪는 것은 아직 죽지 않은 산 사람들이다. 여름에 무성했던 낙엽수의 잎들은 지고, 가지에 매달려 있던 푸른 열매들은 무르익어 따주지 않는다면 땅으로 뚝뚝 떨어진다. 〈가을〉은 매우 함축적인 시다. 가을에 대한 간결한 소묘, 인생에서 또 한 번의 가을을 맞는 소회를 간략하게 서술한다. “먼 산이 한결 가까이 다가선” 듯 느끼는 것은 대기가 청명해서 시정거리(視程距離)가 길어진 탓이다. “사물의 명암과 윤곽”이 또렷해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 시를 가을에 대한 계절의 단상(斷想)만으로 읽는다면 아쉽다. 이 가을의 이면에는 여러 속뜻이 숨어 있다. 말과 말 사이, 행과 행 사이에 많은 말이 숨어 있다. 그 숨어 있는 말들의 뜻을 헤아리지 않는다면 이 시를 제대로 읽은 게 아니다.

해가 많이 짧아졌다.

라는 마지막 구절이 특히 그렇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로 접어들면서 해가 짧아지는 것은 당연한 계절 현상이다. 이것을 생의 감각으로 포착한 것은 남들과는 또 다른 감회가 서리는 까닭이다. 척추동물과 새들은 해가 짧아지고 일조량이 줄어든 것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다가오는 겨울을 날 채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철새들은 남쪽으로 이동하고, 척추동물은 추위를 피하거나 동면에 들 수 있는 굴을 찾을 것이다. 해는 양이고 어둠은 음이다. 해가 짧아진다는 것은 양의 기운이 준다는 뜻이다. 세상에 양의 기운이 줄면 상대적으로 음의 기운이 가득 찰 것이다. 태양에서 오는 빛을 인지하고 그것을 느끼는 동안만 우리는 살아 있을 것이다. 어느 날 우리는 그 빛을 더는 보지 못할 것이다. 누구나 죽기 때문이다.

허나 더욱 성글어지는 내 머리칼 더욱 엷어지는 내 그림자

‘늙음’에 대한 자각은 세월이 갈수록 또렷하다. 한 점의 모호함도 없다. 나날이 성글어지는 머리카락, 엷어지는 그림자… 이것들은 다가오는 죽음의 전조(前兆)다. ‘늙음’이란 이미 도래해 있는 엷은 죽음이 아닌가. 엷은 죽음은 몸 안에서 생명과 동거한다. 가을은 문득 노시인에게 우주적인 ‘파노라마 비전’을 준다. 어느 시각 태양계는 홀연히 우주에 출현했고, 또 다시 어느 시각에 홀연히 사라질 것이다. 그때 빛도, 지구도, 인류 문명도 함께 어둠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자, 다시 이 시의 마지막 행을 읽어보자.

해가 많이 짧아졌다.

태양은 늙고, 지구는 40억 년이나 되었다. 그랬건만 태양과 지구는 여전히 안정된 궤도를 돈다. 이에 따라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순환도 어김없이 이어진다. 나이가 들면 모든 사물과 현상을 영원이란 프레임 속에서 보게 한다. “아 내 삶이 맞는/또 한 번의 가을!”도 그렇다. 영원이란 프레임 속에서 가을을 보니 그게 새삼스러운 것이다. 다시 못 올 단 한 번의 가을이다. 해가 짧아졌다는 이 구절은 계절의 순환과 더불어 조락과 죽음이 닥치는 인생 말년이라는 남은 삶의 주기(週期)를 암시한다. 이윽고 이 가을도 지나갈 것이다. 해거리하는 감나무에 올해는 감이 유난히도 많이 열렸다. 따고 남은 감들은 까치들의 몫이다. 내다보니 진눈깨비가 치고 있다. “올해는 뜰의 감나무에/감이 유난히도 많이 열려/까치밥도 넉넉히 남겨 두었었지.//늦가을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가지 끝 붉은 감들을 쪼으며/까치들은 무시로 떠들썩한 잔치판을 벌였었지.//아직도 가지 끝엔/까치밥이 많이 달려 있는데/오늘은 아침부터 까치들이 오지 않는다.//웬일인가 하고 내다봤더니,/밖에선 진눈깨비가 소리 없이 내리고 있다./까치들은 보이질 않고 까치밥만 차갑게 젖고 있다.”(〈까치밥〉) 간밤에 무서리가 내리고, 낮에는 진눈깨비가 친다. 늦가을이 왔다 가는 어느 날, 노시인의 처연한 시선이 가 닿은 곳은 어딘가. 가을 저 너머 가을! 하늘 저 너머 하늘!


김종길(1926~ )은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났다. 두 돌이 지나 어머니를 잃고 조모와 증조모의 손에서 양육되었다. 어느덧 86세다. 한 세기 가까운 세월이 흘러갔다. 노시인은 어머니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 말을 할 때 노시인의 표정이 담담하다. 194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반세기가 훌쩍 넘도록 시를 썼다. 엘리어트의 〈황무지〉를 번역하고, 시작 활동을 쉬지 않았으나, 오랫동안 과작이었다. 1958년에서 1992년까지 고려대학교 영문학과 교수직에 있었고 문과대학장을 역임했는데, 그 직분에 충실하려고 했던 우직함 탓이다. 요즘은 드문 미덕이다. 1988년에는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지내고, 현재는 고려대학교 영문학과 명예교수이자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다. 그동안 시집으로 《성탄제》(1969), 《하회에서》(1977), 《황사현상》(1986), 《달맞이꽃》(1997) 등을 펴냈다. 노시인은 해가 갈수록 더욱 왕성한 창작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고 헤프거나 언어의 기율이 느슨해지는 법은 없다. 《해가 많이 짧아졌다》는 노경(老境)의 담담한 감각과 경지를 보여주는 시집이다. “문상 다니기가 바쁠 만큼/벗과 친지들이 참 많이 세상을 떠났다.”(〈마지막 잎새〉)라거나, “늙은이에겐/새벽잠이 없다.”(〈새벽에 잠에 깨어〉)라는 구절이 예사롭다. 늙음과 죽음이 예사로운 일상이다. 우주 만물의 생성과 변화를 하나로 아우르며 그 안에서 유한한 삶의 시간들을 반추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밤이 깊어갈수록/시계 소리는 더욱 또렷해진다.”(〈풀벌레 소리〉) 그 소리는 “가차없고 집요”한데, 노시인은 그 소리를 유심히 귀 기울여 듣고, 그게 “내 유한한 생명의 소모를/냉엄하게 계산하는” 소리라고 느낀다. 노시인은 새벽에 자주 잠을 깬다고 한다. 새벽잠에서 깨어나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인가. 흘러간 날들, 추억, 옛날들을 돌아본다. 그리고 “내가 누린 이승의 시간이 한순간 여울물 소리로/귓전을 울리며 흐르는 동안.” 노시인은 “죽음의 순간”을 내다본다.

사진 : 김선아
  • 2011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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