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포그래피(Typography) 갤러리카페 ‘ㅎ’ 만든 한글디자이너 이용제

한글이 담고 있는 의미, 미학을 보여주고 싶어요

독특한 콘셉트의 이국적인 카페와 갤러리, 각국 음식을 맛 볼 수 있는 레스토랑·바·클럽 등으로 독특한 문화를 상징하고 있는 홍대 앞. 이곳에서도 ‘새롭다’며 눈길을 끄는 곳이 있다. 타이포그래피 갤러리카페 ‘ㅎ’(www.hiut.kr)이다. 극동방송 뒤쪽의 골목길 안쪽에 숨어 있는 ‘ㅎ’은 한글이 생활 속 문화로 파고 들어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만든 갤러리카페다. 이곳을 만든 이는 한글디자이너, 전시기획자, 디자인잡지 《지콜론》의 발행인이자 계원조형예술대 교수인 이용제 씨다.

‘ㅎ’에서 이용제 씨를 만났다. 그는 “한글날도 아닌데”라며 기자를 맞았다. 카페 이름 ‘ㅎ’에는 한글에 대한 그의 생각이 잘 담겨 있다.

“‘ㅎ’은 한글, 훈민정음의 첫머리 글자이지요. 자음과 모음을 단독으로는 글자로 인식하지 않고 부속품으로 생각하는데, 그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ㅎ’에서는 그동안 영상디자이너 노승관의 한글 애니메이션 <공간 히읗을 채우다> 상영, 캘리그래퍼 김종건과 그의 공동전시, 타이포그래피스트 김기조·김섭·박우혁·김태헌 씨의 전시 등 한글 관련 전시와 이벤트가 꾸준히 열려왔다. <새 한글꼴로 세상과 대화하기> 전시에서는 타이포그래피, 입체글꼴 등 다양한 방식의 한글서체를 전시하기도 했다.

“‘ㅎ’을 찾는 사람들이 한글을 어느 때는 낯설게, 어느 때는 친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다양한 전시와 행사가 펼쳐지는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한글을 가지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마당’이 되었으면 하지요. 한글이라는 존재를 하나하나 새롭게 인식하게 하는 공간이었으면 합니다.”

건축가에게 ‘가장 친환경적인 카페’를 만들어달라는 것 외에 별도로 주문한 게 없다는 이 공간에는 특별한 장식이 없다. 사방이 빈 벽인 갤러리처럼 단순함을 유지하면서 한글 자체로 인테리어 효과를 냈다. 입구 벽, 테이블 모퉁이, 창문, 화장실 문, 바닥 등 모든 공간에 설치미술처럼 한글이 적절히 배치돼 있다.

“패션디자이너 이상봉 씨가 한글을 가지고 옷을 만든 것을 계기로 한글을 활용한 디자인에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좋아진 것 같아요. 그러나 한글을 그저 일회성 행사의 도구가 되지 않게 하려면 사회적인 이해가 더욱 높아져야 합니다.”

그는 지금 우리 사회에는 한글에 대한 숭배와 경시의 시각이 공존하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지금은 다양한 한글 디자인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다”고 말한다.


한글을 닮고 싶어요

한글디자이너인 그가 한글을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몇 해 전부터란다. 한글디자이너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디자이너 앞에 자국 문자를 붙인 것은 흔하지 않은 현상이다. 그는 “문자에 대한 애착을 이토록 깊이 갖고 있는 나라도 드물 거예요. 한글을 갖고 디자인 활동을 하면서 느낀 게 있다면 한글은 백성을 위한 글자라는 사실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한글이 최고라든가 가장 아름답다는 이데올로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한글의 형태가 조형적으로 아름다운지 아닌지는 논외로 하고 싶습니다. 전 한글을 인격체로 보고 싶고, 닮고 싶어요. 처음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이 일을 계속하면서 몇 해 전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한글은 사람을 위해 태어난 것이잖아요? 세종대왕이 낳은 글자죠. 한글은 그 만든 뜻과 목적이 분명했어요.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과 애정이 담긴 문자. 이렇게 만든 문자는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문자를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예술품을 만드는 과정과 같았을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한글은 독특한 형태가 돋보이는 라틴어, 회화적인 느낌의 한자와는 분명 달라요. 독특한 개성이 있어요. 형태로 보면 모더니즘의 치밀함이 있어요. 무한 변형, 무한 반복이 가능해요. 신기하게도 모던 디자인의 기계미학과 일치하는 면이 있어요. 그렇다고 한글을 설명할 때 최고, 유일이라는 단어는 쓰지 않는 게 좋습니다. 민족주의 색채를 띠는 게 지나치면 오히려 한글의 의미를 깎아먹을 수도 있으니까요.”

홍익대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대학시절부터 소모임에서 글자체를 만들어 전시하기도 했고, 글자꼴 공모전에 응모해 최우수상을 받기도 하면서 ‘한글’의 매력에 빠졌단다. 당시만 해도 시각디자인과 학생들에게 한글 디자인은 별 인기가 없었을 때 그를 이끌어준 스승은 안상수·한재준 교수였다. 스승의 권유로 한글디자인연구소에서 일을 시작해 지금은 교수로, 전시기획자로, 디자이너로 활동 중이다. 우리나라 최초로 한글디자인으로 박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2004년부터 한글을 연구하고 디자인하는 ‘활자공간’을 운영했으며, 세로쓰기 전용서체 ‘꽃길’, 아모레퍼시픽 전용서체 ‘아리따’ 등을 디자인했다.


‘꽃길’은 2004년 글꼴창작 후원금을 받아 디자인한 것으로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고, 잉크를 아끼는 글자 등 환경을 생각하는 서체도 만들었다. 2007년 그는 ‘한국 디자인어워드’의 영 디자이너 부문에서 ‘올해 디자이너상’을 수상했다.

그가 글꼴을 제작할 때 고려하는 첫 번째 기준은 ‘목적성’이다. 용도와 매체에 따라 글꼴이 제작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 기준을 잘 지킨다면 한글 타이포그래피가 더 좋아질 것이라고 한다.

“중국과 일본에는 세로쓰기 전통이 남아 있는데, 우리는 사라져가는 추세입니다. 세로쓰기를 되살리고 싶어 이에 적합한 서체로 ‘꽃길’을 만들었지요. 디자이너의 취향도 있지만 정확한 목적을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는 서체를 디자인하는 데 길게는 2년까지 소요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진중함이 배어 있다. 한글에 대한 생각을 디자인, 전시, 영상, 책, 잡지 등 다양한 방법으로 풀어내고 있는 그에게 ‘ㅎ’은 이 모든 것을 대중과 연결하게 해주는 특별한 공간이다. 타이포그래피나 한글 관련 책이 빼곡히 꽂혀 있는 책장을 보면 북카페이고, 타이포그래피스트의 서체가 새겨진 벽은 전시공간이다. 편하게 커피 한잔할 수 있는 공간이지만, 대중에게는 우리글에 대해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사진 : 김선아
  • 2011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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