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를 이어 나눔 실천하는 대전의 빵집 ‘성심당’

그날 팔다 남은 빵은 몽땅 기증합니다

대를 이어 내려오는 ‘오래된 빵집’

“탁구야, 너는 빵이 왜 좋으냐?”   “빵에서 나는 따뜻 한 냄새가 좋습니다.”   “그렇구나.”
“스승님은 왜 빵이 좋으십니까 ?”   “그야 사람이 먹는 것이니 좋지.”   “그럼 저도 그리 바꾸겠습니다.”

5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할 정도로 장안의 화제였던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 탁구의 제빵 스승인 팔봉 선생은 “빵 만드는 사람은 먼저 사람을 생각해야 한다”는 유언을 남긴 채 숨을 거둔다. 대를 이어 내려오는 ‘오래된 빵집’. 세대에 따라 입맛이 바뀌고, 인기 있는 빵의 종류도 달라졌는데 ‘오래된 빵집’은 여전히 성황이다. 유럽이나 일본에서 첨단기술을 익혀온 제빵사와 파티셰들이 날마다 새로운 빵을 내놓고, 대기업이 만든 프랜차이즈 제과점이 전국 구석구석까지 파고들어간 요즘, ‘오래된 빵집’들이 생명력을 이어온 비결은 뭘까. 1945년에 시작,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인 군산의 ‘이성당’과 1956년부터 빵을 만들어온 대전의 ‘성심당’을 찾았다.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에서 탁구(윤시윤)는 “누구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외친다. 이런 세상이 정말 있을까.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다. 대전에 있는 빵집 ‘성심당’에서는 이를 55년째 실천하면서 나날이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성심당에서는 그날 팔고 남은 빵은 몽땅 기증한다. 남은 빵 수량을 계산해 각종 복지단체나 새터민, 이주 노동자 단체 중에서 인원에 맞는 곳을 골라 기증한다. 적을 때는 하루 수백 개, 많을 때는 수천 개에 달한다. 매주 일요일에는 대전역 노숙자들에게 250개의 빵을 선물한다. 성심당의 후덕한 인심은 시식코너에서도 드러난다. 20여 개의 시식용 접시는 비워지기 무섭게 새 빵으로 채워진다. 동네 미술학원 학생들이 우르르 밀려와 허기진 배를 채우고 가면 메뚜기떼가 훑고 지나간 듯 빈 접시만 남지만 누구하나 눈치 주는 이가 없다.

이렇게 ‘남 좋은 일’을 많이 하고도 장사가 잘될까. 성심당은 전국 윈도 베이커리(개인 제과점) 매장 중 최대 규모다. 성심당 단일 매장에서만 연매출 60억 원, 하루 평균 매출 1500만 원에 육박하고, 이 빵집 최고의 인기 상품인 튀김소보로빵은 하루에 700~800개가 팔린다. 동네 빵집이 대기업의 프랜차이즈 제과점 때문에 잘 안 된다고 아우성이지만, 성심당 옆에는 프랜차이즈 제과점이 얼씬도 못한다. 1992년 한 유명 베이커리 체인이 들어섰다가 2년 만에 문을 닫았다.

대전역 부근에 있는 성심당에 들어선 순간 어리둥절했다. 빵집에 이렇게 사람이 북적거리는 모습은 처음 봤다. 어림잡아 40여 명은 되는 사람들이 바구니 한 가득 빵을 담고 있었다. ‘대전 시민들은 빵만 먹고 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보통 주말에는 하루 5000여 명, 많을 때는 1만 명의 고객이 다녀간다고 한다. 이곳에서 맛본 치아바타빵은 최고였다. 쫄깃하면서도 담백하고, 빵의 숨결이 한 겹 한 겹 살아 있다. 냉동 생지가 아니라 직접 만든 생지를 쓰기 때문에 식감이 탁월했다. ‘월넛 브레드’는 질 좋은 견과류가 아낌없이 박혀 있고, 다양한 빵에 적용된 팥앙금은 팥 고유의 향이 살아 있으면서도 신선해 알갱이가 톡톡 터졌다. 확실히 프랜차이즈 빵집의 그것과는 달랐다. 성심당은 서울의 이름난 빵집에 비견해도 손색없을 빵맛을 갖춘 데다 남은 빵은 모조리 기증하기 때문에 “그날 만든 신선한 빵만 파는 곳”으로 소문나면서 손님을 점점 더 끌어 모으고 있다. 선행하는 빵집의 빵을 사는 ‘착한 소비’도 성심당 번성에 힘을 보탠다.

성심당의 사훈은 “모든 이가 다 좋게 여기는 일을 하도록 하십시오”다. 성심당 임영진 대표는 “우리는 성공이 목표가 아닙니다. 나는 너를 위해, 너는 나를 위해, 모두는 모두를 위해 존재합니다. 거래처를 위해, 고객을 위해, 동료를 위해 존재하다 보면 공동선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요?”라며 되묻는다.

성심당 나눔의 철학은 1956년 오픈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의 아버지(고 임길순 씨)는 1950년 흥남 철수 때 마지막 배에 가까스로 올랐다. 그리고 그 배에서 이렇게 결심했다. ‘새로운 삶을 얻었으니 선행을 베풀며 살겠다’고. 1956년 대전에 작은 찐빵집을 차린 그는 그날 남은 찐빵을 배고픈 이웃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이 철학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는 것. 5년 후 제과점 형태를 갖추었고, 1970년대 중반까지 성심당은 제빵사 5명을 거느린 평범한 제과점에 불과했다. 그러다가 1974년, 성심당의 역사를 바꿀 만한 사건이 생긴다. 성심당의 직원들이 가불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집단 파업했고, 장남이자 대학생이었던 임영진 씨는 빵집 문을 닫지 않기 위해 책을 펴놓고 공부하며 빵을 구웠다. 이때 그는 빵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온도와 반죽의 정도에 따라 마술처럼 형태가 달라지는 빵의 오묘한 세계에 젖어들면서 궤도를 틀었다. 공학도였던 그는 빵에 과학적인 이론을 적용하면서, 시야를 넓혀 서울의 유명 빵집, 일본과 유럽 베이커리의 선진 기술을 벤치마킹하기 시작했다. 그의 아내 김미진 씨와 그는 더없는 사업 파트너다. 성심당 홍보이사인 김미진 씨와 그는 수시로 베이커리 투어를 다녀와서 성심당 철학과 실정에 맞는 부분을 바로바로 접목시킨다.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한 김미진 이사는 디자인 감각에다 트렌드를 앞서 읽는 시각까지 갖췄다.

“얼마 전 조카 결혼식을 보러 하와이에 다녀왔어요. 야외 결혼식 풍경, 리셉션 인테리어, 칵테일 파티 스타일 등 모든 것이 다 벤치마킹 대상이었죠. 다녀와서 외국인의 하우스 웨딩 출장에 바로 적용했더니 너무너무 좋아하면서 고마워했어요. 대표의 부인은 카운터를 지키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카운터는 안 봐요. 바깥에서 바라봐야 더 잘 보이고, 임 대표와 같이 다니면서 같은 것을 바라봐야 뜻을 모을 수 있잖아요.”(김미진 이사)


임 대표가 성심당을 정식으로 물려받은 1980년대 초반,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이런 유지를 남겼다. “돈벌이에 급급하지 말고 남을 도우며 살아라.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라. 성심당을 남녀노소 부자와 가난한 자 누가 와도 쭈뼛거리지 않는 곳이 되게 해라.”

임 대표는 부친의 유지를 받들면서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빵집의 사세를 확장해나갔다. 단팥빵의 달콤한 팥소, 소보로빵의 바삭한 껍질, 찹쌀 도넛의 쫄깃한 반죽의 장점을 합쳐서 그가 개발한 ‘튀김소보로’는 성심당 번성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 빵을 사기 위해 대기표를 들고 줄을 서야 할 정도였다. 이외에도 그는 우리나라 빵 역사의 한 획을 긋는 획기적인 개발을 많이 했다. 스티로폼 통에 넣어서 판매한 ‘포장 빙수’(1985년), 일본에서 벤치마킹해 현지화한 ‘생크림 케이크’(1982년)는 모두 그가 최초로 시도했다. 1982년 이전까지만 해도 생크림 케이크 대신 버터크림 케이크 일색이었다.


뿐만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성심당은 국내 최초의 베이커리 레스토랑인 ‘테라스 키친’을 열었다. 이후 크고 작은 레스토랑을 하나씩 열면서 현재 6개의 레스토랑을 운영 중이다. 이탤리언 레스토랑 ‘플라잉 팬’ ‘삐아또’, 일식우동집 ‘우동야’ ‘리틀 우동야’, 와플 카페 ‘오븐 스토리’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성심당이 늘 성공가도만 달려온 것은 아니다. 사업 분야를 무리하게 확장하다 존폐 위기에 놓인 적도 있었다.

“우리가 최고 번성기였을 때 어떻게 했는지 뒤돌아봤어요. 마음이 조급하면 안 되겠더라고요. 우리만의 장점이 무엇인지, 다른 곳에서는 따라 할 수 없는 우리만의 색깔이 무엇인지 고민해봤어요. 풍요로움과 넉넉한 모성애적인 점포로서의 역할이라는 답이 나오더군요. 부친에게서 물려받은 ‘나눔의 철학’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잖아요. 그 정체성을 다잡으면서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성심당은 지난 54년의 전통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앞으로의 세대에 대한 준비를 함께 하고 있다. 임 대표의 큰딸은 쿠킹 클래스에서 이탤리언 요리를 가르치고 있고, 얼마 전 군에서 제대한 대학생 아들은 3대를 이을 준비를 하고 있다. 3대째 경영자에게 무슨 말을 남기고 싶으냐는 질문에 임 대표는 이런 답을 했다.

“빵집을 하면서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을 밟아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게 세간의 상식이지만 세상은 아직 살 만하고 아름다운 곳입니다. 이렇게 나누면서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 저를 보십시오. 성심당을 보십시오. 베풀면 더 돌아옵니다.”

사진 : 조상우
  • 2010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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