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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으로 되살린 우리 ‘소리’, 세계를 놀라게 하다

동부민요 명창 박수관

국악계에서조차 잊혀가던 동부민요의 부활과 전승에 평생을 바친 사람이 있다. 동부민요보존회를 이끌고 있는 박수관 명창이 그 주인공. 그는 소리에 미친 자신의 삶을 그린 단편 영화 〈한국의 소리 메나리〉를 ‘2011 베를린국제델픽예술영화제(DAMA)’에 출품, 지난 3월 영예의 대상을 받았다. 델픽예술영화제는 단편 다큐멘터리 영화를 통해 각 나라의 예술과 예술인들을 전 세계에 소개하는 행사로 올해는 42개국에서 136편이 출품돼 경합을 벌였다. 해외에서는 이미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가 중 한 명으로 꼽히고 있는 그는 직접 영화에 출연해 동부민요 특유의 절절한 가락으로 세계인의 심금을 울렸다.
영화는 애절한 상여 소리로 시작한다. 상여를 타고 가는 망자는 바로 박수관 명창. 영화에서 그는, 이승을 떠나며 자신의 지나온 삶을 되짚어나간다. 깊은 산중에 홀로 기거하면서 동부민요를 되살리기 위해 애쓰는 모습, 제자들과 함께한 시간, 자연을 무대 삼아 마련한 전국 동부민요경창대회 등 소리꾼으로서의 한평생이 주마등처럼 흘러간다. 이어 죽은 자를 천도하기 위한 살풀이춤과 저승으로 향하는 망자의 심정을 대변하듯 애절한 상여 소리가 화면을 가득 메운다.

“죽을 때가 되면 모두 지난 인생을 돌아보게 되잖아요. 결국 모든 것이 꿈이고, 허망하다는 것을 깨달으며 떠나지요. 우리 인생은 70~80년을 산다 해도 일장춘몽이니, 그 짧은 생을 사는 동안 사회에 기여하고 좋은 일을 많이 하라는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그 큰 주제를 10분 분량에 담으려니 무척 힘들었어요(웃음). 영화를 만들면서 대상이거나 아니면 상 근처에도 못 가고 탈락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만큼 극과 극의 반응을 예상했어요. 결국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우리 자연의 아름다움, 산중에 울려퍼지는 동부민요의 은은한 가락, 망자의 한과 허무함을 담은 상여 소리 등이 외국인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죠.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같은 감동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술의 힘입니다.”

베를린국제델픽예술영화제 촬영 장면(경주 동부민요보존회 연수원).
대구 시내에 있는 동부민요보존회 연습실에서 만난 박수관 명창은 작품 설명에 꽤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대상의 영광을 안았지만 시간이 제한되어 있어 주제를 압축적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쉬운 듯했다. 또한 이미 오랜 세월, 숱한 해외공연을 통해 외국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을 경험한 그로서는 수상 여부보다는 가슴 깊은 곳에서 터져나오는 우리 소리의 내밀함을 보다 풍성하게, 보다 감동적으로 전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작품 제목으로 쓰인 ‘메나리’는 동부민요의 전통 음계를 지칭하는 말. 동부민요는 함경도·강원도·경상도 등 세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민요를 통칭한다. 그는 “메나리는 다른 지역의 민요에서도 나타나지만 동부민요가 유독 강하다”며, “민요라는 것은 생활 습관이자 언어인데 경상도·함경도·강원도는 척박한 땅이라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고 한다. 그 환경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사람들은 노래를 통해 노동의 고달픔을 달래거나 처량한 신세를 위로받았다. 함경도 ‘신고산타령’, 강원도 ‘정선아리랑’, 경상도에 전해 내려오는 ‘메나리조의 상여소리’가 대표적이다.

“경기민요, 남도민요와 달리 동부민요가 맥이 끊긴 이유는 워낙 먹고 살기 어려운 환경이다 보니 소리를 업으로 삼으려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주옥같은 민요들이 사라져 갔어요. 어느 날 운명처럼 만난 스승이 동부민요를 제게 전수해주지 않았다면 영원히 묻혀버렸겠죠. 그래서 저는 동부민요의 계승이 제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명장·신지식인 사업가와 명창의 길 병행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그가 동부민요에 빠져든 시작점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어린 시절부터 소리하기를 즐겼던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우연히 한 노인을 만났다고 한다. 누추한 차림새의 노인은 늘 소리를 흥얼거리던 그에게 “노래를 가르쳐줄까?”라며 접근했다. 의심을 품은 것도 잠시, 노인의 노래를 들은 그는 그 자리에서 스승과 제자의 연을 맺었다. 이후 혹독한 훈련을 받았다. 덕분에 전쟁가, 백발가, 동해 뱃노래 등 이미 사라진 동부민요들을 두루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3년 후 스승은 홀연히 그의 곁을 떠났다. 지금도 생사를 알지 못한다. 혼자 남은 그는 창법을 연구하고, 다듬으며 동부민요를 발전시켜나갔다.

국악계에서조차 생소하던 동부민요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99년 3월, 상주 전국민요경창대회에 출전한 그가 명창부 대상을 받은 것이 계기였다. 같은 해 5월에는 남도민요 전국경창대회에서 일반부 대상을 받았고, 10월에는 서울 전통공연예술경연대회에서 종합대상인 대통령상을 받았다. 해외에서의 공연 요청도 잇달아 2000년 6월 미국 카네기 메인 홀 무대에 선 것을 비롯, 링컨센터, 케네디센터 콘서트홀,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 글링카 국립음악원 등 지금까지 세계적인 무대에서 수백 회의 공연을 했다. 2001년 11월 9·11 세계무역센터 참사 추모음악회에 초청되었을 때는 경상도의 상여 소리를 불러 참석자 모두를 울렸다.

외국에서의 수상 이력도 화려하다. 2001년부터 매년 뉴욕에서 미주 한국 국악경연대회를 개최해 한·미 문화교류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5년 1월 미국 대통령상 금상을 수상했고, 같은 해 미국 LA 할리우드 퍼시픽 디자인센터에서 열린 ‘러시아인 밤의 축제’에서는 동양인 최초로 타워상을 받았다.

독일 국영 도이칠란트 풍크라디오 생방송 일본지진 희생자 추모공연.
이처럼 동부민요를 우리의 자랑스러운 전통 문화유산으로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지만 그동안 국내 국악계의 평가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인색했다. 국악 전공자도, 유명한 스승을 둔 적도 없는 사람이, 동부민요라는 낯선 가락을 들고 나타난 데 대한 일종의 거부감이었다. 특히 그가 엔지니어 출신의 건실한 기업가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의 활동을 ‘전통 예술에 관심 많은 기업가의 취미 혹은 외도’로 곡해하는 경우가 많았다(그는 지난 1983년 컬러TV 전자관 생산업체인 갑우정밀을 설립해 탄탄한 회사로 키웠다. 한양대 대학원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기계분야 명장·신지식인에도 선정된 실력파다). 그가 인터뷰 시작 전, “오늘은 꼭 소리 얘기만 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사업이 본업이고, 소리는 취미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제게는 이 두 가지가 모두 중요해요. 그동안 공학도로서 기술 연마에 들인 시간만큼 동부민요를 전승하는 데도 상당한 시간과 열정을 바쳤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공학도의 별난 취미쯤으로 그려지는 게 싫어요. 일의 선후를 따진다면 오히려 소리를 먼저 시작했는데 말이죠.”

앞으로도 ‘박수관 사장’과 ‘박수관 명창’의 길을 병행할 것이라는 그는 “제자들을 잘 가르쳐 이 좋은 소리를 대대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 나의 임무”라고 한다. 사비를 털어 동부민요보존회를 만들고, 연습실과 연수원을 마련하고, 경창대회를 여는 등 고군분투하고 있는 박수관 명창. 그는 음악으로 따뜻해지는 세상을 꿈꾼다. 옛 사람들이 그러했듯, 현대인도 각박한 세상에서 받은 많은 상처를 음악을 통해 위로받기를 바라는 마음. 100여 명이 넘는 제자들에게 수업료조차 받지 않는 이유다.

사진 : 김선아
  • 2011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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