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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국적과 장르의 아티스트들이 한국의 詩로 만든 국제 다원예술 프로젝트 〈Fare-Well〉

사각 식탁 위에 놓인 하얀 잣죽과 까만 깨죽. 남자, 그리고 여자의 손이 각기 죽 그릇을 어루만진다. 그리고…. 서서히 다가가는 두 사람의 손. 다시 멈칫, 멀어져간다. 남자와 여자의 손 움직임을 촬영한 영상은 〈식후에 이별하다〉에 나오는 시어(詩語)들이 떠다니는 화면과 합쳐지는데, 화면 속에서 손은 시어들을 툭툭 쳐내다가 숟가락으로 퍼 담기도 한다. (10월 28일, 제1악장 프리모)

이제 무용가들은 온몸으로 남자와 여자의 심경을 드러낸다. 남자의 손을 잡았다가 떨쳐내고, 바닥에 질질 끌려가는 여자. 각각 제 갈길을 가는 남녀는 회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관객 사이를 헤집고 다니다 매달리기도 하는 여자. 둘러선 관객에게 기대기도 하고 폭력을 가하기도 하면서 내면의 갈등을 분출하는 남자. 남자가 축 늘어진 몸을 한 관객에게 기대자 관객은 그를 어깨에 둘러멘다. (11월 2일, 제2악장 아다지오)
다원예술 프로젝트에 참여한 다국적 아티스트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경진・제임스 파우덜리・심보선・김한성・루이스 폰즈・자스미나 로벳・사스키아 얀센.
10월 28일부터 11월 14일까지 서울 통의동 ‘브레인 팩토리’에서 펼쳐지는 국제 다원예술 프로젝트 〈Fare-Well〉. 한국・미국・스페인・네덜란드 등 다국적 아티스트들이 한국의 시 한 편을 가지고, 현대무용, 설치미술, 뉴미디어, 전자음악, 클래식 음악, 영상, 아티스틱 리서치 등으로 다채로운 해석을 내놓으며 장르를 넘나드는 전시와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김경진 씨는 성악가 출신. 이화여대와 맨해튼 음대에서 성악을 전공한 그는 유럽에서 활약하다 1년 전 귀국, 국제 다원예술 기획자로 활동을 시작했다.

“맨해튼 음대에서는 성악을 전공하는 학생에게도 노래하는 법만 가르치지 않았어요. ‘네가 부르는 노래를 제대로 이해해 감성을 살리려면 그 노래의 가사인 시를 먼저 공부해라’ ‘그 오페라가 나온 사회 배경을 공부해라’ ‘미술관을 자주 찾아 그림 공부를 해라’ 하고 요구하셨지요. 다양한 문화적 역량을 갖춰야 진정한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이었는데, 저는 그게 참 좋았어요. 공부하면 할수록 재미있고, 호기심이 생겼고요.”

스승이 주도하는 이탈리아의 음악페스티벌 일을 돕다 세계 각국 친구들을 사귀게 됐고, 그때 만난 친구들과 유럽 각 곳을 돌며 연주 활동을 했다. 2004년부터는 파리의 복합문화공간에서 공연기획을 맡았다. 이때 음악과 미술, 퍼포먼스, 춤, 영상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이 벽을 허물고 넘나들며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다원예술에 매력을 느꼈고, 국제 다원예술 기획자로 활동하기로 마음먹었다 한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처음 만난 사람이 심보선 시인. 시인은 다원예술을 위한 재료로 자신의 시 ‘식후에 이별하다’를 내놓았다. 이 시를 영어로 번역해 다양한 국적의 아티스트들에게 주고, 각자 느끼는 대로 작업을 하기로 했다. 미국의 뉴미디어 작가로 최근 홍익대 미대교수가 된 제임스 파우덜리가 가장 먼저 합류했다. 테네시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하고, 뉴욕대학(NYU)에서 인터액티브 텔레커뮤니케이션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그동안 뉴미디어를 활용해 사회적 이슈를 제기하는 작업을 해왔다. 그는 “이전에는 전시장 안이 아니라 거리나 옥외에서 전시를 하고, 여러 사람들을 참여시키는 사회성 짙은 작품을 주로 했는데, 이번에는 작업 방식이나 주제나 모두 달랐다”라고 말한다. 컴퓨터를 활용해 모션 그래픽과 무용가의 움직임이 한 화면에서 만나 상호작용을 하게 한 것이 그의 작업. 무용가나 관객의 반응에 따라 작품이 변화를 거듭하므로 11월 14일이 되어야 작품이 완성된다고 한다.

그 외에도 퍼포먼스는 현대무용가인 조지영, 영상 촬영은 영화감독 김한상, 설치미술은 스페인의 부부 작가인 자스미나 로벳과 루이스 폰즈 씨가 맡았고, 네덜란드의 사스키아 얀센 씨가 이 시에 아티스틱 리서치 방식으로 접근했다. 스페인 출신으로 현재 독일 베를린에서 활동하고 있는 자스미나 로벳과 루이스 폰즈 부부는 이 작업을 위해 서울의 금천예술공장 입주 작가가 됐다. 이들은 남자와 여자가 죽을 먹기 위해 앉는 식탁을 부수고 다시 얼기설기 붙여놓았다. 해체되었다 재구성된 식탁은 두 사람의 ‘깨어진 관계’를 상징한다는 것. 여기에 헤어진 연인이 입던 옷을 걸쳐놓았다. 이들은 또 전시장 1층과 2층을 줄로 연결해놓았다. 1층에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서면 2층까지 연결된 줄에 달린 물병이 피아노 위로 떨어지면서 소리를 낸다는 것. 두 사람이 한국을 찾은 것은 이번이 두 번째. 2008년에도 레지던스 프로그램으로 석달 동안 한국에서 생활했다는 이들은 한국에서 많은 영감을 얻는다고 한다.

“한국은 날씨나 음식이나 역사나 스페인과 닮은 점이 많은 것 같아요.” 자스미나 로벳 씨는 시인이 시적 메타포로 음식인 죽을 사용한 게 무척 흥미롭다고 말한다. “유럽에서도 이런 다원예술은 흔치 않은데, 다양한 국적과 장르의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면서 (때론 그림을 그려가며) 함께 작업하는 과정이 굉장히 재미있었다”고 한다. 역시 금천예술공장 입주작가로 한국에 온 사스키아 얀센 씨는 여러 그룹의 사람들을 문화인류학적으로 연구하면서 퍼포먼스, 다큐멘터리 등의 작업을 하는 아티스틱 리서치 작가.

사회적 약자에 관심이 많아 5년 전부터 그들과 작업해 온 그는 영어로 번역된 심보선 시인의 시를 암스테르담 마약 중독자 보호소에 있는 중독자들에게 보여주었다.

“아름답다고 하더군요. 이 시를 읽고, 이별을 말하는 순간까지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생각을 했대요. 집과 직장을 잃고 아이들과 헤어지는 등 삶에서 수많은 이별과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이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얀센 씨는 한 중독자가 심보선 시인의 시를 읽은 후 쓴 시를 들고 왔다.

“사람들은 마약중독자를 괴물처럼 생각하지만, 그저 힘든 삶을 살았을 뿐 사실은 마음이 따뜻하고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막대 위에 접시들이 올려져 있는 설치작품도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마약을 끓을 수 없는 중독자나 이별 후에도 계속 밥을 먹어야 하는 사람들이나 결국 서커스에서 접시가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계속 돌려야 하는 곡예사 같은 처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심보선의 시를 읽고 너무 아름다워 감동했다는 그는 “네덜란드에서는 시를 읽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 한국에서 이렇게 시가 위력을 발휘한다는 게 무척 흥미로웠다”고도 한다.

4개의 음악적 악장으로 나뉘면서, 점점 확장되는 형식을 보여준다는 것도 이번 프로젝트의 독특한 점. 10월 28일에는 제1악장 프리모(primo)로 오프닝 리셉션을 하면서 관객들도 흰죽과 검은죽을 나눠 먹었고, 2악장 아다지오(adagio)는 설치미술과 영상, 현대무용과 전자음악의 만남, 3악장 에스프레시보(espressivo)에는 설치미술과 영상, 현대무용과 전자음악에 라이브 피아노 음악이 더해지고, 4악장 알라르간도(allargando)에서는 뉴미디어와 텍스트, 현대무용이 선보인다. 11월 14일 마지막 공연까지 봐야 전모가 파악되는 형식. 프로젝트의 진행과정과 공연, 전시를 모두 담아 12월 중 책으로 펴낼 예정이다.

사진 : 김선아

식후에 이별하다 Farewell after Dinner
심보선 (Alex Cumberbutch 번역)

하나의 이야기를 마무리했으니 / 이제 이별이다 그대여 / 고요한 풍경이 싫어졌다 / 아무리 휘저어도 끝내 제자리로 돌아오는 / 이를테면 수저 자국이 서서히 사라지는 흰죽 같은 것 / 그런 것들은 도무지 재미가 없다
One chapter wrapped up. / Farewell, my dear. / The calmness of the scene tires me, / Like stirring white porridge with a spoon / Only to watch it go back to the same spot / And finally disappear. / Utterly uninteresting.

거리는 식당 메뉴가 펼쳐졌다 접히듯 간결하게 낮 밤을 바꾼다 / 나는 저기 번져오는 어둠 속으로 사라질 테니 / 그대는 남아 있는 환함 쪽으로 등 돌리고 / 열까지 세라 / 열까지 세고 뒤돌아보면 / 나를 집어삼킨 어둠의 잇몸 / 그대 유순한 광대뼈에 물컹 만져지리라
Like someone flipping open the menu then shutting it. / The street scene swiftly changes from night to day / while I’ll vanish in the spilling darkness out there / You’ll return to the radiance on the other side / Then count to ten. / On reaching ten, you’ll spin round / To let the gooey gums of the blackness consuming me brush your / unresisting cheeks.

착한 그대여 / 내가 그대 심장을 정확히 겨누어 쏜 총알을 / 잘 익은 밥알로 잘도 받아먹는 그대여 / 선한 천성(天性)의 소리가 있다면 / 그것은 이를테면 / 내가 죽 한 그릇 뚝딱 비울 때까지 나를 바라보며 / 그대가 속으로 천천히 열까지 세는 소리 / 안 들려도 들리고야 마는 소리 / 단단한 이마를 뚫고 맘속의 독한 죽을 휘젓는 소리
My beloved, / You receive and eat up the bullets I expertly fired at your heart / As if they were fully ripened rice grains, / If there is a heavenly sound / That is, it is like the sound of your heart slowly counting to ten / Gazing at me until I finished my bowl in a flash / The inaudible yet audible sound / The sound that becomes predictably audible / The sound that penetrates your hard forehead / Stirring up the spiteful porridge in your heart.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 먹다 만 흰죽이 밥이 되고 밥은 도로 쌀이 되어 / 하루하루가 풍년인데 / 일 년 내내 허기 가시지 않는 / 이상한 나라에, 이상한 기근 같은 것이다 / 우리의 오랜 기담(奇談)은 이제 여기서 끝이 난다
Love is like that / Like white porridge turning into a meal then turning again into rice; / Thus each day is an abundant harvest / Though we feel hungry the year round / Like a strange famine in strange land / Our long strange history halts here.

착한 그대여 / 착한 그대여 / 아직도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 / 열을 셀 때까지 기어이 환한가 / 천 만 억을 세어도 나의 폐허는 빛나지 않는데 / 그 질퍽한 어둠의 죽을 게워낼 줄 모르는데
My beloved, / My beloved, / Your scene is still glowing over there / Until you count to ten your scene is still glowing over there / Even after I count to ten million, my ruins will never shine / My ruins will never puke up that disgusting black porridge

  • 2010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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