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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주 청정한 땅에서 고려인들이 만드는 된장・청국장

[한국의 사회적 기업] 고려인들에게 새로운 희망 찾아주는 ‘바리의꿈’

지난 2006년 문을 연 (주)바리의꿈은 일반적인 사회적 기업과는 그 형태가 다르다. 국내 취약 계층이 아닌 러시아 연해주(블라디보스토크) 고려인들의 자활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회사로 콩 재배와 가공이 모두 연해주 현지에서 이루어진다. 농약・비료 등 일체의 화학적 간섭 없이 깨끗하게 자란 콩은 된장・청국장・간장 등으로 변신해 국내 소비자의 식탁에 오른다.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건강한 먹을거리를 공급하는 한편, 고려인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되고 있는 ‘바리의꿈’, 마침 출장 차 서울을 방문한 김현동 대표를 만났다.

최초의 해외 이주 한민족으로 기록된 연해주 고려인의 삶에는 우리의 아픈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140여 년 전,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고향을 등졌던 가난한 농민들은 특유의 부지런함과 억척스러움으로 러시아 땅에서 곧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1907년 러일전쟁의 종료와 함께 일본의 사주를 받은 러시아는 조선인을 배척했고 농장을 몰수했다.

1937년에는 스탈린의 강제이주정책으로 수많은 고려인들이 영문도 모른 채 허허벌판 중앙아시아에 버려졌다. 그 와중에도 척박한 땅을 일구어 러시아 내에서 ‘잘사는 소수민족’으로까지 꼽혔지만 구 소련 붕괴 후 상황은 또다시 달라졌다. 정세가 혼란한 틈을 타 중국이 싼 가격을 앞세워 러시아 농산물시장을 장악한 것. 농업을 기반으로 살아가던 고려인들은 순식간에 경쟁력을 잃고 무너졌다.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키르키즈스탄 등 중앙아시아에 살고 있던 4만 여 명의 고려인들이 새로운 삶을 찾아 연해주로 다시 옮겨 왔지만 궁핍한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다.

‘바리의꿈’ 된장・청국장은 연해주 땅에서 무농약으로 재배한 콩으로 고려인들이 만든다.
‘바리의꿈’은 이런 현실에서 탄생했다. 10여 년 전부터 연해주에서 고려인들을 돕고 있던 ‘동북아평화연대’가 이들의 자활사업을 위해 별도의 법인을 만든 것. 동북아평화연대에서 일하다 그 총책을 맡게 된 김현동 대표는 좀더 현실적인 사업 아이템을 찾기 위해 2004년 아예 가족을 이끌고 연해주로 이주했다. 한겨울에는 영하 40℃까지 떨어지는 매서운 추위와 안전 문제 등을 들어 망설이는 아내를 “사람 사는 곳은 어디든 다 똑같다”며 설득해 떠난 길이었다. “답사를 하면 안 간다고 할 것 같아 무조건 짐을 꾸렸다”는 그는 “청정한 자연에 반해 지금은 집사람도 연해주 생활을 아주 만족스러워한다”며 웃었다.

“가서 보니 콩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끝도 없이 넓은 땅에서 완전히 무공해로 자라고 있는 콩을 보면서 ‘이거다’ 싶었죠. 시험 삼아 집사람과 함께 청국장을 만들어봤는데 예전에 시골에서 만들어 먹던 것보다 더 맛있더라고요. 그래서 가구마다 조금씩 청국장을 만들어보라고 권했어요. 놀랍게도 많은 고려인들이 옛 맛을 기억하고 있더군요.”


본격적인 청국장 생산을 위해 30가구 남짓한 마을에 공동작업장을 만들고, 콩 재배를 위한 땅도 마련했다. 농장의 규모는 1652만9000㎡(약 500만평), 이곳에서 수확되는 콩은 연간 500t이 넘는다. 김 대표는 “자연농법이라는 원칙을 세우고 출발했는데, 근 10년간 농약이나 화학비료 등을 뿌린 적이 없이 방치되다시피 한 땅이라 지력을 되살리기 위해 별다른 노력을 할 필요가 없었다”고 한다.

“중국과 가격경쟁은 어렵고, 친환경 농법으로 방향을 잡았지요. 농장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한쪽에는 콩을, 또 한쪽에는 보리・밀・귀리를 심어요. 나머지 땅에서는 가축을 방목하고요. 그것을 1년씩 돌아가면서 하기 때문에 3년에 한 번은 땅이 쉬거나 다른 작물을 심지요. 온전히 땅의 힘으로만 농사를 짓는 것이죠.”

농사뿐만 아니라 콩을 가공하는 방법도 철저히 재래식이다. 현대화된 시설이 없는 대신 인력과 나무가 지천인 시골 마을, 이곳에서 고려인들은 가마솥을 걸고 참나무 장작을 때서 콩을 삶는다. 유전자변형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Non-GMO) 건강한 콩에 맑은 물과 공기, 정성이 듬뿍 들어간 된장과 청국장은 어린 시절 어머니, 할머니의 손맛처럼 깊고 구수하다. 그 맛이 입소문을 타면서 최근에는 ‘바리의꿈’ 된장 마니아까지 생겼다.



고려인들의 성공적인 자립모델로 만들고 싶어

이처럼 국내 수요가 늘면서 처음 30여 가구였던 마을은 200여 가구가 되었다. 바리의꿈과 함께 일하는 마을도 6개로 늘었다. 이들의 성공 사례는 러시아 국영방송에까지 소개되었다. 최근 극동지역의 인구 감소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른 러시아에서 고려인들의 연해주 정착과 공동자활사업은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현재 바리의꿈의 매출은 연간 7억 원 정도. 큰 폭은 아니지만 해마다 꾸준히 상승세를 타고 있어 희망적이다. 지난해까지는 고려인들에게 월급제 형식으로 수익을 나누었지만 올해부터는 마을마다 공동작업장을 만들어 마을 단위로 관리와 배분이 이루어진다. 일종의 생산자 그룹 같은 개념이다.

2010년에는 새로운 사업도 시작했다. 12월 말까지 메주 10t을 만들어 장을 담그는 시기인 2011년 2월 초순에 맞추어 국내에 들여올 계획이다. 김 대표는 “연해주를 오가는 배가 1주일에 세 번씩 출항하는 동해나 속초에 직거래 매장을 내서 생산자와 소비자를 곧바로 연결할 것”이라며, “저렴하게 공급하는 대신 사전 예약제로 주문을 받고 있다”고 한다.

“메주 사업이 잘되면 길고 긴 겨울을 좀더 수월하게 날 수 있는 또 다른 일거리가 생기는 것이죠. 앞으로 콩기름・콩가루 등 콩을 이용한 가공식품의 종류를 늘리려고 합니다. 또 우리나라에서는 이제 귀한 어종이 되었지만 연해주에서 많이 잡히는 명태를 건조해서 북어로 만드는 작업도 해보려고 해요. 이 마을들이 성공적인 자립모델이 되어 앞으로 더 많은, 공동작업장을 갖춘 고려인 마을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실 고려인들에게는 안정적인 일터를 마련해주고, 국내 소비자에게는 건강한 먹을거리를 공급하겠다는 취지로 시작한 일이지만 아직 어려움도 많고 걸림돌도 많습니다. 판로개척은 지금도 여전히 어렵고, 한국에서는 쉽게 구할 수 없는 청정 무공해 농산물인데도 외국에서 생산되었다는 이유로 거부당할 때는 참 안타까워요. ‘Non-GMO’ 콩은 국내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안정적인 수급이 어려운 만큼 앞으로 연해주 콩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진 : 김선아
  • 2011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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