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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남편과 시인 아내가 만든 문학박물관

[작은 박물관·미술관을 찾아서] ‘잔아문학박물관’ 김용만・여수니 관장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 860번지. 서종 IC를 통과한 후 북한강변을 끼고 잠시 달리다 잔아문학박물관으로 들어섰다. 나지막한 산들로 둘러싸인 고즈넉한 곳. 입구에 들어서자 테라코타 인물상들이 먼저 객을 맞았다. 팔짱을 낀 채 서서 이야기하는 여인과 무릎을 감싸고 앉아 재미나게 듣고 있는 사람들. 테라코타로 만든 인물들에게서 사람과 같은 훈기가 느껴졌다. ‘이제 여러분은 이야기의 세계로 들어오셨습니다’라고 안내하는 듯했다. 나무 아래 벤치에는 테라코타 노부부상이 앉아 있는데, 아내가 남편의 팔짱을 낀 채 꼬박꼬박 졸고 있다. 연못을 끼고 있는 박물관 정원을 한 바퀴 돌아보고 있는데, ‘노부부상’의 모델인 이 박물관의 부부 관장 김용만・여수니 씨가 나타났다. 두 사람은 테라코타보다 훨씬 젊은 모습이다. 아내인 여수니 씨가 테라코타를 만들었는데, “햇빛 아래 꼬박꼬박 졸다 방문객을 맞는 훗날 우리 모습을 상상하며 만든 작품”이라고 말한다.


잔아문학박물관을 만든 김용만 씨는 소설가, 여수니 씨는 시인이다. 이곳에 오기 전 이들은 보쌈집으로 유명한 ‘춘천옥’을 운영했다. 작은 테이블 3개를 놓고 시작한 식당이 2년 반 만에 테이블 100개짜리 대형 식당으로 발전했다. 3층짜리 식당에 손님이 꽉 차고, 종업원이 40명에 달했다. “돈 세기가 귀찮을 정도”였다 한다. 1993년, 남편은 불현듯 “콘크리트와 자동차 소음으로 가득 찬 도시를 견딜 수 없다”고 하더니 양평 산속으로 차를 몰았다. 도로가 끊기는 데까지 가다 보니 해가 뉘엿뉘엿 넘어갔다. 뻐꾹뻐꾹 새 우는 소리, 시냇물 소리가 들렸다. 남편은 아내에게 “여기서 살아볼래?” 했다. “산짐승처럼 살다 죽고 싶다”고도 했다. 쉰에 등단했던 그는 좋은 작품을 쓰고 싶다는 열망에 마음이 급했다. 사방이 캄캄해졌을 때 플래시를 켜고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그 마을 이장이었다. “글 쓰는 사람인데, 이곳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마침 그 이장이 땅주인이었다.

“양평군 서후리에 있는 마을이었지요. 슬레이트로 지은 작은 농막에 살면서 쓴 게 장편소설 《인간의 시간》이었습니다.”

서후리 집은 교통이 너무 불편해 문호리로 옮기려고 마음먹고 있을 때 눈에 들어온 땅이 이곳이었다. 그런데 동네 부동산 중개소에서는 이 땅을 소개하려 하지 않았다. “도깨비와 귀신들이 우글거리는 곳”이라 했다.

“해질 녘 깨밭에서 깨를 털고 있는 아낙들에게 웅성웅성 소리가 들려서 그런 풍문이 나돌았던 것 같아요. 가만히 살펴보니 이곳이 지형적으로 ‘소리가 모이는 곳’이더라고요. 멀리서 나는 소리가 가깝게 들리다 보니, 사람은 안 보이는데 소리만 나는 거죠. 서초동의 집 두 채를 팔아 땅을 샀습니다. 원래 이곳이 습한데다 잡목이 많았습니다. 땅을 고르고, 갖가지 나무들을 사서 심고 가꾸느라 고생 많이 했습니다.”


경치 좋은 이곳은 국문학이나 문예창작을 전공하는 대학원생들이 하룻밤 자면서 문학 토론을 하고 가는 아지트가 되었다. 부부는 이들에게 밥해주고, 술 대주면서 함께 어울렸다. 그러다 ‘이곳을 우리가 죽은 후에도 사람들이 즐겨 찾을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만들고 싶다’고 마음먹었고, 지난해 6월 박물관 등록을 마쳤다. 김용만 씨는 그러나 “박물관으로 만들고 나니 일이 너무 복잡해져 글 쓰는 데 방해가 많아 도망가고 싶다”고 했다.

김용만 씨는 “내 삶을 지탱하는 것은 문학에 대한 열정 외에는 없다”고 말한다. 문학을 빼고 나면 삶의 허무밖에 남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설을 쓰는 것은 “내겐 허무를 이겨내는 신앙과 같은 일”이라고 말한다. 문학에 전념할 수 있기까지 그는 수많은 직업을 전전했다. 공사판 인부, 외판원, 과일장사, 채소장사, 포장마차, 자동차 서비스업 등 생계 해결을 위해 안 해본 일이 없다. 한때 경찰관을 지내기도 했다.

문인 초상.
그의 굴곡 많은 인생 경험은 그대로 작품 소재가 됐다.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그의 삶은 어린 시절부터 녹록지 않았다. 초등학교 시절 1등을 놓치지 않았는데도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중학교 진학을 포기해야 했다. 큰 도시로 공부하러 간 친구들이 부러웠던 그는 무작정 버스를 타고 대전역으로 향했다. 그리고 몰래 기차에 올라 부산까지 갔다.

“상행선이 먼저 왔으면 서울로 갔을 텐데, 하행선이 먼저 와서 부산으로 간 거죠. 초량역에 내렸는데, 김밥과 찐빵, 과자 등속을 파는 매점의 아주머니가 내 얼굴을 보더니 ‘너 배고프냐?’고 묻더군요. 그 집에서 일을 도와주면서 부산중학교를 다녔습니다.”

고등학교는 서울에서 용산고를 졸업했는데 대학을 진학할 형편이 아니었다. 군대를 다녀온 후 외판원 등을 전전하던 그는 경찰관이 됐다.

“제가 강원도 동해안에서 근무하던 1960년대는 울진 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주문진 무장간첩사건 등이 줄줄이 이어지던 때였습니다. 어선이 북한에 나포되는 일은 수없이 많았고요. 어부들은 출항 금지 때문에 명태잡이를 나가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죠. 딱한 처지를 보다 못해 바다에 내보냈다 문제가 되기도 했고요.”

아내를 만난 것은 양구경찰서에서 근무할 때였다. 정미소집 딸이던 아내가 군청 직원으로 채용될때 신원조회를 맡은 사람이 그였다. 그가 서울로 발령받았을 때 두 사람은 야반도주하여 서울로 향했다. 서울에서 그는 서울대를 담당하는 정보형사였다. “데모를 막아야 할 형사인데, 마음은 학생들과 함께 데모 대열에 서 있었다”는 그. 경찰이면서도 완전히 경찰 입장이 되지 못했던 경험은 그의 작품의 원천이 됐다. 2004년 동인문학상 후보에 오른 《칼날과 햇살》은 1960년대 체포된 남파 공작원과 담당 형사 사이 수십 년간의 인연을 그린 작품. 《인간의 시간》 역시 1960~70년대 시대상을 배경으로 경찰관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인간과 사회에 대한 문제를 천착한 작품이었다.


경찰관에서 채소장사, 포장마차 등 갖가지 직업 전전하다 ‘대박식당’ 운영하기도

책을 잔뜩 들고 있는 남편 모습을 테라코타로 만들고 있는 여수니 관장.
경찰에서 퇴직한 그는 자동차 광택센터를 열어 성공을 거두기도 했지만, 공장이 불타면서 다시 바닥까지 내려왔다. 그 후 10년간 포장마차를 하다 보쌈-막국수를 파는 ‘춘천옥’을 열었는데, 개점하자마자 손님들로 미어졌다. 아내와 함께 전국의 막국숫집을 돌며 비법을 연구해 내놓은 음식 덕이었다. 맛집으로 소문나면서 정치인, 스포츠인, 연예스타들이 몰려들었다. 춘천옥을 성공시킨 경험은 2009년 발간한 그의 장편소설 《춘천옥 능수엄마》에 녹아 있다. 식당을 열려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정도로 구체적인 노하우가 공개되어 있는 독특한 소설이다. 몇 달 일하면 집 한 채가 생기던 음식점을 그만두고 그는 왜 산으로 들어왔을까.

“문학에 대한 열망 때문에 도시생활도, 돈도 염증이 났다”고 한다. 아내도 얼마 후 식당을 정리하고 따라 들어왔다. 그는 문학을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 광주대를 거쳐 경희대 대학원에서 국문학으로 박사과정을 마쳤고, 아내는 황금찬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한 후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서 공부했다.

김용만 씨가 작가의 꿈을 꾼 것은 중고등학교시절부터였다. 험난한 세월을 견디면서 열다섯 살 때부터 지금까지 55년간 거의 매일 빠지지 않고 일기를 써왔는데, 그게 그에게 문학적 자원이 되고 있다. 고2 때는 “내가 만약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해서 아들딸 낳고 평범하게 산다면 차라리 한강에 투신하겠다”고 일기에 써놓았다.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벼려서 날카로운 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장 먹고 사는 문제에 내몰렸던 그가 왜 돈이 나오지도, 밥이 나오지도 않는 문학에 매달렸을까.

“삶과 인간, 세계의 본질이 뭔지 진실을 추구하려는 몸짓에서만 의미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게 양파 까기와 같아서 다 까봐야 알맹이가 없다 하더라도. 그 외에는 모든 게 허무했죠.”

나무 밑에 앉아 있는 부부상.
그는 그보다 앞서 길을 갔던 대문호들의 발자취를 찾아 세계 각국을 돌았다. 셰익스피어, 괴테,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카프카, 세르반테스, 에밀리 브론테, 헤밍웨이, 푸슈킨, 빅토르 위고, 찰스 디킨스, 존 스타인벡, 가와바타 야스나리 등 역사에 남은 작가들의 생가와 기념관, 작품의 배경이 된 장소를 찾았다. 《돈키호테》의 배경이 된 스페인 라 만차 평원에서는 세르반테스가 느꼈을 낭만으로 가슴이 뛰었고, 에밀레 브론테가 살았던 영국 요크셔지방의 목사관에서는 황무지의 묘지들을 내다보면서 작가의 정신세계를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그 기록을 모아 지난해 10월 《세계문학관 기행》을 펴냈다. 그는 “세계적인 걸작이 탄생한 현장에 서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행복감에 하늘로 올라가는 듯했다. 흥분해서 옷을 바닥에 내동댕이치곤 했다”고 한다. 함께 문학기행을 떠났던 아내는 남편의 기행(奇行) 때문에 곤란한 적이 많았다 한다. 낯선 이국에서 사라져버리기 일쑤였다고.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문학 이야기만 나오면 열정적인 문학청년의 모습이 되는 그. 그 열정에 대해 아내는 “질려버릴 정도”라고 한다.

“헤어지겠다고 100번은 했을 거예요. 그래도 이제까지 함께 사는 것은 존경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일 거예요. 이렇게 열정적인 작가를 본 적이 없어요. 책을 읽거나 쓰는 데 몰두하고 있으면 밥은 먹었는지, 양치질을 했는지도 잊어버려요. 외국에서 사는 딸네가 와 있어도 밥만 먹으면 책상 앞에 가 있어요.”

생각에 골똘히 빠져 있으면 옆사람이 하는 이야기도 들리지 않아 “중대한 가정사를 이야기할 때는 내 귀를 잡아당기라”고 당부할 정도라 한다. 늦은 나이에 작가 생활을 시작한 것, 다양한 이력 때문에 순수하게 작가로만 봐주지 않는 것이 그가 넘어야 할 벽. 그래서 쉬어가며, 천천히 문학을 할 여유가 없다고 말한다.

잔아문학박물관은 문학에 대한 열정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퍼뜨리기 위해 만든 공간이다. 1전시실에는 우리나라 작가들의 육필 원고와 사진, 초판본 책 등이 전시되어 있고, 2전시실에는 두 사람이 세계 각국을 돌며 모아온 물건들과 대문호들의 사진, 작가 약력 등이 전시되어 있다. 테라코타 작가이기도 한 여수니 관장은 테라코타로 작가들의 초상을 만들어놓았다.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한다는 학생들이 문학작품을 별로 읽지 않은 것을 보고 놀란 적이 많아요. 책을 읽지 않으면 만지기라도 하라고 하지요. 어릴 적 우리 박물관에 와서 작가들의 이름만 보고 가도 문학과 친해지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요?”

전망 좋은 방에서 책을 읽으며 문학의 향기에 잠겼다 갈 수 있도록 봄에는 북 카페도 만들 예정이라 한다. 마지막으로 박물관 이름이 왜 ‘잔아’냐고 물었다. “궁극적인 진리를 찾고자 하는 열아홉 소녀를 생각하며 ‘잔아’라고 이름 붙였다”고 한다. ‘잔아’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도 준비 중이라고. 아내는 테라코타로 ‘잔아상’을 만들어 박물관 문 앞에 놓았다. 순수하게 문학을 추구하는 이들 마음이 열아홉 살 ‘잔아’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 김선아
  • 2011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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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김종문   ( 2011-03-27 ) 찬성 : 129 반대 : 146
I envy, respect you. I wish I could have a sprit toward the literature like you. Long live and write a great work of liter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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