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따라가는 여행] 춘천 실레이야기길

김유정 소설의 주인공들을 만날 수 있는 길

〈봄봄〉 〈동백꽃〉의 작가 김유정의 고향이자 작품 무대인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증3리 실레마을은 최근 들어 더 눈길을 끌고 있다. 춘천행 지하철이 개통되면서 서울에서 가는 길이 훨씬 빠르고 간편해졌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출발하면 한 시간 거리. 김유정의 소설은 중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실려 있으니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모를 이 없다. 하지만 실레마을이 작품의 실제 무대이고, 작품 속 등장인물 역시 마을 주민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김유정의 작품은 영화화되거나 영어·프랑스어 등으로 번역되어 널리 알려져왔는데, 시골 남녀의 순수한 사랑과 계산속 밝은 예비 장인의 모습이 해학적으로 그려진 〈봄봄〉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이건용 교수 작곡의 오페라로 만들어져 4월 22~23일에 예술의 전당 무대에 올랐다. 김유정 작품이 잉태된 무대를 따라가는 ‘실레이야기길’은 1930년대 한국 근대문학의 진면목을 찾는 재미있고도 의미 있는 길이 될 것이다.
실레이야기길의 시작, 김유정문학기념관

금병산 언덕에서 본 ‘실레’(증리)마을 풍경. 옴폭한 떡시루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나의 고향은 저 강원도 산골이다. 춘천읍에서 한 이십리 가량 산을 끼고 꼬불꼬불 돌아 들어가면 내닿는 조그마한 마을이다. 앞뒤 좌우에 굵직굵직한 산들이 빽 둘러섰고 그 속에 묻힌 아늑한 마을이다. 그 산에 묻힌 모양이 마치 옴팍한 떡시루 같다 하여 동명을 실레라 부른다.” (수필 <오월의 골짜기> 중에서, 1936년)

김유정의 수필 <오월의 골짜기>에서 밝힌 것처럼 ‘실레’(증리)는 금병산에 둘러싸인 모습이 옴폭한 떡시루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왼쪽) 김유정 생가. 고향 마을 사람들의 애환을 담은 소설과 수필을 이곳에서 집필했다.
오른쪽) 김유정문학기념관과 김유정 동상. 김유정추모제, 문학제, 청소년문학제, 문학캠프, 문학강연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왼쪽) 금병의숙 터. 귀향 후 실레마을에 금병의숙을 지어 야학과 농촌계몽활동을 펼쳤다.
오른쪽) 김유정기념전시관 내부. 〈조광〉 등 1930년대 문예지와 소설, 영화 자료 등 김유정 관련 자료를 볼 수 있다.
그는 “집이라야 대개 쓰러질 듯한 헌초가요, 그나마도 오십호밖에 못되는, 말하자면 아주 빈약한 촌락”(수필 <오월의 골짜기> 중에서, 1936년)인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 일곱 살에 어머니를, 아홉 살에 아버지를 여읜 그는 평생 모성결핍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는 휘문고보를 거쳐 연희전문 문과에 입학했다. 당대 명창인 박녹주에 대한 ‘러브스토리’는 오랫동안 회자됐다. 박녹주가 말년에 ‘나의 사랑, 유정’이라 고백했던 일화도 남아 있다. (〈조광〉 1936년 5월호) 유정은 실연과 학교 제적이라는 상처를 안고 귀향했다. 고향에 돌아온 그는 금병의숙을 지어 야학과 농촌계몽활동을 벌였다. 1930년대 궁핍한 농촌 현실을 희화화해 표현한 데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금병의숙 느티나무 길은 〈봄봄〉 무대인 점순네 집터 옆에 여전히 남아 있다.



김유정문학촌 찾아가는 길

전철 : 김유정역에서 도보로 15분 거리
춘천 시내-시외버스터미널-칠전동-라데나GC-김유정역-김유정문학촌
033-261-4650, www.kimyoujeong.org

김유정 등산로
금병산은 춘천 중앙고속도로가 지나가는 원창고개 마루턱에서 남서쪽으로 뻗어 올라 춘천 시내와 신동면 일대를 두르고 있는 산이다. ‘봄봄길’ ‘산골나그네길’ ‘만무방길’ ‘금따는 콩밭길’ 등 김유정 소설 제목이 붙어 있다. 김유정 등산로를 따라 마을로 내려오다 보면 작품의 무대로 이어진다. 코스별로 대략 3시간 내외다.

16가지 소설 속 무대를 담은 실레이야기길

실레마을. 마을 곳곳에는 김유정이 잘 가던 주막터. 점순이네집터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실레이야기길’은 김유정역에서 왼쪽으로 400여m에 있는 김유정문학촌에서 시작된다. 여기서 다시 왼쪽 길을 따라 올라가면 ‘들병이들 넘어오던 눈웃음길’이 시작된다. 시골의 한적함을 만끽할 수 있는 길이다. 들병이(들병장수)는 병에다 술을 가지고 다니면서 파는 사람을 일컫는데 〈산골나그네〉 〈총각과 맹꽁이〉 〈아내〉 〈소낙비〉 등 작품에서 열아홉 들병이들이 남편과 함께 인제나 홍천에서 먹고 살기 위해 이 길을 통해 마을로 들어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길을 시작으로 금병산 언덕을 휘돌아오면서 ‘들병이들 넘어오던 눈웃음길’ ‘금병산 아기장수 전설길’ ‘점순이가 ‘나’를 꼬시던 동백숲길’ ‘덕돌이가 장가가던 신바람길’ ‘산국농장 금병도원길’ ‘춘호처가 맨발로 더덕 캐던 비탈길’ ‘응칠이가 송이 따먹던 송림길’ ‘응오가 자기 논의 벼 훔치던 수아리길’ ‘산신각 가는 산신령길’ ‘도련님이 이쁜이와 만나던 수작골길’ ‘복만이가 계약서 쓰고 아내 팔아먹던 고갯길’ ‘맹꽁이 우는 덕만이길’ ‘근식이가 자기집 솥 훔치던 한숨길’ ‘금병의숙 느티나무길’ ‘장인 입에서 할아버지 소리 나오던 데릴사위길’ ‘김유정이 코다리찌개 먹던 주막길’ 등 소설 속 무대가 이어진다.

‘실레이야기길’은 금병산 중턱을 1시간 30분~2시간가량 걷는 길이다. 산길이라기보다는 산책로 같은 길을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내려오기 좋다.

‘장인 입에서 할아버지 소리 나오던 데릴사위길’은 〈봄봄〉의 실제 무대. 점순이와 성례를 안 시켜준다며 데릴사위가 장인과 드잡이하던 곳이다. 학곡리에서 홀어머니 모시고 살다 장가가기 위해 데릴사위로 들어온 최씨나 점순이, 봉필영감 모두 실존인물이었는데, 지금은 집터만 남아 있다. 김유정이 야학 제자들과 팔미천에서 목욕하고 돌아오다가 두 사람이 싸우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이 작품을 쓰게 되었다 한다. ‘점순이가 ‘나’를 꼬시던 동백숲길’에서는 노란 생강나무꽃을 자주 마주치게 되는데, 김유정 소설 〈동백꽃〉에서 알싸하고 향긋한 냄새가 난다는 바로 그 꽃이다. 강원도에서는 이를 동박나무(동백나무)라고 부른다. 소설에서 ‘나’와 점순이는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내음새”에 그만 정신이 아찔해진다.

“어느 봄날 울타리를 엮고 있는 ‘나’에게 점순이가 ‘너 일하기 좋니?’ ‘한여름이나 되거든 하지 벌써 울타리를 하니?’ 같은, 하나마나 한 말들을 하며 수작을 건다. 만나도 본 척 만 척했던 관계인데 ‘망아지만 한 계집애가 남 일하는 놈보구’ 웬일인가, ‘나’는 얼른 이해가 안 된다.”(〈동백꽃〉 중에서) 열일곱 사춘기 소년소녀의 이야기에 웃음이 나는 길이다.

1. 김유정 소설 〈동백꽃〉에서 알싸하고 향긋한 냄새가 난다고 했던 동백꽃. 생강꽃이라 부르기도 한다.
2. 들병이들 넘어오던 눈웃음길. 들병이는 병에다 술을 가지고 다니면서 파는 사람을 말한다.
3. 금병산 아기장수 전설길.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린 아이가 태어나자 마을사람들이 날개를 잘라버렸다는 전설 속의 길이다.
‘금병산 아기장수 전설길’을 걷다 프랑소와 오종 감독의 날개 달린 아기를 소재로 한 영화 〈리키〉가 떠올랐다. 김유정 소설 〈두포전〉의 소재가 된 전설은 이렇다. 금병산 자락 장수골에 가난한 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린 아이를 낳았다. 마을 사람들이 흉조라며 날개를 잘라버리자 아이는 시름시름 앓다 죽는다. 그런데 아이와 같은 날 태어난 용마(龍馬)도 함께 죽어 마을 사람들이 산신각에서 1년에 한 번 제를 지낸다한다. 김유정 소설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실레마을. 그의 소설이 왜 그렇게 리얼리티가 살아 있고 재미있는지 이 길을 걷다보면 생생히 느낄 수 있다. 실레길은 봄이면 생강나무의 알싸한 향을 품고 있다. 진달래·개나리가 피고, 버드나무에 초록물이 오른 봄길은 수채화처럼 맑은 표정으로 방문객을 반긴다. 봄은 더 짙어갈 것이다. 마을에서는 1년 내내 김유정 추모제, 문학제, 문학축제, 문학캠프, 문학강연 등의 행사가 이어진다. 문학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풍성하게 해주는지, 실레길은 조용히 알려주고 있다.

사진 : 김선아
  • 2011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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