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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요리 수업은 포장마차에서 시작됐어요

[Star Chef] 해비치 호텔&리조트 총주방장 이민 상무

해비치 호텔&리조트의 총주방장인 이민(48) 상무. 그는 우리 고유의 식재료로 양식을 재해석해 호평받아온 24년 경력의 베테랑 셰프다. 조리업계의 대부로 불리며 성공가도를 달려온 이민 상무의 요리 인생은 후배 셰프들에게 부러움과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그의 꿈이 처음부터 요리사였던 것은 아니다. 전라도 광주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3학년 때 가족과 함께 상경한 그는 인덕공고 기계과에서 기계설계 및 제조를 공부한 ‘공돌이’ 출신. 대학 입시에 실패하고 어머니가 사고로 돌아가시자 방위산업체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군용 전화기를 만드는 회사에서 3년간 근무했어요. 그동안 아버지도 고혈압으로 돌아가셨죠. 졸지에 가장이 되어 어린 두 동생을 돌봐야 했는데 직장인 월급으로는 어려울 것 같아 장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잠원동에 살고 있었는데, 동네 분들의 도움으로 포장마차를 인수할 수 있었습니다.”

술과 홍합, 닭똥집, 우동 등 술안주를 파는 포장마차에서 그가 난생처음 요리한 음식들은 손님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돈벌이는 됐지만, 단속에 쫓기고 일명 ‘어깨’들과 상대하느라 편한 날이 없던 그에게 호텔 바텐더로 일하던 친구가 경주호텔학교에 진학할 것을 권했다.

“포장마차이지만 요리한 경험이 있으니 조리과로 지원했죠. 아침 6시에 기상, 밤 10시에 취침하는 엄격한 기숙사 생활을 하며 서양요리 700여 가지를 배우고 호텔 시스템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쌓아갔어요.”

학교를 수석 졸업한 그는 총주방장을 꿈꾸며 조선호텔에 입사한다. 호텔에서 그가 배치받은 부서는 제과제빵부. 1년간 빵과 디저트를 만들며 많은 것을 배웠지만, 이내 갈증을 느끼고는 수석 셰프인 상사에게 양식을 만들고 싶다며 부서이동을 요청했다. 당시 특급호텔의 총주방장은 모두 양식 셰프 출신이었기 때문.

“외국인 보스는 저에게 동료들이 괴롭히는지, 고충이 있는지를 캐물었어요. ‘당신처럼 되고 싶어서’라고 했더니 1주일 후 요리부로 옮겨주었습니다. 제 인생의 은인인 그분과는 지금도 연락하며 잘 지내고 있어요.”

호텔 내 이탤리언 식당에서 2년 동안 근무하다 프렌치 식당에 스카우트되어 2년을 더 근무한 후 아이리시 펍(Pub) ‘오킴스’와 이탤리언 식당 ‘예스터데이’ 주방 책임자가 되었다. 그 후 입사 7년 만에 프렌치 식당의 과장 주방장으로 승진한다.

“제 음식의 완성도는 프렌치 식당의 과장으로 일하면서 높아졌어요. 메뉴를 직접 짜고, 제 메뉴를 직원들에게 가르치며 시스템을 새롭게 구축해갔거든요. 여러 나라의 음식을 배우고 제과제빵을 접한 경험도 있어서 요리사들이 취약한 장르까지도 아우를 수 있었다는 게 이점으로 작용했어요. 정신없이 배우고 활용하던 시기였죠.”

‘프랑스요리연구회(ACF)’라는 모임에서 요리정보를 나누거나 연구를 하고, 쉬는 날에는 호텔학교 동기들이 일하는 식당을 찾아다니며 새로운 요리들을 익혔다. 퇴근 후에는 영어학원에 다니고, 방송통신대 경영학과와 연세대학교 급식경영 석사과정을 수료하는 등 공부도 쉬지 않았다. 내친김에 양식조리사 자격증뿐 아니라 한식조리사와 조리기능장 자격증까지 취득하며 ‘명인’ 반열에도 올랐다.


그는 셰프로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자신의 요리를 고객이 칭찬해줄 때란다. 정성 들여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는 고객을 보면 가슴이 벅차오른다고.

“지난해 2월쯤, 외국으로 떠나기 전에 기억에 남는 식사를 하고 싶다며 중년 부부가 장성한 아들 딸과 함께 제가 일하던 프렌치 레스토랑에 왔어요. 식사를 마치고 저를 부르시더니 정말 맛있게 먹었다며 메뉴판에 제 사인까지 받아가셨죠. 1주일 후, 그때 왔던 부인이 다시 찾아와 보자기로 정성스럽게 포장한 선물을 주셨어요. 풀어보니 한과와 빨간 비단으로 곱게 싼 편지가 들어 있었어요. 그날의 식사를 평생 잊지 못할 거라고, 가족에게 추억을 남겨주어 감사하다는 내용이었죠.”

그가 인생에서 기억에 남는 또 하나의 일은 2005년 조리사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신세계그룹의 임원인 상무로 진급한 것이다. 조리사로 일한 지 20년, 웨스틴조선호텔의 수석 조리부장으로 모든 셰프를 거느리는 위치에 있으면서 은퇴를 염두에 두고 있을 때였다. 이후 리뉴얼한 ‘나인스 게이트 그릴’을 맡아 운영하면서 한국식 재료로 재해석한 프랑스 요리를 선보여 폭발적인 호응을 이끌어낸 그는 자신만의 요리 스타일을 고집하기보다는 트렌드를 수용하고 시대와 문화를 반영한 요리를 만들고 싶어 한다.

“양식이라고 해서 반드시 서양의 식재료만 써야 하는 건 아니에요. 우리나라는 고사리, 두릅, 꼬막, 쑥 등 신선하고 좋은 식재료가 많이 나는데, 이런 재료와 간장이나 된장 같은 우리 양념을 서양요리와 접목하면 여러 측면에서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올 수 있어요.”

1990년대 초・중반부터 이미 퓨전 스타일의 요리를 시도했던 그는 우리나라 전역의 특산물이나 식재료에 관심과 애착이 커 메뉴에 식재료의 산지를 그대로 표기한다. 가령, 코스 메뉴에 등장하는 수프 이름은 ‘남대문시장 해물수프’, 한식당의 갈치조림은 ‘제주갈치조림’이라고 내거는 식이다. 한국음식을 세계화하려면 식재료부터 알려야 한다는 믿음 때문에 제철 과일이나 생선 등 신선하고 맛좋은 식재료를 찾아내기 위해 5일장을 헤매고 돌아다닌 적도 숱하다. 제주 해비치호텔로 근무지를 옮긴 지난해부터는 제주도의 특산물을 찾아내 새로운 요리를 연구 개발하는 데 힘쓰고 있다.

“셰프들을 총지휘하는 총주방장이라고 해서 손이 쉬고 있지는 않아요. 감을 잃지 않기 위해 여전히 주방에서 요리하고 전국의 맛집이나 유명 음식점을 돌아다니며 맛을 보죠. 두 달에 한 번씩 직원들을 데리고 서울에 있는 호텔들을 방문해서 메뉴구성이나 직원들의 서비스 스킬도 벤치마킹하고요. 고객의 니즈를 읽으려면 시대상이나 문화의 흐름을 꿰뚫어야 하니까 다양한 체험을 중시해요.”

‘요리와 관련된 다양한 영감을 메모하고 사진으로 담아두기 위해’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그는 요리와 관련된 만화나 영화를 즐겨본다. 가장 인상 깊게 본 작품은 <라따뚜이>, 그의 휴대전화에 메모해 둔 읽어야 할 도서목록에는 《대통령의 맛집》이라는 책이 있었다. 1988년부터 모은 전 세계 요리책만 1000여 권. 이쯤 되면 정보수집광이라 불려도 좋으리라.

“사람들은 제가 요리사니까 가족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많이 해주겠다고 부러워하지만 전혀 그렇지 못해요. 대신, 제 철칙은 아내가 해주는 음식에 대해 절대 불평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어떤 음식이든 감사히 맛있게 먹습니다. 아내의 이름이 ‘임금님’이니 극진히 모셔야죠.”


최고의 셰프가 좋아하는 음식이 무언지 궁금해하자 의외의 답변이 돌아온다. 요리사가 되어 요리를 연구하고 분석하는 데 치중하다 보니 ‘먹는 즐거움’을 잊고 산다는 것. 그나마 생각 없이 즐기며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장터국수, 순댓국밥, 떡볶이 같은 서민 음식이다.

“광장시장에서 마약김밥과 떡볶이를 먹고 난 후, 메뉴에 반영하고 싶어 여름 시즌에 수영장에서 ‘떡볶이카르보나라’를 내놓았더니 이색적이라고 좋아들 하셨어요.”

그에게 요리는 ‘인생의 전부’란다. 요리는 끝없이 배우고 도전해야 할 대상이자 예술적인 감각이 필요한 창의적인 장르다. 시간이 날 때면 미술전시회나 음악회, 공연장을 다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래서일까. 셰프 이민의 이름을 내건 메뉴에는 제각각 이야기가 숨어 있다.

“제 영향을 받아 요리를 시작한 아들은 아빠에 대해 자긍심과 부담감을 동시에 느낀대요. 언젠가 부자가 함께 요리하는 식당을 차리고 싶어요. 노후에는 배낭 하나 메고 훌쩍 여행을 떠나 각 지역의 음식들을 원없이 맛보고도 싶네요. 가족과 함께라면 더 좋고요.”

사진 : 김선아
  • 2010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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