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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익혀온 전통 악기로 우리 시대 감성을 노래할래요

키네틱 국악그룹 옌

지난 7월 서울에 쏟아진 폭우는 20대 젊은 여성 예술가들의 터전도 강타했다. 우리나라 전통 악기로 현대 도시의 감성을 연주하는 키네틱 국악그룹 ‘옌’. 이들은 한국공연예술센터가 개최하는 <2011 마로니에여름축제>의 공연자로 선정돼 8월 13일 오후 8시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열리는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1집 앨범 〈URBAN〉을 냈을 당시 옌 멤버들.
“전날 자정까지 연습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는데, 다음날 아침 건물 주인이 지하 연습실이 물에 잠겼다고 연락해왔어요. 급히 가보니 연습실 천장까지 물이 차 있었어요. 우면산 산사태 여파가 저희한테까지 미친 거지요. 단단한 철문을 밀어내고 쓰나미처럼 들이닥친 물에 책장과 피아노까지 쓰러지고, 남아 있는 게 하나도 없었어요.”

2003년 결성된 후 ‘오늘, 여기에서, 우리가 어떤 음악을 해야 할까?’를 고민하며 다양한 시도를 해온 이들. 이리저리 옮겨가며 연습하다 2006년 초, 83m2(25평) 규모의 연습실을 마련하고 이들은 마냥 좋았다. 틈만 나면 이곳에 와서 연습하고 함께 음악을 만들었다. 그 연습실이 물에 잠기면서 이들은 연주회 팸플릿 등 그동안의 궤적을 보여주는 자료는 물론, 자신의 몸처럼 애지중지하던 악기까지 모두 잃었다. 취재 약속을 확인하기 위해 전화했을 때 “수재를 입어 연습할 공간도, 악기도 없다”고 황황해하던 이들은 “우리만 하는 공연도 아닌데, 어쨌든 공연 준비는 해야 한다”고 했다. 이들의 연습실이 있는 사당역 근처에서 ‘옌’을 만났다. 인터뷰가 끝나면 다시 연습실로 가서 복구 작업을 할 것이라고 했다.

2009년 정기공연.
이들이 8월 13일 무대에 올리는 공연은 <아트옌더시티-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1930년대 경성 거리를 배회하며 창작의 모티프를 찾는 소설가 구보씨나 기계음이 난무하는 현대 도시에 살면서 전통 악기를 가지고 창작에 대해 고민하는 ‘옌’이나 다를 바 없다는 생각에서 이들은 이 소설을 기초로 음악을 만들고 무대를 꾸몄다고 한다.

“스물여섯의 소설가 구보씨는 어머니의 걱정을 뒤로하고 집을 나와 거리를 배회합니다. 그의 눈앞에 전차, 백화점, 경성역 등 새로운 문물들이 펼쳐지지요. 다방과 술집을 전전하며 벗을 만나 창작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던 그는 새벽에 집으로 돌아와 ‘좋은 소설을 쓰겠다’고 다짐합니다. 결혼도 안 하고 변변한 직업도 없어 스스로 생활을 해결하기 어렵지만 예술가로 살고자 하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를 봅니다. 우리가 이른바 88만원 세대잖아요? 낮에는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하다가 밤에 모여 ‘우리의 음악’을 합니다. 우리도 구보씨처럼 다방에서, 술집에서 창작에 대한 고민을 토로하다 ‘우리가 뭘 더 바라겠어? 좋은 음악 하면서 사는 거지’라며 위안을 삼지요. 구보씨가 배회하던 경성이나 지금 서울의 모습도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일렉트로닉 음악과 접목한 무대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강둘이(해금)・남경민(가야금)・이샘이(피리)・문수지(대금)・최혜원(타악)・김미소(연출)・김미린 씨(기획)로 구성된 ‘옌’이 결성된 것은 2003년. 멤버 대부분이 국악고를 졸업하고 각각 대학에 입학해 전통 음악을 공부하고 있을 때였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한길을 걸어온 이들은 대학에 가서도 해갈되지 않는 목마름을 느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대학입시에만 초점을 맞춰 연습하다 보니 답답했어요. 대학에 들어가면 다른 세상이 열릴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여전히 같은 틀에서 연습을 거듭하면서 ‘앞으로 난 뭘하고 살아야 하지?’라는 고민이 더욱 커졌죠.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은 친구들끼리 자연스럽게 모였습니다. 처음에는 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생각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그동안 몸에 익은 것들 때문에 자기 검열이 심했죠. 전통에 바탕을 두되 현대 도시를 살아가는 우리 이야기와 감성을 담은 음악을 하자 했지만, ‘그럼 대체 전통이 뭔가?’ 하는 것부터 벽에 부딪혔어요. 우선 우리끼리 공부를 해보자고 했죠.”

2000년 국립극장에서 공연한 〈Art Yien the City〉.
‘움직이는 예술’인 키네틱 아트처럼 어떤 틀을 정해놓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를 모색하겠다는 의미에서 자신들의 이름도 키네틱 국악그룹 ‘옌’이라고 정했다. ‘옌’은 예인(藝人)이라는 뜻. ‘전통 음악을 해 온 우리가 이 시대, 우리 세대의 이야기를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은 계속됐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인접예술인 연극, 미술 등을 접목시켜 실험적인 무대를 만들던 이들은 2008년부터는 동시대 음악언어인 일렉트로닉 음악과의 유기적인 만남을 시도했다. 그 결실이 1집 앨범 과 복합장르 콘서트인 <아트옌더시티>다. ‘옌’의 리더이자 해금을 맡고 있는 강둘이씨가 “일렉트로닉과 우리 음악을 접목해보자”고 했을 때 선뜻 찬성한 멤버는 별로 없었다.

“제가 비록 전통 음악을 하고 있긴 하지만, 이어폰을 꽂고 듣는 음악은 대부분 일렉트로닉이었어요. 일렉트로닉이 차갑고 기계적인 도시 환경을 느끼게 한다면 전통 악기는 자연에 가까운 소리라 그 둘이 만날 때 전통악기 본연의 개성이 오히려 더 두드러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멤버들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반발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완전히 어쿠스틱한 곡 10개와 일렉트로닉과 접목시킨 곡 10개를 만들어 각각 공연을 했습니다. 직접 연주해보면서 우리한테 더 맞는 것을 찾는 과정이었죠.”

강둘이씨는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라 연주하는 사람이 그 음악을 진심으로 즐기는 것”이라며 “관객은 우리의 음악 형식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일렉트로닉 음악과 접목했는지, 전통 악기로만 연주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가 진정으로 음악을 즐길 때 호응하는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호주-아시아 월드뮤직 엑스포에 참가했을 때.
이들은 자신들이 지키려는 전통은 특정한 선율이 아니라 호흡이나 장단, 흘러내림같이 ‘사운드의 기본 원소들’이라고 말한다. 아무리 새로운 시도를 해도 어릴 적부터 축적되어온 그것들이 자연스럽게 분출돼 나온다는 것. ‘아트옌더시티’는 2008년 첫선을 보인 후 공연을 거듭하면서 계속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공연은 11장으로 나뉜다. 전통문화와 신문물이 혼재된 도시 1930년대 경성과 2010년대 서울/ 첨단화된 문명 속 분주한 일상의 도시 풍경/ 그런데 고독은 그곳에 있었다. 결국은 사람이 있을 곳이란 누군가의 마음뿐/ 직업과 배우자를 갖지 않은 우리(구보 씨와 옌)는 아지트에서 창작의 불안과 청춘의 애달픔을 호소하고/ 그래도 다짐한다. 좋은 소설을 쓰리라. 좋은 음악을 하리라고.

각 장의 주제와 메시지는 애니메이션과 실사영상, 모션그래픽 등으로 재현돼 ‘보고 듣는 공감각 공연’으로 만들어진다. <아트옌더시티>는 2010년 세계국립극장페스티벌 국내 우수작으로 선정됐고, 호주-아시아 월드뮤직 엑스포 참가 국내대표로 뽑히기도 했다. 연주자들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국악을 잘 이해하는 연출과 기획 담당이 따로 있는 게 ‘옌’의 특징이자 강점. 국악중고와 대학 때까지 거문고를 전공한 후 연출로 전향한 김미소씨는 “대학에 들어간 후 악기가 아닌 딴 걸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공연을 구상하고 만드는 데 흥미가 있었다”고 한다. ‘옌’에 합류한 후 그는 액팅 스튜디오에서 1년간 연극을 공부하고, 연극 조연출 등을 맡으며 내공을 키워왔다. 강둘이씨는 지난 7월 스웨덴에서 열린 각국에서 전통 음악을 하는 젊은이들의 레지던시 프로그램 ‘에스노 스웨덴’에 참가하고 돌아왔다.

“제가 해금을 연주하고 나니 ‘한국 음악은 확실히 더 날것의 느낌이 난다. 사람의 마음의 꿰뚫는 것 같고, 엄마의 울음소리 같기도 하다’고 말하더군요. 그들을 통해 제 모습을 다시 보게 됐어요.”

지난해 뉴욕 공연을 성사시키기도 했던 이들은 오는 10월 이탈리아로 연주를 떠난다. 이 시대와 호흡하는 진정한 예인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해온 그들이 세계무대에서 어떤 색깔을 보일지 기대된다.
  • 2011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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